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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

Raison IP : ea7a239db34fd1d 날짜 : 조회 : 2568 본문+댓글추천 : 0

전 낚시를 시작한지 얼마 안된 초보입니다.

사실은 낚시가 너무 싫었죠.

어렸을때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의 유일한 취미가 낚시였고, 가뜩이나 바쁘신분이 평일에 시간나시면 항상 낚시 채비...

주말엔 어김없이 낚시하러 가셨죠.

덕분에 아버지와 첫 동물원 나들이는 제 큰딸이 5살때였으니 뭐...-_-;;;

따라가봐야 애가 뭐 재미있었겠습니까? ㅋㅋ

지루하고 냄새나고 징그럽고...

그렇게 낚시를 좋아하셨던 분이 사업이 망하고 나서 낚시를 끊으셨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들하나 딸둘 잘 키우셔서 돈들 잘벌고 빚 다 갚고 커다란 집도 사고 다들 결혼하고...

한 15년 정도 낚시를 끊으셨다가 살만하니 낚시용품을 사시더군요.

가끔 집에 가면 아버지가 옥상에서 낚시대 꺼내 자랑하시면서 주말에 시간날때 낚시한번 같이 가자고 빙긋 웃으시며 말씀하셨었죠.

그땐 제가 너무 바뻐서 네네 대답만 하고 한번을 같이 못갔습니다.

그런데 끝내 그 낚시장비 채비만 열심히 하시다가 낚시한번 못가시고 폐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유품 정리해서 다 태우고 버리고 할때 어머니께서

"니 아버지가 돈 모으셔서 비싼거 산건데 좀 아깝네. 그렇게 좋아하시던건데 너 괜찮으면 가져가."

라고 말씀하시면서 주셨습니다.

그렇게 좋아하시던 낚시 한번 같이 못가드린게 얼마나 서럽던지 낚시가방 부여잡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낚시가방과 장비들은 저희집 베란다에 먼지가 소복히 쌓인채로 방치되었었죠.

하루는 집사람하고 대판 싸우고 확 나가버리려는데 갈곳이 없는겁니다. -_-;;

그래서 낚시가방 들고 무작정 저수지로 갔습니다.

휴대폰 인터넷으로 대충 하는법 검색해서 찌 던져놓고 저수지에 앉아있는데 아버지 생각 많이 나더라구요.

아버지가 이런 좋은 경치를, 이런 편안한 마음을 나한테 주고 싶으셨던거구나...

나도 나중에 애들한테 이런걸 보여줄수 있을까...

이제 한달에 두세번 정도는 낚시하러 다닙니다.

마누라한테 고작 일주일 용돈 삼만원 받는걸로는 떡밥값 대기도 힘듭니다.

지난주엔 몇대 없는 낚시대중에 3.2칸도 하나 부러뜨렸죠.

어느 제조사인지도 모를 낚시대라 AS는 포기하고 다른대 고장나면 수리용으로 쓰려고 챙겨놨습니다.

싼 중고 낚시대 나오면 비슷한 길이로 하나 사려고 장터 매복중인데 낚시대가 비싸긴 엄청 비싸더군요 ㅋㅋ

평소엔 잘 모르다가 이렇게 뭐 하나 부서지고 나니 새삼 돈이 많이 드는 취미란걸 깨닫게 됩니다 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낚시를 계속 하러 다니는 이유는 집사람과 애 둘이 매운탕이나 붕어찜/잉어찜을 해주면 그렇게 좋아하고 잘 먹는 모습이 너무 좋아요.

그리고 밤에 우두커니 케미를 보고 있으면 그나마 얼마 되지도 않는 아버지의 기억이 많이 생각납니다.

보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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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月下 11-09-08 11:00 IP : 0d7d54f3a76dcc6
마음이 짠~ 합니다

아버님의 추억이 남긴 낚시대

잘 간수해서 쓰시고

가족들도 건강하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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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 빼빼로 11-09-08 11:08 IP : f25ec875c26e1f5
나는 아버지라는 단어가 나오면 내 눈가에 언제나 이슬이 맺힙니다.

짠한 내마음은 어쩔수가 없네요~

그 낚시대는 평생 간직하시면서 아버지에 그림자를 생각하십시요.

항상 행운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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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등! 하늘높은찌 11-09-08 11:09 IP : fb4d3b96ff7d524
울~컥...눈물이 날뻔했습니다.
이번 추석때 부모님께 말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드려야겠습니다.
글 읽는동안 반성많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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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 11-09-08 11:14 IP : 2b8538189199241
읽으면서 저도 마음이 편치 않네요

이번 가을이 가기전에 아버지하고 소풍낚시 한번 다녀와야겠습니다

행복한 추석 보내시고 항상 안출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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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다리몇개 11-09-08 11:14 IP : 9058d4b9792d1ea
진한 추억이 우려납니다. 갑자기 눈앞이 아른아른하네요...
평생을 간직해야할 기억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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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척나라 11-09-08 11:15 IP : 655ad38b2cfc0ca
한편의 드라마를 본듯 가슴이 뭉클해지네요...

힘내시구요 떡밥값 없으시면 경북 북부지역으로 낚시오시게되면 연락한번 주십시요.

떡밥 몇봉 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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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애 11-09-08 11:23 IP : fde9af9e16a725b
맴이 짠~합니다..
나이 한살씩 더먹으니 눈물이 많아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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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우리 11-09-08 11:25 IP : 377736e0a346b9b
정말 뭉클한 사연입니다.

낚시를 시작한 사연도 소설처럼 아름답네요.

이젠 추억을 살리는 독조가 아닌 조우들과 동출을 통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만들어 지는 출조를 해보시는 것도 좋을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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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원 11-09-08 11:28 IP : 9dc3a94c3fbc761
ㅇㅇㅇㅇㅇ눈물이......

낚시가방 부여잡고 서럽게 우셨다는 대목에서 그만....!!

그리고

일주일 용돈3만원~ 한달이면 12만원인데......

매운탕 거리 가져다 주실때마다 '특별보너스'좀 챙겨 달라 하시면 어떨까요?

요즘 생선값도 무지 올랐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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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짜조사양 11-09-08 11:33 IP : a954d7a6d7aed71
아버지를 떠나 보낸지가 1년이 안되가는데

Raison님 글에 공감이 갑니다.

나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셨던 아버지,

나도 아버지처럼 아이들에게 하겠노라고

묘비에서 다짐했는데, 쉽진 않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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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비늘 11-09-08 11:37 IP : f4c460f824fdf49
대부분 레종님 같은 심정으로 낚시에 빠지게 될겁니다.^^

그러다 점점 심오한 낚시세계에 접근하는거죠.

곧 형편이 나아지면 낚시용품도 그만큼 업그레이드가 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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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틀무렵 11-09-08 11:43 IP : ad52b793973f210
저도 비슷한 사연이 있기에 가슴으로 글읽고 감니다.
아버지에게 받은낚싯대.
저녁에 퇴근후 한번 둘러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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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개와해장 11-09-08 12:43 IP : a94150fba9e6fe4
20년이 훌쩍 지난 세월이지만
못다한 자식 노릇에 눈물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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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와춤을 11-09-08 14:17 IP : d646971eb2f2fea
그렇군요

낚시로 인해 다시 아버님을 생각할수 있어니 다행이네요.

물을 보면서 울적한 맘 달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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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4짜 11-09-08 17:53 IP : 2cbc6f1200973f1
글을 읽는 도중에 갑자기 저두모르게 한줄기의 눈물이흐릅니다..
저역시 보고 싶습니다...
아 버 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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