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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이란 곳을 다녀와 지금 막 집에 도착했습니다.
지나는 길에 작천에서 강진읍으로 가는 길에 만난 강진수로에는 쌀쌀한 기온에도 꾼들이 붕어를 탐하여 물가에 앉아 있더군요.
목포를 지나 강진에 이르는 길엔 지천이 낚시터였고 그 좋아 보이는 터는 텅비어 있더군요.
대야 늘 실려 있는 것이지만 오늘은 대를 펴지 못했습니다.
영랑의 고향이기도 하고 남도답사 1번지의 중심지이기도 하고
그곳에서 촌노들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삿된 소리 없이 인생의 선배들이 해주시는 '옥음'을 듣습니다.
후배들을 먼저 올려 보내고 저 혼자서 백련사에 들렸다가
다시, 다산을 만나러 초당에 들렸습니다.
백년사 동백숲은 변함없는데 몇년새 다산초당 입구에는 집들이 많이 들어섰고 초당 서암은 수리중이었습니다.
쌀쌀해진 날씨 탓인지 인적은 드물어 저무도록 머물다가
도종환 시인의 시 한편을 깊게 생각했습니다.
새벽 초당
도종환
초당에 눈이 내립니다
달 없는 산길을 걸어 새벽 초당에 이르렀습니다
저의 오래된 실의와 편력과 좌절도
저를 따라 밤길을 걸어오느라
지치고 허기진 얼굴로 섬돌 옆에 앉았습니다
선생님, 꿈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무릉의 나라는 없고 지상의 날들만이 있을 뿐입니다
제 깊은 병도 거기서 비롯되었다는 걸 압니다
대왕의 붕어도 선생님에겐 그런 충격이었을 겁니다
이제 겨우 작은 성 하나 쌓았는데
새로운 공법도 허공에 매달아둔 채 강진으로 오는 동안
가슴 아픈 건 유배가 아니라 좌초하는 꿈이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노론은 현실입니다
어찌 노론을 한 시대에 이기겠습니까
어떻게 그들의 곳간을 열어 굶주린 세월을 먹이겠습니까
하물며 어찌 평등이며 어찌 약분(約分)* 이겠습니까
그대도 선생님은 다시 붓을 들어 편지를 쓰셨지요
산을 넘어온 바닷바람에
나뭇잎이 몸 씻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고
새벽에 일어나 찬물에 이마를 씻으셨지요
현세는 언제나 노론의 목소리로 회귀하곤 했으나
노론과 맞선 날들만이 역사입니다
목민을 위해 고뇌하고 싸운 시간만이 운동하는 역사입니다
누구도 살아서 완성을 이루는 이는 없습니다
자기 생애를 밀고 쉼 없이 가는 일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진미진선의 길입니다
선생님도 그걸 아셔서 다시 정화하고 홀로 먹을 갈았을겁니다
텅텅 비어버린 꿈의 적소에서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눈발이 진눈깨비로 바뀌며
초당의 추녀는 뚝뚝 눈물을 흘립니다
저도 진눈깨비에 아랫도리가 젖어 있습니다
이 새벽의 하찮은 박명으로 돌아오기 위해
저의 밤은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댓잎들이 머리채를 흔듭니다
바람에 눈은 물방울 하나 날아와
눈가에 미끄러집니다
*상대적 차별을 없애서 평등에 돌아가게 된다는 말. (장자 '추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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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보고도 낚시대 널지 않으신거 보면 경지에 오르셨습니다.
저도 좀 배워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