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인의 남녀들이 군데군데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두리번거리며 로비로 향하니, 저쪽에서 정장 차림의 남자가 성큼 성큼 걸어와 목례를 했다.
같이 고개를 숙였다.
“이 선생님 되십니까?”
“예.”
“윤 회장님 지시로 심부름을 왔습니다.”
“예, 회장님은 편안하시지요?”
수인사를 했다.
남자는 자리로 안내했다.
자리에 앉자 명함을 꺼내 인사를 청했다.
재일교포인지 우리말을 유창하게 구사했다.
나이는 아직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명함을 먼저 받은 후, 내 명함케이스를 꺼내 들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연수 때문에 일본에 체류 중인데 소지한 명함이 떨어진 줄 모르고, 미리 룸에서 보충을 못했습니다. 결례가 많습니다.”
“괜찮습니다. 회장님께서는 이번 주 동안 방위청 관료들과 교육관련 문부성 일정이 사전에 잡혀있어서, 직접 뵙지 못해 죄송하다는 인사말을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언제 까지 이곳에 머무실 예정입니까? 그리고 불편함은 없으신지요?”
“예, 불편함은 전혀 없습니다. 3개월 동안 일본에 더 머물 예정입니다. 회장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주십시오.”
상대에게 내 자신을 드러내 놓고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가지고 있는 명함도 결례를 무릅쓰고 전달하지 않았다.
내개인 의 신분노출이 좋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공식적인 표현만 했다.
남자는 들고 온 꽃과 과일 바구니를 전달하고 떠났다.
룸에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잠시 누웠다.
머리에 약간의 미열이 있다.
어제 잠을 설치고 오늘 종일 긴장을 해서 인지 피로가 쌓여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니 장미와 백합의 꽃향기가 머리를 맑아지게 했다.
피로회복은 역시 수면이다.
물 한 모금을 마시고 화병을 찾아 윤 혜림을 꽂았다.
꽂이 윤 혜림으로 느껴졌다.
장미송이에 그녀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었다.
과일 바구니를 개봉했다.
열대과일의 사이에 위스키 한 병이 꽂혀있었다.
처음 보는 술병을 들고 상표를 보았다.
글렌휘딕 50년산이었다.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잔에 담고 위스키를 채웠다.
내 체질에 위스키는 그렇게 당기지 않는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나보다 시간을 내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메일을 열어보니 일본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감탄사와 주말 약속을 잡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보내준 꽃바구니와 배려에 고맙다는 인사와 금주 주말에 만나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다.
주류관련 홈페이지에 접속을 했다.
혜림에게 선물을 받아 용감하게 개봉해서 마신 술병을 보고 깜짝 놀랐다.
글렌휘딕 50년산 위스키.
일반적인 위스키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주당들에게 전설처럼 전해들은 기억이 그때 스치고 지나갔다.
한 병에 몇 백만원을 호가한다는 유명한 위스키였다.
그래, 무식하고 모르면 용감해 질수 있다고 스스로 자위했다.
일주일의 흐름에 있어서 목요일은 지루하고 금요일 오후는 홀가분해진다.
온몸에 치장한 두꺼운 갑옷을 벗어 던지는 것처럼 단출해 지고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일과를 마치고 도서관에 들러 한국의 일간 신문을 열람하고 있었다.
국내의 톱기사는 린다김 이라는 무기도입 로비스트의 불구속 기소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국내에서 가수활동을 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간 뒤, 로비스트로 변신하여 문민정부의 장관, 국회의원과 애정행각을 벌였다.
‘부적절한 관계’라는 말이 유행어로 신문지상을 메우고 있었다.
국방장관이 그녀에게 보내는 연서와 그녀가 보낸 답서를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다.
오늘 수업 받은 내용을 파일에 저장하기위해 워드작업 할 준비를 했다.
작업 전에 습관처럼 인터넷에 접속을 했다.
윤혜림의 메일이 들어와 있었다.
오키나와에서 일을 마치고 동경으로 들어가는데 저녁식사를 같이하자는 내용이었다.
장소는 내가 묵고 있는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오후 8시에 예약을 해 놓았다고 했다.
시계를 보았다.
한 시간 정도 작업을 하고 숙소에 들어가 준비를 해도 시간이 바쁘지 않을 것 같았다.
룸에 들어오자 말자 책가방을 정리하고, 샤워와 면도를 다시 했다.
캐주얼 차림으로 다니다 모처럼 정장을 하기위해 와이셔츠를 꺼냈다.
레귤러 타입을 꺼내 입고 거울을 보았다.
버튼다운 타입의 줄무늬 셔츠를 입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넥타이는 보색계열을 착용하는 게 활동적인 이미지로 보일 것 같았다.
일본에 온 이후 외모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썼다.
약속시간 10분 전에 호텔 로비를 거쳐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꽃다발을 건네준 사내가 목례를 하며 다가왔다.
악수를 청하자 손을 잡았다.
사내는 손을 놓고 허리를 굽힌 채 자리로 안내했다.
시간을 맞추어 내려 왔는데 기다리게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메일을 확인 후 혜림을 만나기 위해 준비를 하는 동안 심장은 계속 쿵쾅거렸다.
우리가 다가오는 게 보였는지 그녀는 조명 속에 일어서고 있는 게 보였다.
보이는 저 짧은 거리가 몇 십 년 동안의 단절된 거리란 말인가?
사내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는 다시 걸어 나갔다.
곁으로 접근하는 발걸음이 세월의 무게감 같은 걸 느끼게 했다.
윤 혜림.
잡지 속의 그녀가 서 있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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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재촉하는 아침비가 내립니다.
글을 읽어 가면서...누렇게 변해버린 흑백사진 같았던 추억이
창넘어로 촉촉히 젖고있는 풀잎처럼 빛바랜 옛 추억이 싱그럽게 느껴지네요.
안녕 하시죠..다음편을 기다려 봅니다.
태풍이 온다더니 지금 흐려진 날씨입니다.
그사이 빠르게 다녀가셨네요.
그간 가내 두루 편안하신 지요?
추석명절이 다가옵니다.
조상님 산소에 벌초는 하셨는지요?
저는 내일부터 약 일주일간 직장내 워크숍관계로 강원도 설악산 오색그린야드호텔에 머물 것 같습니다.
다녀와서 다시 계속하겠습니다.
늘 감사드리며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지금쯤 세미나 잘 받고 계시겠죠
다행히 나비가 피해갔다니 상큼한 설악의 정취를 마음껏 취할수 있겠어요
여긴 별일없구요 (과장님이 안계셔서 섭섭하긴 하지만 ...^^**)
책과 글쓰기를 자주 접하신다는 정보는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장문의 아름다운 글을 쓰시는줄 몰랐어요
과장님이 안계신 이유로 편하게 근무시간에 눈치없이 읽었습니다 ㅎㅎㅎ
자리 잘지키기고 있을게요 좋은 정보 많이 담아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