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는 역사적으로 유례를 찾기힘듭니다.
우리 또한 5천년을 중국 일본과 부대꼈습니다.
굵직한 것만 꼽아보더라도
중국은 수, 당, 거란침공부터 병자호란에 이르고
일본은 고려말 왜구부터 임진왜란, 구한말 일제강점기에 이릅니다.
일본에 위안부가 있다면 중국에 50만에 이르는 환향녀(還鄕女)가 있다.
중국은 사실상 1392년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서부터
1895년 하관(시모노세끼) 조약때 까지 500년간 조선을 속국으로 지배했다.
1407년 태종은 중국을 숭모한다는 모화루(모화관)을 세우고 서울 서대문에 홍살문을 세워 중국 사신을 영접해 왔다.
그러다가 중국의 요구로 1539년 중종때 홍살문을 '중국의 은혜를 영접한다'는 뜻으로 영은문(迎恩門)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리고 중국 사신이 오면 조선왕은 영은문까지 나가 중국 사신을 영접하였다.
중국 사신과 함께 한양으로 들어올 때에는 조선 왕은 중국 사신보다도 서열이 낮아 사신보다 앞서 가지 못했다.
중국 사신이 한번 뜨면 조선의 산천초목은 떨었다.
시진핑이 트럼프에게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였다"라고 말해 우리를 분노케 했지만 사실 그들은 500년 이상 그렇게 생각왔다고
대다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있다.
조선은 무력을 사실상 포기하고 중국 밑으로 스스로 기어 들어간 나라였다. 중국 황제가 승인을 해야 왕이 될 수 있었으니까.
심지어 명나라 황제는 쿠테타로 권좌에 오른 이성계와 그 후대 왕들을
권지조선국사(조선의 왕을 대신하는 사람)이라 칭하며 왕으로 인정도 하지 않았다.
매년 바쳐야 하는 온갖 공물에 백성들의 진은 다 빠졌고
중국 조정에 뇌물을 바치고, 중국의 사신으로 임명된 자들이 조선에 와 본전의 몇 배를 뽑았다.
1894년 발발한 청일 전쟁에서 패한 중국이 1895년 4월 17일 일본 시모노세끼에서
일본의 이등박문과 중국(청)의 이홍장 간에 조인한 조약에서
"청국은 조선이 완전한 자주독립국임을 인정한다"라고 선언함으로서
조선은 중국의 500년 지배에서 비로소 독립할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조선에서는 서대문 모화관을 '독립관'으로 이름을 바꾸고
중국으로 부터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다.
'독립'하면 일본으로 부터의 독립만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다.
서대문에 있는 독립관이나 독립문은 36년간 지배해 온 일본으로 부터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500년간 지배받던 중국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897년 서재필 박사가 주축이 돼 지은 것이다.
우리 국민 수십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 넣고 국토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던
6·25 남침 때 패망 직전의 김일성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지금까지도 우리민족이 분단된 국토의 고통을 받게 한 것이 '마오쩌둥(모택동)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사람이 많다.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를 중국으로 부터 독립시킨 것은 일본이고
일본으로 부터 독립시킨 것은 신미양요를 일으킨 미국이다.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우방도 없습니다.
오직 자국의 국익과 이를 위한 힘의 논리가 지배할 뿐입니다.
역사를 망각하지 않아야하지만 역사에 매몰되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합니다.
독립문서라
생각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