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억은 이미 진부한가 초라한 자기역사에 대한 창백한 자위일 뿐인가 은밀하게 각색하고 교묘하게 표절하며 자발적으로 오독해 현실과 교접하는가 유기된 꿈의 발굴인가 기각된 욕망의 육화인가 혹은 매장당한 희망과 절망의 근친상간인가... / 또 하루를 살아냈다. 거침없는 듯 겁 없는 듯 내달았지만, 인생의 바다는 사실 내게 너무 버겁다. 늙어버린 것인가, 덜컥 겁이 난다. 바다를 가르자던 전복의 욕망은 비루한 신화일 뿐이고, 미의 이데아를 꿈꾸던 순수에의 의지는 남루한 전설일 뿐이다. 증오하던 것들을 내 안에서 발견해야만 하는 이 치욕. 다 인정하고, 그만 돌아가고 싶다. 거슬러 올라가면 강에 다다를 수 있을까. 내 까까머리 원색의 꿈을 만날 수 있을까... 바람 한 점 없는 강가, 찌 일곱 개, 저마다 서성거린다. 전화가 온 듯하다. 모르는 번호다. "네~." "피러?" "네. 누구시지요?" "나, 춘수네." 몸 안의 세포가 꿈틀대고 온몸의 모공이 열린다. "형님!" "잘 살아냈는가?" "잘 살아냈습니다." "편한가?" "아직은요." "애쓰지 말게." "지금도 쌍계사에 계십니까?" "아니네. 떠돌고 있네." "어디로 가실 겁니까?" "왔던 데로 돌아가야지." "네에..." "잘 살아내게." "네, 형님" "애닳진 말게. 만나게 될 걸세." 그가 전화를 끊었다. 그래요. 여기 내가 있고 거기 당신이 있으니 애쓰지 말죠. 내 유년을 유영하면 당신을 만날 수 있죠. 거슬러 올라가면 은모래 반짝이는 강가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죠. ................................................................................... # 화개장터 살다 힘들고 괴로울 때면 엄마 품처럼 파고드는 곳이 있다. 내 유년의 꿈이 강물처럼 흐르는 곳. 화개장터. 경남 하동에서 섬진강을 따라 흔들흔들 가다 보면 경상도와 전라도가 마주하는 지리산 자락. 장날엔 전라도 깽깽이와 경상도 보리문디가 바글와글 사정없이 시끄러워지는 곳이다. 사십여 년 전 하늘이 파랗던 날, 일곱 살 꼬마가 아버지를 따라 도시에서 이사를 왔다. 처음 와보는 시골은 서먹하고 막연히 불안한데, 온 동네 사람들이 구경하는 것이 무섭기까지 하고 아이들이 수군대며 손가락질하는 것도 못마땅해서 괜히 지서 뒷마당의 감나무에 올라가 먼 산을 보는 척했다. 앞으로 친구가 될 놈들의 관심을 끌 수작이었다. 아무도 놀아주질 않았다. 옆집의 계집아이가 참 예쁘고 마음에 들었지만 아무 말도 못 했다. 꼬마는 늘 혼자였지만 고독쯤은 꿀꺽, 극복했다. 지서 앞 도랑에서 팔뚝만큼 큰 메기를 보고는 올가미를 만들어 온종일 땅바닥에 누워 인내심을 키웠다. 밤이 올 때까지 메기는 나타나지 않았고, 돌아누워 바라본 하늘에 박혀 있던 수많은 별.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을 반달이 내내 촐랑촐랑 뒤따라 왔다. # 화개장터 다리 밑의 춘수 다리 밑 은모래 위에 한여름의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꼬마는 다리 난간에 쪼그리고 앉아 자맥질하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아니, 좀 더 솔직해야겠다. 외톨이 꼬마는 아이들을 훔쳐보았다. "지서 도련님 아이가? 뭐 보노?" 지나가던 아줌마가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아줌마, 저기 까만 고무신 안에 뭡니꺼?" "저거 미꾸라지다. 니, 미꾸라지 아나?" "모릅니더. 물고기라예?" "그으래~. 똑똑하네? 니도 잡고 싶나?" "아니예. 모르는 형아들이라예." "가만있어봐라. 아요오~ 춘수야! 춘수야아~." "와요?" "니, 이리 와바라~." 팬티만 입고, 키가 껑충 큰 아이가 왔다. "니, 밥은 묵었나?" "예. 지서 아줌마가 주데요." "그래. 잘했다. 야 알제?" 춘수가 꼬마를 내려다보았다. "예. 지서..." "그래. 니, 야 좀 델꼬 놀아라." "니, 멧살이고?" "일곱 살." "이름은?" "피러." "메?" "피러." "그기 이름이가?" "어." "내는 춘수다. 아홉 살이다. 내가 행님이다. 맞나?" "어." 춘수가 꼬마를 허락했다. 미꾸라지를 같이 잡겠느냐고 물었다. 꼬마가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자 까만 춘수가 하얗게 웃었다. 그가 꼬마의 뇌막에 문신처럼 새겨지는 순간이다. 글이 길어지고 있다. 2배속으로 간다. 춘수가 꼬마의 운동화를 보고 난감해했고, 꼬마는 내일 고무신을 신고 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날 밤, 꼬마는 심히 슬펐다. 엄마가 하얀 고무신을 사왔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꼬마가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까만 고무신이 필요해! 다다음 날, 여전히 고무신은 하얀색이었지만 꼬마가 밥을 먹었다. 춘수가 집으로 찾아와 밥을 먹으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꼬마가 미꾸라지잡이의 달인이 될 때쯤, 춘수가 지서에서 심부름하는 일을 시작했다. 춘수는 고아였다. # 춘수와 피러 꼬마가 결국 지서 앞 도랑에서 메기를 잡았다. 춘수의 지도편달 덕이었다. 꼬마가 아버지를 졸라서 대나무 칼 두 개를 만들었다. 춘수와 꼬마는 산으로 들어갔다. 파천지공을 익히기 시작했다. 드디어 달빛 가르기를 완성하는 날, 춘수와 꼬마는 장엄하게 외쳤다. "야! 한판 붙자!" 촌놈들, 겁을 먹었는지 한참 수군대더니 제일 작은 두 놈을 내 보냈다. "야! 너거 아부지한테 일러주기 없기다." 적들의 모욕은 춘수와 꼬마의 투지를 일깨워주었다. 춘수와 꼬마는 그날, 졸라게 맞았다. 아, 쪽팔림의 창대함이여! 감꽃을 따서 먹기도 하고, 예쁜 큰누나 꽃목걸이도 만들었다. 춘수는 가족이었다. # 벚꽃 십 리 벚꽃길. 1930년대에 이장님이 벚나무를 심었다는 이 길은 겨울엔 늙은 나무들이 가는 세월을 한숨짓는 듯하지만, 매년 4월 초순이면 벚꽃이 지천으로 난장이었다. 그땐 늙은 나무들이 서로서로 손을 맞잡고 벚꽃 동굴을 십 리로 이루었는데, 꼬마는 이 길을 타박타박 걸어서 학교에 갔다. 벚꽃이 만개하면 온 천지가 솜이불처럼 포근했고, 십리 길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하얀 동굴로 변했다. 그러다가, 아주 짧은 시간이 흐르고는 그만 꽃이 지고 말았는데, 벚꽃이 비처럼 내렸고 눈처럼 날렸다. 누나들의 웃음소리가 꽃잎 뒤로 숨으면 꼬마는 길을 잃곤 했는데, 그럴 때면 꼬마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꼬마는 이때가 제일 좋았다. 어린 맘에 꽃이 진다는 의미를 알 리가 없었지만, 그냥 온통 꽃 세상이 좋았다. 여덟 살 꼬마는 그랬다. 몰라서 행복했다. 춘수는 여전히 꼬마 옆에 있었다. # 울지 마! 1년 후 꼬마는 이사를 갔다. 춘수는 이모 집에 남았다. 어린 춘수와 꼬마는 서툴게 이별했다. 나름, 아팠다. # 쌍계사 쌍계사 초입, 내 마음의 고향... 입구의 연로한 나무님들 아득한 전설을 이야기하고, 숲 속은 한낮인데 고요하다. 저 모과나무, 나를 기억할까? 저 침묵하는 바위, 나를 알까? 이십육 년 전. 열네 살 어린 꼬마, 두려움 가득 안고 이 자리에 섰다. 담배 피다 걸려서, 아버지한테 맞아 죽기 싫어서, 돼지 저금통을 들고 갈 데 없어 헤매다 무작정 여기로 왔다. 머뭇대는 자신에게 부처님이 불러서 온 거라고 최면을 걸고, 주지 스님에게 이놈 저놈 언어 폭행을 당하고, 보살님에게 밥 얻어먹으며 동정심으로 구타당하고, 마지막으로 끌려간 곳이 완전초보 스님과의 합방이었다. 불경도 녹음기로 외우고, 애인 사진 보여주며 자랑하고, 짤짤이 하자더니 꼬마 돈 다 털고... 다음 날 아침, 쫓겨나는 꼬마를 잡고 가짜스님은 최대한 엄숙하게 말했다. "물처럼 살아. 마주하는 어떤 것도 거부 말고 흘러흘러 끝내 바다로 가." 순진한 꼬마, 절세비급을 손에 쥐고 부르르 몸까지 떨며 속아버렸다. '이 경천동지할 심결을 익혀 나를 구하리...' 하산해서 집으로 돌아간 꼬마는 말 없는 아이가 되었다. 4년 후 가을, 소년은 또 한 번의 가출을 하고 이곳으로 왔다. 가짜스님은 파계했고, 아아, 소년은 춘수를 만났다. 춘수는 묵언 수행 중이었다. 춘수는 소년에게 말없이 두 손만 모았다. 다음 날 아침, 춘수는 가출소년의 손을 잡고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이번에도 춘수가 남고 소년이 떠났다. # 스스로 그러하다 삼십일 년이 흘렀다. 아주 가끔 춘수로부터 메일이 왔다. '스스로 그러하다는 자연처럼.' '여기 내가 있고 거기 네가 있다. 애쓰지 마라.' 춘수는 스님이 되고, 꼬마는 어설픈 오십 대가 되었다. 석문 앞 장승에게 합장하고 일주문을 지난다. 금강문의 좌우 인왕상은 변함이 없고, 천왕문의 사천왕 앞에서는 주눅이 든다. 부리부리한 눈빛에 거짓이 들키고, 손에 든 큰 칼에 위선이 베인다. 서둘러 대웅전으로 들어간다. 부처님은 아직도 못 버렸냐 안 버렸냐 웃기만 하고, 나는 절은 하지 않고 천장의 단청에 눈길을 준다. 절묘한 색의 배합에 질투하고, 옛 임들의 조화로움에 감탄을 하며 땡중을 기다린다. 땡중을 만나지 못한다. 암자에서 수행 중이라고 보살님이 전한다. 새벽 잠결에 빗소리를 듣는다. 마루에 나와 앉아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며, 저 찰나의 순간이 우리 인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스스로 그러하다는 자연처럼, 나 또한 그러해야지.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야지.' 내려오는 길에 개울가에 앉는다. 맑은 물을 손바닥 가득 퍼 올리다 먼 지리산 자락의 희미한 안개를 본다. 한참을 바라본다... -- 2012. 피러. ................................................................................... 바람이 분다 물결이 인다 찌 일곱 개 파도를 탄다 키 큰 나무 연초록 이파리 사이 반짝 햇살 비치고 살랑 바람 불고 자꾸만 꽃잎은 팔랑팔랑 떨어지는데 춘수와 꼬마는 깔깔대며 나풀거리며 나비가 되고 다람쥐가 되고... -- 2013 봄. 피러.
강변연가
/ 추억은 이미 진부한가 초라한 자기역사에 대한 창백한 자위일 뿐인가 은밀하게 각색하고 교묘하게 표절하며 자발적으로 오독해 현실과 교접하는가 유기된 꿈의 발굴인가 기각된 욕망의 육화인가 혹은 매장당한 희망과 절망의 근친상간인가... / 또 하루를 살아냈다. 거침없는 듯 겁 없는 듯 내달았지만, 인생의 바다는 사실 내게 너무 버겁다. 늙어버린 것인가, 덜컥 겁이 난다. 바다를 가르자던 전복의 욕망은 비루한 신화일 뿐이고, 미의 이데아를 꿈꾸던 순수에의 의지는 남루한 전설일 뿐이다. 증오하던 것들을 내 안에서 발견해야만 하는 이 치욕. 다 인정하고, 그만 돌아가고 싶다. 거슬러 올라가면 강에 다다를 수 있을까. 내 까까머리 원색의 꿈을 만날 수 있을까... 바람 한 점 없는 강가, 찌 일곱 개, 저마다 서성거린다. 전화가 온 듯하다. 모르는 번호다. "네~." "피러?" "네. 누구시지요?" "나, 춘수네." 몸 안의 세포가 꿈틀대고 온몸의 모공이 열린다. "형님!" "잘 살아냈는가?" "잘 살아냈습니다." "편한가?" "아직은요." "애쓰지 말게." "지금도 쌍계사에 계십니까?" "아니네. 떠돌고 있네." "어디로 가실 겁니까?" "왔던 데로 돌아가야지." "네에..." "잘 살아내게." "네, 형님" "애닳진 말게. 만나게 될 걸세." 그가 전화를 끊었다. 그래요. 여기 내가 있고 거기 당신이 있으니 애쓰지 말죠. 내 유년을 유영하면 당신을 만날 수 있죠. 거슬러 올라가면 은모래 반짝이는 강가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죠. ................................................................................... # 화개장터 살다 힘들고 괴로울 때면 엄마 품처럼 파고드는 곳이 있다. 내 유년의 꿈이 강물처럼 흐르는 곳. 화개장터. 경남 하동에서 섬진강을 따라 흔들흔들 가다 보면 경상도와 전라도가 마주하는 지리산 자락. 장날엔 전라도 깽깽이와 경상도 보리문디가 바글와글 사정없이 시끄러워지는 곳이다. 사십여 년 전 하늘이 파랗던 날, 일곱 살 꼬마가 아버지를 따라 도시에서 이사를 왔다. 처음 와보는 시골은 서먹하고 막연히 불안한데, 온 동네 사람들이 구경하는 것이 무섭기까지 하고 아이들이 수군대며 손가락질하는 것도 못마땅해서 괜히 지서 뒷마당의 감나무에 올라가 먼 산을 보는 척했다. 앞으로 친구가 될 놈들의 관심을 끌 수작이었다. 아무도 놀아주질 않았다. 옆집의 계집아이가 참 예쁘고 마음에 들었지만 아무 말도 못 했다. 꼬마는 늘 혼자였지만 고독쯤은 꿀꺽, 극복했다. 지서 앞 도랑에서 팔뚝만큼 큰 메기를 보고는 올가미를 만들어 온종일 땅바닥에 누워 인내심을 키웠다. 밤이 올 때까지 메기는 나타나지 않았고, 돌아누워 바라본 하늘에 박혀 있던 수많은 별.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을 반달이 내내 촐랑촐랑 뒤따라 왔다. # 화개장터 다리 밑의 춘수 다리 밑 은모래 위에 한여름의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꼬마는 다리 난간에 쪼그리고 앉아 자맥질하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아니, 좀 더 솔직해야겠다. 외톨이 꼬마는 아이들을 훔쳐보았다. "지서 도련님 아이가? 뭐 보노?" 지나가던 아줌마가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아줌마, 저기 까만 고무신 안에 뭡니꺼?" "저거 미꾸라지다. 니, 미꾸라지 아나?" "모릅니더. 물고기라예?" "그으래~. 똑똑하네? 니도 잡고 싶나?" "아니예. 모르는 형아들이라예." "가만있어봐라. 아요오~ 춘수야! 춘수야아~." "와요?" "니, 이리 와바라~." 팬티만 입고, 키가 껑충 큰 아이가 왔다. "니, 밥은 묵었나?" "예. 지서 아줌마가 주데요." "그래. 잘했다. 야 알제?" 춘수가 꼬마를 내려다보았다. "예. 지서..." "그래. 니, 야 좀 델꼬 놀아라." "니, 멧살이고?" "일곱 살." "이름은?" "피러." "메?" "피러." "그기 이름이가?" "어." "내는 춘수다. 아홉 살이다. 내가 행님이다. 맞나?" "어." 춘수가 꼬마를 허락했다. 미꾸라지를 같이 잡겠느냐고 물었다. 꼬마가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자 까만 춘수가 하얗게 웃었다. 그가 꼬마의 뇌막에 문신처럼 새겨지는 순간이다. 글이 길어지고 있다. 2배속으로 간다. 춘수가 꼬마의 운동화를 보고 난감해했고, 꼬마는 내일 고무신을 신고 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날 밤, 꼬마는 심히 슬펐다. 엄마가 하얀 고무신을 사왔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꼬마가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까만 고무신이 필요해! 다다음 날, 여전히 고무신은 하얀색이었지만 꼬마가 밥을 먹었다. 춘수가 집으로 찾아와 밥을 먹으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꼬마가 미꾸라지잡이의 달인이 될 때쯤, 춘수가 지서에서 심부름하는 일을 시작했다. 춘수는 고아였다. # 춘수와 피러 꼬마가 결국 지서 앞 도랑에서 메기를 잡았다. 춘수의 지도편달 덕이었다. 꼬마가 아버지를 졸라서 대나무 칼 두 개를 만들었다. 춘수와 꼬마는 산으로 들어갔다. 파천지공을 익히기 시작했다. 드디어 달빛 가르기를 완성하는 날, 춘수와 꼬마는 장엄하게 외쳤다. "야! 한판 붙자!" 촌놈들, 겁을 먹었는지 한참 수군대더니 제일 작은 두 놈을 내 보냈다. "야! 너거 아부지한테 일러주기 없기다." 적들의 모욕은 춘수와 꼬마의 투지를 일깨워주었다. 춘수와 꼬마는 그날, 졸라게 맞았다. 아, 쪽팔림의 창대함이여! 감꽃을 따서 먹기도 하고, 예쁜 큰누나 꽃목걸이도 만들었다. 춘수는 가족이었다. # 벚꽃 십 리 벚꽃길. 1930년대에 이장님이 벚나무를 심었다는 이 길은 겨울엔 늙은 나무들이 가는 세월을 한숨짓는 듯하지만, 매년 4월 초순이면 벚꽃이 지천으로 난장이었다. 그땐 늙은 나무들이 서로서로 손을 맞잡고 벚꽃 동굴을 십 리로 이루었는데, 꼬마는 이 길을 타박타박 걸어서 학교에 갔다. 벚꽃이 만개하면 온 천지가 솜이불처럼 포근했고, 십리 길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하얀 동굴로 변했다. 그러다가, 아주 짧은 시간이 흐르고는 그만 꽃이 지고 말았는데, 벚꽃이 비처럼 내렸고 눈처럼 날렸다. 누나들의 웃음소리가 꽃잎 뒤로 숨으면 꼬마는 길을 잃곤 했는데, 그럴 때면 꼬마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꼬마는 이때가 제일 좋았다. 어린 맘에 꽃이 진다는 의미를 알 리가 없었지만, 그냥 온통 꽃 세상이 좋았다. 여덟 살 꼬마는 그랬다. 몰라서 행복했다. 춘수는 여전히 꼬마 옆에 있었다. # 울지 마! 1년 후 꼬마는 이사를 갔다. 춘수는 이모 집에 남았다. 어린 춘수와 꼬마는 서툴게 이별했다. 나름, 아팠다. # 쌍계사 쌍계사 초입, 내 마음의 고향... 입구의 연로한 나무님들 아득한 전설을 이야기하고, 숲 속은 한낮인데 고요하다. 저 모과나무, 나를 기억할까? 저 침묵하는 바위, 나를 알까? 이십육 년 전. 열네 살 어린 꼬마, 두려움 가득 안고 이 자리에 섰다. 담배 피다 걸려서, 아버지한테 맞아 죽기 싫어서, 돼지 저금통을 들고 갈 데 없어 헤매다 무작정 여기로 왔다. 머뭇대는 자신에게 부처님이 불러서 온 거라고 최면을 걸고, 주지 스님에게 이놈 저놈 언어 폭행을 당하고, 보살님에게 밥 얻어먹으며 동정심으로 구타당하고, 마지막으로 끌려간 곳이 완전초보 스님과의 합방이었다. 불경도 녹음기로 외우고, 애인 사진 보여주며 자랑하고, 짤짤이 하자더니 꼬마 돈 다 털고... 다음 날 아침, 쫓겨나는 꼬마를 잡고 가짜스님은 최대한 엄숙하게 말했다. "물처럼 살아. 마주하는 어떤 것도 거부 말고 흘러흘러 끝내 바다로 가." 순진한 꼬마, 절세비급을 손에 쥐고 부르르 몸까지 떨며 속아버렸다. '이 경천동지할 심결을 익혀 나를 구하리...' 하산해서 집으로 돌아간 꼬마는 말 없는 아이가 되었다. 4년 후 가을, 소년은 또 한 번의 가출을 하고 이곳으로 왔다. 가짜스님은 파계했고, 아아, 소년은 춘수를 만났다. 춘수는 묵언 수행 중이었다. 춘수는 소년에게 말없이 두 손만 모았다. 다음 날 아침, 춘수는 가출소년의 손을 잡고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이번에도 춘수가 남고 소년이 떠났다. # 스스로 그러하다 삼십일 년이 흘렀다. 아주 가끔 춘수로부터 메일이 왔다. '스스로 그러하다는 자연처럼.' '여기 내가 있고 거기 네가 있다. 애쓰지 마라.' 춘수는 스님이 되고, 꼬마는 어설픈 오십 대가 되었다. 석문 앞 장승에게 합장하고 일주문을 지난다. 금강문의 좌우 인왕상은 변함이 없고, 천왕문의 사천왕 앞에서는 주눅이 든다. 부리부리한 눈빛에 거짓이 들키고, 손에 든 큰 칼에 위선이 베인다. 서둘러 대웅전으로 들어간다. 부처님은 아직도 못 버렸냐 안 버렸냐 웃기만 하고, 나는 절은 하지 않고 천장의 단청에 눈길을 준다. 절묘한 색의 배합에 질투하고, 옛 임들의 조화로움에 감탄을 하며 땡중을 기다린다. 땡중을 만나지 못한다. 암자에서 수행 중이라고 보살님이 전한다. 새벽 잠결에 빗소리를 듣는다. 마루에 나와 앉아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며, 저 찰나의 순간이 우리 인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스스로 그러하다는 자연처럼, 나 또한 그러해야지.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야지.' 내려오는 길에 개울가에 앉는다. 맑은 물을 손바닥 가득 퍼 올리다 먼 지리산 자락의 희미한 안개를 본다. 한참을 바라본다... -- 2012. 피러. ................................................................................... 바람이 분다 물결이 인다 찌 일곱 개 파도를 탄다 키 큰 나무 연초록 이파리 사이 반짝 햇살 비치고 살랑 바람 불고 자꾸만 꽃잎은 팔랑팔랑 떨어지는데 춘수와 꼬마는 깔깔대며 나풀거리며 나비가 되고 다람쥐가 되고... -- 2013 봄. 피러.
추억은 마주할수록 아름다운데
그 추억 속의 나는
몸을 웅크리고 눈을 질끈 감을만큼
어쩐지 어리석고, 치기 어린 모습이더군요
다만 신기한 것은
추억은 갈수록 쌓여가는 견고한 성처럼
더욱 살갑고 보다 애절한데
현실의 나는 그 추억 속의
어리석고 치기어린 모습보다도
한참 먼 곳으로 유배되어
덜컹덜컹 수레에 실려가는 느낌인 것 같아요.
지금의 나도
결국 누군가에겐
결코 잊지못해 해가 거듭할수록
더욱 미화되고 아련해지는 추억 속의 등장인물인데
내가 써내려가는 소설에서는
죽을 때까지 내 자신이 주인공일 수는 없나봐요.
여전히 나를 안타까워하고
추억은 더욱 더 환하게 불켜진
단단하기 그지없는 성이 될테니까요
얼굴은 멋있지 않지만 가슴속에 있는 감성이 아름다운 피러님!
사랑합니다!~~~~~~
댓글 우선 달구..
좀있다가 찬찬히 읽어 보겠습니다.....
특히 띄어쓰기......ㅋㅋㅋㅋ
또한 아끼려 애쓰고...
가끔,
그 인연에 힘들어 하기도 하지만...
**********
손가락 다섯개.
빌려 드리고 갑니다.
전 다섯개만 씁니다.
저도 술 깨면 기억을 해봐야지
흠 산천을 달리던 기억 퇴깽이 사냥하는 기억 뿐일텐디
반가운 마음에 빡빡이 머리를 툭 치면서
“야! 가래! 오랜만이다.”
가래를 하도 자주 뱉어 그 녀석의 별명은 “가래”다.
그 녀석은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만 띄우곤 조용히 옷을 입었다.
승복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 그 녀석을 만난 건 볼링장이었다.
머리인지 볼링 공인지 분간 하기 어려운 스님들 틈에서
프로 급 실력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돌파리 아닐까?
그 이후
4대강 사업을 반대 하는 모임에서 ,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 하는 모임에서
화면으로나마 그 녀석을 가끔 본다.
마음 속에서 “가래”가 아니라 “반대 스님”이란
별명을 하사했다.
글에 대한 댓글은 좀 더 음미한 후에...ㅎㅎ
동네친구 하나쯤 있었으면 싶기도 합니다
어릴때 뭐하고 놀았는지 .... 그흔한 구슬치기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그말씀이시죠?
예~~알겠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하지만 님께서 올리신 글에는 더한 애뜻함이 담겨있습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꾸욱~~
휴~~~한참 찾았습니다..^^
와~~우~~
선배님..오늘 따라 왜 이렇게 달라져보이는 이유가.. ^^
넘 멋져부려.. 용~~~^^
두번 정독 하였습니다
팔방미인 이십니다
너무너무 잘 읽고갑니다
띄어쓰기 못해서 댓글달기가
조심스럽네요~~~^♥^*
성장기입니까?
텨ㅡㅡ333==333333
어제를 회상케 하는 좋지 않은 이..^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장과 어휘들에 한참 머물다 갑니다.
글을 따라 꼬마 피터를 만났습니다.
더하고 뺄 것 없이 촘촘한 구성이
짧은 글이지만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시공간을 넘나 드는 흐름도 ...
그리고 읽는 이로 하여금 음미할 기회를 주는 여백도
감사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 드린다면
글과 얼굴이 매칭이 안되는군요.
19번 국도를 따라
산동 마을의 산수유에
화엄사의 홍매도 보러 가입시더.
그리고 원문의 쌍계사 십리 벚꽃 길도 유람 하입시더.
시간이 남으면 광양의 매화꽃도 봐야 되겠지요.
재첩 정식은 선배님이 사이소.
지는 닭회를 쏘겠습니다
봄 날이 오면은
아지랭이 19번 따라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하입시더.
옛추억에 공감하고
행복함을 느낍니다.
고맙습니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발견한 느낌이랄까?
주머니를 열어 한 개씩 꺼내봅니다.
평을 하기엔 제가 한참 부족하기에 관두렵니다.
글을 읽다 문득 떠오른 詩想 하나 얻었음에 고마움 남깁니다.
아련한 어린시절이 생각나네요.
감사드립니다......
글솜씨 또한 일품~
잘읽고 갑니다~^^
예사롭지 않은 피터님!
월척 새내기 이몸 추방은 처음 구경 합니다.
작년 이때쯤였는가 봅니다.
큰 수술후 남녘 여행을 10여일을 했지요.
노래로 만 듣던 화개장터 쌍계사 벗꽃길.....
참으로 인상에 남는 여행였지요.
그곳이 피터님의 산실 였군요.
가슴속 무언가 꿈틀대고 있는것이 나만의 느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좋은글 잘 담아 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