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80 에 나무를 심는다."
옛 말에 ‘예순에는 나무를 심지 않는다고 육십 불종수(六十不種樹)’ 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심어 봤자 그 열매나 재목은 못 보겠기에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정조(正祖)대왕 시대 심재(沈鋅 :1722~1784)의 <송천필담(宋泉筆談)>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 서문에 보면, 심재는 “명성도, 업적도 없는 사람이지만, 읽은 책의 내용, 성현의 가르침, 세상의 속된 말 등의 내용을 잡다 하게 기록하였으며,
이를 후세의 선비들이 읽기를 바란다” 고 하였습니다.
'송천(松泉)' 이란 ‘소나무 사이의 밝은 달과 돌 위의 맑은 샘물’ 을 뜻하며,
이는 처사(處士)가 거처하기 좋은 곳을 말하는 것‘ 이라고 했는데 그 <송천 필담>에 나오는 몇 가지 예화를 들어 봅니다.
송유(宋兪)가 70세 때 고희연(古稀宴)을 했는데 귤(柑) 열매를 선물을 받고
그 씨를 거두어 심게 하자 사람들이 속으로 웃었다.
그런데 그는 10년 뒤 자기가 심었던 귤 열매를 먹고도 10년을 더 살다 세상을 떴다.
황흠(黃欽)이 80 세에 고향에 물러나 지낼 때 종을 시켜 밤 나무를 심게 했는데 그걸 보고 이웃 사람들이 웃으면서 말했다.
“연세가 여든이 넘으셨는데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요?”
그 말에 황흠이 대답했다.
“심심해서 그런 걸세. 자손에게 남겨 준대도 나쁠 건 없지 않은가?”
그런데 밤 나무를 심은지 10년 자났어도 황흠은 건강했고, 그 때 심은 밤 나무에 밤송이가 달려서 이웃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자네 이 밤 맛 좀 보게나. 후손을 위해 한 일이 날 위한 것이 되어 버렸군.”
이 이야기들은 모두 <송천 필담>에 나오는데 어떻습니까?
너무 늦은 때는 없습니다.
팔십만 넘으면 노인 행세를 하며 공부도 수행도 하지 않고, 일도 안 하며 그럭, 저럭 살다 죽을 날만 기다리기 쉬운데
요즘 100 세 시대에 이런 조로(早老)는 너무 심하지 않은가요?
씨를 뿌리면 나무는 자랍니다.
(받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