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이 지난 일이군요.
고등학교 동기인 東이가 군에 입대한다고 하더군요.
친구들 중 제일 먼저 입대 통지서를 받았더랬습니다.
무엇을 해 주긴 해 주어야 하는데, 가진 것은 없고……
고민고민하다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 낚시를 가기로 하였습니다.
잘 어울리는 친구 두 명과 함께 네명이 낚시를 가게 되었습니다.
어머님께 부탁드려 매운탕거리를 준비했죠.
고기만 잡으면, 씻어서 넣고 끓이면 바로 먹을 수 있도록 냄비에 재료를 넣어서 갔습니다.
어머님의 손맛은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였었죠.
매번 아버님께서 잡아 오시는 고기로 매운탕,어탕, 쪼림, 찜으로 바꾸어 가며
요리를 하셨는데 그 맛에 길들여져 지금도 음식점에서 파는 민물 요리는 맛이 없어서
사먹질 않고 있습니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 붕어를 못잡으면 어떻게 하냐구요?
비장의 자신만만한 포인트가 있었죠.
논공 쪽, 낙동강과 만나는 합수머리, 비 온 뒤 2~3일 지나 흙탕물 약간 가라 앉으면
관고기는 보장된 포인트였습니다.
아부지와 함께 가서 허탕친 적 한 번 없었던 곳이었죠.
아버님께 자초지종 말씀 드리고 낚시대를 빌렸습니다.
당시 낚시대는 대나무 꽂기식, 거의 두 칸대 안팎 위주였고 별다른 테크닉은 필요 없었습니다.
낚시대만 던질 줄 알고, 찌가 솟거나 끌고가면 챔질만 하면 되는 정말 쉬운 낚시였습니다.
그리고 찌는 우끼라고 불렸는데 플라스틱 대롱에 까망 빨강 파랑으로 칠한
지금과는 비교도 안되는 허접한 것이었고, 찌맞춤도 필요 없었죠.
미끼는 동네에서 잡은 지렁이, 삶은 살짝 불린 보리쌀이 전부였었습니다.
친구들은 한 대 씩, 나는 두 대를 펴고 낚시를 시작했습니다.
대를 드리우자 마자,
찌가 춤을 추고 6~7치 전후의 붕어가 연신 앙탈을 하며 올라 옵니다.
친구들은 거의 괴성에 가까운 탄성을 지릅니다.
"와 크다 !"
"또 나온다 !"
"주긴다, 주겨……ㅎㅎㅎㅎㅎ 컥…
뒤로 넘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나 말고는 친구들은 처음 낚시하였던 터라 완전히 '뿅'가고 말았죠.
12시가 넘어서자 입질이 뜸해 지고, 허기가 몰려 왔습니다.
"야 ! 배고파 죽겠다. 매운탕 끓이가 밥 묵자."
씨알 좋은 놈만을 선별해서 매운탕을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와~ 냄새 끝내준다."
한 숟가락씩 매운탕 국물을 뜨더니……
네 명이 먹기에 충분한 양이었는데
며칠 굶은 것처럼 쟁탈전을 벌이 듯 먹기 시작 했습니다.
"아 ! 뜨거, ^^ㅣ바 입천장 딨다(데었다)"
"얌마 ! 쫌 천천히 무라."
순식간에 매운탕은 바닥이 나고 말았고,
친구들은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의 매운탕을 맛 보았습니다.
며칠 뒤……
친구 東이는 입영열차를 탔습니다.
자유게시판으로 옮겨
"친구가 남긴 마지막 선물"로 지금 바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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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친구를 보낸 맘 위로를 드립니다.
언제 저랑 매운탕 한그릇 하셔야죠?
수고하셨습니다...^^
ㅎㅎ 잘읽고 갑니다~
근데 저기가 어디래요?
고맙습니다.
검색해 보니 논공 금포천으로 나오네요.
그 당시는 어딜 가던지 마릿수 조황이었죠.
참붕어대물님,저 혼자 웃고 있습니다.
민물이 최고죠..
야들야들.. 매콤달콤..
세월이 흐른뒤론
떠오르는 추억이 감미롭습니다
소중한추억 같이 맛보고갑니다 꾹~
마치 조각보자기를 맞추는것처럼...
제 글 중 자유게시판(그때 그시절)에 "입영열차의 추억"이 있습니다.
시간 나시면 찾아보심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도장 꾹~~>..씨-__^익
내가대물해서내낚싯대가끔드리면
이놈아니는찌맞춤도할줄모리나!
하심니다ㅎ
개무식하게무겁게쓰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