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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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가의 추억

IP : 86d92085f779e04 날짜 : 조회 : 9008 본문+댓글추천 : 3

외환위기이후....직장 분위기와 인간관계는 분명 예전 같지가 않지만, 가끔은 숨이 막힐듯한 위계질서와 눈치보기의 와중에도 때때로 밥한끼, 술 한잔에 어깨 감싸던 그 인간애가 넘치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 아직 내게 차가 없었던...1997년 6월. 그 이상야릇한 증상은 어느날 아침, 갑자기 찾아 왔다. 어라? 내가 살이 쪘나? 출근을 위해 바지를 입던 중. 이상하게도 한 쪽 다리가 바지에 꽉 끼었던 것. 가만보니...한쪽 다리는 정상인데, 한쪽만 유난히 두꺼워져 있었다. 허 참나... 일단 출근은 하고서 하루를 보내는데 점점 한쪽다리가 더 부어오르고 가렵더니...나중엔 앉는 것도 부자연 스러웠다. 바지를 벗고서 가만히 손으로 종아리를 눌러 보았다. 손가락이 들어 갔던 곳이 제자리로 나오는데 한참이 걸린다. 더구나 이제는 통증까지 간간히 동반된다. 이거...말로만 듣던 각기병 아닌가? 다음 날, 병원에 갔다. 원인을 모르겠다며 큰 병원으로 가보란다. 큰 병원에 갔다. 원인을 모르겠다며, 혹시 큰 병일 수 있으니 입원을 해서 정밀검사를 받으란다. 혈액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느니... 자칫하면 큰 병이나 희귀병일 수 있다느니.....더럭 겁이 났다. "저,....부장님....병가를 내야할 것 같습니다." "뭐야? 어디가 아픈데?" 회사에서 까탈한 직속상관에게 어렵게 말을 꺼내 놓고는... 말없이 퉁퉁 부어 벌겋게 된 한쪽 다리를 보여 줬다. 의사도 모르는 병명을 내가 알 수 있나.... 그저 고개를 절래절래 젖는 상사에게서 간신히 한달 유급 휴가를 얻어 냈다. 한창 바쁜 시즌에 병가를 내니 눈치야 보이지만, 큰 병이라도 나면 누가 책임을 지겠는가. 몸이 제일이니.... 치료가 시작되었다. 병원은 서초동 소재의 성모병원. 일단, 입원은 좀 그렇고...매일 통원하며 검사및 치료를 받기로 했다. 피부과, 알르레기과, 내과, 정형외과, 방사선과, 혈액종양과..... 나중에 따져보니 돌아다닌 과만 9군데. 받은 검사와 먹으라는 약은 또 어찌나 많은지..... 그 중, 조직검사라고 마취도 없이 생 살을 잘라낼 때는 정말 아팠었다. 하지만, 그렇게 열흘이 다가도록 의사들은 병명도 파악 못하고 그저 고개만 갸우뚱할 뿐....슬슬 짜증이 난다. 그런데? 한 일주일 지나자 특별히 치료를 제대로 한 것도 아닌데... 슬슬 부기가 빠지더니...열흘이 되자 언제 그랬었냐는 듯... 예전의 건강하던 다리로 저절로 돌아 오는 것이 아닌가. 의사들이 그것을 보고 내린 결론은? 스트레스성 특이 질환이라나? 참나....그런 말은 나도 하겠다. (지금도 2.3년에 한번은 그런 증상이 재발하지만 아직도 원인을 모른다) 아뭏든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보름 남짓 휴가기간이 남아버린 것이다. 이걸 어쩔까...? 회사는 한창 바쁠텐데....자대복귀를 할까? 아님....그냥 쉬어? 솔직히 고민은 무슨 고민...내가 미쳤나? 얼마만의 유급 휴가인데.. 당근 쉬는 쪽을 택했다.ㅎㅎㅎ(다른 분들은 어떠실런지?) 자, 그럼...이제 보름 남짓 기간동안 무엇을 할까....하고 고민을 하다 일단 2주짜리 컴퓨터 학원에 등록을 해놓고 그 때부터 오전에는 학원....오후에는 낚시를 가는 스케쥴이 시작 되었다. 남들 다 회사에 있을 때 평일에 실컷 걱정없이 하는 낚시의 맛이란...ㅋ~ 그 날도 저수지 한편에 앉아 있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네~" "어, 잘 지내나? 몸은 좀 어때?" 이런...회사 상사인 이부장의 안부전화다. 여기서 잠깐 이 이부장으로 말씀드리자면, 나이는 나보다 6~7살 위이며 첫 신입사원때 자대배치(?)를 받았을 때 모두가 나를 안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찾을 정도로 성격이 괴팍하고 하도 가슴을 후벼파는 언어를 구사하여 그 밑에서 만 2년을 버틴 후배가 없는...한마디로 꼬장의 대마왕이다. 오죽하면 후배들에게 숙제를 내주고 다음날 숙제검사까지 하겠는가! 암튼...평상시 성격으로 봐서는 위문전화일리는 없고 아마 건강상태를 정탐코자하는 의도이리라. 최대한 개운치않은 목소리로 간만에 찌올라오는 걸보며 엄살 좀 부리다가... 마침내 전화를 끊고는 안타까워 한마디 한다. "쯧....입질이 좋았는데...큰 놈 같았는데..." 그런데, 자가용이 없으니 아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시간은 남아 도는데...매일 무거운 짐을 지고, 들고 버스를 타거나 아니면 가까운 곳은 택시를 타고 가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않기도 하거니와 몸도 지치고 그 몰골로 차타기도 좀 창피스럽다. 묘안이 없을까?...... 그러다 문득 떠오른 곳은 집에서 멀지않은 한 낚시점. 거의 하루가 멀다하고 출조를 하는데 회비만 내면 교통편을 비롯한 대부분이 해결되니 나에겐 안성마춤으로 느껴졌다. 당장, 내일 출조에 참가하기로 하고 다음날 새벽 낚시점 차를 타고는 목적지인 논산 탑정지에 도착하였다. 한가지 나의 출조방식과 다른 것은... 이들은 모두 보트낚시꾼들이었다. 보트 하나 빌려서 바람넣고 준비하고는 부지런히 노를 저어 중앙 수초군락에 먹음직스럽게 지렁이를 달아 짝밥으로 던져 놓았다. 가끔씩 찌를 올려주는 5~7치급 붕순이를 마주대하며 포인트를 찾아 여기저기 노를 저어다니다 보니 일행과는 자연스레 떨어져 나와 근 5미터 떨어진 보트하나만이 마주대하게 되었다. "이것보실래요? 월척 하나 건졌습니다." 문득 옆자리 보트꾼이 말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그의 손에는 큼지막한 월척 한마리가 들려있었다. "이야~ 때깔이 좋네요. 축하합니다." 이 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간간히 입질이 없을 때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의 직장을 묻는 그의 질문에 00광고회사라고 대답을 하니 그의 얼굴에는 깜짝 놀라는 빛이 스친다. "왜요?" "야~ 반갑습니다. 저도 **광고회사에 다닙니다." 흔치않은 만남에 우리는 더욱 가까와졌고...난 어느새 후배가 되어 있었다. 7월로 넘어설 때까지 난 자연스레 그 낚시점을 따라 출조가 빈번해지고, 그와 동시에 동종업계의 그 선배님과도 꽤 친분은 두터워졌다. 아.....참 시간 빠르네. 어느새 병가로 냈던 한달이 후딱 지나가 버렸단 말인가. 차마 가기싫은 발걸음을 다시 회사로 월요병 앓듯이 옮긴 출근 날. "여~ 오랫만이야. 병은 어떻게 다 나았나?" "네....덕분에 다시 좋아졌습니다." "그래, 병명은 뭐래?" "네? 아아....그게....스트레스성 질환의 일종인데...." "뭐? 야...그럼 내가 엄청 스트레스를 그동안 주었나 보구만?" "네? 아이...그건 아니고요(아니긴...그거야 당연하지, 말이라고...)" 바쁜 일손 중에 내가 오기를 기다렸던 부장의 이런저런 질문에 대충 대답을 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동료가 한마디한다. "아니, 그런데....왜 그렇게 새까맣게 탔어?" "어, 그러고보니 그러네? 어디 해외여행갔다 온 거 아니야?" 뜨끔.... 거의 보름을 매일같이 낚시를 다녔으니..썬크림을 바르고 모자를 써도 나의 얼굴과 손은 자외선에 그을리는 것을 피할 순 없었던 거다. 저런 눈치없는 싸가지같으니....니가 동기냐? "예....의사가 한번 운동을 해보라고 해서..." 대충 난처한 자리를 수습하고 그렇게 나의 병가 낚시 휴가는 아쉬움속에 잊혀져 가는듯 했다. 그 후 한 서너달 흘렀으려나...? "따르르릉~~~" 지난번 보트낚시에서 만났던 동종업계 경쟁사의 그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용인즉슨, 그 선배가 맡고 있는 팀에 자리가 비었는데 나를 스카웃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솔직히 그다지 옮길 생각은 없었지만...조건도 조건이지만 그 선배와 같은 팀이면 둘이 낚시로 죽이 착착 맞을 거 같은 생각에 일단 다음날 점심식사를 함께 하면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회사 근처 한적한 곳에서그 선배를 만나 점심을 함께 했다. 그러나..... 어제 잠시 그 회사와 그 선배의 팀에 대해 주변 탐문을 해본 결과는 그닥 내게 달갑지는 않은 소문이기에, 난 정중히 그 제안을 거절하였다. 못내 아쉬워하는 그 선배와 같이 헤어지려는 무렵. "여~ 이게 누구야?" 이런....내 팀의 부장이 그에게 아는 척을 하는 것이 아닌가! 둘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예전 첫직장의 동기였던 것이다. 세상좁지... "그런데....여긴 왠일이야? 그리고, 우리 김대리하고는 어떻게 알아?" 아차! 순간 나의 뇌리속에는...몇달전의 병가때 다닌 낚시와 그 때 내게 선탠한 것처럼 까매진 피부에 대한 질문이 떠올라 등짝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어, 알고보니 이 친구, 나처럼 꾼이더라구.... 아, 지난 여름에 말야, 같이 낚시를 했는데....어쩌구저쩌구..." '으악~~~~! 안 돼~~~~~~!!!' 이미 나온 말....젠장.........*됐다. 병가때, 회사는 그 바쁜 시기에 복귀해서 일은 안하고 탱자탱자 낚시를 다닌 것이 다 뽀록 났으니.... 성질 더럽기로 소문난 우리 부장이니...나를 곱게 보진 않으리라. 역시나, 나를 흘낏 바라보는 부장의 시선이 그닥 곱지않게 느껴진다. 이 자식 봐라~? 하는 살기가 느껴진다. ㅜㅜ "그런데 이 친구. 자네 팀이었어? ㅋㅋㅋㅋ.....난 그것도 모르고...자네 사람 잘 두었네." "무슨 소리야?" "아, 내가 자네 사람 좀 빼갈라고 사실 온 건데... 이 김대리가 한사코 자네 밑에서 떠나려하지 않으니 말이야." "뭐? 아니 이 친구가! 누굴 데려갈려고...?" "ㅋㅋㅋ...암튼...돈보다는 자네가 더 좋단다. 잘 좀 해주라고." 그런 말들을 끝으로 그 두 부장은 서로 헤어지고, 난 어색하게 나의 부장과 어깨를 나란히하고는 회사쪽으로 걸어 갔다. 싸~~~하게 아무 말도 않는 부장뒤를 따라 걸어가는 내 모양새는 아마 선생님한테 끌려가는 중학생보다 더 비참해 보였으리라. '.........(아,....참 어색하네 이거....)' '..............' '....아, 이거 불편해서 살겠나...최소 몇 달은 죽은 듯이 지내야하나....' '..............' "야, 김대리." 잠시 이어지던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연 것은 부장이었다. "네? (화들짝....)" 드뎌 한마디 나오겠구나...했는데 이부장의 그 다음 말은 의외였다. "다음번 낚시 갈 때는 나도 한번 데려가줘라." "네???? .........네....그러지요." "자식....좋은 데는 혼자 다니지말고 같이 좀 다니자구." 어리둥절하며 슬쩍 바라 보니... 나의 어깨를 툭툭치며 나를 바라보는 이부장의 얼굴에는 나의 불안을 한번에 잠재우는 평소의 그답지 않은 어색한 웃음이 가득해 있었다. ******************그 후 1년뒤.... 이부장은 어느새 저의 낚시 제자가 되어 있었고, 제게는 뽕선배(이름중 봉자가 들어가서)라는 다른 이름으로 조금은 친숙하게 오랜 시간을 함께 동반출조를 하며 추억을 공유하였습니다. 이제는 20년이 다 된 지나간 그 시절이 때로는 그립습니다. 꾸벅.************
병가의 추억 (커뮤니티 - 추억의조행기)

3등! IP : 11cbaada88d039e
직장생활중 상사와 같은 취미활동으로 동행한다는사실이 참 좋으네요.

일주일만 쉬고싶다 장박낚시가고싶다 나도~~~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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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2b8538189199241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회사에 같이 낚시 좋아 하는 직원한명만 있어도 좋을텐데...
추천 0

IP : b8fbc214ea6f241
좋은 제자를 두셧네요......
뭔가모를 유모와 짠함이 같이 함께하는 글이였읍니다
덕분에 잘읽고 갑니다.....
추천 0

IP : 4888de63d521f73
행복한 시절이였네요..
사람사는 냄새를 맡고 가는 느낌입니다.
늘,, 행복한 조행길이 되시길바랍니다.
추천 0

IP : 01f290098100167
좋은 추억 오래오래 잘 간직하시고

늘 안출 하시기 바랍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