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반 중학교때 5월 중순에서 6월 초에 시골에 낚시하러 가면 강물이 어느정도 빠지면서 뻘이 드러나는데 아침 일찍 강가에 낚시하러 갔다가 뻘에 기어다니는 다슬기와 말조개 참으로 많이도 잡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이지만 그당시 말조개가 많이도 질겼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하도 질겨서 그 다음부터는 잡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방학이 되어 시골에 내려가면 돌아가신 큰아버지의 일을 많이 도와 드렸는데 밭이 북한강 강가 근처에 있어서 일하러 갈 때 낚시하고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낚시대를 들고가 점심 먹을 때 잠시 낚시를 하거나 아니면 방울 낚시를 가지고 가서 원자탄을 달아 던져 놓고는 혹시라도 방울 소리가 울리면 일하다가 뛰어갈 요량으로 방울낚시를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방학이나 공휴일이 되면 시골에 하도 낚시를 하러 다녀서 동네 어른들이 강태공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셨습니다. 그래서그런지 방학이 되어 시골에 내려가면 으레이 아무개 낚시하러 왔냐고 하시며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도 젊은 시절 그렇게 낚시를 좋아하셨다는 이야기를 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친가와 외가를 통틀어 지금까지 저처럼 이렇게 낚시를 좋아하는 친척들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유년시절 낚시를 하던 곳은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송촌리라는 곳으로 양수리가 4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중학교 여름방학 때 전날 하루종일 아침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밤을 새어가며 낚시를 하고 돌아왔는데도 다시금 낚시가 너무 하고 싶어서 시골 어른들이 잠이드신 새벽에 말씀도 드리지 않고 몰래 낚시하러 나갔다가 아침에 저를 찾으러 큰아버지댁 식구들이 나오신 적도 있었고 보통은 동네 가까운 강가에서 낚시를 했는데 어느날은 좀 멀리가서 낚시를 하고싶은 생각에 말씀도 드리지 않고 버스를 타고 팔당댐까지 가서 낚시를 하다가 그날 큰아버지댁에 들어가지를 않아 서울 부모님댁에 전화를 하고 난리가 난적도 있었습니다. 팔당댐에서 낚시를 마치고 큰아버지댁에 돌아가서 무지하게 야단맞았내요. 부모님의 불호령도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생각이지만 하마터면 그일로 인해서 낚시를 못하게 될 뻔했으니까요. 지금은 어른이 되어 낚시를 간다고해도 집에서 걱정을 안하지만 그때는 그 일로 인해서 저 때문에 어른들이 많이도 걱정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때 팔당댐에 가서 낚시를 한다고 말씀드렸으면 혼자 낚시가는 것을 그것도 밤낚시까지 하고 오겠다고 했으면 시골 어른들이 말리셨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위험하다고 생각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낚시하는게 좋아서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중학생이던 그 당시의 저의 모습이 참으로 무모했던 것 같습니다.
댓글이 적더라도 저처럼 마음으로응원하는분들 많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