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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으신 월님들은 아마도 모르실분들이 많으시겠지요
굳이 말씀드리면 "게타(일본어: 下駄)"는 일본의 나무신입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한 "영화"나 몇년 전 "텔레비젼"에서 인기몰이 했던"김두환"씨
일대기를 방영한 드라마에서 "일본인"들이 신고 나왔던 나무신발이 "게다"였습니다.
각설하고...
60년대 서울의 을지로6가엔 "수도예식장"이 있었습니다.
그 예식장이 얼마나 유명했던지 을지로6가하면 "수도예식장"
반대로 "수도예식장"하면 을지로6가였을만큼 아주 유명했었지요.물론 지금은 사라졌지만요...
아~~ 그리고 을지로6가 그쪽엔 그 유명한 "국도극장"도 있었지요.
그 "수도예식장"뒷편엔 지금으로 치면 한개 차로 넓이의 골목이 있었는데 그 골목이 "목제소"골목이였습니다.
물론 제 유년의 집이 그 골목안에 있었고 제 부친께서 "목제소"를 운영하셨습니다.
해서 근 4~50여년이 흘렀는데도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것이 "라왕" "육송" 미송" "합판" 마루깔때 쓰이는 "후로링" 등등 ㅎㅎㅎ
그 목제소엔 "목공실"같이 작업장이 있었는데 여름이면 부친께서는 제 형제들의 발보다 약간씩은 크게
나무에 밑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깍아 흡사 신발 모양의 지금으로 치면 굽이 있는 "슬리퍼"를
만드시고 발등이 닫는 부분엔 가축으로 마무리 하시곤 우리형제들에게 나누워주셨습니다.
지금이야 널린게 신발이고 널린게 "슬리퍼"니 아쉬울것이 없습니다만
"통다이야표"의 검정고무신이 대세이던 그 시절엔 변변한 "슬리퍼"하나 집안엔 없었습니다.
허니 여름철의 그 "게다"는 가까운거리의 외출이나 또는 발씻을때 아주 요긴했습니다.
걸을때 따가닥~따가닥~따가닥 소리가 재밋어 자주 신곤 했습니다만...
50년대...
일본하고도 "동경"에서 "아세아영화제"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시집가는날"을 출품하였으니 최초로 "국제영화제"에 참가한 것이지요.
동경 현지 사절로 참석한 모여배우가 있었는데 그녀가 일본기자들과 한 "인터뷰"가 보도 되였는데
그녀는 능숙한 일본말로 "게다"소리가 그립다고 했다네요.
"한국사람들은 아직도 "왜정시대"의 향수를 가슴에 품고 있다"...
모여배우 말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라고 대서특필했고...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분노했음은 물론...
그 이후 모여배우는 동경으로 대피했고 거기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물론 제가 쓴 "게다"의 추억이란 글에 언쟎으신 월님들도 혹??계시겠지만 그냔 제 유년의 추억이고
연배가 있으신 월님들의 추억이니 그냥 그려려니 하십시요...
우리가 "일본인"들 낮춰 "쪽발이"라고 합니다만 그 유래가 우리의 "버선"과 비슷한 일본식 "양말"을 신고 "엄지발가락"사이에
끈을 끼고 "게다"를 신었을때 그 모양이 "족발"(돼지발)과 매우 흡사하다하여 "족발이" 된소리로 "쪽발이"이라고 부르게 된것입니다.
또한 "중국인"을 "짱께"라 낮춰부릅니다만 그것은 중국인들이 장사할때 깔고 앉고 쓰는 "긴나무돈통"
즉 "장괘"가 변하여 오늘날 "짱께"로 부르고 있습니다.
지난글 그때 그시절"...79(혹시 아시나요?)로 추억을 공유하시고 댓글로 용기를 주신 월님들께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씨-__^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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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저희집에 어른께서 신으시던 게다ㅎ
지금도 첮아보면 어딘가에 있을듯한데 ㅎ
오랜만에 옛날물건 보았네요~
잘봤습니다 ~게다 이름도 참~!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