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동영상 조회가 17만여번 클릭된 배호에 영상이라서 올렸습니다.
(영상을 확대해서 보시면 느낌이 더 하실것입니다)
1970년대 음악역사를 말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세시봉', 생음악 무대였던 'OB'S 캐빈'은 명동이 자긍하는 음악의, 젊음의 명소였다.
60세대가 음악을 하려면 가야했던 곳이 명동이었고, 70세대도 '꽃다방'과 같은 음악다방에서 열심히 팝송을 청취했다.
양희은이 대학에 들어가면 꼭 가서 놀리라 다짐했던 곳이 명동이었고 포크의 대부라는
조동진도 명동의 음악 감상실에서 친구를 사귀었다.
이제 명동은 고귀와 고급의 명성을 강남 압구정동이나 청담동에 빼앗겨버렸다.
여전히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지만 이 곳을 오는 사람들의 세대와 계층은 확실히 과거와는 다르다.
'밀리오레'의 영향 탓인지 무엇보다 10대들의 발길이 부산해졌다.
'비 내리는 명동 거리 잊을 수 없는 그 사람 사나이 두 뺨을 흠뻑 적시고 말없이 떠난 사람아 나는 너를 사랑했다
이 순간까지 나는 너를 믿었다 잊지 못하고 사나이 가슴 속에 비만 내린다...
'아마도 요즘의 신세대들은 부모가 들었던 배호의 '비 내리는 명동거리'(1970년)가 전달하는 내용물이 왜 그리 진한 지 알 리 없고,
그래서 달라진 감성 때문에 공감하는 데는 상당한 부담을 느낄지도 모른다.
' 사나이 두 뺨을 흠뻑 적시고'는 확실히 뜨거운 정감의 격발이었지만 감각적인
그들에게는 유치하고 하찮은 과잉의 언어로 폄하될 수 있다. 그래도 명동으로 발길을 대고 부대끼면서
그들도 나중에는 명동정서의 포로가 될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자신들도 미처 알지 못하는 순간에 추억의 흔적들을 뿌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도 언젠가는 사나이 두 뺨을 적시는 흠뻑 적시는 눈물의 이유를 알게 된다.
크라잉 넛의 신보 타이틀곡이 '명동 콜링'이다.
우리 가슴의 뜨거움(日)과 서글픔(月)이 교차해 만들어낸 대중음악 '명(明)품의 거리' 명동의 구속력은 지금도 지속되고 또 반복된다.
- 2004년12월 경향신문 -
가을비가 축촉히 내리는 가을밤입니다.
저와 연배가 비슷한 월님들은 배호씨의 '비내리는 명동거리'를 들으며 풋풋한 젊은시절 추억에 빠질듯...씨-__^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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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 연주를 감상하려다 낚였습니다ㅎㅎ
맑은물 비 땜시 모두
캐노피 안에 있습니다
지도 노래방가면 배호노래만 한답니다
날씨도 흐릿한데 제목에 끌려서리 댓글달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