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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왜??
이것 좀...
한아름 건낸 헌 "옷가지"에서 이제는 장성한 두 아들 녀석들의 옷과
그리고 제 헌 양복 마눌의 유행이 지나 못 입는 의복들이 석여있다.
그래도 당시엔 나름 돈푼깨나 주고 산 옷가지거늘 이젠 몸집이 훌쩍커버린
(큰놈 186cm.96kg 작은놈 183cm.83kg) 녀석들의 채취가 아직은 남아 있는듯...
옷가지의 "보따리"를 안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데 마침 지하에서 헌 옷가지를 수거해가시는
젊은 부부와 조우하게 되여 몇마디 "문답"에 수거해간 옷들의 행방을 조금은 알것같다...
수거해간 옷들은 "집하장"에 모여 종류별로 분리하여 쓸만한 옷들은 수거해 중고로 재 판매하거나
아님 "저개발국가"에 "무상원조"로 나간다는 것이다...
지난해 어느 가을 쯤...
거실 쇼-파에 앉아 따듯한 커피 한모금과 "돋보기" 안경 넘어 "조간신문"을 펼치려는데 T.V.화면 가득
보여지는 "아프리카"의 어느 항구엔 지역주민들이 몰려나와 아수라장을 방불케한다.
열린 "컨테이너"에선 한국산 "신발"과 한글이 쓰여진"의류"가 산더미처렴 내려지니 그것을 쟁탈하려는
"몸싸움"에 질서는 무너진지 오래...그것을 보고 있자니 우리들의 유년을 상기해 봅니다...
아마도 4~50년전에도 어느 "선진국"에서 지금의 저와 똑 같은 모습으로 "신문"이나 "책자" 혹은
T.V에서 동양의 작은나라 "코리아"의 "원조"를 받는 모습을 보고 있었겠죠...
"한국전쟁"이 끝나고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엔 누구나 꿰매 입는것을 당연하게 여겼었죠...
"저고리"나 "바지"을 꿰매 입는것은 물론이요 몇일 신지 않아 "발가락"이 나오거나
"뒷꿈치"가 떨어지는 "양말"을 꿰매 신었습니다...
그 시절엔 "팬티"나 "런닝샤쓰"(일본식 발음 "난닝구")도 "수선해 입는데 당~연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집 아이는 "구멍"난 "양말"및 "바지"에 "천"을 덧 대어 꿰매는등...
그리고 "국민학교" "실과"시간엔 "바느질" 하는 방법을 가르친걸로 기억합니다...
또 당시엔 저도 경험이 있습니다만 "청계천"시장이나 "남대문"시장에서 "미군야전잠바" 및
"미군작업복바지"를 구입해 동내어귀에 하나씩있는 "염색소"에서 그 군복을 검게 물들여 입곤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잘 떨어지지 않는 "나일론소재" "의류"및 "양말"이 나오고
"장롱"에 옷가지가 넘치면서 사람들은 차츰 "바느질"하는 법을 잊게 됐고
구멍난 "양말"이나 "속옷"을 버리는것에 익숙해졌으며 아울러 "장롱"엔 새"양말"이나
"속옷"및 옷가지가 상상할수없을 많큼 그득하게 되였습니다...
흐릿한 "전등불" 아래 "돋보기"를 쓰신 어머님의 바늘을 머리 "정수리"에 쓱쓱 문지르시고
"전구"를" 넣어 꿰매신던 "양말"을 기억하시는지요?
어머니와 마주 앉아 "실타래"를 양손바닥을 펴 끼곤 "실퍠"에 감으시던 모습과 항시 "반짓고리"가 늘 곁에 있었습니다.
후에 발로구르는 "재봉틀"에서 또 손으로 돌려 작동하는 "재봉틀"까지...
신혼땐 제 구멍난 "양말"도 곧잘 꿰매주던 마눌이 이젠 며느리를 볼 나이쯤되서인지
"대형마-트"에서"속옷"과 "검정양말"을 한~~봉다리를 사와 서랍에 넣어두곤 떨어지면
꿰맬생각은 아니하고 하나씩 꺼내 신으랍니다...
흠질...가장쉬운 "바느질"방법으로 "바늘땀"의 크기를 0.5Cm 정도로 합니다.(군 시절 "명찰"이나 "계급장"달때 기억이 납니다)
박음질...가장 많이 사용되는 "바느질"방법으로 튼튼한 "솔귀"를 꿰맬때 이용한답니다.
시침질...본 "바느질"을 하기전 "바느질"형태를 확인하고자 할때 주로 이용합니다...
지난글 "그때 그시절"(앨범)...45 편에 다녀가시며 추억을 공감하여 주시고 댓글로 용기를 주신 님들께 감사드립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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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예외없이 신었습니다
심지어 검은 양말에 빨간천 덧댄 울긋 불긋한 양말도 신었었죠
부모님 모두 사느라 바쁜 그시절
아들 양말 꿰매 학교 보낼만큼 한가하지 않으셨던 부모님덕에
저도 제법 바늘질 잘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