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옛날 산골 가난한 집에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배가 고파 온 종일 우는 게 일이었지요.
아기의 부모는 우는 아이에게 회초리로 울음을 멎게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매를 맞을 수밖에...
그날도 부모는 우는 아이에게 매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집 앞을 지나던 스님이 그 광경을 물끄러미 보다가 불연 무슨 생각이나 난 듯 집으로 들어와
매를 맞고 있는 아이에게 넙죽 큰 절을 올렸습니다.
이에 놀란 부모는 스님에게 연유를 묻습니다.
"스님! 어찌하여 하찮은 아이에게 큰 절을 하는 것입니까?"
"예, 이 아이는 나중에 정승이 되실 분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하고 스님은 홀연히 자리를 떴습니다.
그 후로 아이의 부모는 매를 들지 않고 공을 들여 아이를 키웠습니다.
훗날 아이는 정말로 영의정이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그 스님의 안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요.
감사의 말씀도 전할 겸 그 신기한 예지에 대해 물어보고자 그 스님을 수소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물어 물어 스님을 찾은 부모는 감사의 말을 건네고 바로 궁금했던 점을 묻습니다.
"스님, 스님은 어찌 그리 용하신지요?
스님 외에는 어느 누구도 우리 아이가 정승이 되리라 말하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빙그레 미소를 짓던 그 노승은 차를 한 잔 권하며 말문을 엽니다.
"이 돌중이 어찌 미래를 볼 수 있겠습니까? 허허허 그러나 세상의 이치는 하나지요."
이해하려 애쓰는 부모를 주시하며 노승이 다시 말을 잇습니다.
"모든 사물을 귀하게 보면 한없이 귀하지만 하찮게 보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법이지요."
이런 경우를 심리학에서는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합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것인데
다 아시는 내용이지만 그리스 신화에 '피그말리온'이라는 조각가가 있었습니다.
세상의 여인을 혐오했기 때문에 평생을 혼자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여인상을 상아로 조각하게 됩니다.
혼신을 다해 만든 조각상은 너무도 완벽한 아름다운 여인상이었습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여인상에 빠져들었습니다.
마치 살아있는 여인이라도 되는 듯 말을 걸기도 하고,
안아보기도 하고, 옷도 입혀보고 어울릴만한 목걸이와 반지를 착용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는 마침내 그 여인상을 간절히 원하게 됩니다.
때마침 자신의 고향인 키프로스 섬에서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를 기리는 축제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피그말리온은 그 축제의 제단 앞에서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신이시여! 조각같은 여인을 제게 주시옵소서..."
집에 돌아온 피그말리온은 그 여인의 조각상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입을 맞추는 순간 따뜻한 기운이 전해진 것입니다. 손에서는 체온이 느껴지고 심장까지 뛰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간절함이 현실이 된 것이죠.
이 여인이 바로 바다의 요정 '갈라테이아'입니다.
피그말리온은 결국 자신이 조각한 여인상을 사랑하다가 그 사랑의 힘으로 기적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어느 스님의 교훈'처럼 사물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그 사물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타인이 나를 존중하고 기대하면 이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로 사용하는데
이를 실험으로 증명한 하버드대학교 심리학 교수 '로버트 로젠탈' 교수의 이름을 따서 '로젠탈 효과' 또는 '자성적 예언'이라고도 합니다.
삶은 늘 우리를 시험하기도 하고 좌절의 쓴 맛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설령 아픔이 있었다 하더라도 아파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도 마세요.
견월망지(見月忘指)라는 말은
달을 보되 그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어떤 목표를 세웠으면 그 목적을 이루는 동안 생길 수 있는 자질구레한 일에 얽메어선 안됩니다.
스님의 교훈이나 피그말리온 처럼 간절히 바라고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질 테니까요
(옮긴 글)
당첨 될 때까지
사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