지난 여름 더위가 막바지에 다다른 어느 날. 나는 고향 선산의 부모님 산소에 있었다.
뙤약볕 아래서 징그럽게 걸쳐있는 칙넝쿨을 걷어내며 산 아래 먼 발치로 보이는 저수지 한귀퉁이를 바라본다.
해마다 벌초 한 달 전에는 부모님 산소의 키큰 풀들을 정리하고 낚시를 간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어느덧 이 십여 년이 되어간다. 국민학교 입학 전 부터 아버지를 따라 낚시를 다녔으니 나이에 비해
나의 조력은 꽤나 오래된 편이다. 그런데 고등학교 이후로 나는 아버지와 낚시를 다니지 않았다. 군에서 제대 후 아버지께서
몇 차례 낚시를 가자고 하셨으나 무슨 이유에선지 나는 한 번도 아버지와 낚시를 가지 못했었다. 딱히 이유는 없었으나
굳이 이유를 들자면 머리가 굵어진 탓 이리라..
내가 다시 물가에 낚시대를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삼 사년 쯤 후의 일이다. 그 무렵 베란다 한 켠의
오래된 낚시가방 속에서 나는 아버지의 환영을 보았었다.
그 무렵은 선배와 의기투합해서 벌여놓은 보습학원을 정리하고 집에서 빈둥거리며 소주나 축내는 것이 소일거리였다.
그러던 중 하루는 시집가서 가끔 집에 들리는 세째의 잔소리가 나를 베란다로 향하게 만들었다.
"오빠, 베란다 구석에 낚시가방좀 갖다버려 가방에서 냄새가 나"
몇 번 들었던 잔소리였던지라 나는 못 이기는 척 베란다 문을 열어야 했다. 베란다 끝 벽 모서리에 기대서있는 것은 낡고 오래된
낚시가방이다. 아버지의 것으로 짙은 갈색의 4단이며 애초부터 어깨에 멜 수 있는 기능은 없는 것으로 달랑 손잡이만 달려있는
그런 오래된 낚시가방이다. 지금에 와서 기억은 없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 하면서 버리지 못하고 베란다 한 켠에
처박아 두었으리라. 귀찮은 생각에 그냥 버리려다 나는 낚시가방을 바닥에 눞혀놓고 쪼그려 앉아 지퍼를 열어 보았다.
먹색으로 녹이 낀 지퍼가 열리면서 처음 눈에 들어온것은 지금은 볼 수 없는 사각으로 봉재된 낚시집의 '원다' 라는 글귀였다.
옆으로 쓰여진 2.4 칸 수와 맞물려 2.9라는 숫자와 2.1 이라는 숫자도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몇 대의 낚시대들, 그것들을
들어내자 나일론 헌겁으로 둘러싼 것이 보였는데 손으로 더듬어보니 내용물은 두어대의 낚시대 같은데 비닐 테잎으로 여러번
감아놓은 것이 세월에 녹아내린 탓에 쉬 뜯어낼 수가 없어 바닥에 놔 두었다. 두 번째 칸에는 손때묻은 받침대가 가지런히 들어있다.
주걱을 철사로 만든 대나무 받침대가 주였고 몇대는 굵은 철심을 접었다 펼 수 있게 만들어진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고안으로
짐작되는 글라스 소재의 받침대도 보였다. 대부분 낡은 것들 중 유독 두대는 노란 비닐 집에 들어있어 얼핏 봐도 새것처럼 보였다.
손 으로 대여섯대의 받침대를 대충 헤쳐보다 다시 좌측 보조칸 지퍼를 열어본다. 은성의 로고가 보이는 단절 낚시대 케이스다.
투명 플라스틱 소재의 케이스는 가장 최근에 구입 하셨는지 새것처럼 표면이 매끈하다. 그 안에는 갖은 소재의 중찌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봉지들과 나무상자, 본래는 직사각이었을 작은 나무상자는 낡고 닳다못해 그 모양이 타원형으로 변했고 거무티티하게 변색된
표면에는 담뱃불에 그을린 자국이며 미닫이식 홈에 끼인 흙먹지가 한눈에도 지렁이통임을 알 수가 있었다. 꼼꼼하게 부피를 줄여 묶어놓은
봉지들을 하나씩 풀어보니 굳어버린 깻묵덩어리며 어분인지 밀가루인지 모를 가루들과 썩다못해 말라버려 그것들이 냄새의 주범들인 콩이나
옥수수였으리라. 그 옆으로 주먹만하게 일그러진 봉지엔 '원자탄' 이라는 글씨가 초라하게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이것들을 왜 이렇듯 꼼꼼하게 챙겨두셨을까.
수 년 간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낚시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신 것일까.
이제는 잡다한 쓰레기에 불과한지라 치워 버리려고 나는 꺼내놓은 것들을 다시 가방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러나 눈에 와 닿는 것이
헌겁에 쌓여진 물건이다. 얼핏 짐작에 낚시대 같은데 왜 헌겁에 쌓아놓았는지.. 기어이 그 헌겁을 감아놓은 비닐 테입을 풀기 시작한다.
거의 찟다시피해 헌겁을 풀어 제치니 나오는 것은 낚시대였다.
녹색 낚시집에 들어있는 은성의 수향대와 남색 집의 원다 콤비카본. 두 낚시대엔 정성껏 외 봉돌의 쌍바늘 채비가 되어있었고 찌 마저
정갈하게 꽂혀 있었다. 그러나 한 번도 쓴 것 같지 않은, 바늘역시 깨끗한 낚시대와 채비 그대로였다. 두 낚시대중 하나를 들어 생각없이
만져보던 나는 한순간 쪼그려 앉았던 다리의 힘이 풀리면서 맥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곤 굳어버린듯 두 대의 낚시대를 하염없이
바라만 보았다. 머릿속이 텅빈듯 가슴은 먹먹하니 무언가 쌔한 기운이 조여오는 듯 아렸다. 그대로 멍한 상태에서 알 수 없는 눈물만이
흘러 내렸다. 나는 그렇게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나와 낚시를 가고 싶으셨던 것이다. 아들이 제대하면, 아들이 오기만 하면.. 아니, 언제든 아들이 말만 하면 낚시를 가시려고
준비를 해 두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사용할 낚시대 두대를 장만해 놓으시고 기다리셨던 것이었다. 내가 그토록 어려워 했었던 아버지는
그렇게 말도 못하고 기다리시기만 했던 거였다.
이후로 저는 아버지의 낚시짐을 그대로 가지고 낚시를 다녔으며 지금도 쓰지는 않지만 현관 낚시창고엔 콤비카본 낚시대가 남아 있습니다.
이글을 읽는 내내 눈물이 나는군요
저도 아버지따라 낚시를 배우고 다닌지가 언40년이됐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셔서 보고싶어도 볼수가 없네요 ㅜㅜ
옛날 생각에 가슴이 먹먹합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형님과 셋이 좌대타고 낚시할때 그렇게 즐거워 하셨는데....................
지금도 형님의 낚시가방엔 아버지가 쓰시던 낚싯대가 있습니다
항상출조하면 아버지생각이납니다 ㅜㅜ
아버지~~~~~~~~~~ 지금은불러봐도 대답없는 아버지
보고싶습니다
그립습니다
제 아들도 장성해서 내일 모레면 40인데 ......자식이 크니 예전같지 않게 뭐라 말하기도 조금 어려워지네요.
이제 저도 허수아비님 선친처럼 그런 바램을 가지고 있는데 자식놈은 전혀 꿈쩍을 않네요.
낚시를 안좋아해서 그렇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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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눈물이 나네요.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저도 6살 무렵 아버지 손잡고 낚시를 따라다니기 시작하여 낚시광이 된지 벌써 40여년이 훌쩍 넘었네요...
이제 80순을 바라보는 아버지께는 일년에 서너번 고향에 오는 아들들 데리고 밤낚시 가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는 걸 저도 최근에 알았습니다...!!
그때마다 어릴적 저를 데리고 다니셨던 똑같은 레파토리의 낚시 이야기들을 수십번도 넘게 들어야 하지만...^^
부디 건강하셔서 앞으로도 같이 낚시갈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기만을 기원합니다...!!
아버지.....돌아가신지 7년 됐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유품정리하던중에 아버지 낚시대를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다가 아버지 유품으로 낚시를 시작한지 4년 됐습니다...
남들이 옛날 낚시대라고 무겁다고 버리라고 해도 그냥 했습니다...
그러다가 록시대를 몇대 사고 .... 조금 배웠다고 아버지 낚시대를 홀대하기 시작한 내자신을 보며 창가를 보며 눈물을 훔칩니다..
글 감사하고....꼭 제 이야기인것같아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아버지께 더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