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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심부름으로 자전거를 타고 공장에 납품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초등4~5학년 정도로 보이는 꽤재재한 한 아이가 나를 멈추게 하였습니다.
"형, 차비 좀 빌려 주세요."
"느그 집은 어딘데."
"엄마가 집을 나가 대구 있다는 말을 듣고 찾으러 왔는데…
못 찾고 집에가려 하는데 차비가 없어요."
측은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여, 쪼매 기다리 바라, 금방 차비 갖고 오께."
집으로 가서 그 아이가 원하는 천 원을 챙겨서 그 곳으로 갔습니다.
그 아이는 기다리고 있었고, 돈을 받더니 꾸벅 인사를 하고는 돌아 섰습니다.
그런데, 걱정스러움과 묘한 호기심이 발동을 하더군요.
그 아이 뒤를 몰래 따라가 보았습니다.
시내 쪽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버스 타는 곳으로 가야 하는데 전혀 다른 방향이었죠.
그리고는 저처럼 학생이거나 아가씨들에게 다가가서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차비가 모자라서 그러는가? 아니면……
의혹만 남긴 채 돌아 섰습니다.
고3때 두 번 째 만남이 있었습니다.
시내에 있는 시립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점심 때 되어 도서관 앞에 있는 분식집을 갔습니다.
점심을 다 먹을 즈음, 내 동공이 갑자기 커졌습니다.
그 아이가 들어온거죠.
그리고는 여학생에게 다가가 얘기를 건네고 있었습니다.
나에게 했던 바로 그 이야기, 차비를 빌리고 있었죠.
작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아이 나가고 분식집 주인에게 물었더니 종종 도서관 주변에 보인다고 하더군요.
알 수 없는 찝찝한 기분과 함께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믿고 싶었는데…..
작은 도움이었지만 좋은일 한 번 했는 것으로 기억되고 싶었는데……
고교졸업 후 친구와 나는 다른 친구 집에 놀러 가려고 버스를 탔습니다.
뒷 좌석이 비어 있어 그쪽으로 가는데, 그 아이가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드라마 같은 우연의 만남이 또 이루어집니다.
하염없이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 아이는 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친구와 나는 먼저 내렸고 그아이는 버스에 타고 있었습니다.
동부정류장으로 가는 노선이었습니다.
그해 봄날, 큰 형님께서 짧은 신혼여행이 아쉽다면서
경주에 같이 놀러 가자고 하더군요.
사진 찍어 달라고 하셨지만, 재수하던 나를 일부러 바깥바람 쐬어주려던 배려였죠.
전생에 어떠한 끈끈한 인연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돌아오는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그 아이를 또 만났습니다.
그 아이는 그날도 한결같이 혼자였습니다.
경주까지 왔다가 대구로 가는 것은?
우연한 드라마 같은 네 번의 만남,
머릿 속에 소설을 써봅니다.
…...집 나간 엄마가 대구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막연히 대구까지 오게 됩니다.
엄마를 찾지 못하고 가진 돈은 다 떨어지고 배는 고픕니다.
자기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사람들에게서 몇 푼 얻어 허기를 메꿉니다.
집에 돌아가봤자 무서운 아버지에게 혼날 것은 뻔하고…
그 아이는 그리 어렵지 않게 돈 버는 방법을 터득하여
행여 엄마를 찾을 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차비를 빌리며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 아이를 나쁜 아이로 몰아 세울 수 없음을 느꼈습니다.
불우한 환경에 따른 그 아이의 생사의 몸부림이었을는지 모릅니다.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외로움으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지독히 불행하였던 그 아이의 운명이며,
어두운 사회의 단면일 수 있습니다.
지금쯤이면 그 아이는 사십 중반이 넘었을텐데……
어려움을 극복하고 불행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자기의 자식에게는 물려주지 않았기를 진심으로 바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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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들 역주변에 지금도 많습니다
일가족이 하루종일 차비빌려서 먹고사는 집안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