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두는 하얀 고무신
그 뒤를 네발달린 짐승과 앙증맞은 검정고무신이 따른다
하늘엔 몇 조각의 구름덩어리가 걸려있고 저 아래 소류지를 향하는 한 무리를 굽어보는 벼랑끝 소나무는 애처롭기만 하다
앞서걷는 조부의 지게 안은 조모가 챙겨주신 주먹밥과 김치 그리고 이런저런 소품들
별다른 준비물이 없지만 조부는 거추장스럽고 커다란 지게를 지고간다
논 안쪽으로 뻗은 지게다리가 파릇한 벼잎을 스치고지나고 아이또한 팔을뻗어 지게다리뒤를 따라간다
쓸려간 벼잎에 놀란 벼멸구들의 어지러운 비행
이때다싶은 잠자리들의 노련한 사냥
먹이사슬 최 정상에위치한 조부의손엔 어느새 잠자리가 들려져있다
"자~"
지게다리 사이로 잡은 잠자리를 건내는 조부
검지와 중지사이로 날개를끼워 받아든다
날지못하게 네장의 날개를 조금찍찢어 손바닦에 올려놓았지만
사력을 다해 날아가는 잠자리
얼마못가 벼잎들 사이로 떨어진다
평소에 재잘거리던 아이도..재롱에 답하던 조부도 ..말없이 걷기에는 소류지가 멀기만하다
이제 절반정도 갔을까?
"안 힘드나?"
오랫만에 듣는 조부의 목소리
"쪼매 앉았다 가자"
조부는 지게를 논 어덕에 기댔다
지게 안에서 양철 주전자와 김치를 꺼낸다
막걸리다
주전자 손잡이와 뚜껑을 묶은 검정고무줄을 풀고
뚜껑에 막걸리를 받았다
"꾸~울떡 꿀~떡"
조부가 목넘김을 할때 마다 입 언저리로 수염을타고 하얀 막걸리가 한방울 한방울 떨어졌다
"캬~~"
입가심으로 빠알간 김치도 한점
씹을때마다 서걱서걱한 소리가 밖으로 들려온다
조부는 연거푸 두잔을 더 마시고서야 아이의 눈이 자기를 보고있음을 알아챈다
"니도 무~볼래?"
아이는 대답대신 연신 고개만 끄덕끄덕
"자 ~ 한잔 받아라 "
아이는 주전자 뚜껑을 받았다
"두손으로 받아야쟤"
얼른 두손으로 고쳐 받고는 주전자 주둥이를 떠나는 막걸리에 집중한다
"쪼르르륵~"
너댓모금 정도의 막걸리가 받아졌다
작은입으로 오물거리며 넘기는 막걸리
"꼴딱꼴딱"
조부의 목넘김을 흉내내듯 아이는 일부러 소리를 크게 낸다
"카~"
술맛이나 알고 저러는걸까
조부는 폐에서 나오는 바람웃음을 한다
"거~참 ~"
"할배~ 나도 김치"
조부가 찢어주는 김치 한점을 냉큼 받아 문다
"할매 한테는 말하지 말그래~이"
아이는 윗 입술위로 돗아난 솜털에 하얀 막걸리 자욱을 팔등으로 훔친다
"얼마나 더 가야 대는데예?"
얼른 새로운 낚시대와 신식채비로 고기를 걸고 싶은 아이다
"쪼매마 더 가모 나오니라"
지게에 막걸리주전자와 김치를 밀어넣고
묶어둔 낚시대를 점검한다
논두렁을 서너개만 더 넘으면 편한 길이 나온다
군대군데 심겨진 두렁콩을 밟으새라 조심스런 한 걸음이다
양옆 높다란 논둑들 사이로 흐르는 소류지의 꼬릿줄기는 바닥이 훤히 들어날 정도로 깨끗하다
물잠자리 ,소금쟁이,물위를 낮게나는 이름모를 산새들
좀처럼 마을밖을 나서지 않던 아이는 이모든것이 새롭다
대문을 나서면 거기가 거기인 시골마을이지만 조부와의 낚시길은 새롭고 신기함의 연속이다
논두렁을지나 굽이굽어진 소로에 올랐다
지게진 조부를 앞서거니 뒷서거니 알수없는 소리를하며 누렁이와 달음질 한다
산기슭 소로를따라 변에는 큰 밤나무들이 우거져있어 따가운 태양볓을 가리기엔 충분하다
빽빽하게 우거진 가지와 잎사이로 햋살이 빛춰지면 작은 손바닥을뻗어 구멍을 메우고
군데 군데 패여진 작은 웅덩이는 아이와 누렁이의 물장난 공간이된다
바위위에오른 산다람쥐를 향한 돌팔매질과 달아나는 다람쥐를 쫒는 누렁이
보이지도 않을만큼 뛰어가다가고 아이의 부름에는 금방 돌아와 꼬리를 흔든다
반시간 정도의 도보로 드디어도착한곳
기와집 20채정도 크기의 소류지
아이는 덜컥 겁이났다
넓고 끝을 알수없는 깊이의 시퍼런 물길에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집앞 개울과는 비교자체가 되지 않는 이 쭈뼛쭈뼛함은 아이를 지릴 정도다
"하...알배~~" "나 ..쉬~~"
준비해온 낫으로 자리를 만들던 조부가 빙그래 웃는다
"할배 여기 있응께 뚝위에 올라가서 누고 온나"
"인자 다컷는데 오줌도 혼자눌쭈 알아야쟤"
아이는 원망스런 얼굴로 터벅더벅 못둑으로 올라갔다
"휘~잉~~~ "
못둑을 올라서는 순간 티끌 바람이불어
아이는 눈을 질끈 감기웠다
바지를 내리고 작은 물줄기를 내보내야 하지만 좀처럼 말을듣지않는 물총
눈을비비는사이
또 한번의 바람이 다리를 타고 머리칼을 쓸어 올린다
태양은 따가운데 바람은 서늘하다못해
차갑게 느껴진다
슬며시 실눈을 떠 주위를 살핀다
태양에 달궈진 홍안 사이로 조금씩 열리는 아랫마을.
주위에모든것이 아이의 몸을 통과하듯
절절한 저림이
얼굴
머리
가슴
어깨
등
허벅지
발바닥 순으로 내려간다
소류지의 둑 에서 바라본 광경은 여지껏 봐온 그 무었보다 멋있었다
아니 멋이 있다기보다는 탁 트인 광경에 뭔가모를 쿵쾅거림이다
저멀리 마을회간의 깃발도 낚시하던 개울과 텃밭 그리고 대밭옆 조부의 집도 보였다
"왈! 왈~왈~"
어느새 옆에선 누렁이가 아이의 물줄기에 신기하듯 짖어댄다
"휘~잉~"
아이를 엄습하던 서늘했던바람이 이번엔습한 건조함을 뿌리고 지나간다
배설의 기분을 움츠려 털어낸후 옆에있던 누렁이를 발로 밀치려 하지만 누렁이 또한 가볍게 피한다
"이~씨~"
"머 ~보노!!"
누렁이는 아이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장난기어린 꼬리를 흔든다
별 소득이 없을것 같은 아이
바지를 올리고 조부에게 발길을 돌렸다
둑위에선 바람이 불지만 소류지의 수면은 잔잔하다
시퍼렇게 집어 삼킬듯한 물도 이젠 별다를게 없어 보인다
계곡줄기를 틀어막아 농번기 가뭄을 해소하려는 소류지
크지는 않지만 물을 가두고 있는 형태를 보면 깊은곳은 집옆 대밭이 잠길 정도인듯 싶다
낫질한 풀들을모아 푹신한 자리를 만들고
물가로 떠밀려온 나무들과 누군가 버리고간 대나무로 눞혀놓은 지게와 보자기를 이용해 훌륭한 그늘막을 만들었다
"이~야"
아이의 탄성이 소류지에 울린다
"땡뱃이 따가븐께 고 들가 있으라~이"
"할배는 짝대기좀 주~가 오끄마"
조부가 만들어준 그늘막은 아이가 들어가기 딱 알맞다
바닥또한 푹신 푹신한 풀들로 덮혀있어 오래 앉아있어도 엉덩이가 눌리진 않을것 같았다
"할짝 ~할짝 ~할짝~"
누렁이가 꼬리를 말아감고 엉거주춤 소류지 물을 마신다
"왈~"
마시다말고 대뜸 짖어대는 누렁이
한발을 들어 물속에 짐승을 건드려본다
그러기를 두어번
아이도 목이마르다
누렁이처럼 소류지의 물을 마시기엔 내키지 않았는지 지게안 주전자에 눈을 돌린다
조부는 물가를 거닐며 뭔가를 줍고있다
"꼴딱~"꼴딱~"
단맛이 묻어있는 쌉쌀함
삼키는동안 조부의 행동을 뚫어져라 살핀다
아이는 어느새 김치까지 입에 넣었다
양념묻은 손은 재빨리씻고 아닌척 지게안으로 주전자를 넣었다
조부는 주어온 대나무 끝을쪼개 받침대 를 만들고 넓다란 돌사이에 받침댈 꽂아넣었다
"자~인자 다됐데~이"
"요다 낚수대 걸어 나라 "
낚시는 손으로 들고 하는줄만 알았는데 조부의 간단한 손재주로
생각치도 못한 낚시방법에 아이는 신기해 했다
그리고 받침대의 원리와 구조를 잊지 않기위해 한동안 멍하니 처다본다
"시.......시~~옷!"
"시~~옷~~시~옷~"
물 건너편에서 매미가 울기시작했다
"어!?.. 씨롱메롱 매미다!!"
올해 처음 우는 매미소리에 아이는 건너편을 주시한다
잔잔한 소류지를 울리는 매미소리
소류지엔 노인과 보자기가 덮혀진 지게 그리고 이리저리 딩구는 누렁이만 보일뿐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 © 1998 ~ 2024 Wolchuck all right reserved. ▲TOP
잘읽고 갑니다~~뒷편 기다리겠습니다
행복한 시간이였습니다.
오랫만에 들어봅니다
추천은 본문 아래에 있군요
글 읽는동안 머릿속에는 풍경이 그데로 그려지는듯 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오늘도 여전히 추천 드리고 갑니다.
좋은글 재밋게 읽고 갑니다.
어릴적 100원하던 조립낚시의 추억이 아련히 떠오르네요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다음편 기대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