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면 벌써 입춘(立春). 하지만 아직도 날씨는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춥다. 나라 살림이 어려워서 그럴까. 올 겨울은 북서풍의 작은 발길질에도
마음은 이내 뭔가 송두리 채 얼어붙는 듯 춥게만 느껴진다.
그렇지만 분명 봄은 오고 있을 것이다. 향긋한 풀내음으로 새롭게 다듬어질
저수지들의 그윽한 모습을 상상하고 있노라면 어느 정도 이 추운 겨울도 참
아 낼 수 있을 듯 느껴진다. 그러기에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늘 포근한 생각
들로 채워지는 모양이다.
하지만 난 이번 봄을 기다리는 건 단지 그러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러니까... 지난 해 말. 유별스럽게 늦가을치곤 따뜻한 날이 계속 된 나머지
난 민물낚시를 초겨울까지 접지 못하고 있었다. 대개 그 시각이면 민물낚시는
접고 초겨울 감성돔낚시에 빠져들 시점인데, 워낙 날씨가 포근한 탓에 민물낚
시를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남창이었다. 그 당시 우린 비장의 소류지나 남모를 수로를 예리한 눈으로
더듬고 있는데 난데없이 남창에서 4짜 붕어들이 날잡아가며 가랑이를 있는 데로
다 벌리고 있다는 특급 첩보(?)를 지상파를 통해서 긴급하게 하달 받았었다.
남창이라는 지명도 예사롭진 않지만, 일단 그런 정보를 얻게 되면 낚시꾼들의 본
능상 그의 진위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우선 그곳으로 냅다 달려가 보는 게 무엇
보다 최우선시 한다. 우리 역시 거두절미하고 그 좁은 수로에서 민첩하게 몸을 뺀
다음 아랫도리에서 구슬 깨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빠르게 그곳으로 이동했었다.
접선 지는 온산 다리 밑 X지점.
하지만 그렇게 서둘러 그곳으로 갔건만, 어디서 뭘 들었는지 그곳은 이미 한다하는
꾼들로 꽉 채워져 있지 않는가! 하여간 낚시꾼들의 민첩성은... 우린 그저 멀뚱하게
내려다보며 다리 밑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어설픈 자리를 눈 저울질 하며 혀만 차야
했었다.
한 번 실망하는 게 생기면 실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는 것일까. 우리가 원하던
자리에 앉지 못한 실망감에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곳에 안 좋은 것만 자꾸 눈에
들어왔다. 이를테면 폐타이어가 물에 빠진 것이라든지 생활폐수와 같은 물색도 그렇
고 생명력이 없어 보이는 바닥의 온갖 쓰레기 등, 그것들을 보면서 이런 곳에서 더 낚
싯대를 담그고 있어야 하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 시작했었다.
날씨는 제법 포근했지만, 물속은 그렇지 못했는가. 다른 낚시꾼들도 이렇다 할 입질
은 받질 못하고 다만 근처 짱깨 집 배달을 나온 청년들의 오토바이 소리만 요란스러
웠었다. 우린 일단 그들에게 짬뽕을 시켜먹고 다시금 마음을 고쳐먹으려 했건만, 짬
뽕을 먹고 물가로 가니 더더욱 낚시할 마음이 생기질 안했다. 역시 낚시란 낚시꾼들
에게 있어서 물이 가장 중요한 모양이다. 물이 더러우면 모든 게 다 금방 시들해져버리니...
철수~! (이름 같네...^^*)
더 지체할 이유가 없다는 듯 우린 서둘러 그곳에서 철수해버렸다.
‘길이 아닌 곳은 가질 말 것이며 물이 아닌 곳엔 대를 담그지 말라’ (낚시복은 2장3절)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우린 다시금 진성 쪽 소류지를 향해 달렸다. 펄펄 끓인 인삼
물로 심장을 다져 놓았더라해도 겨울밤의 찬 기운은 쉽게 이길 순 없겠지만, 숨넘어
갈 듯 스멀거리는 붕어의 입질에는 찬 기운이 아니라 시베리아 만년빙산을 쪼개서 섞
어놓은 칼바람 속에서도 너끈히 견뎌내는 게 낚시꾼들이 아니던가!
그런데...
분명 있어야 할 찌가 안 보인다. 서둘러 각자 자리를 잡고 낚시 준비를 하려는데, 내
찌통에 내가 가장 아끼던 찌가 안 보이는 것이다. 낚시꾼이 아끼는 조방사우(釣房四
友)에는 우선 낚싯대가 있고 낚싯줄과 낚시 바늘 그리고 찌가 있는데, 그 중에서 찌
가 낚시꾼에게 주는 즐거움은 색(色). 그것도 보통으로 생긴 기생 년의 값싼 웃음이
아니라 은나라의 달기나 주나라의 포사 또는 오나라의 서시나 삼국시대의 초선 같은
한 나라를 들었다 놓았다 할 정도로 아름다운 색이 바로 찌가 주는 아름다움인 것이
다.
그런데 그렇게 고운 색 하나를 잃어버렸으니...
낚시를 준비하면서도 난 지난 내 행적을 곰곰이 되짚어 봤다. 창녕의 S소류지 T소류
지 그리고 한림 근처 수로 등,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분명 내가 그 찌를 잃어버
린 곳이 생각나질 안는다. 어디에 그 고운 자태를 눕혀놓고 내 홀로 나 몰라라 떠나왔
을꼬? 이런 매정한 일이 어디에 있더란 말인고...!!
경기도 그 한다하는 찌 선방의 명인이 내개 직접 만들어 준 천하의 명기 중 명기가 아
니었던가! 그런 찌를 정신머리 없게 놓고 오다니... 난 더없이 비통한 마음이 들었
다. 언젠가 물가에 뒷받침대를 3개를 고스란히 꼽아두고 온 경험은 있으나 그건 아까
울 게 별로 없었지만, 그 찌를 잃어버리곤 참으로 참담한 생각마저 들었었다.
홀로 두고 떠나가는 날 얼마나 원망을 했을지... 말 못하는 그 찌의 심정을 생각하니
더욱 울꺽거렸다. 사나이 정에 약한 건 이미 세상이 다 아는 사실. 내가 그런다고 뭐
가 크게 흉이 될 것이겠냐 만, 야심한 시각에 물가에 앉아 비 맞은 스님처럼 혼자서
오래 동안 중얼거리고 있었으니, 혹시 지나가던 4짜 붕어가 그러는 날 봤더라면 뭔
가 나사가 한두 개 쯤 빠진 낚시꾼이라고 어설프게 봤을지도 모를 일이다.
남창~~! 딱!!! (이마치는 소리)
좀 길어서 1편은 여기서 맺습니다. 죄송...^^*
* 월척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2-2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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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재미,위트,그리고 상식이 섞인 조행기 잘 읽었습니다.
글을 흐르는 물처럼 잘 쓰십니다.
부럽고요^^ 다음 2편도 기다립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남창이라하면 울산근교인데.......
덕신다리밑 하니까 아~그기에,
진하에있는 백포낚시에서 올린화보조행기를 보시고 갔는갑네요.
저도 몇년전에 뻔질나게 다닌곳입니다.
붕어자원은 많은데 수질이 좀그렇죠.
조행기는 감칠맛나게 잘보고 갑니다.
2편도 기대됩니다.
청버들님!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