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 균형있는 게시판 사용을 위해 1일 1회로 게시물 건수를 제한합니다.
화장실 세면대에서 손을 씻다 거울에 비친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낚시를 다니며 그을린 얼굴과 거칠한 피부, 깍은지가 좀되어 부스스한 머리와
언듯언듯 보이는 흰머리카락들....
얼굴의 각도를 돌려가며 턱선이며 얼굴융곽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거울에 비친 중년의 모습을 보며 마음에 이는 첫 번째 생각이었다.
다른이게는 익숙하겠지만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늘 다른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세월의 흐름을 느낄수 있었지만
내 마음속에 그려지는 내얼굴은 언제나 이십대 후반의 얼굴 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드려다 보니, 낯설게 느껴졌다.
마음속의 내 얼굴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머물러 있는데
거울속의 얼굴은 40대 중반의 얼굴이었다.
낚시가 취미라 나이보다 더 늙어버린 피부는 탄력을 잃어버린듯
부스스해 보였고, 하루종일 업무에 시달린 탓인지 눈가 잔주름 들이
유난히 더 깊어보였다.
‘이정도면 아직도 미남소릴 들을 수 있는 건가?’
한참을 쳐다보다 문득 드는 두 번째 생각이었다.
쌍커플이 되진 않은 눈매와 오똑한 콧날, 아직 살이 많이 붙지 않은
턱선과 훤칠한 이마를 구분지어 살펴보고
전체적인 윤곽의 느낌을 가름해 보았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남들에게 보여지는 내 모습의 느낌이 어떤 것인지
가름이 되진 않았다.
외모에 대해선 젊은 날부터 늘 확신이 없었다.
너무도 평범한 외모, 잘생겼다 못생겼다를 구분짖기 힘든
생길 건 다 그런대로 생겼다는 정도의 외모라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을 꺼내 다시 한번 메시지함 버튼을 눌러 조금전 보았던
그녀의 문자를 다시 열어보았다.
-“저녘 같이 드시게요. 7시 라마다호텔 로비에서 뵜으면 좋겠네요.”
그녀의 문자를 받고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모르겠다
오전부터 하루종일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다.
그녀에게 영한의 등장에 대해 이야길 해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영한의 등장을 알려줘야 한다는 핑계로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내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았을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무서웠다.
예전처럼 냉냉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고 상투적인 목소리로 응대를 할 것
같은 두려움이 일었다.
그녀의 전화번호를 띄워 놓고 통화버튼을 누르려 망설일 때마다
창문을 조금 내리고 얽히려 하지 마라는듯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싸늘한
시선이 떠올라 결국 버튼을 누르지 못한채 하루가 거의 지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퇴근무렵 그녀의 문자가 온것이다.
그것도 저녘식사를 같이 하자는 연락이었다.
문자를 받고부터 마음은 온통 혼란속에 휩싸였다.
그녀와 오늘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될지 어떤 감정과 표정으로 그녀를
대해야 할지, 어떻게 그녀를 리드해야 할지 모든게 혼란스러웠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성과의 데이트라 어떻게 해야할지 두려움
마져 생겨나고 있었다.
‘부딪쳐보면 답이 나오겠지.’
마지막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찬물에 얼굴을 씻었다.
정신이 맑아지며 자신감이 생기는듯 했다.
사무실로 돌아가 여직원에게 로션을 빌렸다.
“봄은 봄인가 보네요. 차장님.”
늘 털털한 모습만 봐오던 여직원이 별일이라는 듯 웃으며 샘플용 로션을
건네 주었다.
로션을 얼굴에 펴발랐다.
깊이가 느껴지지 않은 싼티나는 로션향이 거북스럽게 느껴졌다.
괜히 이런 로션을 발랐나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약속에 늦지 않으려 일찍 서두른 탓인지 20분 먼전 호텔 로비에 도착했다.
대리석이 깔린 호텔로비는 조명때문인지 유난히 밝다는 느낌이 들었다.
호텔로비에 마련된 쇼파에 앉아 그녀를 기다렸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익숙치 않은 호텔로비에 덩그라니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내 자신이 자꾸만 위축되어가는 느낌을 지워버릴수가 없었다.
단정한 머리와 반들거리는 얼굴, 잘 갖춰진 옷을 입고 당당한 포즈로
로비를 가로질러가는 사람들....
그런 것들에 익숙해져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들의 모습에서 내가 살아가는 모습과의 이질성이 느껴졌다.
털털한 성격이라 잘 다져지지 않은 주름진 양복바지와 언제 광을 내봤는지 잊어버린
무광의 구두를 신고 그곳에 어색하게 앉아 있는 내 모습이 그곳에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 환한 호텔로비에서 나는 한없이 초라해지고 위축되어지어지고 있었다.
자꾸만 싸구려 로션향이 내 비위를 건드리고 있었다.
잠시의 시간이었지만, 무엇 때문에 생긴 것인지 알수 없는 짜증이 자꾸만
밀려 들었다.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박으로 나가버리고 싶은 욕구가 심하게 일었다.
그 약속이 그녀와의 약속이 아니었다면 나는 밀려드는 짜증에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버렸을 것이다.
아니 그녀와의 약속이 아니었다면 지금 느끼는 이런 느낌과 짜증이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짜증은 변변치 못한 내 자신에게 이는 짜증이었고, 그 근간엔 그녀에게
좀더 잘보이고픈 욕구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회전문이 회전하며 두명의 사람이 호텔로비로 들어섰다.
익숙한 얼굴인지 호텔직원이 급히 다가와 캐리어 가방을 받아주었다.
나와 비숫한 나이또래로 보이는 머리에 기름을 잔득 바른 중년남자가
칼같이 다려진 고급양복을 입고 당당한 걸음으로 걸어들어왔다.
그의 곁에는 그와 이십년의 차이는 돼어보이는 젊은 여자가 찰삭
붙어 있었다.
큰챙모자에 썬그라스를 쓰고 나풀거리는 옷을 입고 있었지만 군데군데 드러나는 속살과
곧게 뻗은 다리가 수준급의 몸매임을 과시해 주고 있는듯 했다.
내 시선은 그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저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기에 성공이라는 이름을 얻었을까?
저 보기드문 몸매의 여인은 어떤 관계일까?
과연 저 여인은 배불뚝이 저 사내를 사랑하고 있을까 아님 그이 돈을
사랑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내의 시선이 내가 그렇듯이 누군가를 쫒기 시작했다.
나도 무심코 그의 시선이 가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는 맞은 편에서 걸어와 그를 스쳐지나는 한 여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여인은 그의 곁에 바짝붙어 있는 그 여자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머리는 단정히 정리되어 틀어 올려져 있었고,
고급 실크 브라우스와 옆선이 길게 트인 긴 치마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걷는 걸음걸이와 당당한 자세는 그녀의 품격을 말해주는 듯했다.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고개가 그녀를 따라 돌아가다 나와 마주쳤다.
그리고 건너편쪽에서 한참 누군가를 기다리던 사내 또한 신문 넘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든 시선이 끌릴만큼 그녀는 아름답고 고고해 보이는 여인이었다.
다시 한번 그녀를 자세히 보고픈 생각에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을때
나는 숨이 멎는것만 같았다.
그녀였다.
언제든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였다.
나에 대한 작은 사랑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녀였다.
내가 입술을 탐하고 속살을 탐하던 그녀였다.
수수한 옷차림과 옅은 화장기로 만나던 저수지의 그녀였다.
그녀가 나를 발견하고 환한 미소로 다가왔지만
나는 그곳을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일었다.
밝은 곳에서 내 초라한 모습을 보고 그녀가 실망할 것만 같았다.
야외라는 공간의 특수성,
쉽게 서로간의 부의 정도를 가름해 볼수 없는 특수한 환경에서 느껴지던
그녀와의 만남과 지금 이곳에서의 만남은 너무도 큰 차이가 있었다.
한껏 멋을낸 그녀의 모습은 마치 최상류층 사람에게서나 느낄법한
분위기가 풍겨지고 있었다.
그녀가 내개 다가오더니 얼굴의 미소가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내 생각대로 내 모습에 실망한 것인지,
아니면 밝지 않은 모습으로 그녀를 맞이하는 내 표정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먼저 와 계셨네요. 식당으로 가시게요.”
그녀는 가벼운 눈인사를 하고 나를 엘리베이터 쪽으로 안내했다.
나는 그녀를 반발정도 뒤에서 따라갔다.
주위의 시선이 의식이 되었다.
모두들 아름다움 그녀와 초라한 나의 동행을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바라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에게선 내 싸구려 로션향기를 지우고도 남을 향기가
풍겨오고 있었다.
지금 내앞에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은 내가 알고 있는 모습과 너무나
달랐지만 그 향기만은 그대로였다.
그 향기에 젖어 드노라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 지는 듯했다.
호텔 인포를 지나칠 무렵 호텔지배인과 여직원이 그녀에게 깍듯이
인사를 건넸다.
지배인이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해서 버튼을 누르며 그녀에게 말했다.
“예약하신 식사 준비 되었습니다.”
그녀는 엘리베이터에 오르더니 최상층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녀의 표정이 조금 굳어 있음이 느껴졌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스카이 라운지 종업원이 우리를 안내했다.
창가에 자리한 자리였다. 키 낮은 칸막이로 적당히 독립된 공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스테이크로 준비해 달라 했어요. 괜챤죠?”
그녀가 자리에 앉으며 상투적인 어투로 내게 물었다.
“네 좋습니다.”
나도 그녀의 상투적인 어투에 약간 기분이 상해 묵둑둑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앞에 놓인 잔을 들어 물을 마실뿐 아무런 대화도 없었다.
침묵의 시간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그녀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녀도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약간 창쪽으로 돌린채 앉아 있었다.
창가를 바라보니 밤의 야경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다행이 스카이 라운지는 조명이 어두워 조금더 편한 느낌이 들었다.
“저와 이렇게 만나신게 부담스러우신 건가요?.”
갑자기 그녀가 내게 딱딱한 어투로 말했다.
그녀의 딱딱한 어투가 당황스러웠다.
“아니요......”
그녀가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나도 그녀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그녀는 마치 내 눈동자 속에서 내 마음을 들여다 보기라도 하듯이
내눈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길에는 나에 대한 호감이 묻어있음이 느껴졌다.
내 얼굴에 가벼운 미소가 번졌다.
그녀도 내 미소에 안심한듯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왜 근데 처음 봤을때 그렇게 딱딱한 표정으로 대한거예요.”
나는 그녀의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될지 떠오르지 않았다.
“일부러 한껏 멋부리고 나온 사람 그런 표정으로 봐버리면....”
그녀는 일부러 장난끼가 담긴 말을 내게 던지며 내 눈을 바라 보았다.
그녀의 눈빛을 피해 다른 핑계를 대는건 의미가 없을거 같았다.
“너무 아름다워서.....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고 할까요.”
그녀가 갑자기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그녀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수 없다는듯 한참을 웃었다.
지난주말 내가 그녀를 보고 웃을때 그녀가 어떤 느낌이었는지 알것 같았다.
그녀의 웃음은 한없는 편안함으로 다가왔다.
누군가 나를 보고 거침없는 웃음을 웃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나에
대한 온전한 신뢰가 구축되었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이뻐요?”
웃음을 멈춘 그녀가 갑자기 테이블 앞쪽으로 다가와
내 눈을 빤히 보더니 장난끼 짖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순간 나는 그녀의 눈을 피해 시선을 떨구었다.
마치 아무도 몰래 가슴속에 숨겨두었던 감정을 들켜버린 아이처럼
얼굴이 붉어지는거 같았다.
체크무늬 식탁보위를 가로지르는 그녀의 하얀손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손은 테으블을 가로질러 물컵을 쥐고 있지 않은 내 오른손 위에
살포시 얹혀졌다.
심장이 심하게 뛰고 현기증이 일었다.
그녀의 손은 차갑고 부드러웠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고개를 들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의 표정을 보고 싶었다.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과 마주쳤다.
그녀의 시선은 나에 대한 깊은 호감이 가득차 있는거 같았다.
그녀의 시선과 마주치자 심장이 강렬하게 요동쳤다.
그리고 아찔한 현기증이 일며 내몸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쳐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코에서 뜨거운 호읍이 뱉어지는 그 짧은 찰라에
나는 그녀와 첫키스를 하기전에 느껴지던 감정의 교감이 느껴졌다.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느낄수 있는 감정의 교감이었다.
그녀의 호흡 또한 조금 거칠어지고 촉촉해져 있음이 느껴졌다.
오늘밤 나는 그녀를 온전히 내것으로 만들게 될거 같은 예감이 전율처럼
내 몸을 감싸고 돌았다.
p.s 두가지 방향성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다 글이 좀 늦었습니다.
원하는 향후 방향성에 대해 댓글주시면 좋겠습니다.
참고 좀 해보게요.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