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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랑이야기

IP : 45f6dbe7340fba3 날짜 : 조회 : 1943 본문+댓글추천 : 0

내게 첫사랑이 찾아온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반 배정을 받고 교실로 들어선 순간 유난히 눈에 띈 분홍빛 머리띠의 단발머리 소녀, 앞자리 두 번째 줄에 앉은 그 아이는 그리 예쁜 얼굴은 아니었는데 다소곳이 고개 숙인 차분한 모습에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첫눈에 마음을 빼앗겼던 것 같다. 말 한마디 붙이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다가 며칠이 지나가 버렸다. 어떻게든 자연스레 다가서려 고심하던 차에 반 아이들이 부반장에 그 아이를 추천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던 반장선거에 나가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다. 두려움과 떨림은 아예 자리할 틈도 없었고, 꽃미남 얼굴을 내세운 나는 반장에 선출되는 영광을 안았다. 그리고 그 아이 역시 바라는 대로 부반장이 되었다. 아무도 못 푸는 어려운 산수 문제를 전날 형에게 배운 것도 아마 그 아이 때문이었고, 전교 어린이회에서 씩씩하게 발표하던 것도 그녀가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항상 내 시선은 그 아이의 동선에 맞추어져 있었고 그 자체 만으로 즐거움이 되었다. 그러나 일 년이 다 지나가도록 그 아이는 근접조차 용인하지 않는 마술을 부리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성 간에 같이만 있어도 얼레리 꼴레리 외치는 전근대적인 문화의식과 소심하기 그지없었던 나의 성격이 장애가 되었음이 맞을 것이다. 결국은 속으로만 끙끙 앓으며 말 한마디 제대로 붙이지 못한 채 졸업을 하게 되었고 설레임으로 달콤했던 첫사랑은 벙어리 냉가슴 앓는 짝사랑으로 변하고 말았다. 빡빡 깎은 머리들만 있는 삭막한 중학 생활에 동화되어 그 아이를 서서히 잊혀 갈 무렵, 수업 하루 전 날 예습 삼아 읽었던 황순원의 '소나기'는 그야말로 이팔청춘이던 풋풋한 가슴을 온통 헤집어놓고 말았다. 눈을 감으면 나타나는 분홍스웨터의 단발머리 소녀... 그리고 나는 어느새 소년이 되어 개울가로, 갈밭 사이로, 산으로 소녀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소년이 소녀에 대한 그리움으로 개울가를 찾듯 방과 후 집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그 아이의 집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혹시나 우연히 마주치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그러나 소설 같은 우연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군 제대 후 학벌타파를 외치며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서울 상경을 하였으나 형의 설득에 결국은 다시 공부하기로 하고 독서실에 둥지를 틀고 재수생의 길을 걷게 되었다. 변화 없는 하루하루... 그저 독서실 옥상에서의 잠깐 휴식... 내 젊음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바람도 쐴 겸 시내 서점을 들르게 되었다. 독서실 차림 그대로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시위라도 하듯 활보하였지만,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또래 젊은이들의 웃음소리는 내 슬리퍼 소리를 마음껏 유린하였다. 힘없이 서점 문을 막 여는 순간, 귓전으로 다가오는 미묘한 음색... 나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기에 충분하였다. 뒷모습만 보였으나 그 목소리는 분명 잊혀지지 않은 내 첫사랑의 목소리였음을 직감했다. 뇌리에 또렷이 각인된, 나지막한 톤에 약간 허스키한 음색이 귓볼에 와 닿았을 때 가슴은 갑자기 쿵쾅거리며 아득한 현기증마저 느끼고 있었다. 서서히 뒤돌아서는 그녀, 예상대로 그토록 갈구하였던 내 첫사랑임을 확인하고 가벼운 떨림과 함께 나도 모르게 그녀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10년 만의 해후, 무슨 말을 건넬까? 온통 머릿속은 하얗게 하얗게 백지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녀 앞에 마주 섰다. "내 모르겠나...요?" "누구 신지?..." .............................. "○○국민학교 나오지 않았는지....요?" "맞는데...?" 어설픈 차림의 낯선 남자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6학년 12반 ○○○ 인데..." ................................... "저~어 기억이 나질 않네요." 그리고는 황급히 서점 문을 나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였다. 책을 샀는지, 어떻게 독서실로 왔는지 전혀 기억할 수 없다. 단지, 독서실에 멍하니 앉아 저녁 늦게까지 그러고 있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는 것은 피천득의 '인연' 중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라는 구절만 머리에서 뱅뱅 돌고 있었다.

1등! IP : 15b869628fc66b4
이 문열씨가 쓴 "레테의 연가" 가 생각 납니다.

--망각의 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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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 IP : 15b869628fc66b4
소설의 첫 일기를 퍼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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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일이면 한 남자의 아내가 된다.

여성에게 있어서 결혼은 하나의 레테(망각의 강)이다.

우리는 그 강물을 마심으로써 강 이편의 사랑을 잊고, 강 건너편의 새로운 사랑을 맞아야 한다.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오직 그 새로운 사랑만으로 남은 삶을, 그 꿈과 기억들을 채워 가야 한다.




선배님..

가정을 지키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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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등! IP : 4298104964fa86d
글 잃다 보니 오랫만에 제 첫사랑 생각이 나네요ㅎㅎ생각만해도 설레이었던 그때가 좋았던거 같습니다ㅎㅎ
좋은 하루 되세요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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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defc71627f7ffd0
첫사랑이라...

정말 정열적으로사랑한 소녀가있었습니다.

아직도 이름을기억합니다.

노 지 연...어릴적이지만 정만사랑한여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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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dd5c07e0f09a85e
종희 모친께
반드시 이름을 물어봐야겠습니다
노지연씨 아니냐고......
그날 아마 줄초상 날거같은데요
부의금쪼매 나가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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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2a04add14ad301b
어느 누군가 가 아닌 우리 모두가 건넜을 그리움의 추억 한 편을 봅니다
마치 며칠 전 처럼 다가오는 세세한 묘사..
아!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있었지, 하며

무릎을 칩니다 함께님ㅎㅎ

갑자기 생동감이~ㅎㅎ
머리 한 켠이 맑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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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7a3b221ae035451
누구나 아련한 추억의 한페이지 아니겠습니까....^^

흐뭇하게 기억을 한번 더듬게 되네요,,

어디있을까요 ?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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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dc6c12a1bfdf843
첫사랑...아직도 가슴이 아리하네요

여자들은 현실적인 동물이라 남자들 처럼 영원히 가슴에 간직하지 못할 꺼라 생각 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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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2b8538189199241
ㅎㅎ 아련한 이야기에 소풍님 오시는순간

빵터져 버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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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66977b5a0451833
선배님~^^
풋풋함과 숫기없는 어린시절의 첫사랑 이야기는 늘 추억인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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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29ef2b15b13533a
엔딩이 너무 아쉽습니다 ~

마치 책을 읽는듯 너무 잘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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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29ef2b15b13533a
순수함과 로맨틱, 그리고 뜨거움



순수해서 만났지만

낭만적으로 이끌어 가는 내모습이 좋았고

어느새 나는 뜨거운 남자가 되어있었다.


순수는 마음이 되고

낭만은 추억이 되고

뜨거움은 사랑으로

영원은 인연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순수한 마음으로

추억에 행복해 하며

서로를 위하는 사랑에

행복한 인연으로 살아가고있다.



일명 "능구렁이" 라고 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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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3d523b69b4216d5
문장력이 대단하십니다~

짧지만 한편의드라마처럼 아주긴

세월을압축한 소설이야기 같네요

갑자기 옛날애인이 생각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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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45f6dbe7340fba3
혹여, 다시 만나더라도
그때 정말 나를 몰라봤는지,
아니면 모른 체 했는지,
묻지 않으렵니다.
아니, 아는 체 하지않고 지나칠 것입니다.

추억은 추억으로만 간직하렵니다.


다녀가신 모든 분들께 고마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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