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봄이면 특히 목련이 필때면 남모를 가슴앓이를 했습니다.
20년전 그해 겨울 12월말 첫사랑의 아가씨와 갑작스러운 이별을 하게되구
마직막으로 했던말은 진실이 아니었다구, 미안하다구, 잘살라구,
그 한마디를 하고싶어 그녀 집앞 맞은편 학교담벼락 뒤에 몰래 숨어
4개월을 매일같이 기다렸습니다.
마지막 헤어질때 나를 피해 도로로 뛰어들어 택시를 잡아타고 서울오빠집으로
올라갔던 그녀는 다시는 내앞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늘 숨어서 지켜보던 교정에 하얀목련이 가득피어났습니다.
그 하얀꽃입들 사이로 바라보던 그녀의 방 창문은 단한번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하얀꽃입이 지기 시작할때 땅바닦에 떨어져 누운 꽃잎들이 검게 변색되어가기 시작할때
나도 떠날때임을 알았습니다. 이미 대학학기는 시작하였고 더이상 수업을 빠질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발길을 돌린후에도 매년 목련이 필때면 몽유병이라도 앓는 환자처럼
그 교정 담벼락에 몸을 기대구 있는 제자신을 문득문득 발견하곤 했습니다.
지금의 아내가 이런 나를 실연의 아픔에서 구해주었습니다.
곁에서 이런 나를 지켜봐주고 나를 위로해 주던 후배가 지금의 아내입니다.
이제 긴 시간이 지났지만, 언젠가 꼭한번 소식이라두 전해듯고 싶었습니다.
잘살고 있다는 소식이라두 전해듣고 싶었지만 구지 찾아나서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찾고 싶어도 찾을 방법도 없었습니다.
오늘 5시 30분 한통의 문자가 날아 왔습니다.
고등학교 동창회장을 하던 동창이 보낸 문자입니다.
신안 **도 고향친구인 ***가 제가 사는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나오니 지지를 해달라는 문자입니다.
단 한번도 고등학교 동창모임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동창회장이 그녀와 일부연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끔 그녀가 동창친구 처가 되어있는 상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녀와 헤어지기 한달전쯤 그녀가 고등학교 동창중 ***이 아느냐고
제게 동창친구의 이름을 말했을때,
말은 하지 않았지만 기분이 몹시 언쟎았습니다.
혹시 나 몰래 미팅이라두 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과 옛 애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교차 했었습니다.
헤어진후 혹시 그애때문에 우리가 헤어진게 아닌가 하는 막연한 추측도 했었습니다.
신안 **도 **초교 동기생이라는 문자를 받고 나서 머리가 띵해집니다.
그녀의 고향과 같은 곳, 헤어진후 두번인가 찾았던 곳
해변에서 바라보는 노을이 너무 아름답던 말을 되새기며 노을지던 해변을 거닐던 그곳,
동향 친구였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 친구는 그녀가 어찌 사는지 소식을 알고 있을겁니다.
모른다구 하여도 부탁하면 어찌 사는지 수소문해서 알려 줄수 있을 겁니다.
동창친구의 문자에 처음으로 답신을 했습니다.
"그래 적극적으로 찍어줄게. **도 출신인줄 몰랐다."
회신이 옵니다.
"그래도 나름 너하구 친분이 있다구 생각했는데, 그동안 회신한번 않해서 나를 피하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미안하다. 다음 동참모임에 꼭 참석하마"라고 문자를 보내고 나서
많은 생각이 듭니다.
소식을 물어볼까? 소식을 알아볼까?
많이 궁금했었는데 막상 알수 있는 상황이 되니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무엇이 옳은 길일까? 어떻게 하는게 맞을까?
휀님들 생각이 궁금합니다.
자게방에 읽을 거리가 부족해서 지어낸 이야기로 믿으셔도 돼구요
진짜로 제게 지금 벌어진 일이라구 믿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댓글은 꼭 주셔요. 판단을 구하고 싶습니다.
나에게도 젊은 시절 있었던 추억과도 같은 글에 공감이 갑니다.
픽션이라면 상상력이 풍부하여 작가 기질이 엿보이는 것이요,
논픽션이라면 애끊은 젊은 날의 초상이겠지요.
저는 후자에 한 표합니다.
“매년 봄이면 특히 목련이 필때면 남모를 가슴앓이를 했습니다.”
이 대목이 압권입니다.
“진정한 ‘꾼’은 쓰레기를 반드시 되가져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