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지사랑님이 제 또래인줄 알았네요.
60년대 국민학교 다녔는데...
그때 7학년이 있었습니다.
중학교 떨어지고 6학년 한 번 더다녔던 재수생 형들을 7학년이라 부르더군요.
중학교 시험쳐서 들어가다 58년생인 저부터 뺑팽이 추첨으로 학교 배정받았습니다.
(8각형틀에 둥근틀이 있는데 우측으로 두 번 돌리고 다시 좌측으로 한 번 돌리면 번호있는 은행알이 톡 떨어지더군요)
지독하게 가난한 시절~~~
60년 후반 70년 초반에 다니던 국민학교
(지금은 초등하교로 개명)
늦가을 겨울 오기전 전교생이 나무 주으로
산에 가고
눈이 많이 오는날은 고학년들은
산토끼 몰이 갔던 그시절이 ~~~
(우리 시골은 깡촌. 전기 전화도 없는 그런
깡촌이랍니다)
대각선으로 돌돌말아 등에 대각선으로 둘러 묶고 냅다 달려댕겼지요.
핵교까지 십리길은 그냥 껌이다 하고 뗘 댕겼지요.
비오는날은 요소비료 포대가 최고였고요.
한쪽을 터서 머리에 뒤집어 쓰면 판초우였지요..
제 이야기는 아니고요....
6~70년대 핵교 댕기신 노선배들 이야기입니다....^^
겨울에 교실에 나무난로 때던 시절,
창틀은 다 나무창틀.
한반에 70명이 넘어가는데 15반까지 있었으니,,,
그래도 그때가 그립긴합니다
60년대 국민학교 다녔는데...
그때 7학년이 있었습니다.
중학교 떨어지고 6학년 한 번 더다녔던 재수생 형들을 7학년이라 부르더군요.
중학교 시험쳐서 들어가다 58년생인 저부터 뺑팽이 추첨으로 학교 배정받았습니다.
(8각형틀에 둥근틀이 있는데 우측으로 두 번 돌리고 다시 좌측으로 한 번 돌리면 번호있는 은행알이 톡 떨어지더군요)
지독히 가난했던 초딩시절 미국지원식량 옥수수죽과 옥수수빵을 받아 먹었었네요.
저희도 한반에 기본 60명이 넘었죠
저 책가방중 나름 메이커가 펭귄표^^
서울 신림동 반지하 가내수공업의 산물이었습니다.
제가 우찌 아냐구요?
저희 고모부가 신림동에서 직접 공장을 하셨으니까요^^
겨울철 난로 위엔 밥도시락으로 탑을 쌓고,
난로 장작은 오래된 책걸상~ 물론 석탄도 있었지만요~
난로에 장작을 땐 세대면???
저는 조개탄 세대입니다.
솔방울이나 나무로 밑불을 붙이고 조개탄 넣어서 땟지요.
소보루빵이 가끔 지급되면 일부 학생만 먹을 수 있는 특혜(?)를 받기도 했지요.
어인님이 저보다 선배시군요...ㅋ
8살 꼬맹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슬리퍼를 벗어서 뺨 때리던 선생의 얼굴 이름 그리고 그 분위기를 ...아직도 잊을수 없습니다.
그 때 생각만 하면... 살인 충동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물런 충동만 입니다.^^;;
24반 까지 있었어요
이짝이 더 촌이라서 그런거 아일까요?? ㅋㅋ
60년 후반 70년 초반에 다니던 국민학교
(지금은 초등하교로 개명)
늦가을 겨울 오기전 전교생이 나무 주으로
산에 가고
눈이 많이 오는날은 고학년들은
산토끼 몰이 갔던 그시절이 ~~~
(우리 시골은 깡촌. 전기 전화도 없는 그런
깡촌이랍니다)
세상 다가진것처럼 좋았었죠
기억이 생생합니더
4키로쯤 되었나...
저는 플라스틱 제품을 썼던 기억이 나네요.
아재가. 확실하네요
저도. 충남안흥에서. 안흥국민학교까지.
마라톤 을. 허구한날. 했습니당
깡촌에서 3년, 한양에서 3년.ㅎㅎ
제가 3년때 동네에 전기가 들어왔고, 책가방 있는 애들은 몇명 없었어요.
흰고무신 신으면 그래도 사는집, 운동화는 부자집 애들이었죠.
건빵 나눠주면 집에 가져와서 설탕 넣고 쪄먹던 생각이 납니다.^^
~^^;
6학년 까지 사용^^^^^^^^^^^^^^^^^^^^^^^^^^^^^^^^^^^
교실에는 대낮에도 쥐가 나타나 친구 오른쪽 바지로 들어갔다 왼쪽으로 나온 기억도 있네요
국민학교.
저는 1970년대에 면 단위 소재지에서 다녔습니다.
충남 보령 남포.
그때 4반까지 있었습니다.
2학년때는 오전반! 오후반!
1학년이 3시간 공부하고 하교하고
우리는 4교시부터 시작.
그렇게 어려웠던 국민학교 시절을 ~~~~
콩나물 시루인건 맞는듯요...ㅋ
60명 가까이 있었던 기억이...
한참 선배들때는 있었을수도 있겠네요.
80년대 초반 국민핵교 입학인디...^^
병설 유치원은 오전,오후반 있었네요.ㅋ
봉천동 달동네 79년도 졸업반때 제가 6학년 20반 101번였습니다..ㅎㅎ
조개탄 , 오후반 있었고요 , 3학년 때 1학년 동생반 청소 해 주던 기억이 납니다 .
그 시절 다 가난했지만 우리 집은 특별히 더 가난해서 고생했던 시절이었습니다 .
상상을 초월하는군요..여기서 탑이신듯^^
한반에 60명이상
오전반 오후반
떡볶이 50원 짜장면200원
학교앞 구루마 뻔데기 50원
그시절 추억이새롭네요
쥐꼬리
솔방울
코스모스 씨
들기름 갖고가서 마루바닥 닦기
가장 맛있었던
원조 빵
캬~ 그때 반장이라서 빠께스(양동이)들고 양호실에서
수령해와 노놔주면 몇개 남아서 그거 얻어먹으려구
잘보일려던 몇몇 급우들
아련히.... 그시절 그립습니다.
지금 생각을 해보아도
다시는 그런 시절이 오지 안았으면 합니다
자식들에게 그러한 시대의 아품을 주고 싶지 안아서
호의호식 하게 키우고들 있죠
지금 생각을 해보면 다 부질없는 짓이다
그러한 생각이 드네요
나시는듯 하네요 ㅎ
80년대 초반인 저는 편하게 학교 다녔네요 ㅎ
한반 5~60명 16반까지 있던걸로 기억하는데
그래도 저도 국민학교 세대네요 ㅎ
하교 하면 송충이 잡으러 산에 갔죠.
깡통 들고.
정겨웠던 시절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