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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에서 "겨우살이" 옷을 준비하던 마눌옆에 곧 버러질 운명의 몇 벌의 옷 들이 보입니다.
찢어지거나 헤진곳은 없으나 빛이 바랬다는 이유로 또 작다는 이유로 말이지요.
그 중에 바지밑단이 달아 마치 빗자루처럼 너덜해진 "청바지"도 보입니다.
마눌이 옷 정리에 한눈을 판 사이 아까운 마음에 슬며시 "청바지"를 집어 저의 허리춤에 맞춰 봅니다.
내가 컷(?)는지 바지가 줄었는지 8부 바지가 되어있더군요 ㅎㅎㅎ
"월"님들...
"청바지"는 한~~두장 쯤은 가지고 있으시죠??
급하면 입고 출조도 하실거고...모르긴 몰라도 지금도 입고 계신분들도 있으실테고...
자!!~~~~그렇다면 이 쯤에서
저의 "청바지"에 얽힌 추억을 풀어 볼까합니다.
믿기지가 않으시겠지만 제가 "청바지"를 처음으로 입어 본 것이 아마도 근50년?? 전 쯤 되는것같습니다...
전쟁이 끝났다지만 서울의 변두리나 "청계천변"엔 "판자촌"이 즐비하였고 더 변두리엔 "토굴"집도 있었습니다.
허니 동내마다엔 무너져 내려 방치된 축대 그리고 온전한 길이 없었고 "들쑥날쑥"한 돌맹이들이 널려있던 그 시절.
그 길에의 동무들과 다름박질에 해지는줄 몰랐고 돌뿌리라도 채어 넘어지기라도하면 온전한 바지가 없었습니다.
"ㄱ"자로 찢어지고 "ㄴ"자로도 찢어지고 아님 아예 쭈~~욱 하고 찢어지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저 역시나 마찬가지 였습니다.
당시의 직물기술이란 글쎄요?? 어떻게 말씀드려야할지 상상에 맞기겠습니다.
그렇게 나가서 넘어지면 찢어지고..찢어지면 어머니께 꾸중을 듣고 ㅠㅠㅠ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가 이상한 물건. 즉 지금도 생생이 기억 합니다만
"파란색"바지를 사오셔서 제게 입어보라 말씀하셨습니다
어께에 "멜빵"이 달린 "파란바지" 그때는 그것이 "청바지"인줄 몰랐습니다.
헌데 말이죠
신기하게도 그 바지를 입고 넘어져도 찢어지는곳이 없었습니다.
빨면 빨수록 색이 바램은 물론이요 질기긴 엄청 질겼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저의 부친께서 제가 한창 뛰놀고 자랄나이에 바지가 찢어져서
어머니께 꾸중 듣는것이 안 되 보였나 봅니다.
해서 "남대문"시장 양키물건 파는곳에서 비싼값에 사 오셨노라고...
시간이 흘러 제가 중학시절엔 "청바지"가 대 유행였습니다.
용돈을 모으거나 심지어는 책을산다 거짓으로 돈을 타내 친구들과 삼삼오오
"청계천" 양키시장에서 "청바지"사서 그자리에서 줄여 입는게 유행이였던 그시절...
지금 어렴푸시 생각나는 상표는 확실치는 않으나 권총 두자루가 마주보며 그려진 "빅스톤"??
그리고 말 머리가 역시 양쪽으로 그려진 "쌍마"??? 하-트모양 비슷한 상표인 "LEE'?? 아무튼 그랬던것 같습니다...
학창시절 한~창 유행했던 서부영화에서 카우보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그들이 가진 "남성미"나 "힘" "근육미" 등이 부각되었습니다.
이때 그들이 입고 등장하는 청바지 역시 남성미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졌지요.
"제임스딘"이나 "말론 브란도" "크린트 이스트우드" "진 헤크만" "찰스 브론슨" 대머리"율 브린너" 같은
배우들이 입고 나서면서 청바지에 가죽 재킷을 입어 반항적인 분위기를 나타냈습니다.
그가 출연한 영화제목도 그랬지요 "이유없는 반항" 저는 개인적으로 "제임스딘"의 "쟈이언트"라는 영화가 생각납니다만...
우리 나라에 청바지가 도입된 것은 1950년대 한국전쟁후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만
그 근거로는 많은 외국군인들 특히나 미군들의 주둔으로 상상이 갑니다.
지금은 허옇게 서리가 내린 아님 손주들의 재롱에 푹 빠진 과거 제 또래들의 풋풋한 젊음과 청바지와 통기타...
그리고 저와 같은 세대들이 결코 잊지 못하는 추억어린 물건이 바로 "청바지"인것입니다...
어느덧 깜도 않되는 허접한 글 70회를 연재 했습니다.
지난 글 "그때 그시절"...69편(간이역의 추억)에 다녀가시고
추억을 공감하시며 댓글로 용기를 주신 월님들께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씨^___^익
"은둔자"님
"그때 그시절" 70회 연재 축하 "꽃바구니" 고맙습니다...씨^___^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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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추억이 새록새록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