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인 정읍으로 갔다.
익히 알고 있겠으나 정읍엔 내장산이 있고 내장산엔 고운 가을단풍이
있다. 또한 소백의 기상이 잠시 머뭇거리는 형세의 모악산기슭 아래로는
국내 유일의 지평선 평야를 자랑하는 만경벌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기도
하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어 외줄기 물길을 이루는 법. 하지만 들이 넓으면 숱한
물줄기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 드넓은
들판으로 동진강과 만경강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흐르면서 그것들에 지류를
맞대고 있는 숱한 수로들은 물경 삼백여리에 손바닥 잔금처럼 펼쳐져 있다.
호남의 낚시꾼들은 그 속에서 꿈을 꾼다.
특별하게 이름 있는 자리도 그다지 없다. 눈가는 곳에 그저 대충 줄 잎을
베어내고 이름 모를 잡초를 깔고 앉아 낚싯대를 드리워 놓으면 이내 눈에
번쩍 뜨이는 찌 오름을 맛 볼 수 있을 만큼 그곳 붕어들은 바늘 무서운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그야말로 천혜의 수로 낚시터라 할 만하다.
그런데...
최근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곳엔 들추면 들출수록 크고 작은 저수지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곳곳에 산재해 있다는데 대물낚시 잣대로 들여다보면 그곳
저수지 대부분은 그야말로 손도 안 덴 처녀지라는 것. 그도 그럴 것이 저수지로
조성 되어진 이후로 여태껏 한 번도 마르지 않은 곳이 많은데, 수초. 이를테면 마름
이나 줄 같은 게 빼곡하게 자라 있어 아예 낚시를 안 하고 있는 곳이 허다하다.
대물낚시를 알게 된 뒤로 그런 저수지들이 내 눈엔 그야말로 보물창고 같이 새롭게
보이고 있는 것이다. 굳이 뭘 안 먹더라도 잔뜩 배가 부를 판이다.
“그랑께... 시방 여그스 거시기 허긋다 이말가?”
마을 위에 있는 저수지부터 찾았다. 무넘기 근처 콩밭 옆으론 뗏장 수초와 줄 풀이 절
묘하게 드리워져 있어 낚시하기엔 더없이 좋아 보인다. 일손을 놓은 마을 선배들은
그곳에서 낚싯대를 드리워 놓고 있었다.
“참말로 요상시럽네...??”
줄 풀로 가득한 상류 새물이 들어오는 버드나무 아래에서 수초 작업을 하고 있는 내
게 다가온 선배들은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나와 그곳 분위기를 번갈아
둘러본다. ‘나도 콩밭 근처에서 하고 싶긴 해’ 라고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 왔으
나 마른침과 함께 애써 삼켜버린다.
“아~! 본시 대물낚시라는 게 다 그려... 이런 데가 푠틍겨~!”
“대...대물낚시...??!!”
선배들은 듣고 보도 못한 소리라며 괴이한 듯 서로를 바라봤다. 모기들 성화를 견뎌
가며 홀로 상류에 앉아 있는 다는 게 얼마나 으스스한 일이던가! 그 저수지엔 아이들
이 여럿 빠져 죽었다. 특히 겨울에 얼음을 지치다가... 저수지 내막을 너무 알고 있는
것도 좋은 건 아니다. 식자우환이라고 했다.
“분명 이 저수지에 대물붕어가 있을 거야!”
“아~! 있쥐...있구말구... 며칠 전에 내두 28cm 되능거 한 마리 혔잔여~~!”
셋 중에 제일 키가 작은 임선배가 다소 자랑스럽다는 듯 대뜸 이마를 쓸어내며 말했
다.
“그 정도는... 내가 대물이라는 건 적어도 사십은 넘어야...”
“익~??!! 사십...!!”
“그리 킁 건 없실그여... 여그가 무슨 운암댐잉가!!”
“이 사람 뭔 소릴 하능겨...시방! 용담댐도 그런 건 없실 텐디...”
사십이라는 말에 선배들도 귀가 번쩍 뜨이는 모양이었다. 이내 이구동성으로 아예 손
을 내저으며 있을 수 없는 일로 단정해 버렸다.
“그라고... 함 생각혀 보드라구! 사십 정두 되는 큰 붕애가 워떻게 이런 자리까정 오긋
스... 설사 있드라두 우리가 앉은 자리서 잡힐 그그먼... 만약 있다면 말이여...”
선배들은 내 생각이 어림도 없다는 듯 서로를 바라보며 키득거렸다. 하긴 겨우 두 뺨
이 넘는 수심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으니 그들 눈엔 도통 내가 낚시를 모르는 것
으로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들에겐 기록에 대한 도전이라던 지 목표를 향한 집념 같은 건 첨부터 없다. 그저 농
사철에는 흙탕물을 뒤집어 씌고서 논두렁이며 밭이랑을 헤집고 다니다가 이렇듯 한
가로운 시절이 되면 둘 셋 어울려 물가에 앉아서 잔손풀이로도 얼마든지 즐거움을 만
끽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초부터 대물이라는 말은 그들에게 있어 참으로 낫선 말이
다.
밤 11시
선배들은 걱정스럽다는 말을 뒤로하고 다 마을로 내려갔다. 둑 아래로 마을 입구 가
로등은 훤하게 보이지만 혼자 있다는 게 여간 퀭한 게 아녔다. 저수지 근처로도 용식
이내 기철이내 집은 보이긴 한데 역시 물가란 또 다른 세상인 것이다. 자꾸 물에 빠
져 죽은 아이들 생각이 났다.
이따금 잡초 사이를 뒤지고 있는 들쥐들 소리에도 신경이 날카롭게 반응한다.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는 저수지로 갈 걸....’
밤 2시
어쩔 수 없이 철수를 해야 했다. 분명 조금만 더 참으면 대물들이 움직일 시간인데 더
는 견딜 수 없었다. 괴이한 생각이 들자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낳고 급기야 동네로
들어오는 언덕너머 공동묘지에서 처녀귀신을 봤다는 소문이며 도깨비한테 홀려 마
을 뒷산 아름드리 소나무 밑에서 혼절한 사람, 밀밭 속에 숨어 있다가 길가는 어린아
이 잡아다 술 담가 먹었다는 옛날 문둥병 이야기 등 온갖 기억들이 어디에 숨어 있었
던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이거이... 참으로 어렵구나... 나이 50줄이 가까워져도 그 옛날 어린 시절 기억으로
이렇듯 몸서릴 칠 줄이야...’
난 철수를 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한 번 겁이 나자 그 덥던 날씨마저 사늘한 한기
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그나 그 많은 저수지들은 어찌 이런 자세로 다 둘러 볼 수 있을까...?’
둑 아래에서 다시금 뒤돌아보면서 난 스스로 부끄러워했다.
“에효~~! 물건 키우는 약은 그렇다 치고 어디 간뎅이 키우는 약은 없나유?”
쩝~!
감사합니다.
* 월척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6-26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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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의 조행기를 보고 감탄하여 찬사를 연발했는데 오늘 다시 접하니 역시나 훌륭한 조행기에 반가울 따름입니다.
간뎅이 키우는 약! 구하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어려우나 있습니다.
뭔고 하니......
잦은 출조입니다. 인지(?)는 두려움을 키우지만 경험은 담력을 키운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실전경험입니다.
무더운 여름! 건낚하십시요.
머리를 비우러 가는 낚시가 망상에 사로 잡히면 ...어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