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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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당진 운정리까지 약 260km의 천리 길,
90CC 오토바이로 떠났던 작은 형님과의 동행출조를 얘기하려 합니다.
10대까지는 아부지를 따라 다녔고
20대 초반부터 30대 중반까지는 주로 작은형과 낚시를 다녔습니다.
낚시 가고 싶으면 비가 오거나, 얼음이 얼었거나 날씨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눈 빛만 오가면 그냥 떠납니다.
동쪽으로는 경산 자인 영천, 서쪽으로는 화원 논공 옥포 현풍,
남쪽으로는 청도 밀양, 북쪽으로는 칠곡…
출조지를 정해 놓고 가는 경우도 있지만,
일단 방향만 잡고 가다가 오토바이 닿는대로 가는 것도 허다했습니다.
일단 저수지를 둘러 보고 느낌이 오거나 현지인에게 정보를 취하여 대를 담그어 봅니다.
조황이 썩 좋아 보이지 않으면 대를 걷고 인근 저수지로 바로 이동을 하죠.
물론 밤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날 밝을 때까지 기다렸다 이동을 합니다.
저수지 이름은 기억이 가물하지만 대구 인근 저수지는 두루 섭렵을 하였습니다.
당시 큰형님은 평화건설(롯데건설 전신)에 근무하셨고
삽교천 방조제 공사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 곳은 두 달 후, 박대통령께서 방조제 준공식 참석 후 그날 10.26사태로
서거하신 의미를 지닌 곳입니다.
그 해 결혼하신 큰형님은 동생들이 보고 싶어 한 번 놀러오라고 하면서
기가막힌 낚시터가 있다는정보를 주었습니다.
그 먼 곳까지 오라면 동생들은 머뭇거릴 것이고 해서 밑밥을 던졌던 거였죠.
작은형님과 나는 별 망설임 없이 가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큰형님이 뿌린 밑밥에 현혹되어 덜컥 입질을 하였던 것이었죠.
대 낚시대 외에 릴을 준비했습니다.
당시 원거리 낚시에는 실패에 낚시줄을 감아 멀리 던지는 철치기라고 불리는
방울낚시를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지금도 사용하고 있죠.
그 땐 릴이 일반화 되지 않아 흔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작은형님 친구 분에게 다섯 대를 빌렸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아침 일찍 출발을 하였습니다
낚시갈 때의 즐거움은
부푼 기대감으로 공중에 붕~ 뜬 기분이죠.
바람을 가르며 시원하게 달립니다.
'바아아아아~앙~~~'
가슴이 뻥 뚫립니다.
세상이 모두 내 것인 양 콧노래가 절로 납니다.
포플러 가로수는 일제히 도열하여 열병식을 갖추고
매미들은 장단을 맞추어 군악대 역할을 하며
찬란한 태양은 환한 조명으로 형님과 나를 비추어 줍니다.
크나큰 행사의 주인공으로 꿈을 꾸듯 달려 갑니다.
한 시간여 달리면 오토바이 엔진도 식힐 겸 1~20십분 쉬었다 가고,
도로변에 못 둑이 있으면 올라가서 못 구경도 하고 ,
조급함이 없이 그리 여유있게 낚시간 적도 없었을 것입니다.
어두워지기 전에만 도착한다는 예정을 하고 출발을 하였으니까요.
해가 거의 뉘엿뉘엿 넘어가는 무렵, 근 열두시간이 걸려 신평면내에 도착하였습니다.
엉덩이는 얼얼하여 반은 마비가 된 듯 감각이 없었습니다.
국도의 포장상태는 지금보다 썩 좋지 않았고 국도이외는 거의 비포장이었으니까요.
큰형님 계신 곳을 물었죠.
"아저씨 평화건설 현장 사무실 갈라머 어디로 가야 합니꺼?"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에 흠칫 놀라며
"워디서 왔시유~"
"대구서 왔는데예"
"예! 이거 타고 예까지 왔다구유~."
놀라움과 어이없다는 표정이 교차하면서 친절히 가리켜 주었습니다
다음 날 일찍 두 분 형님과 낚시터로 향했습니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좁은 농로를 따라 한참을 갔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 지도 검색해 보니 초대지인 듯 여겨집니다.
두 분 형님은 대 낚시를 펴고 저는 릴을 투척했습니다.
큰형님 정보에 의하면 거의 양어장 수준,
붕어는 물론 잉어,초어가 물반 고기반 이라는 …
낚시꾼이 거의 오지 않기에 어자원이 무궁무진 하였나 봅니다.
연신 붕어는 올라왔지만 월척급 붕어는 보이질 않았죠.
릴에는 별 반응이 없던 차에 지나던 현지 분이 말을 건넵니다.
한 번씩 심심하면 긴 낚시대로 짜개를 써서
잉어 초어는 잠시 잠깐 너댓마리 잡는다며 짜개 쓸 것을 권유 하였습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작은형님은 읍내로 가서 깻묵을 구해 왔습니다.
삼각형으로 자른 짜개에 실을 몇 번 돌려 매어 바늘을 고정시키는
전형적인 구형 잉어 낚시법 이었습니다.
미끼를 바꾸고 다시 투척을 하였습니다.
두어시간 지났을까, 정오 무렵이었습니다.
허기가 슬슬 밀려와 형수님 싸주신 도시락을 서너 젖가락 먹고 있는데,
릴 초릿대에 어신이 옵니다.
'툭' '툭'
육중한 예신에 릴대로 뛰어 갔습니다.
순간 쭈우욱 초릿대가 바로 쳐 박습니다.
"왔다."
"대부터 세아라"
작은 형님이 흥분된 목소리로 뒤에서 코치합니다.
릴을 드는 순간 여태껏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엄청난 힘이 전해집니다.
릴대가 활처럼 휘어집니다.
놈의 강렬한 저항으로 릴을 감을 수 없었습니다. 드랙을 풀었습니다.
"좌르르르---륵…"
20여m가 순식간에 풀립니다. 그리곤 멈칫합니다.
이때다 싶어 다시 드랙을 잠그고 감기 시작합니다.
어어… 공중으로 점핑을 합니다.
그 파문은 내 가슴으로 이내 다가 옵니다.
이번에는 한 바퀴 비-잉 돌며 물살을 일으킵니다.
가슴은 쿵쾅거리기 시작합니다.
"으와 뭐 저린기 다 있노!"
흥분의 도가니였습니다.
심장마저 파르르 떨리기 시작합니다.
처음 맛본 당찬 잉어의 손 맛이었습니다.
10여분 실랑이 끝에 작은 형님이 뜰채로 조심스레 건집니다.
약 52cm정도,
에이, 그 정도 가지고 우습게시리…… 할 분 계실 지 모르지만
그 이후 가끔 그 손 맛 때문에 잉어낚시를 하고, 그 이상도 잡아 보았지만
그 때의 그 손 맛에는 미치질 못하였습니다.
대도 못 세우고 오백원짜리 동전보다 조금 큰 비늘만 건 적도 있었지만……
첫 경험의 설레임,
흥분,
짜릿함으로 기억되는 잊지 못할 잉어낚시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아무리 끄집어내려 해도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습니다.
엄청 신나고 재미있는 꿈을 꾸고 일어났을 때
그 꿈을 기억할 수 없듯이……
주말, 낚시 못가시는 분들께 조그만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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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월이라는크기의 고기한마리잡기도힘드니...
잘보고갑니다!주말 잘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