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조사! 03년도 첫 붕어다. 봐라 빵하며 때깔 죽이제? "
"앗싸 가오리. 나도 걸었다."
의자에 일어나니 갈대사이로 붕어를 들고 얼굴을 보여주고 있었고, 그 옆에 친구의 낚싯대는 반원을 그리고 있었다.
들판 속에 숨은 저수지는 지난주 장모 산소에 들렀다가 대구로 향하면서 발견했었고, 내가 바람을 넣어 셋이 같이 출조를 하였다.
모처럼 친구와 어울려 동심으로 돌아가 물가에 앉아 마른 갈대 사이에 지렁이를 뀌어 낚싯대를 펴놓은 채 찌에 시선을 박아 두고 있었다.
좌측 두칸반 대의 찌가 꼼지락거리기에 다음 진행 과정을 주시하고 있는데
"아직 마수걸이 못한 사람은 없지?"
하고 의도적으로 약을 올리고 있었다.
근 두 시간이 흘러갔지만 내 낚싯대는 미동조차 없었다.
그 동안 두 사람은 네댓 마리씩을 낚아 올린 것 같았다.
저수지 건너편 갈대 사이로 물오리 서너 마리가 아침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반쯤 타 들어간 담배를 입으로 가져가는데 짙은 황색의 갈대 사이로 공작 찌가 영롱한 빛을 발하며 기다리던 입질의 환희가 꿈결처럼 황홀하게 대뇌의 신경세포를 자극하고 있었다.
찌가 옆으로 기어가는 순간 손목의 반동을 이용하며 챔질을 했다. 초릿대가 처박히는걸 느끼며 대를 세우기 위해 두손으로 움켜쥐었다.
이놈이 갈대 속으로 파고들었다.
목줄이 나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이, O조사!! 월척을 걸었는데 꿈쩍도 안 한다."
친구가 곁으로 뛰어 오면서
"조사! 새싹이 움트는 봄날에는 저수지도 입질하나? 저수지 낚은 것 아니가?"
"저수지를 낚다니? 무슨 소리 하노, 기다려 봐라."
첫 입질에 월척조사 반열에 뛰어 오른다.
손목에 힘을 가하는 순간 원줄이 퉁겨 오르며 탱탱하던 기대와 감격은 물방울처럼 부서져 버렸다.
"야 이 사람아 . 낚싯대를 접으면서 원줄을 잡고 살살 달래며 당겨야 숫처녀 얼굴이나 한번 볼 수 있지 ...... 황소 코뚜레 잡고 당기듯이 하니 목줄이 터져 버리지......"
"그래, 실패한 사랑에는 변명이 필요가 없지. 알았습니다. 사또나리!"
채비를 손질하는데 아랫배가 살살 아파 왔다.
새벽녘에 H읍에 도착해서 김밥을 주문하고 24시 편의점에 들러 생수랑 안주 및 간식거리를 장만하고 난뒤 빨리 출발하기 위해 급하게 먹은 아침밥이 원인인 것 같았다.
심호흡을 하며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맨 좌측에 앉았던 친구가 비닐 봉지를 들고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봄처녀 얼굴은 한번 봤나?"
"응. O조사 낚아 구경 시켜주는 것 보긴 봤다."
"처음에 담글 때는 입질 막 오더니 소강상태다. 해장술 한잔하자."
"한 마리 걸어 터지고 나니 배가 살살 아파 오는데......"
"원래 김밥 집에서 나오는 밥이 일반식당보다 좀 꼬들꼬들해서 소화가 잘 안되잖아. 소주 들어가면 해결된다."
바닥에 신문지를 펴고 술상을 차렸다.
소주로 고수레를 하고 한잔을 받아 건배를 했다.
"어이 O 조사! 붕순이 그만 보고 한잔하자."
"둘이 해라. 기사 술 먹이지 말고......갈 때 단체로 애로사항이 많다."
먼저 한잔을 받아 마신 후 술병을 쥐고 권하니 안주를 씹으며 잔을 받았다.
"봄은 왔다. 왔어. 저기 달래 좀 봐라."
"그래 뭐가 그렇게 바쁘다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살았노? 참 계절은 어김없이 바뀌고 우리도 늙어가지 뭐......"
"요즘 신경 바짝 쓰고 나면 마누라하고 의무 방어전도 잘 안 된다."
"뭐라 하노? 지나가는 물오른 탱글탱글한 숫처녀 엉덩이만 봐도 찌잉하고 감이 와야지. 아직 몇 살이라고 피곤하면 숨 돌리고 쉬었다. 가야지 물가에 앉아 붕순아가씨도 만나고, 콧구멍에 흙냄새도 넣어가면서 살아야지."
"좋은 말이다. 인생100년 사는 것도 아닌데 돌이켜 보면 지난10년이 후딱 이었잖아?"
"그래 아이들 크는 것 봐라"
그때 혼자 낚시에 열중하던 친구가
"사설이 너무 길다. 입질 온데이 그만하고 원 위치 해라. 점심 먹을 때 반주좀 해야지 해장술에 째려 물에 빠진다."
병뚜껑을 닫고 남은 안주를 주섬주섬 챙겼다.
(2부에서 계속 됩니다.)
- © 1998 ~ 2024 Wolchuck all right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