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처남에게 부탁했던 두 사람의 현재 위치를 문자로 전해 받았다.
'김 소희 서울삼성병원 1315호 입원 중, 암 말기 위독. 박 미숙 광주 북구 서림초교 후문 서림분식 운영.’
처음 문자를 읽었을 때, 정신이 몽롱했다. 소희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 말고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의 맑고 투명하던 그 얼굴이 자꾸만 머릿속에 그려졌다.
서림초교는 바로 근처였지만 그곳보다 먼저 서울로 가자고 우리님에게 부탁했다.
병원 입구 쪽에 도착해서 꽃다발과 케이크를 샀다. 제과점 점원이 초를 몇 개 줄 거냐고 묻기에 마흔네 살이라고 했다.
켜지도 않을 촛불이었지만 나는 초를 받았다. 나를 위해 케이크에 촛불을 밝히던 그녀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오전 열한시경 나는 삼성서울병원 병실 앞에 장미 꽃다발과 작은 케이크하나를 들고 서 있었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 과거와 만나야 하는 것이 내게는 한없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서 있노라니 병실 문이 열리며, 간병인으로 보이는 한 여인이 병실 문을 열고 나왔다.
내가 병문안을 온 사람으로 보였던지 그 여인이 말을 건넸다.
“지금 잠들었는데, 병문안 오신 건가요.”
“예.”
“처음 뵙는 분인데 가족 되시나요?”
그녀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될지 잠시 망설여졌다.
“오래된 친구입니다. 안에 환자 말고는 아무도 없나요?”
나는 혹시 그녀의 가족이 병실에 있을까봐 걱정이 되었다.
“환자분 혼자 계세요.”
그녀가 난처한 듯 나를 바라보더니 내게 부탁을 했다.
“혹시 바쁘지 않으시면 환자분이 깨어나실 때까지 곁에 좀 계셔 주실 수 있을까요?
아래 손님이 와 있어 잠시 자리를 비워야 될 것 같은데…….”
“예. 제가 있을게요.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다행이네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을 거예요.”
간병인 아주머니는 내게 인사를 하고는 종종걸음으로 복도를 걸어갔다.
나는 조심스럽게 병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반듯하게 누워있는 그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항암제 투입으로 머리가 빠져서 인지 머리엔 아이보리색 하얀 모자를 쓰고 있었고 너무나 야워 버린 그 얼굴은
내가 기억하고 있던 소희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 내 눈 앞에 누워있는 여인이 동명이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그녀의 모습과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소희의 모습은 너무 다른 이질감이 느껴졌다.
나는 침상 곁에 놓인 보조침대에 꽃다발과 케이크를 내려놓고 병실을 둘러보았다.
꽤 비싸다고 알려진 병원의 일 인실에 입원해 있는 것으로 보아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산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병실은 너무 깨끗했다. 누군가 곁에 있던 흔적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단촐하고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다시 침상으로 다가가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처음과는 달리 야위고 척박해진 얼굴일지라도 내 기억 속의 얼굴이 아직 남아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노라니 가슴이 먹먹해 졌다.
한때 그렇게 빛나고 싱그럽던 그녀가 이렇게 시든 꽃처럼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보조침상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빌딩 숲을 배경으로 파란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그녀가 있어 행복했던 십대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 가슴 두근거림과 열병처럼 일던 미열, 감미롭던 행복감을 떠올려 보노라니 나도 모를게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졌지만,
눈망울이 촉촉이 젖어 있었다. 내 눈을 가득 채우고 막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훔치려 손을 눈에다 가져다 대었을 때,
그녀의 나즈막한 차분한 음성이 들려왔다.
“제가 죽은 건가요? 과거의 사람이 내 앞에 와 있네요.”
나는 눈물을 훔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많은 것이 변했더라도 그녀의 그 맑던 눈빛만은 그대로 였다.
그런 그녀의 눈빛과 마주치자 다시 눈물이 솟구쳐 나와 고개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눈물을 참아내려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다시 그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어떻게 변했을까?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궁금했었는데....... 멋진 중년 신사가 되셨네요.”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말을 꺼내면 울음이 터져 버릴 것 같아 입을 열수가 없었다.
나는 어금니를 앙당 물고 눈에 잔뜩 힘을 주며 눈물을 참아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꼭 한번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죽기 전에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정말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네요.”
“밉지 않나요? 나를 미워하지 않았어요?......”
나는 다시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어금니를 물고 겨우 눈물을 참아냈다.
그녀는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그렇게 떠나버린 사람이 미웠어요.”
“날 용서해줘요……. 미안해요……. 너무 미안해요.”
“당신이 너무 힘들어 할까봐, 너무 무거운 짐을 지고 살게 될까봐 걱정했어요.”
나는 그녀의 침상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날 용서해 줘요.”
나는 터져 나오는 눈물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녀의 힘겨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이 내게 지은 죄가 없어요. 있더라도 이렇게 다시 찾아와 준 것으로 모두 용서 할게요. 내겐 다 아름다운 추억......”
그녀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질 않았다.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마주친 그녀의 눈에서는 공포가 가득했고 얼굴을 일그러지고 온몸은 고통에 오그라져 있었다.
그녀는 극심한 고통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내부로부터 비어져 나오는 고통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려…….줘요. 살려줘요......”
나는 침상머리맡에 있는 빨간색 벨을 누르고 병실 밖으로 튀어나와 눈에 보이는 간호사를 큰 소리로 불렀다.
놀란 간호사가 종종걸음으로 달려오고 내 고함 소리를 들은 몇 명의 간호사가 뒤따라 달려왔다.
병실로 함께 들어온 간호사가 급히 그녀의 팔에 주사제를 주입했다.
고통에 일그러져있던 그녀의 얼굴과 몸이 서서히 풀리며 그녀는 다시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나는 병실을 나서는 간호사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상태가 어떤가요?”
간호사가 나를 힐끔 올려다보더니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걸로 겨우 버텨내고 있어요.”
나는 그 주사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진통제, 아니 마약이라고 보면 될 거예요.”
“희망이 없는 겁니까?”
그녀가 안타깝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희망이요? 아마 본인은 죽는 게 희망일 거예요.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데…….
가족 분되시나요? 환자 가족분이 찾아오신 것은 처음인 것 같아서.”
그녀는 내게 목례를 하더니 복도를 걸어갔다. 나는 다시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잠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고통이 얼마나 심했던지 감겨진 눈에는 눈물이 배어 있었다.
나는 화장지를 뽑아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왜 그녀가 가족조차 없는 외로움 삶을 살았는지 궁금했다.
그녀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해 보았지만 지금 내가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병실 문에 열리며 간병인 아주머니가 병실로 들어왔다. 그녀가 다시 깨어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아주머니 이제 가야겠네요.”
“예. 그러세요.”
나는 아주머니에게 내 명함을 건네주었다.
“깨어나면 건네주세요. 전화 기다린다고 전해 주세요.”
나는 병실을 빠져 나오려다 걸음을 멈췄다.
“아주머니, 혹시 환자분 가족관계를 아시나요?”
“몰라요. 친구들은 몇 분 오시는데 가족 분들은 아무도 오지 않네요. 결혼도 하지 않았다고 하데요. 부모님도 일찍 돌아가시고…….
가까운 친척이 없는가 봐요.”
나는 지갑을 꺼내 수표 몇 장을 꺼내 아주머니에게 건네주었다.
“환자분 잘 좀 부탁드립니다.”
간병인 아주머니가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뭘 이런 걸…….”
수표의 금액을 살펴보던 그녀의 두 눈이 크게 치켜떠졌다.
“혹시 환자분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제 명함 전화번호로 꼭 연락 좀 해주세요.”
나는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건네고 병실을 빠져 나왔다.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우리님이 내 어두운 얼굴을 보더니 물었다.
“왜 온 게 후회돼? 안에서 무슨 일 있었어?”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광주로 가시게요.”
우리님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운전을 했다. 나도 소희를 만난 그 감정에서 빠져 나오지 못해 우울했다.
정안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처음으로 우리님이 입을 열었다.
“뭐라도 좀 먹어야 되지 않을까?”
“우리님 뭐라도 좀 드세요. 저는 입맛이 없네요.”
“나도 생각 없어.”
우리님은 내가 밥을 먹지 않겠다고 하자 다시 차에 시동을 걸었다.
“우리님 그러지 말고 뭐 좀 드세요. 잠시 혼자 있고 싶어서 그래요. 저 차에 있을 테니 다녀오세요.
잠시 혼자 생각 좀 정리하고 싶어요.”
내 부탁에 우리님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차에서 내려 휴게소 안으로 들어갔다.
머릿속에 자꾸만 공포에 질린 그녀의 눈빛이 떠오르고 고통스럽게 비어져 나오던 살려달라던 그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죽음의 공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것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극한 통증의 고통 속에서도 삶을 끊어버릴 수 없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죽음의 공포를 봐버린 것이다.
내게 그 죽음의 공포가 다가올 시간이 불과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두렵게 느껴졌다.
죽음이란 이유가 어떠하던, 상황이 어떠하던 두려운 것이었다.
식사를 마친 것인지 우리님이 내게 줄 호두과자와 맥반석 구이 오징어를 챙겨들고 돌아왔다.
“일단 요기 좀 해. 기분은 알겠는데 안 들어가더라도 억지로라도 좀 먹어. 먹어야 힘도 쓰고, 머리도 쓰는 거야.”
나는 우리님 말대로 호두과자를 먹었다. 입이 퍽퍽해서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억지로 입안에 집어넣고는 몇 번 오물거리다
음료수와 함께 삼켰다. 몇 개의 호두과자를 다 먹고 나서 목이 메여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자꾸만 죽음의 공포 속에 놓여있는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이 얼마나 큰 공포를 느끼고 있을지 생각하니 아무것도 목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문득 아내와 애들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굶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의 공포와 배고픔에 젖어 있는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려 졌다. 나는 억지로 삼키려던 호두과자를 결국 삼키지 못하고 뱉어냈다.
운전을 하며 이런 내 모습을 바라보던 우리님의 침울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자네 그런 모습을 보면 내가 많이 힘들어. 자네를 도와주고 싶은데……. 내 능력이 이것밖에 안되는가? 하는 회의가 들어.”
“우리님 고마워요. 만약 제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우리님이 제 가족들을 잘 돌봐주세요.”
우리님은 긴 한숨을 내품었다.
“자네 정말 어젯밤 말한 대로 할 생각인가? 정말 생목숨을 끊을 생각이야?”
“다른 방법이 없다면 그렇게 해야 갰지요. 지금 상황이라면 우리님은 어떻게 하셨을 것 같아요.
혁수와 혜린이가 이렇게 잡혀 있다면 우리님이 죽지 않으면 그 애들이 죽는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요?”
우리님은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겨 한동안 말이 없었다.
“우리님 죽는다는 건 어떤 거예요? 많이 고통스러운가요?”
“글쎄. 갑자기 궁금하군. 그때 내가 어떤 상태에서 발견된 건가? 자네가 목을 맨 나를 발견하고 구해 줬을 때 내가 정확히 어떤 상태였어?”
“숨이 완전히 멎어 있었어요. 몸도 축 처져 있고, 김 선생님이 심폐소생술을 알고 있었던지 인공호흡을 했어요.
몇 번 호흡을 불어 넣자 숨이 다시 터지며 살아나더군요. 아마 숨이 막 넘어간 순간이었던가 봐요.”
“나는 지금껏 막연히 목매단 나를 자네가 발견하고 구해낸 걸로만 생각하고 있었네. 근데 숨이 끊어졌었다.
그때 내가 죽었다 살아난 것이 맞는다면 죽는다는 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아무것도 없어. 아무 기억도……. 고통도…….
그냥 내가 사라졌다 다시 깨어난 느낌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
우리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 위안이 되었다.
“그때 왜 목을 매신 거예요.”
“내가 왜 죽겠다는 자네를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하는지 아나? 살아있는 가족들이 내 곁을 떠났다는 사실만으로 죽음을 결심했던 나네.
하물며 가족들이 모두 죽는 다면 견딜 수가 없겠지. 죽는 건 그리 크게 고통스럽지는 않아. 살아간다는 게 고통스러운 것이지.
이 년 전 집사람이 병으로 죽어갈 때 그렇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내 고통이 더 큰 것이었어.
집사람이 죽고 나서 그 끔찍한 고통 속에 삶을 계속 살아가야 하는 내가 더 힘든 거지.”
우리님의 아내는 소희처럼 암으로 죽어갔다.
그 시절 우리님의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곁에서 지켜봤던 나로서는 그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집사람이 고통에 몸부림칠 때 자네가 원망스럽더군. 그때 그냥 그렇게 죽도록 날 내버려 뒀다면 이렇게 큰 고통은 겪지 않았을 텐데.
그때 죽었으면 이런 끔찍한 고통은 없었을 텐데 하고 말이야. 그러다가 문득 자네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더군.
집사람이 이렇게 고통스러워 할 때 내가 곁에 있어줄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는.”
“우리님 저도 이번 일을 겪으면서 김선생님을 많이 원망해요. 아버지라고 해야 하는데 자꾸 김선생님이라고 말하게 되네요.
아버지를 많이 원망해요. 그냥 그렇게 살게 두지, 아무것도 지킬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삶을 살게 그렇게 두지.
왜? 나란 인간에게 뭐 볼 것이 있다고 그런 정을 주셨을까요? 그냥 그렇게 살게 내버려 두지.”
“몬테 안에 담긴 착한 마음을 보셨던 거지. 내가 지난번에 한번 말한 것 같은데. 사람의 근본은 쉬이 바뀌지 않는다고.
지금 자네 모습을 보면 김선생님이 보신 눈이 맞았다는 생각이 드네.”
우리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 눈을 감고 있노라니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한여름 물가가 떠올려 졌다.
지금의 긴박한 상황으론 밤낚시를 간다는 것이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내 삶을 접어야 된다면 마지막으로 한번 밤낚시를 가고 싶었다.
하늘의 쏟아질듯 가득한 별과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소쩍새와 귀신새 울음소리, 그리고 고즈넉한 물가에 초롱이 빛나는 케미불빛을 바라보며
내가 살아온 삶과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우리님 오늘밤 동출 한번 해주실래요?”
우리님이 나를 바라보며 의미를 알 수 없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세. 어디로 갈까?”
“둘이 늘 가던 그곳이요.”
“좋아 그리 가세.”
“우리님 제가 붕어가 되어버린 느낌 이예요. 그것도 굶주린 붕어. 너무 배가 고파서 미낀 줄 알면서도 그걸 먹을 수밖에 없는 굶주린 붕어요.
놈은 보이지도 않는 먼 거리 어둠속에 숨어 나를 노리는 게 느껴지는데, 내 움직임을 찌를 통해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는 게 느껴지는데
미끼를 물수밖에 없는 굶주린 붕어요. 놈이 방생을 아는 낚시인이길 기원해 볼 수밖에는 없네요.
나를 잡았으니, 가족들은 살려 보내는 최소한의 도리를 아는 인간이길 바랄 수밖에는 없네요.”
“너무 비관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게.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
우리님은 내게 희망을 주려했지만 내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는 없었다.
복수의 대상인 내가 죽고 나면 범인이 가족들을 무사히 풀어줄 것이란 희망을 가질 수밖에는 없었다.
오후 네시경 우리는 광주 서림초등학교 앞에 도착했다. 그곳에 도착하자 나는 트렁크를 열어 미리 준비해간 가방을 꺼내들고
분식점 안으로 들어갔다. 테이블이 고작 네 개정도인 작고 허름한 분식점이었다.
아직 방학 중 여서 인지, 아니면 시간이 애매한 시간여서 그런지 분식점 안은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방에서 쉬고 있던 40대 초반의 여인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나왔다.
그녀의 얼굴을 정확히 알아 볼 수가 없었다. 내 머릿속에 그녀의 미소가 늘 기억되어 있었지만 그것은 하나의 이미지와 같은 것일뿐,
구체적으로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나이와 온화한 표정에서 그녀일 거라는 추측이 들 뿐이었다.
“뭘 드릴까요?”
그녀의 음색은 부드럽고 차분했다.
“떡라면 하나만 해주실래요.”
나는 구두닦이 시절 유난히 좋아했던 떡라면을 주문했다. 그곳은 어린시설 추억속의 분식점 같은 분위기가 풍겨졌다.
그녀는 등을 돌린 채 가스 불을 켜고 라면 물을 올리고 있었다. 그녀에게 말을 꺼내야 하는데 어떻게 꺼내야 될지 망설여졌다.
그때 문을 열고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애가 가방을 매고 들어왔다.
“엄마 학원 끝났어.”
아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애정이 잔득 배어 있었다.
“그러면 집으로 가지. 왜 이곳으로 와?”
“엄마 보고 갈려고.”
“손님 계시니까? 집에 가 있어. 문 빨리 닫고 갈게.”
“그냥 여기서 저녁 먹으면 안 돼? 라면 먹고 싶은데.”
“집에 가 있어. 엄마가 가서 맛있는 저녁 만들어 줄게. 우리 예쁜 딸은 엄마가 만들어 주는 맛있는 저녁 먹어야지.”
“라면 먹고 싶은데…….”
“손님 계시니까? 빨리 가 있어.”
여자애는 투덜거리며 분식점을 나갔다. 라면이 다 된 것인지 그녀가 라면을 가지고 왔다.
“안집은 따로 있나 봐요.”
“소란스럽게 해서 죄송해요.”
그녀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요. 그런데 왜 라면을 못 먹게 하세요. 라면을 파시면서.”
나는 웃으며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하나밖에 없는 딸인데 여기서 분식 같은 것 먹이고 싶지 않아요. 여기서 파는 밥말이고 따뜻한 밥을 해서 먹이고 싶어요.”
그녀의 대답에서 나는 그녀가 10년 전의 여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말을 마치고 돌아서려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아주머니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무슨 이야기요?”
그녀가 경계심을 갖는 듯 했다. 하지만 그녀의 경계심을 풀게 할 만한 마땅한 핑계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그녀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꺼내지 못하게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망설이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던 그녀가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말씀하세요.”
그녀가 내 말을 듣기 위해 자리에 앉자 자신감이 생겨났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아무도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없네요.”
“라면 식으니 드시면서 말씀하세요.”
나는 그녀의 경계심을 풀어주기 위해 라면 한 젓가락을 입에 넣었다. 라면을 씹어 겨우 목으로 넘기고는 젓가락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내 모습에서 무엇을 느낀 것인지 그녀는 애잔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할 이야기가 있으면 하세요. 다 들어드릴게요.”
“지금 제가 너무 힘든 상황이라…….”
“꼭 죽으러 가시는 분 같은 느낌이 들어서 자리에 앉은 거예요.”
나는 그녀의 말에 흠칫 놀랬다. 내 놀라는 표정을 보던 그녀가 다시 따뜻한 음성으로 내게 말했다.
“어떤 이야 기던 가슴 속에 맺힌 이야기 다 하세요. 제가 다 들어드릴게요.”
“다 말해버리고 나면 가슴이 조금 가벼워질까요?”
“가벼워 질 거예요. 저도 가슴속에 무거운 짐을 품고 있던 때가 있었어요.”
나는 그녀의 말에서 무거운 짐이 내가 지은 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고아로 살아야 하는 운명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원래부터 악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
탓이었던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생각하기도 힘든 죄를 저지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구렁텅이에서 저를 구해준 사람이 있습니다. 저에게 가족의 사랑이 무엇인지 일깨워준 분이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보여주신 분이 있습니다.”
“누군지 몰라도 고마우신 분이네요.”
“미소를 보았습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에게 보내는 엄마의 미소를 보았습니다.”
“그분이 여자 분이 셨나 보네요. 엄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분은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으며 겁탈을 당하면서도 아이에게 그 미소를 보냈습니다.”
그녀는 그때서야 내가 말하는 사람이 자신이란 걸 깨달은 것인지 온 몸이 굳어졌다.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절 용서해 주세요.”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나를 부축해서 일으켜 세웠다.
“어서 일어나세요.”
나는 그녀가 이끄는 대로 다시 의자에 앉았다.
“절 용서해 주세요. 제가 짐승 같은 짓을 저질렀지만 절 용서해 주세요. 내가 당신의 삶을 망가뜨려 버린 걸 용서해 주세요.
당신은 저를 구원해주신 분입니다.”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내 말을 듣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나에 대한 증오나 분노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나를 애잔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구원자가 아니라 아저씨가 제 구원자입니다.”
나는 그녀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내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을 보던 그녀가 차분히 이야기를 계속했다.
“삶이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닌가 봐요. 그쪽 분은 제 삶을 망가뜨렸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제 생명을 구해주신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때 애 아빠가 나와 아리를 버리고 떠났어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죠.
도저히 혼자서 아리를 키우며 살 자신이 없었어요. 아리를 혼자 두고 도저히 죽을 수가 없을 것 같아 아리를 데리고 죽으려고 했어요.
그때 아저씨가 나를 그렇게 할 때, 아리를 보며 살아야 갰다는 생각을 했어요. 살아서 어떻게든 아리를 키워야 갰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든 살아서 아리를......”
그녀는 말을 마무리 짖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아리가 저렇게 예쁘게 컸어요.”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행복하시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세상에 가족 이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을까요? 그걸 저는 지금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그녀의 말에 갑자기 어린 준구와 준식의 얼굴이 떠오르면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내 생명과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라도 그들을 무사히 구해내고 그들이 장성할 때까지 곁에서 지켜 줄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내 영원을 팔아서라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p.s 휴가를 쪼개서 쓰는 바람에 오늘에서야 글을 썻네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퇴근도 못하고 이 시간까지 글 쓰고 있네요.
힘좀 내게 댓글하고 추천좀 빵빵이 넣어주세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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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고 갑니다.
휴가잘보내셨는지여
글이 오랜만에 올라왔네여
기다리는시간도..참좋았읍니다
잘 보았습니다
내일 또 보아요^^
감사합니다..
너무 잼나네요~감사합니다
다음 전개가 기대됩니다...
잘보고있습니다 ..^^
다음글도 부탁드려요...
매일 몰래 보다가
흔적 납긴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음편이 기대됩니다
추천꾹~~
다음편 기대 됩니다..
수고하신다는 말만 할수 박에 없어 죄송..
근데 너무 쉽게 용서가 되는데요
첫번째는 필자의 의도와 의중이 우리나라사람의 번역을 한 탓에 원작에서 거리가 멀고 원작자가 말한내용을 자신만의 기지(?)로
때론 이해할수 없는 표현의 한계를 느낄때와
두번째는 우리나라글에만 유난히 볼수있는 정이 별로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지요 뭐 감동이라고 해야하나....
지금까지 우리님의 글을 읽을때 마다 늘 느껴왔던 정이 11편 까지는 비교적 적었는데 요기서 부터는 정이 흠뻑 묻어 나오내요
박진우의 가정이 다행이 파행으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통속적으로 가지않아서 다행이네요
저도 중독인가보네요 잘보고 갑니다.
추천 꾸욱~~
그리고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