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지의추억...............
컴 초보가 타자 연습할겸 옛추억을 기억속에서 꺼내서 써보는데
읽어버렸던 추억을 오랜만에 기억하려고 하니 아스라이 떠오르는
지나간 생각들이 가슴한편을 시리게하는군요 .
컴퓨터로 글씨 쓰는것을 연습할겸 한 두편만 올리고 끝내려 했었는데
제글을 성의껏 봐주시고 댓글들을 달아주신 많은분들과 쪽지를 보내주신분들의 성의에
또 옛 기억을 꺼내보는 회상의 재미때문에 또 한편을 올립니다.
평생낚시만하고 살아오지 않았기에 지나간낚시에대해
생각나는 기억이 한계가 있을수밖에 없어 앞으로 몆편이면
나의 추억의조행기는 막을 내릴것같습니다
또 장문의조행기를 올리는이유는
이왕 올린글 될수있으면 재미는없지만
성의있게 쓰자는의미에서 일부러 길게 썼봤습니다 .
지난주 일때문에 앙평을지나 홍천쪽으로 돌일이있어
정말 오랜만에 양평을 다녀왔습니다.
몆십년만에 양평지방을 가보니 정말 산전벽해가 무었인지 알겠될정도로
그지방이 몰라보게 변해 있었습니다.
옛길은 사라지고 새로생긴 도로가 고속도로 못지않게 잘 건설되어 있었습니다.
예전에 서울에서 강원도가는길의 하루종일 걸리던시간도
이제는 몆분의일의 시간이면 왕복이 가능해져 세상이 변하는걸 실감하게 됐습니다.
예전 아주오래전 강원도와 설악산의 추억을 가지신 분들이시면 한번쯤은 옛양평을
지나 인제 양양을 지나 강원도로 진입하던 길을 따라달리던
추억을 하나쯤은 가지고 계실텐데 제가 그길을 자주다니던
시절에는 서울에서 강윈도로 가는 도로는 지금의 국도보다도 구불구불 길이좁고
느리기로 유명하던 영동 고속도로와 양평을 지나가는 국도가 거의 유일한 길 이었습니다.
당시 영동고속도로는 국도보다도 느린 세계유일의 고속도로로 악명이 넘쳤는데
국도보다 길이좁고 지금은 안그렇지만 당시는 구불구불한 코너길도 많았고 사고도 많았는데
휴가철 성수기에는 그악명이 더 빛을발했는데 서울에서출발 속초까지 18시간이 걸린적도 있었습니다.
국도도 시간이많이 걸리는것은 마찬가지지만 대신 국도는
서울을떠나 강원도에 도착할때까지 휴계소 식당 카페등 편의시설이 좁은 국도변을 따라
끝없이 늘어서있고 길을따라 볼것도 많고 경치도좋아 저는주로 강원도에갈때는 국도를 이용했는데
나중에 다른도로가 생기기전까지 수십년간을 서울사람들이 강원도갈때는
거의 영동고속도로나 국도를 이용했는데 국도로가는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새로난길을 씽씽달려서 볼일을다보고 서울에서 하루를유하고 다시 그곳에 가게되었는데
다음날 다시그길을따라 교문리쯤 지났을때쯤 나의 젊은날
정말 숱하게 지나다녔고 설레였던 기억만 가득찼던 옛 국도가 생각나
기억을 더듬어 옛날길로 운행을 해봤습니다.
덕소를지나 팔당을지날때는 팔당댐 여울에서 배견지낚시를 할때
길게늘어진견짓대의 낚시줄을따라 꿈틀거리던 잉어만한누치를 처음잡고 좋아하던 생각도났고
남자들로 가득찬 낚시배들 사이에서 남자들 소변볼때마다 고개를돌리고
정작 본인은 바지를입고타서 용변을못봐 끙끙거리다 안나가려고 버티던 남자친구에게
큰소리치던 청순하게 생겼던 아가씨도 떠올랐습니다.
양수리다리를 지날때에는 그밑에서 도둑낚시를할때와 매일10시에 시계처럼 나오던
자전거를탄 공무원단속반원의 허허웃으며하던 이제 그만하고 가유 하던 넉넉한말투도 생각났고
X팔x팔하며 혹시 한마리가 더잡힐까 시간끌면서 최대한낚시대를 천천히접던 낚시꾼도 떠올랐습니다.
북한강을 따라가는강변길은 여전히 그림처럼 풍광이 수려했고
멀리로 비행기형상의 카페모습이 보일때에는 예전 그여인과 향기로운 커피를 앞에두고
카페주인인 가수 이용복이 까만색 선그라스를 끼고나와서
통기타를치며 노래하던 달맞이꽃의 향기로운 선률도 생각났습니다.
옥천을지나며 예전에먹던 옥천냉면의 시원했던 냉면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시고 가평을 지날때는 남이섬에서의소풍도 장마뒤 붕어섬에서의
하룻밤 수십마리의 때고기 조황도 한꺼번에 3마리나 잡았던
저수지붕어보다 높았던 강월척의 체고들도 기억이났습니다.
양평까지의 길옆으론 그전에 못보던 그림같은 건물들과
마치유럽주택같은 화려한 전원주택들이 수를해아릴수없이 많이 길을따라 산재해있었지만
양평을지나 강변길이 끝나고 옛길이시작되니 위로보이는 일자로쭉쭉뻗은
8차선도로와 그위를달리는 수많은차량들과는달리 2차선의 구불구불한도로와
어쩌다 한대씩 보이는 차량들 옆으로 촘촘한 간격으로 옛길을따라 끝도없이
이어지는 빈상가들 주유소 휴게소 식당등 한때는 화려했던
도로의 영화를보여주는 과거의 흔적들이 수십킬로나 이어져 있었습니다.
새도로가생기면 옛날길은 차량이줄고 그길에서 생업을 영위하던사람들도
피해를보지만 특히나 이길은 다른길과는틀리게 일정시대 이전부터
아주 오랫동안 강원도로 가는 거의 유일한 도로라 길을따라 끝도없이 영업하던가게들이
수십 수백킬로나 이어져있어서 얼마나 많은사람들이 새로생긴길을 원망하며
이곳을 떠났을까 생각을하니 한편으론 떠난사람들이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양평을지나 개군 지평을지날때쯤 저멀리 입간판에 지평이라는 글씨가 보이자
내가슴은 아스라이 떠오르는 옛기억에 뛰기 시작했습니다.
이유없이 답답해하던 젊은날의 어느 늦은 봄날
낚시짐을챙겨 집을 나왔습니다 쌀과 김치와 영념등부식2~3일치를 챙기고
당시유행하던 원형으로된 터널텐트와 이불을 양손에들고
5단낚시가방을 등에 메고 청량리역으로 가는데 이고 지고 메고
마치 피난민 같은모습으로 길을걸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들이 전부 나를향합니다.
웬지모를창피함에 땅만처다보며 걸었습니다.
이고 지고 낑낑메며 청량리역에 도착하여 비둘기호에 올랐습니다.
요즘 젊은분들은 비둘기호열차를 모르는분이 많으시겠군요 .
비둘기호는지금은 없어진 통일호열차보다 더 속도가 느리고 작은간이역에도 모두정차하는 옛날말로하면
완행열차를 말하는데 아주오래전엔 열차를 완행 급행으로구분하다가
세월이흘러 제일빠른 새마을호와 그밑의 무궁화호열차 그밑의 통일호열차 그리고 제일느린
옛날의 완행열차인 비둘기호로 구분되었는데 주로 출퇴근 통근열차로 자주 용되던비둘기호는
극악의느린속도로 모든 시골간이역마다 정차를하던 지금은 사라진추억의열차인데
저와 동시대를사셨던분들은 아마 아침저녁 통근차로 통학하던 기억이나 대성리나 강촌으로의 여행길에
빠지지않고 등장하던 비둘기호의추억을 하나쯤은 가지고 계실겁니다.
지금은 비둘기호도 없어지고 그보다 고급기차였던 통일호마저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저버리고
전국을 2~3시간으로 단축시킨 Ktx열차가 다니는시대가왔으니
느리게가던 옛날사람들은 서울에서부산을 두시간만에 가는세상이온다는걸 상상도 못했겠지요
등이 다젖을만치 땀을가득흘리고 겨우 비둘기호열차에올라 쿠션하나없는
딱딱한 의자에 몸을언고 청량리역을 떠나 도농리역 금곡역을지나
창밖으로흐르는 강과 산과 풍경들을 보다가 스르륵 잠이들고 말았습니다.
윈래 목적지는 예전에 가본적이있던 메기가 잘나오던 양평근처의 샛강인데
잠결에 깨어보니 기차는 이미 내려야할 양평역을 한참 지나고있었습니다.
부랴부랴 얼른짐을 챙겨 다음역에 내리니 그곳이바로 지평역이었습니다.
덩그라니열차에서 나혼자내려 주위를 살펴보니 사방으로로 보이는것은
몆채의 시골집들과 논과 밭과산밖에 안보였고 사람이라곤 나와 깃발을들고 열차가 들어올때
신호를하던 역무원밖에 없었습니다. 기차역에내린 유일한승객인 나에게 눈인사를 건넨
역무원이 역전안으로 들어가자 시골역 플랫홈 나무로된 간이의자에 몸을 기대고않아
열차에서 자다가 일어난 이사태를두고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지평역은 이주작은 간이역으로 당시 울타리도없이 사방이 훤히보였는데
일어나서 주위이곳저곳을 살펴도 강이나 낚시할만한곳은 보이지않았습니다.
다시 자리에않아서 양평역으로 돌아가서 원래의 목적지로 돌아가느냐
아니면 좀더가서 홍천강이나 모곡쪽으로 가느냐를두고 갈등하고있을때
저멀리서 헛것처럼 낚시가방을멘 낚시인이 다가왔습니다.
한손엔커다란보퉁이를 또 다른한손엔 물로 출렁이는 노란색삐꾸를 들고
다가오는 낚시꾼을본순간 내걸음은 자동으로 그분께 다가갔습니다.
"어르신많이잡으셨습니까?"
"뭘 그냥 조금잡았지 "
보여달란말씀도 안했는데 자랑가득한 얼굴로 열어준
삐꾸에가득찬 붕어들을본순간 내고민도 끝이났습니다.
"와~ 정말많이잡으셨네요"
리액션가득한 나의탄성을 기분좋게 이해하신
초로의신사께서는 옆에 쌓아놓은 내 낚시짐을보며 한말씀하십니다.
"지평지에 낚시온겨?"
아!!!!!~지평지라는저수지에서잡으셨구나 !!!!!
" 예! 어르신 지평지에 낚시왔는데 어딘지몰라 헤메고 있습니다"
천연덕스럽게나오는 나의 거짓말에 어르신께선 친절하게
저수지의위치와 가는길을 알려주시고는 당시로는
전혀 이해하지못할말을 하시고 가십니다
"저수지에 도착하면 집 옆 수조앞으로 않거나 거기사람있으믄
집앞에 톡 튀어나온 골짜기에 않어~ 익깝은 딴거 쓰지말고 감자만 써~"
????익깝은 뭐고 감자는 또 뭐래????????
당시 지렁이에 떡밥만 쓰던 저에게는 전혀 알아듣지못할 난수표같은 말이었습니다.
그 어르신이 가르쳐준길을따라 짐을들고 길을나섰는데
초여름땡볓에 무거운짐을 메고 들고 가는길은 정말 녹녹치 않았습니다.
얼마안가 나온다는 현지민 이신어르신의 말만믿고 가다가 쉬고 가다가 힘이들어
또 쉬고 한참을가도 지평지는 나오지않고 뜨거운태양아래 땀만비오듯이 쏟아지고 갈증만 심해졌습니다.
걷다가 지쳐 나무그늘에서 푹 퍼져있을때쯤 저멀리서
어떤꼬마가 제몸보다 더큰 까만색 짐자전거를 안장에 올라타지 못하고
페달사이에 발만넣어 선채로타면서 내앞을 지나갔습니다.
"예~ 꼬마야" 나는 얼른그꼬마를 불러 세웠습니다
내앞에서 자전거를세운 8살쯤되는 꼬마에게 나는 낚시가방에서
건빵을 한봉지꺼내 거래를 제안했습니다.
"네가자전거를 잠시 빌려주고 저수지까지 안내하면 이건빵을 네게주마"
꼬마놈은 흔쾌히 콜을했고 나는낚시짐을자전거에싨고
꼬마의 안내를 받으며 지평지로갔습니다 .
얼마쯤가자 산속에 그림처럼 이름다운 저수지가나타났습니다.
3만평의ㅗ짜형태의 크지도 작지도않은 저수지의 한쪽에 어르신이말씀하셨던
함석지붕의오래된집이 한채있었고 그외는 아무런인공 조형물이없는정말
오염않됀 아름다운 저수지였습니다.
어르신이말했던 앞골짜기엔 두사람이 이미텐트를치고
낚시중이셨고 나는할수없이 어르신이 알려준 집옆으로
자리를잡아 낚시자리를 만들고 당시유행하던 터널형 일자텐트를치고
지친몸을 뉘였습니다 피곤에 한참을 골아 떨어진후 허기에잠이깨어
부랴부랴 집에서준비해간 김치를꺼내고 된장찌게를끓여 밥을먹었습니다.
한참밥을 정신없이먹는데 옆에서누가보는것을느끼고 고개를돌리니
아주 나이가많은노인한분이 내 톈트옆에않으셔서 물가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아! 어르신안녕하세요"
"낚시온겨?"
"예 ! 어르신 낚시왔습니다"
"나 저그사는 사램이여"
물가의집을 가르키십니다
"아!예!어르신"
"밥먹나보네"
"아! 예! 어르신"
"반찬이그게뭔가?"
김치하나뿐인 내밥상이 않되보이셨나봅니다.
"이따가 우리집으로 와"
한말씀하시더니 일어나십니다.
"예? 예 ! 어르신"
얼떨결에 대답하고나니 뭐가뭔지 멍합니다
낚시준비를끝내고 물가에 지은근방의 유일한집을 구경삼아 다가갔습니다.
아주오래된 흙집에는 방이두개 있었고 방두개를 합쳐놓은 넓이의
커다란옛날식 부억이 있었는데 가마솥에서는 뭔가가 끓고 있었습니다.
특이하게 부억바닥에는 이불이 깔려있었고 그위에서 커다란 어미개가
새끼 일곱마리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습니다.
가마솥앞에서 뭔가를 끓이시던 구멍난 메리야스를 입으신
백발의할머니께서 나를보고 물으십니다.
"뉘슈?"
뒤에서 영감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내가불렀어 밑반찬이나 좀 줘서보내 종호한테 과자도주고 했나봐 "
"아~그려유?
알고보니 아까나와거래한꼬마가 이할아버지 친척손자쯤 되었나봅니다
영감님집에 들려서건빵자랑을 했고 그말을 들으신영감님께서 나를보시다가
거지처럼먹던 내밥상에 측은지심이 드셨나봅니다.
건빵한봉지가몆곱절로 돌아와 싫다고 극구 사양을 했는데도 할머니께서는
된장깻잎과 여러가지짱아치와 열무김치등을 내게 바리바리싸주셨습니다
반찬을싸는동안 이곳저곳을둘러보니 집옆으로시멘트로쌓은커다란수조가보이기에
가서보니 수조속에는 커다란 붕어잉어들이 수십마리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와~ 어르신 이고기는 무슨 고기예요?"
"내가 잡아논거지 무슨고기는 이 저수지 고기지"
"그물로잡으신거에요?"
무슨소리!전부낚시로잡은거야"
"와!어르신낚시 정말 잘하시나 보네요 이렇게 잡으셔서 파시는거예요?"
"팔기도하고 내가 먹기도하지 저수지가 오염안돼서 여그고기가 달아 아주
이따가 몆마리마리 갖다먹어"
"에이어르신 저도이따 낚시해서 잡을텐데요뭐"
"저기 저 밭 보이지?"
"예!어르신"
"여그부터 저그까지가 내밭이여 고추도있고 호박도있고 파도있응께 갈때까지 맘놓고 따다묵어"
"어이쿠~아닙니다 괞찬습니다 어르신"
"괞찬혀 ~ 우리먹으려고 키우는건데 한참남아 맘놓고 묵어도되여 어른말들어 "
얼떨껼에 반찬과야채를한꺼번에 해결한 나에게 뒤이어 말씀하십니다
"이따가 내 새우망을빌려줄터니 갖다 물속에넣어 새뱅이를잡아~"
"예?새뱅이요?"
".손톱만시 짝은새우있잖여"
"고걸잡아서 호박하나따다넣고 된장풀어서 끓이면 시원허니 아주맛나~"
"여기새우도 잡히나요?"
"그럼새우망하나만넣어도 수북하게 새뱅이가잡혀~
"튀겨묵으면 맛난징거미도있어"
"아ㅡ예 그런데어르신 왜 개를 부엌에서키우시나요?"
"새끼를낳아서그려 아무리 말못하는짐승이랴도
지살째고 새끼를낳았는데 춘대두면 안되는겨"
"아ㅡ예"
정말 인정많은 영감님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반찬과 텃밭?을 잔뜩얻은나는 자리로 돌아와 낚시를하기 시작했습니다.
찌맞춤을 먼저하고 삼봉바늘을달고 지렁이를꿰여 채비를 던져넣었습니다.
당시는지금과다른 아주 투박한채비를 가지고 낚시를하던시절인데
초보는주로 인찌끼 채비를 경험많은낚시인도 거의바늘은 삼봉바늘에
바늘을 안달고 찌맞춤을했는데 찌가 아래로서서히 가라않으면 찌맞춤이 끝났습니다.
바늘을달고 한목 두목올라오도록 찌를맞추는 요즘과 비교하면 무식한 찌맞춤이지만
그땐그게표준이었습니다 바늘도 거의 삼봉바늘을 썼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무식한 채비인데
당시붕어는 그무식한채비를 거리낌없이 물고나오던 정말 순진하고 착한물고기였습니다.
캐미를꺾어밤낚시를시작하자 건너편에서도 캐미불빛들이 여러군데서 반짝이는데
한쪽구석에서오랜만에보는 칸델라불빛이깜박입니다.
지금은역사속으로완전히사라진추억의불빛인데
당시는 가끔영감님들이 사용하는걸 볼수있었습니다.
달도없는 깜깜한밤에 반짝반짝 어여쁜 캐미불빚3개를 앞에두고
담배를한대피우니 품어지는 담배연기를 따라
온갖잡생각들이 빨려나가 무아지경 아무생각도않납니다.
새우망을 물에넣고 나른한 밤 여운을 즐기는데
건너편에서 따르르르르~ 깡통방울 풀리는소리가나고
곧이어 풍덩거리는 고기잡는소리가났습니다.
곧이어 다른쪽에서도 딸랑딸랑릴방울 소리가 울리더니
퍼더덕 거리는고기튀는소리가났습니다.
그소리를 신호로 이곳저곳에서 방울소리들이 정신없이 밤늦도록 울려댔습니다.
밤새지렁이를물고나온 잔챙이들과씨름하며7~8치급서너마리를잡아
뿌듯한마음으로 아침산책겸 건너낚시하던던곳을 둘아보니
낚시하는낚시꾼들 살림망마다 내가잡은건 비교도안될만큼
큰덩어리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부러움을뒤로하고 낚시자리로돌아와서 어제밤에 넣어던 새우망을건져보니
쌀알많한 새우들이 바글바글 들어있었습니다.
염체불구하고 어르신텃밭에서 호박을하나따고 풋고추를
몆개따서 어르신이 알려주신대로 된장을풀어국을끓이고
풋고추 를찍어 시골밑반찬과 같이먹으니 천국의맛이 따로 없었습니다.
아침식사를하고 어르신집에서 물을한통 받아다놓고 물을한잔마시는데
정말 물이너무 달아서 정신없이몆잔을 더 마셨습니다.
배도부르고 포만감에 텐트에들어가 잠을 때리는데
얼마나잤을까 밖에서어르신께서 부르는소리에 잠이깼습니다.
"어이 점심은우 리집에서 먹세"
괞찬다고 극구사양하는 나를데리고 집으로갔더니
매콤한 비빔국수를 할머니께서 해놓으셨습니다.
맛있게먹고 앞마당을 바라보니 어르신께서 쳐놓으신 방울낚시가
4개보였습니다.
"어르신께서 잡아놓으신 수조안의붕어도 모두 저 방울낚시로 잡으셨나요?"
"그럼내가 저 방울로 감자껴서잡았지!"
"예?감자요?"
"그랴! 여그는 떡밥이랑 지렁이쓰믄 찌깐한놈밖에안나와"
"여그 동네사람들은 전부 감자써"
그러시면서 시범을보여 주셨는데 삶은감자를껍질을
벗기시더니 철사로 가운데를뚫고 그곳으로 바늘을넣어
바늘을꺼내 감자이곳저곳에 끼워보여주셨습니다
"어르신 저는 릴낚 안하고 대낚 하는데요?"
대낚하믄 삼봉바늘에 감자를 깍뚜기처럼 썰어 끼워봐
그라믄 큰놈이물껴"
" 왜? 감자없써?저그창고에 잔뜩있응게 맘놓고 갔다써
근데 삶을때 조심혀 꼭 저수지물로 삶아야혀 수도물로삶으믄 냄새땜시 고기가 안물어"
어르신 말씀대로감자를몆알얻어 낚시자리로 돌아오니
나에게지평지를알러주신 어르신께서 내옆에서채비를 꾸리고 계십니다.
반가운마음에 인사를하니 어르신께서 반갑게 맞아주십니다
그 어르신과 이런저런 이야기를해보니 그어르신도 근처 개군이라는 동네에 사시는데
지평지를 자주찾으시는데 역시미끼는 감자를 쓰신답니다
저녁밤을지어 어르신과 같이먹은후 감자를깍뚜기만하게 잘라 삼봉바늘에 끼워
밤낚시를 시작했는데 세상에 난 감자를 처음 써봣는데 그렇게 입질이 좋을줄몰랐습니다 .
한밤중이되자 지렁이를 끼워논 낚시대는 감감무소식이고
감자를끼워논 다른낚시대 두대만 밤새 불이났습니다
어제밤과는 비교도 되지않는 덩어리들이 나오기시작했는데
삶아논감자가 떨어질때가지 소나기입질이 들어욌습니다.
찌도 죽쭉 끝까지 잘 올려주었는데 정말 신나게 낚시하는게 무엇인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옆에서 낚시하던 어르신은 가셨다 오후에 오시고 나는낮엔 자고
밤엔 낚시하는일을 이틀을 더 했는데 두번이나 더 어르신께 불려가서 밥을 얻어먹었습니다.
2~3일치식량을가지고와 5일을 버티고 다음날철수하려고
짐을대충 싸놓는데 옆에서 낚시하던 어르신께서 물어보십니다.
"왜 내일 가려고? 고기도잘나오는데 몆칠 더 하다가지?"
"아이구~ 어르신 나도 더하고 싶은데 쌀도 떨어졌고 이틀 예상하고와서 5일짼데 내일쯤은 나가봐야지요"
옆에서 낚시하시던 어르신이 아무말씀 안하시다 다음날 오신다고 나가셨습니다
다음날아침 텐트에서 잠을자는데 텐트앞에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나서 나가보니
세상에 옆에서 낚시하던 어르신이 커다란푸대에 하나가득
쌀과 김치와 부탄가스 와감자를 가득 담아서 자전거에 싨고 가져 오셨습니다.
아~~~~~~~~~~!!!!
놀라는 내게 어르신은 껄껄웃으시며 말씀하십니다.
"놀아도 젊었을때 놀아야 재미있는거야 잔말말고 몆칠 더 놀다가 가 "
인정에 취해서 2박3일을 낚시하러 갔다가 25알만에 나왔습니다......................................
철수하려고 25일만에 지평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기차가 도착한후 기차에 올랐어도
뭔지모를 아쉬움에 자꾸 뒤를 보게됩니다 .
기차가 개군을지나 양평역에 도착할때쯤 기차에서 내렸습니다.
양평역앞 자주가던 낚시가게에 낚시짐을 맡기고 양평시장으로가
고기를 몆근사고 할머나가 좋아하시는 박하사탕을 몆봉사고
두분옷을 한벌씩샀습니다.
택시를 잡아타고 그곳으로 다시갔습니다
두분다 밭에 일하러 가시고 아무도안 계셨습니다.
부억에서 강아지만 나를 반겨주었습니다.
택시기사에게서 볼펜과 메모지를 빌려서 메모를 남겼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신세 많이지고 갑니다 건강하세요.
그후 아주오랫동안 거길 못가다 언젠가 한번 들렸는데
그곳은 유료 낚시터로 변해있더군요.
관리사무소와 물위에 떠있는 좌대들이
예전 함석지붕집과 대조되어 내맘을 더 쓸쓸하게 만들었습니다.
내 젊은날의 25일을보낸 지평지도 나와같이
세월의흐름은 거슬릴수는 없었나봅니다
이번에들려보니 주위는 더 번잡해져있더군요
예전에 물가에 외로히 집한채가 있을때가 행복할까요 ?
아니면 가슴에 좌대들과 주위에 팬션들을 품고잇는 지금이 더 행복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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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리도 아쉬움이 가득 한지요 소박사님...
젊은시절의 추억을 님께서 자꾸 끄집어 올리는군요...
몇번 더 들려야 되겠습니다~~~~~흠뻑 젖어서 갑니다~^^
따스한 정 가득한 조행기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읽으며 예전 생각 많이 나네요....
건강하십시요...
따뜻한 고향 같은 글
아흐~^^
지평저수지에 추억을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25일간에 행복한 대박낚시추억은 평생 가지고 사시겠네요^^~
수필한편 읽는듯 예전의 여유로운 시골 풍경이 한눈에 그려집니다
소박사님 글 솜씨가 대단하십니다 정말 잘읽고 갑니다~
언젠가 저도 그런 추억들이 생길까 모르겠습니다...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긴 글이지만 읽는내내 재미있었고 새록새록 옛생각이 납니다.^^
익깜!!! 울 고향에선 입감이라고 하지요.
강원도쪽은 감자가 좋은 미끼인거 같습니다.
한번도 써보지 못했는데..^^
한 편의 베스트극장을 보는 것 같았어요.
왠지, 비슷한 글솜씨를 느끼게 합니다
오늘도 감사히 즐감하고 갑니다^^
내 젊은날의 25일을 보낸 지평지...에서
울컥 눈물 날라 캣슴미더~ㅎ
잘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저는 바닷가에 살아서 어릴때부터 바다 낚시를 했는데.....
민물 낚시 경력은 그리 오래되지않아 박사님 처럼 아름다운 추억은 없습니다.
박사님 예전 낚시 할때와 지금은 너무 변해지요..
박사님의 아름다운 추억 한편을 내 추억인양 가슴에 묻고 갑니다.^^*
좋은 추억 잘 간직하시고요.
이젠 그당시의 인정을 느끼지 못하는게 안타깝습니다.
한 10키로 안짝 ^^
재미난 조행기 잘보고갑니다~
훈훈한이야기 재미있네요
감사합니다.
그때로 돌아갈순 없겠죠
그립다
추억이......
감동이 밀려오는 그리운 추억이네요.
좋은추억 오래오래 간직하시길...
잘보구갑니다.
꾸,,벅
소박사님 이곳에서도 왕성한 할동을..ㅋㅋ
자주들를께요 ^^ㅋ
01~02년도에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어 라는 드라마에 촬영지이기도 했습니다.
집과 가까운 곳이라 저도 소박사님에 추억을 떠올리며 출조해봐야겠습니다.
아...20살시절 원주부터 용문역까지 케이블 설치 알바를 해서 추억이 있습니다.
지평역에서도 했었는데...ㅋ
그땐 고기도 많았고
인심도 좋아 살맛났지요,,
풀내음, 물비린내 맡으며 심신이 맑아지는 낚시터를 찾아가는 것처럼
자게판에서 사람냄새나는 추억의 조행기로 와 대를 폅니다
훈훈한 추억이 감동의 쓰나미가 밀려오는듯 합니다
똑똑하고 현실적인 꾼의 소리들로 스트레스 받다가
조행기를 통해 구수한 된장같은 촌로부부와 그 때 그시절 함께하셨던 조사님들과
겪으신 사람냄새가 좋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늘 행복한 날되십시요
가슴이 아려서~~~ ㅎㅎ
20년 전의 자라섬 샛수로 생각이 너무도 간절하네요~~
추억에 젖은 조행기 너무 잘 읽고 옛생각에 젖었다 갑니다
부디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낚시 하십시요.
더욱 즐겁고 행복한 낚시하세요
사는게 저런것인데요
잘 새겼습니다
읽고 있는 순간순간 너무나 따뜻함과
훈훈함을 피부로 와닿는 감동적 스토리 이였읍니다
현재로서 예전의 순순함과 따뜻함 훈훈함의
인간미를 주려 하여도 찿을려 하여도
너무 먼 이야기속 우화처럼 느껴지는 아따까움....
다시금 돌아가고픈 마음 이내요--....
감사합니다
소박사님의 나머지 조행기를 모두 읽었습니다.
낚시에서의 짜릿한 기억은 오래도록 선명하게 기억되는 듯 한데요.
한편한편이 너무 실감나고 흥분되고 마음까지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소양호를 지척에 두고서도 낚시는 한번도 못해 보았지만
향어낚시가 한창일 때를 경험한 듯 합니다.
이런 재미있는 조행기는 처음 접하는데 다음편이 무척 기대됩니다..
건강하신지요?? 소박사님의 글솜씨를 너무 좋아하는 애독자 입니다.
소박사님의 젊음이 고스란히 뭍어 나오는 글을 읽고 감동받았습니다.
건강하세요
뭐라고 말로 표현 할수없는 이감정 너무 징하네요..
좋은분들과의 만남 너무 행복한 느낌이 들어요..
앞으로도 좋은분 만남이 많이 있기를 바라고 행복한 낚시 되세요..
계시네요 잠좀자게 해주세요
충주호 3박4일 여정으로 출발했지만 충주호에 취해 13박14일만에 나왔던 추억이 있습니다!!
십오일 동안 낚시한번 해보는게 저에 소원이라 닉네임도 십오일 입니다!!!
14일 어찌 그리 빨리 지나가던지~~~~
소박사님의 젊은 시절로 빨려들어갔다
나온 기분입니다~
행복한 느낌 가득안고 글을 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