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낚수계의 전설적인 어르신으로 추앙받아온 고 육초당선생!! 현세에 이르러 낚수산업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최첨단을 달리고 잇지만 고 육초당선생이 살앗을 당시만 하여도 보릿고개 넘기기가 여간 힘겨운일이 아니엿는데도 유복한 가문의 자제로 태어나 어릴적부터 부족함이 없이 자라온터에 당나라에서부터 보급되어온 낚수를 신문화로 여겨 과감히 도입하여 계승,발전시켜왓던 것이엿다
10자짜리 왕대를 꺾어 삼일밤낮을 쪄내고 말리기를 108일!!! 그 왕대에다 옻칠을 20회 하고나니 왕대의 탄력은 신비로울 정도록 탄성과 강도가 훌륭하엿고 무지개빛이 영롱하니 오늘날의 초고탄성 케브라대의 시초엿고 눈에 보이지도 않을만큼 가늘디 간 명주실을 엮어 매달고 원줄로 삼앗으며 그 명주실에다 풀칠을 단3합으로 엮어돌리니 목줄이라 일컬엇으니 오늘날의 낚싯줄의 원조가 되엇으며 한자반이나 되는 부들을 꺾어 말리고 옻칠을 겸하고 나전칠까지 입혀 문양을 새기니 금전으로도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없는 수제찌의 불후의 명작 하나하나가 탄생하엿다
마지막으로 당시에는 그 귀하디 귀한 은을 녹여 조개모양의 구슬과 갈쿠리 모양의 바늘을 만들어 목줄에다 메달고 수제찌와의 조화를 이루니 그 기술과 정성은 차치하고서라도 당시에는 상상도 못할 최고급 민물대낚의 시조엿던 것이다
고 육초당 선생은 그렇게 해서 만든 대가 총 20대가 넘어니 현세의 대물꾼들의 시초가 된 부채살타법이 선을 보이기 시작햇다 그리고 또한 춘궁기에도 불구하고 겉보리를 삶아서 밑밥치고 새비를 훌쳐서 밤새 뽑아올린 대물만 열소쿠리 정도 잡아 빈민들에게 나누어 주니 동네방네 칭송이 자자하엿다 그렇게 훌륭하디 훌륭한 육초당 선생의 일대기가 동어대물보감이라는 책자가 없엇다면 그 누가 알수잇엇겟는가???
그후 우리나라에 난리가 몇 번일어나 그 전설적인 비법의 맥이 끊어지는 위기에 처하기도 햇으나 고 육초당 선생의 후손인 초당이라는 분이 대구지방 어느구석 동네에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잇엇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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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으로 후다닥~~~
와우~~~~
이번껀 내용이 좀 새로워지네요~~~^^
아껴 봐야 겠슴다~~ㅋ
부채살 조사님 소설가로 데뷔 하시죠..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맞나요?
우리 집안에서 내려오는 秘錄은
"동이대물보감" 인데........^^
2편으로 갑니다
존경스럽읍니다
계속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