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 자유게시판

사람 사는 이야기(지구는 아들이 지킨다) 1

IP : fc043071b4bd6e0 날짜 : 조회 : 4473 본문+댓글추천 : 0

정말 화창한 토요일이다. 막내 여동생의 집들이 저녁 초대에 참석하기 위해 외출을 하지 않고 난분에 물을 주고 마른 잎을 손질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베란다 밖에 핀 라일락 향기가 바람 부는 촉각의 느낌과 시각적인 아름다움, 후각적인 냄새가 집안 가득하다. 아내는 빨래를 널다가 "담배 연기가 좋은 분위기를 다 깨어 버린다." 못 들은 척 대꾸를 하지 않고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노래를 흥얼거렸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몇 번 내 뒤를 옷걸이를 들고 왔다갔다 하더니만 "이 녀석은 학교 갖다 올 때가 다 되었는데 왜 안 오지? 같이 먹으려고 찌개 데워 놓았는데 다 식는다. 당신 일 끝났으면 전화 한 번 해보지 그래요?" "알았다." "그런데 오늘 같은 날 낚시하는 사람은 좋겠다. 날씨 좋고 분위기 좋고......" "못 갈 처지인데 미련은 버려요." "내일 새벽에 이 도시를 떠나 붕어 밥 좀 주러 갈까?" "내일은 C읍 예식장에 가야 되잖아요?" "그렇지? 당신 혼자 가면 안 될까?" "참 나, 축의금만 보낼 자리가 아니고 얼굴까지 내밀어야 할 그런 자리 아니에요?" 물론 잘 알고 있지만 낚시의 미련 땜에 하는 소리인 줄 아내도 잘 알고 있다. 전화기 버튼을 눌러 나갔다. 짧은 단음으로 신호음이 계속 송출되고 있었지만 받지를 않았다. "전화 안 받는다. 이 녀석 친구 집에 간 것 아니가?" "아침에 나갈 때 늦는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시장해요?" "시장하다기보다는 지금 시간이 두 시 반이 넘었다." "그럼 먼저 식사합시다." 아내와 점심을 먹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십니까?" 대답이 없었다. 수저를 든 채 재차 물으니 아들의 목소리였다. "얌마! 대답을 좀 해라." "왜 이리 늦었니? 배고프겠다 옷 갈아입고 빨리 점심을 먹자." 지 엄마가 하는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하고 가방을 짊어진 채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버린다. "야! 뭐하노. 빨리 점심을 먹어야지." 아내가 수저를 놓고 밥공기를 들고 오면서 "○○아! 어디 갔다가 늦었니?" 아들은 소파에 기대어 한다는 소리가 "지구를 지키고 한 시간 걸어왔더니 피곤해요." "뭐라고? 야, 임마. 왜 네가 지구를 지키노? 지구 수비대도 있고 무슨 로봇도 있고 지킬 것들이 억수로 많은데......." 아내는 "쟤 지금 무슨 소리해요? 지구를 지키다니 무슨 우주인이라도 쳐들어왔나? 요새 TV, 신문에 온통 이라크 전쟁이야기로 도배를 하니 별 희한한 이야기를 하노." 가방을 짊어지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아들녀석을 보고 엄마는 "지구 지킨다고 수고했는데 교복 벗고 손만 씻고 점심부터 먹어라." 늦은 점심을 먹으며 아들이 지구를 지키고 늦게 왔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다. 식탁에 마주 앉아 아들의 밥 먹는 모습을 쳐다보며 "야, 지구를 지킬 때 총을 들고 지켰나?" "아니오. 가방 짊어지고 맨손으로 지켰지요." 부자지간의 선문답에 아내는 웃으면서 한마디를 거들었다. "오늘 우리 ○○이가 지구 지켜주는 덕분에 엄마는 빨래 잘하고, 아빠는 난분 손질을 잘했다." 우리나라를 지키는 것도 아니고 지구를 지킨다는 황당한 이야기에 다시 선문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럼 완전히 적군을 격퇴하긴 하고 왔나, 휴전을 하고 왔나?." "완전 격퇴는 어렵지요." "임마, 한참 자는 새벽에 또 쳐들어오면 잠 안 자고 전쟁하러 못 가잖아. 하는 김에 늦더라도 완전히 소탕을 하고 와야지......" "아빠는 지구 지키는 걸 무슨 외계인하고 싸움하는 줄 알았어요?" "그럼, 쳐들어오기에 지키는 것 아닌가?" 아들은 내 얼굴을 쳐다보며 답답한 표정을 지으면서 또박또박 말을 했다. "지구를 지킨다는 게 오늘 우리 학년 단체로 신천 살리기 운동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고 환경보호운동을 했다는 이야기예요.? "뭐라고? 그러면 알아듣기 쉽게 신천에서 쓰레기를 줍고 왔다하면 간단하잖아. 어렵게 지구를 지키고 왔다니까 아빠가 감을 못 잡지." 아내가 하는 말은 "마 되었습니다. 점심밥상이 저녁 되겠다." 정말 요즘 환경문제가 심각하긴 하다. 아들이 지구를 지키고 왔다는데 아비는 다음 주말에 낚시터를 지키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