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미끼 종류가 많아서 낚시점에 가면 얼마든지 원하는 미끼를 구입할 수 있지만 어린시절 낚시를 다닐 때는 주로 지렁이를 미끼로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낚시를 가는 날이면 호미와 깡통을 들고 동네 소를 기르는 집에서 쌓아둔 두엄을 파헤치며 지렁이를 잡아서 미끼로 사용을 했습니다.
지렁이를 캐다가 굵은 지렁이가 나오면 징그러워서 캐던 일을 멈추고 그냥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지금처럼 붕어낚시, 잉어낚시 그런 것 모르고 했습니다.
제가 자라던 시골에서는 피라미도 아닌 배똥땡이라고 하는 조그만 물고기가 그렇게도 많았는데 지렁이를 달면 쌍바늘에 한 마리 때로는 두 마리씩 걸려나와 즐거워 했던 기억이 납니다.
또한, 지렁이 미끼를 많이 사용하다가 보니까 구구리라는 녀석을 많이 낚기도 했는데 지렁이가 달린 바늘을 통째로 삼켜서 때로는 줄을 끊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허접한 장비로 낚시를 하다가 서울에서 좋은 장비를 가지고 낚시를 하는 분들을 만나기로도 하면 처음보는 낚시대가 궁금하기도 하고 특히, 망속에 들어가 있는 물고기를 구경하고 싶어서 ‘망 한번 들어봐도 되나요?’ 하면서 졸라댔던 추억이 떠올려집니다.
지금은 오히려 대나무낚시대 구경하기가 더 어려워 졌지만 그당시에는 너무나도 많았을 뿐만아니라 그라스로드 낚시대와 가격 차이가 많이 나서 저렴한 가격에 대나무낚시대를 사용했었습니다.
대나무낚시대를 사서 줄을 매고 처음에는 받침대도 없어서 두손으로 그냥 들고 서서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뜨거운 날씨에 힘든줄도 모르고 낚시 삼매경에 빠졌던 기억이 떠올려 집니다.
낚시 장비라고는 헝겊에 들어가 있는 낚시대 한 대와 지렁이를 담았던 깡통, 그리고, 잡은 물고기를 담을 양파 담았던 망이 전부였습니다.
받침대는 없어서 들고 하거나 아니면 튼튼한 나뭇가지를 잘라서 바닥에 꽂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바늘이나 추는 여분이 없어서 사용하다가 끊어지면 그날 낚시는 그만 접어야 했습니다.
지금처럼 낚시대는 어디 것, 줄은 어디 것, 바늘은 어디 것 솔직히 그런 것 모르고 낚시를 했음에도 기쁘고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때때로 견지낚시를 가는 날이면 그날은 집안에 날아 다니는 파리놈들 모두 소탕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물고기를 더 잡고 싶어서 유리어항에 된장을 발라 낚시하던 강가근처에 담가 놓으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대감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시골에 내려 가면 어른들께서 찌낚시보다 견지낚시 가는 것을 더 좋아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파리잡으라고 시키지 않아도 낚시가기 위해서 온 집안에 있는 파리 놈들을 소탕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낚시를 좋아하지만 어린시절 그 허접한 장비를 가지고 낚시를 간다고 좋아하며 서둘러대던 그 모습이 아직도 마음속에서 아련하게 떠올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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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기억인진 모르겠지만 아마도 83년도 쯤에
처음 낚시를 접했는데 지금도 잊지를 못합니다.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팔당주변 식수보호지역으로 낚시금지가 되던날 이었습니다.
당시엔.차도없어 걸어서 양수리다리까지 가서
처음 낚시란걸 했었 습니다.
양수리주변도 나중에는 낚시금지가 되었죠.
대나무낚싯대 2칸저도 청량리에서 그 때 돈으로
800원 정도 했었습니다.
글라스롯드대는 2칸반이 6~7천원정도 기억납니다.
서울서 살다보니 주로 낚시나 물가에 켐핑갈때
청량리역주변서 필요한걸 구입했었네요
나중에 낚시회를 알고 그 때 부터 정통낚시를 배웠습니다.
반도 낚시, 고바우 낚시...
지금은 없어졌던데요...
중학교때 바늘사고, 줄 사러 자주 갔었드래죠 ^^
전날 거름구덩이에서 지렁이 캐다가 나무지렁이통에 넣어서 머리맡에 두고 잤는데
낚시갈려고 일어나보니 왠지 머리가 끈적한 느낌? 지렁이 다기어 나와서 온머리에 붙어 말라서 죽고
방안 구석구석 지렁이 사체.... 엄마한테 혼난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