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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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터를 찾은 첫날
원줄은 자연지에서 사용하던 3호줄
목줄은 2.5호와 띄밭에서 산 몇합사인지 모르지만
합사에 붕어바늘 7호가 달려 있었지 않았나 싶다
첫날
조과에 고무된 우리는
다음날 첫날 저수지 좌안 최상류 화장실 밑 두아름도 넘는 큰 수관이
입 벌리고 있는 바로 앞에 짧은 대 두대를 드리워 3사람이 교대로
대여섯시간동안 각각 10여수 이상씩을 무우 뽑듯 뽑아 나간
자리로 이동을 하였다
그날 제자는 사부의 박수와
"잘한다,잘한다"라는 찬사를 수도없이 받아가며
그야말로 잉어를 무우뽑듯 뽑아 올렸다
다음날 조과
내가 20여수
형이 10여수
다음날도 내가 형보다 거의 배의 조과를 올린 것
이러한 조과는 이듬해가 되는 올 해 물로간 산적님과
괜찮은꾼을 띄밭에서 손님으로 맞은 그날까지
단 한번도 깨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나는 일평균 20여수
형은 많이 잡아야 5-6수
어느날은 내가 4박5일동안
100여수 이상을 걸어내는 그때까지
형은 단 한마리의 잉어도 걸어내지 못하는 그야말로
꽝조사가 된 적도 있었다
유료터에서 20수년 잔뼈가 굵었다고
큰소리 치면서 그렇게 유료터 조과를 자랑하던 형이
1년동안 단 한차례도 나를 이기지 못한 것은
술로 인하여 떨어진 집중력과
한 곳에 미치면 깊이 천착하는 나의 열정과 노력에 기인함이다
형은 2박3일에 떡밥 두봉지를 채 사용을 못한다
그러나 나는 2박3일에 평균 떡밥 다섯봉지 가까이를 사용한다
유료터의 조과는 집어가 관건이라는 말을 하였던 형은 항상 낚시대 두대 편성에
체력이 미치지 못하는데다 술로하여 밑밥 투여를 거의 하지 않고
낚시를 한 반면
나는 언제나 세대를 편성하여
고기가 붙을때 까지는 말할것도 없고
자리를 뜰때까지 잠시도 쉬지않고 부단히 밑밥을 투여하여
고기가 한번 붙으면 미끼가 갈아앉기 바쁘게 챔질을 해야 할 정도로
엄청난 잉어떼가 붙어 있었으니 초보라 하여도
가만 두어도 그냥 빨고 들어가는 강한 입질로 건져내기만 하면
되는 상태였으니 초보냐 베테랑꾼이냐하는 잣대로는 잴 수 없는 형편......
7월초까지는 후킹시킨 녀석은 거의 걸어내었었다
잉어 힘이 장사라는 내말에 최사장은
"아직 멀었습니다.올해는 장마가 길어 예년보다 수온이 떨어져
고기가 힘이 붙을려면 장마가 그치고 일주일쯤 지나는 7월 중순쯤되면
그야말로 하루밤에 낚시대 부러지는 소리가 열댓번 정도 납니다"라는
말을 건성으로 들었다
자연지 다닐때의 그 채비로 큰 어려움없이 띄밭잉어와의
승부에서 후킹만 제대로 되면 터뜨리거나 원줄이 터지거나 바늘이
부러지는 경우없이 다 제압하였으니까
그러나 그런 날도 잠시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띄밭저수지 수온을 끌어 올리기 시작한
7월중순부터 나는 늘 하는 이야기지만
충주댐 안동댐에서 70cm가 넘는 가물치
55cm가 넘는 향어 잉어를 2호원줄 1.5호 목줄로도 한번도
터뜨리거나 놓친적 없이 후킹시킨 녀석은 모두 무릎을 꿇려서
낚시대가 부러지는 경우는 꿈에도 생각을 못하고
3호목줄이 맥없이 터지리라고는 생각도 못하였는데
지난해 7월 나와 형은 띄밭잉어의 난폭한 머리 흔듦에
수없는 낭패를 당하였다
그래서 3호원줄이 4호로 4호원줄이 5호로 바뀌고
바다낚시용 시가5호릴줄을 들고 나타난 나를 보고
최사장은"저 찦차 이줄로 걸어서 한번 땡기 봅시다"라는
농을 할 정도가 되었고......
목줄은 케블라 3호합사가 4호로 그래도 안되어서 5호로
바뀌고 시가5호 바다낚시용 라인도 새로 채비한 줄이
단 한번의 잉어입질에 중간이 맥없이 터지는 황당한 꼴을 당하고
종당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하다는 소문이 난
바낚스 케블라 3.5m대에 케블라 4호를 통줄로 메는
웃지못할 채비를 갖추었지만 그 채비도 견디지 못하고 터져 나가는 경우를
당하였다
그러다가 띄밭의 고수 한분을 우연히 만나는 계기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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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선배님을 따라 한번씩 양어장낚시를하지만 그렇게 힘좋은고기는 못잡아봤음니다
실감나느글로 대리손맛을 톡톡이봅니다 감사ㅘㅂ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