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는 댐이건,저수지건 붕어낚시를 가면
보통 마대자루로 잡았다고 들었습니다.
춘천댐 원평리 같은 곳은 멍텅구리채비에 신장으로
향어도 붕어만큼 잘나왔다고 하던데요
배스,블루길이 전국적으로 퍼지기 전에는 그럴수도 있을거 같은데,
2000년도에 낚시를 알게된 저는 상상이 가질 않네요
지금도 제가 못잡는건지 해가 갈수록 붕어가 줄어드는 느낌이..
80~90년초에는 어느정도 붕어자원이 풍부했는지 궁금합니다.
그때그시절 낚시를 하신 분들은 정말 좋았을거 같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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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만 동동 내밀고 겨우떠다니던 붕어 숭어 원하는 만큼 주어담던 때가 그립군요.
낚시로는 큰놈은 잘 안잡혔고 6~7치가 주로 잡혔던 기억이 나네요 쌀림망 없어
양은 양동이 들고 다니던,반은 잡았던것 같네요.
그때 비료푸대로 한푸대 잡았던 기억이 나네요....
지렁이에만 글케 나오던데....지금은 옛 추억에 불과합니다...ㅜ_ㅜ
휴~
관정이나 수리 시설의 미비로
수시로 물이 말른곳이 많았습니다
모내기가 끝나면 대부분 시골 동네에서
저수지 나 냇가 고기들을 쓸어 담은 기억이 있습니다
또한,
자가용 시절이 아니므로
지역 낚시에 한정 된 경우도 많 았습니다
그런 이유로 생각 밖으로
조과가 좋거나, 어자원이 풍부하다고 볼수는 없는것 같습니다
지금의 중국의 경우와 비슷 하다고 봅니다
또한 낚시기법이나 장비의 한계도 있었습니다
아묺튼 그러한 이유등으로
월척이 지금보다 10배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95년 까지 월척을 잡으면
짜장면이라도 , 한턱을 쏜 기억이 있습니다
옛날이 장비와 기술의 문제도 있지만
월척급은 귀했다고 봅니다
70년도 후반 정도부터
블루길이 극성을 부린 저수지가 있던걸로 기억 되고
2005년을 전후로 배스 떄문에, 그 좋아하던
댐낚시는 접은것 같습니다
지금은 길가에 저수지는 대부분 배스가 점령하고
2006년 부터는 강계에 까지 완전 장악 한것 같군요...
블루길은 예전 같으면 떡밥으로 극복 했는데,
요즘은 옥수수까지 주식으로 삼더군요...
이대로 가면 배스가 옥수수먹는날이 곧 도래 할것 같습니다
만약 예전에
자동차와 저수지 정보를 지금처럼 안다면
비록 글라스 낚시대 더라도
관 고기는 늘 보장하리라 봅니다
안타까운것은 어자원 감소 보다는
갈수록 흉흉해지는 시골 인심과
편하게 다녀서 그런지 당쵀, 추억이 생기질 않습니다...
행여, 세월이 지나면 지금이 추억이 될 까요?......
그땐 지렁이도 잘안사고 그냥 동네 거름무더기 파내면 10분만 잡으면 지금 파는 지렁이 몇통은 거뜬히 잡아서
찌맞춤도 제데로 되지않고 그냥 그렇게 낚시해도 놀면서하는데도 비료포대로 반포대정도 잡았던 기억이 많네요.
하지만 그당시엔 월척이먼지도 잘 모랐는데 지금생각해보면 백여마리 이백여마리 잡으면 지렁이 한마리 꿰놔도
몇수씩은 잡혔었던거 같네요....
그중에 몇마리 들고오면 동네 어르신들 계시는 마을 회관에 갖다드리면 그날은 어르신들 매운탕회식하는날이였는데...
지금은 언제그랬냐는듯 얼굴보기가 힘드네요....
암튼 마릿수는 지금보다 확실히 좋았던것같네요..
아버지하고 전철타고 버스타고 낚시댕기던 기억이 납니다..
잘 올라왔는데 요즘은 올림픽 출전 하는 붕어도 아닌데
별 보신용 미끼까지 써야된다니.....참!!
잉어나 향어 뱀장어 매기등등..
붕어는 잡음 그냥 놓아줬죠..ㅋ
더 잡고 싶어도, 가져 올 방법이 없어서....
대부분의 지역에서 출조하면, 준척급으로 매운탕은 항상 만들어 먹었지요.
80년대전에는 월척만 되어도 신문에 나왔는데...
"금주의 월척"이라는 제하로....
그리고, 2.5칸대도 긴대였고, 4칸대는 왠만하면 들기도 힘들었답니다.
80년대에 전 서울에서만 살아서인지 경기도 쪽(양수리..퇴촌..능내..양평) 한강계 하고..
평택 아산만.. 삽교..예당지..등..충청권 몇군데 다녔습니다만 많이 잡은 기억이 별로 없네요-.-....
옆분들도 그리 많이 잡는것 같진 않던데....충청권은 그래도 마릿수가 되는데..
경기권에서는 몇번 빼고는 거의 낱마리 수준 이었습니다~
그때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5시경 166번 호수여객 첫차 타고 양수리까지 가느라고 잠도 못잤다는....
그건 어쩌다가 한번 있는일이지 다 뻥이에요 제가 72년도에 대나무낚시대 두대을 사서 낚시 시작해서 저수지.강계.댐으로
바쁘게 다였지만은 호조황은 어쩌다가 있는일이고요 빈대바구니가 흔한 일이었지요 낚시가방도 백색광목이었고 낚시집도 광목
이었지요 75년도에도 황소개구리.블루길때문에 지렁이을 쓰기가 힘들었구요 처음 배울 당시는 떡밥을 써본 기억이 없어요^^
밥알.라면을 써본 기억은 나는데요 한참후에 들깻묵.겉보리을 방아간에서 빻아서 쓰시 시작했죠 배가 고프면은 그냄새가 ㅎㅎ
그시절 백원하는 떡밥도 돈이 없어서...
80년대초중반 중고딩 시절때
낚시만 갔다오면 동네어르신들 매운탕,찌개 잔치했다는 소문이...
춘천권(의암,춘천,소양호) 오리지날 붕어 낚시 입니다.
당시에도 출조시 댐에서는 지금처럼 잡고기 여전 하고요.....
붕어...... 관고기는 어쩌다 한번 만나면 양파 자루로 한망(60~80마리) 정도 했습니다.
6~8치 정도 붕어로..... 그렇다고 날이면 날마다는 아니었습니다.
저의 출조시 평균으로 따지면 열서너수 정도라고 보면 될것 같습니다 ( 지금의 상황으로 보면 완전 대박수준)
아무리 날씨와 물질(댐방류)로 여건이 안받쳐 줘도...... 꽝은 없었던것 같습니다.
월척은 지금보다 더 없었던것 같구요........ㅎㅎ
장마철 소양호 가두리 넘쳤을때 향어 파티는 있었지만.........붕어가 완전 떼고기 조황? 아니죠.......ㅎ
원평리,인람리...... 붕어 괜찮았습니다......가끔가다 6~70급 잉어도.......
댐자락이라 그때도 물질영향 있었고요........ 의암댐 같은곳은 소양호에서 찬물 빼는 날이면 완전 꽝조황........
의암호 배불뚝이(똥배)라고 불리던 고기가 생각 납니다....... 입질은 완전 토종붕어 입질처럼.......환상적인
피라미처럼 생기고 배만 불뚝한 못생긴 놈..........
춘천호는 소양호 배수 영향이 거의 없어서 나름 괜찮기는 했는데 의암호 보다 상대적으로 맑아서 누치,매자 등의 잡고기
성화가 의암호 보다 더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낚시인은 많이 보기 힘들었고.........젊은 나이의 제가 또래들과 어울려 버스타고 낚시 다니면.......
연세드신 분들의.......약간 곱지 않은 시선을 느낄수 있었을 정도 입니다.
춘천권 낚시에 국한시켜 말씀 드리는 거지만.....
지금과 같은 대물낚시 형태 절대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2~3대의 떡밥낚시가 99% 이고요......
가끔 민물새우 끼워서 육식어종 노리거나....... 피래미 끼워서 끄리 ,메기 노리는 낚시가 전부였습니다.
낚시대도 제일 긴대가 그라스로드 3.5칸대 인데 , 가지고는 있어도 무거워서 거의 안쓰는대 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주력대는 2.5칸대 20.30대는 부사수.........
떡밥은 천편일률적인 "춘천원자탄" ........가끔 사제 떡밥 만들어 출조 하는 날은 대박 치는 날이 었습니다.
원자탄이 "신장떡밥"의 출현으로 완전히 초토화 될때쯤.........
붕어의 개체수도 점차 줄어서 못잡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며.......배스란 놈이 설쳐 댈때 그 정체를 몰랐었고.....
물 가장자리 에서 뭔가가 피래미를 덮치는 모양이 눈에 띄면
끄리가 피래미 잡아 먹는줄로만 알았는데.......그놈이 배스란 놈이란 말을 들었을 때가.........
바리그때(80~90초) 입니다 (갱주부채살조사님 버전)
질문하신 님께서 춘천 원평리 말씀을 하셔서 반가워서 두서없이 몇자 남깁니다........
20년후에도 붕어낚시 계속 할수 있으려나....
붕어개체수가 많았지만 아무때나 물어주진 않았던거 같네요.
그러나 대박이 지금보다는 크고 자주났었지요.
한두 마리로 꽝친적도 많이 있었고요.
당시엔 바늘이 다섯개나 달린 멍텅구리낚시를 많이 했는데요.
활성도가 좋은날 집어가 되면, 한번에 서너마리까지 동시에 물려나오기도 했지요.
찌가 서기 전에 챔질을 할수밖에 없는 상황이 몇시간이고 계속되면 이건 낚시하기 싫어져서 그만두게 됩니다.
그러나 그게 대부분 너댓치정도의 붕애들이에요.
대물은 구경하기 힘들었고 누가 큰붕어 잡았다하면 큰다라이에 담아놓고 구경하러 갔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대물은 잘 잡히지 않는 법인가 봅니다.
지금은 전국의 정보가 합산되다보니 대물이 많이 잡히는것으로 보이는것이겠지요.
하루 대담구고 있는 사람수도 그때와 지금은 엄청나게 차이가 나겠지요.
강태공시절이나 지금이나 낚시의 본질은 대자연의 숨결을 느끼며 기다림속에서 자기성찰의 시간을 갖는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다리는것은 붕어였지만, 낚아올린것은 행복이였으면 하는 바램으로 부족하지만 몇자 적어봅니다.
매운탕에 좋은 동자개나 메기,,,,, 그리고 잡기 어려운 잉어나
민물의 제왕인 가물이정도는 잡아 줘야
집에 들고 갔지, 놋강에 물을 빼도 7,8치 붕어는 사람들이 거들떠 보지두 않았으니깐요.
암튼 그때가 그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