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이 지나 천지에 봄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면 나는 낚시가방을 둘러멥니다.
이른 봄 부터 늦가을까지 전국 방방곡곡의 호수와 강을 누비며 자연의 품으로 스며들어 편안한 나만의 휴식에 빠져들지요.
농번기의 배수철이 지나면 장마기로 접어듭니다.
들녘 가득히 내리는 빗줄기를 따라 산하에는 하얀 그리움들이 일제히 피어납니다.
너무나 많고 흔하디 흔한 꽃.
여름을 알리는 개망초꽃.
세상은 이름없이 살다간 이들이 남긴것들로 다음 세대들이 살아간다는데 저 개망초 꽃들을 보면 우리네 뭇중생들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말 못하는 축생들도 죽어서 그리움으로 피어난다면 저 개망초꽃 같지않을까요?
오래전에 이별한 보고픈 내친구를 생각합니다.
덕구는 스무살 시절 대학신입생때 만난 나의 친구입니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충북 청주에 있는 국립대학에 입학을 하게되었습니다.
거처할 곳이 마땅치않아 고민끝에 외갓집에서 통학을하게 되었는데 외할머니께서 생전에 계셨던 그곳은 청주에서 버스를 타고 내수를 거쳐 40여리나 더 들어가야 하는 궁벽한 시골동네였습니다.
많지도 않은 버스가 저녁 8시면 끊겨 친구들과 술이라도 한잔하는 날이면 귀가하는 일이 여간 힘든게 아니었습니다.
내수까지 가서 40여리의 산길을 야밤에 홀로 주파해야했는데 스무살 청년에게도 만만찮은 일이었죠.
무엇보다도 동구 밖 외진 버스정류장에서 밤이슬을 맞으시며 외손자를 기다리시던 외할머니 생각에 술 한잔도 죄스럽기만 했습니다.
2개월여를 버티던 나는 청주로 나와서 하숙을 하게 되었죠..
사촌누님이 소개해준 그 곳은 청주 내덕동 변두리에 위치한 오래된 가옥이었습니다.
집의 형태는 'ㅁ' 자형 으로 'ㄱ' 자 쪽은 하숙집이고 'ㄴ'자 쪽은 탁주도매집 이었습니다.
학교까지는 거리도 가깝고 늦은 시간에도 귀가염려가 없으며 평소 마다하지 않는 술까지 집안에 그득하니 정말 이보다 좋을 순 없었죠.
고등학생 둘과 기거하던 그 집에 몸집이 제법 좋은 흰색 잡종개가 한마리 있었는데 녀석이 바로 "덕구"였습니다.
내가 하숙집에 입주하던 날 나를 처음 맞이해 준 이는 다름 아닌 바로 이개였습니다.
5월의 햇살아래 낮잠을 자고 있었던 듯 내가 하숙집의 낡은 철문을 밀고 들어서자 문소리에 깼는지 천천히 일어나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예상치 못한 개의 출현에 나는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는데 놈은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걸어와 내신발 앞부분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더니 고개를 쳐들고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개는 매우 순한 눈빛을 하고 있었고 갈색의 눈동자에서나 입매무새에서도 전혀 경계의 빛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잠시후 방에서 주인 아주머니가 나와 "에구~~ 엉아!(아줌마는 날 이렇게 부르셨어요^^) 왔네". 이쪽 방이여 어여 이쪽으로 와"하며 집 중앙의 마루가 있는 방으로 나를 안내해주었습니다.
방에 짐을 풀어놓던 나는 "아줌마 개가 참 순하네요.개 이름이 뭐예요?" 하고 물었습니다.
"이름? 그런 거 읍는디~.
기냥 <어여~어여~>여"하며 웃었습니다.
문 앞에 따라온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주머니는"거참 이상허네~이눔이 이렇게 순딩이는 아닌디 엉아한테는 별나게 순허게 구네"하면서 의아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날부터 녀석과 한집에서의 생활이 시작 되었습니다.
학교에 가느라고 버스정류장에서 바라보면 앞쪽 언덕 위의 내덕성당 잔디밭에서 나보다 먼저 나온 녀석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곤 했습니다.
타지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대학입학 초기에 친구가 별로 없는데다 그나마 사귄 과친구들도 고교동문회며 동아리활동에 참석하다 보니 대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하루는 일찍 귀가하였는데 딱히 할일도 없고 해서 탁주집에서 막걸리를 한되 받아와 마루에 걸터 앉아 두부김치에 잔을 기울였습니다.
어느결에 왔는지 녀석이 마루 끝에 앉아 있길래 두부를 몇점 던져주니 넙죽넙죽 받아먹더군요.
순간 장난기가 발동해서"야!너도 한잔 할래?"하고 쳐다보니 놈은 꼬리를 흔들며 마루 위에 턱을 올려놓고 좋아라하는 표정이었습니다.
개밥그릇을 가져다가 그득히 부어주니 ..어 이거 봐라?.. 능숙하게 받아먹는 품이 꽤 먹어본 솜씨더군요.
"그래 안주도 먹구~" 하면서 두부도 던져주고 놈과 부어주고 마시고 하다보니 벌써 막걸리가 두병째 비워졌습니다.
나는 어지간히 술기가 오르는데(유독히 막걸리에 약함) 놈은 더 먹고 싶은지 혀로 주둥이를 핥고 있었습니다.
막걸리 두병과 두부 한접시 더 받아다가 또 부어주고 따라먹고 하는데 "이거 살다보니 개하고도 대작을 하는군" 하며 혼자 킬킬대고 웃었습니다.
그리고 녀석의 이름을 지어주었지요.
"야~이 엉아가 니 이름을 지어줄께.앞으로 너를 덕구(德狗)라고 부를께.알았지? 덕구야~더억구우야~~"
덕구는 웃는 얼굴로 꼬리를 흔들더군요.
추가한 막걸리를거의 두 병 째 비웠을 때 얼근한 귓가에 사촌누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니 얘가 날도 어두워지기 전인데 왠 술판이여. 어? 얘 좀 봐. 너 개하고 술 먹냐?"하더니 기가 막히다는 듯 큰소리로 웃는 것이었습니다.
"누나! 무슨개가 술을 나보다 더 잘 먹어?"하니 글쎄다 하면서 희안하다는 듯 녀석을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술에 취한만큼 놈도 어지간했던지 걸으며 자꾸 발을 헛놓고 마당옆 흙더미를 파헤쳐 코를 묻는것이 아마 열이 오르는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 대작 이후 덕구는 부쩍 나를 따르기 시작해서 아침이면 앞장서서 버스정류장앞 횡단보도까지 나를 에스코트하고 귀가 무렵이면 성당 근처에서 놀다가 똘만이개들까지 대동하고 나를 반겨주어서 행인들에게 좀 창피하기도 했지만 미더운 정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녀석이 나를 따르는게 기특하고 고마워서 친구들과 술한잔 할때면 남은 안주를 가방속에 챙겨와 놈에게 내어주는 호의를 베풀곤 하였습니다.
나의 호의 때문인지 놈도 나에게 각별하여 밤중에 화장실 가느라 방문을 열어보면 문앞에 벗어둔 내 구두를 끌어안고 잠든 모습을 보곤했습니다.
달 밝은 밤. 그런 녀석의 모습은 측은하기도 하고 고맙기도해서 가슴 한켠이 훈훈해지는 작은 감동을 느끼기도 했지요.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뀌던 그해 9월 무렵 나는 방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한방에서 생활하던 고등학생이 친구 한명을 더 데려오는 바람에 쓰지않던 빈방을 손봐서 혼자 독방생활을 하게 된거죠.
부엌옆에 외떨어진 방이었는데 그방의 느낌이 좀 이상했습니다.
처음 들어섰을때 등골이 쭈뼛하고 서늘한 느낌이 나는게 단지 볕이 잘들지 않아서 드는 기분만은 아닌것 같았어요.
이불을 깔고 누우면 꼭 한댓잠을 자는것처럼 몸이 시리고 자다가도 몇번씩 뭔가에 짓눌린 느낌에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나곤 했습니다.
거처를 옮길 다른방도 없었고 저렴한 하숙비에 식사도 훌륭해 그곳을 나올 마음은 없었지만 하루하루가 무섭고 힘겨웠습니다.
그렇게 한달정도가 지난 10월 중순의 어느날 밤.
차고 무거운 기운에 짓눌린 느낌으로 몸부림을 치다가 맹렬하게 짖어대는 덕구의 소리에 힘겹게 눈을 떴습니다.
창문을 통해 방으로 스며든 창백한 달빛속에서 무언가 희미한 형체가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심장이 멎는듯한 놀라움속에 뒤로 물러서며 황급히 방문을 열었습니다.
문앞에는 덕구가 흰이를 드러내며 눈에 파란 홰를 돋운채 방문턱에 앞발을 올려놓고 방안을 향해 으르렁거렸습니다.
섬뜩한 느낌에 전등스위치를 올리자 백열전구가 환하게 방을 밝혔는데 잠깐 찬기운이 급하게 돌아나가는 느낌이 있었고 옷걸이에 걸린 내옷 몇벌만 그대로 있을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돌아서자 덕구가 낑낑거리며 눈에 홰를 지우고 웃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고마움과 든든함을 어찌 글로 다 표현하겠습니까.
매일밤 덕구는 방문 앞에서 내구두를 끌어안고 불침번을 서주고 나는 녀석의 존재를 느끼며 안심하고 잠자리에 들곤 했습니다.
개하고 술먹는다고 누님에게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 가끔씩 녀석과 술도 한잔하고 에스코트도 받고 비록 흙투성이지만 녀석의 발인사도 받으며 객지에서의 하숙생활이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학교생활이 자리를 잡아가고 친구들과의 정도 깊어지며 1년이 지나갈 무렵인 82년 4월,의외로 덕구와의 이별은 너무도 허무하게 다가왔습니다.
산야에 봄꽃의 고운 채색이 점점 번져가던 그해 4월 초에 나는 사촌누님네 식구들과 속리산으로 꽃놀이를 가게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앞장서던 놈이 나타나질 않아 ..어디 다른곳에 있나?..
별로 대수롭지않게 생각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그러고보니 전날 저녁 제집앞에 엎드려서 침울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던 모습에 생각이 미쳤으나 나들이의 들뜬 기분에 금새 지워져 버렸습니다.
속리산의 진달래와 개나리,그리고 망울지던 벚꽃그늘에서 놀다가 저녁무렵 집으로 돌아와 보니 그사이에 집에서는 무슨일이 벌어진 모양이었습니다.
마당의 한가운데 돌화덕이 만들어져 있고 그위에 못보던 가마솥이 얹혀있었습니다.
주위에는 숯과 타다만 장작,무슨 짐승의 뼈인듯한 하얀 뼛조각들이 널려있었습니다.
언뜻 생각이 녀석에게 닿아 개집을 바라보니 빈 밥그릇만 뒹굴고 있을뿐 녀석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로 저녁상이 들어왔는데 밥옆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곰탕 비슷한 국이 한사발 올려져 있었습니다.
"엉아! 먹어봐! 봄이라 입맛이 없을 것 같아 괴기국 좀 끓였어"
"아줌마 이게 무슨 고기국 이예요?"나의 물음에 아줌마 대신 마당에서 놀고있던 고등학생놈이 "아~ 형! 그거 이집 개있잖아요. 그 똥개 잡았어요. 드셔 보세요. 냄새도 없고 고기맛 죽여요."
나는 머리한쪽을 둔기로 얻어맞은 듯한 멍한 충격을 느끼곤 수저를 든채 한참을 있었습니다.
아주머니가 그때서야 낌새를 느꼈는지"아이구~~엉아하고 우리개하고 참 친했지.이름두 지어주구 말여~. 근디~ 워떡혀~ 애아부지가 몸이 너무 허혀서 워쩔수가 없었어~. 이해허고 어여~어여~ 밥 먹어."
나는 끝내 저녁을 먹지 않은채 상을 물리고 빈속에 소주 한병을 비웠으나 좀처럼 쉽게 잠들지 못하고 밤새 뒤척였던 기억이 납니다.
서운하고 불쌍해서 좀 울기도 했구요.
비록 말못하는 축생인 개이지만 나의 외롭고 힘겹웠던 시간을 함께 하던 녀석의 모습은 그후에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자주 술자리의 이야깃거리가 되곤했습니다.
그때문일까 지금까지 나는 다른 음식은 가리지 않지만 사회생활의 온갖 유혹에도 보신탕만은 입에 대지 않고있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나는 또 낚시가방을 둘러멜것입니다.
호숫가 수면을 스쳐온 봄바람이 기억속의 들꽃을 깨우면 옛친구를 생각하며 술 한잔해야겠습니다.
덕구몫의 술잔도 하나 챙겨가서 말입니다.
"어이 덕구! 잘지냈는가?
자네 좋아하는 막걸리와 내가 좋아하는 소주를 챙겨왔다네.
자네 떠나고나서 막걸리의 맛을 잃어 소주만 줄창 마셔왔지 뭔가.
나는 소주,자넨 막걸리로 오래 묵혀둔 회포를 푸세나.
마누라가 만들어 놓은 두부김치도 넉넉히 준비했다네.
자~자~ 내잔 먼저 받게^^."
2022년 12월 1일..
저에게도 어릴적 시골서 잘따르던 강아지가 있었지요
추억은 각설하고 어릴적 놀다 집에 가는길에 아버지께서
강아지 목줄을 매서 데리고 어디가시는지 가는 길이었죠
(나중에 알았죠... 동네분들과 ㅠㅠ)
그때 나를 향해 돌아보던 강아지의 눈빚은 지금도 아련합니다.
며칠을 식음을 전폐하고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
그래서 50중반의 지금까지 보신탕은 절대 먹지 않게 되었지요...
주저리주저리... 추억소환 ㅎㅎ
어느날 마중을 나오지않아
섭섭한 마음으로 집에 도착햤는데
집에는 아버지 친구들이 가득
했지요
검둥이를 그만......
얼마나 울었는지요.
그심정 이해가됩니다
국민학교때는 집에서 끓인 탕을 먹었지만
그 후론 먹지 않습니다.
어느날 성년이 되어 음식점 점심을 대접받았는데
수육이라더군요 안먹는다 했더니 물끄러미 잠시 바라보더군요.
또 그후론 음식점도 가립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중국집 짜장 ㅎ
시골에서는 개는 한식구입니다.
덕구, 잘읽고갑니다.
저는 개에게 정을 안 줍니다. 못 먹을까봐~~~~~~
추억 묻은 얘기 재미나게 보고 갑니다.
옛 생각이 나네요.
가슴시린 아련한 기억이.....
저도 어릴적에 나무에 매달아 패시고
.
.
.
그런경우
자주 봤었네요..
지금에야 욕먹지만
그때만해도
시절이 그러하였습니다
유난히 개와 고양이 를 좋아해서 비슷한 경험이 있었지요 많이울고 오랫동안 마음고생 했던 기억이....
또한 덕구온천에서의 일인가 했는데....
예전에는 그랬죠.....
잘 읽고 갑니다.......
어릴적 오랜동안 함께 들판에서 뒹굴던 친구 녀석이,
어느 날 돌아와 보니 탕 한 그릇이 되어 있던 날...
그 특유의 냄새와 알 수 없는 나쁜 기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어렸을 적 우리집 복실이를 앞집에서...
빗장 걸린 그 집 대문은 발길로 걷어차도
열리지 않고.. 참 많이 울었네요 ㅜㅠ
덕구와의 사연을 담담한듯 애절하게 풀어내시는 감성과 글솜씨에 더욱 와닿습니다...
옛날 추억을 다시 살려주어 감사합니다.
애틋하면서도 잔잔한 글 잘 읽고 갑니다.
2월2일에 집에와서 둘둘 이라 이름저주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