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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빨갱이 모략선동, 그리고 처벌받지 않은 천인공노할 학살자들,

IP : a7e08e4e5989087 날짜 : 조회 : 5428 본문+댓글추천 : 0

계속되는 빨갱이 모략선동, 그리고 처벌받지 않은 학살자들, 목숨바쳐 전범 일본제국주의로부터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한 독립군을 때려잡던 사대매국노들의 독재만행에 장애가된다면 반공이라는 이름으로 선량한 무고한 민간인조차 빨갱이로 몰아 무자비하게 학살해놓고 끈질기게 이를 비호하고 감춰오던 다따끼마사오 군사독재정권으로 이어진 유사반공 사대주의 친일매국세력들의 천인공노할 민간인 학살만행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않게하고, 간첩조작 빨갱이 종북몰이 선동으로 사회를 어지럽혀온 사대매국노들에 세뇌되어 길들여진 뇌경잭자들을 치유하려면... 무고한 민간인학살만행의 진실을 수십년 줄기차게 은폐하면서 우매한 국민들을 세뇌시켜오던 그들의 천인공노할 민간인 학살만행범죄가 늦은 지금이라도 반드시 한점 남김없이 철저히 단죄돼야 한다. ----------------------------------------------------------------------------------------- 처벌받지 않은 학살자들 [한국전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경주서 100명 넘게 죽인 이협우, 자유당 국회의원으로 ‘떵떵’ 학살자는 처벌받지 않았다. 그가 부하들을 이끌고 죽인 사람은 밝혀진 것만 100명이 훌쩍 넘는다. 그는 한국전쟁 중 국회의원이 됐다. 4·19혁명과 함께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지만, 5·16 쿠데타와 함께 풀려났다. 그는 민보단, 대한청년단 등 우익단체 단장을 지낸 자유당 출신 이협우 의원(2~4대·1987년 사망·사진)이다. 해방 후 학살이 벌어진 곳은 경주의 작은 마을 내남면이다. 이곳에서 유해 매장지로 꼽히는 곳은 4곳이 넘는다. ■ 좌익 협조 명분으로 총살 내남면은 경주에서 언양 방향으로 20분가량 차를 타고 가면 나온다. ‘지붕 없는 노천 박물관’으로 불리는 경주 남산 서남쪽에 있다. 지역 대부분이 산지라 인구도 적었다. 2016년 기준 인구가 5148명에 불과하다. 이 작고 평화로운 시골마을은 해방 직후 학살이 벌어졌던 비극의 무대다. 진상규명을 위한 유가족들의 투쟁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1일 경주시 유족회 관계자들과 함께 내남면 용장리의 민간인 학살 매장지로 향했다. 한 유족이 경주경찰서 내남파출소를 가리키며 “예전에 내남지서(파출소)가 이 근처에 있었다”고 말했다. 내남지서는 이협우 의원의 활동 근거지였다. 민간인이지만 허리춤에 권총을 찼다. 유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공공연하게 “나는 대한민국을 위해 사람을 죽였다”고 말했다고 한다. 자신을 반공투사로 내세우며 마을 주민들에게 “골로 보내버리겠다”는 협박을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를 두려워한 마을 주민들이 “(차라리 눈에 안 보이게) 서울로 보내버리자”며 국회의원에 당선시켰다고 유족들은 설명했다. 김하종 경주유족회장(85)은 일가친척 22명을 이 의원 일당의 손에 잃었다. 1949년 8월1일의 일이다. 또 다른 마을 주민 손모씨의 가족 8명도 김 회장의 친·인척과 함께 죽었다. 김 회장의 6촌 형은 소시장에서 소를 팔고 오던 중 끌려가 돈을 빼앗긴 뒤 내남지서 뒤편 골짜기에서 총살됐다. 같은 날 저녁 이 소식을 듣고 찾아온 5촌 숙모 등 4명도 골짜기로 끌려갔다. 다음날 민보단원 10여명이 명계리 김 회장의 친척집 방안에 남아 있던 친·인척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시신은 용장리 골짜기에 묻혔다. 좌익 활동에 협조했다는 명분이었다. 김 회장의 증언과 1960년 국회가 발표한 양민학살진상조사보고서 등을 종합하면 학살은 내남면 곳곳에서 법적인 절차나 근거 없이 벌어졌다. 모두 좌익활동을 막겠다는 이유로 공공연하게 이뤄진 즉결처분이었다. 1949년 3월8일 내남면 망성리에 사는 20대 남성 2명은 남로당원이라는 이유로 재판도 없이 총살됐다. 가족인 10~60대 여성 5명은 그날 산 채로 불에 타 죽었다. 죄목도 따로 없었다. 실제 남로당원인지도 불분명했다. 마을 사람들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었다고 했다. 우익단체 단장 지낸 이협우 내남면서 ‘좌익 처단’ 학살 유아·노인·여성 등 안 가려 1948~1950년에 140명 희생 내남면에서 희생된 이들은 경주유족회 추산으로 140명에 달한다. 1948년 3월부터 1950년 8월까지 2년6개월 동안 죽은 사람 중 60세 이상 노인이 19명, 10세 미만의 유아는 35명이었다. 여성은 58명이다. 1950년 7월22일과 8월11일 이틀 동안 좌익분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한 사람만 67명에 달한다. 학살이 수년간 계속됐지만, 마을 주민들이 직접 한두 차례 발굴에 나선 것을 제외하면 유해발굴이 제대로 이뤄진 적은 없다. 김 회장은 용장리 남산 밑자락의 도로변에 차를 세운 뒤, 물도랑을 건너 1~2분가량 짧은 거리를 걸어올랐다. 좁은 평지와 골짜기가 이어진 곳에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매장지입니다’라는 작은 팻말 4~5개가 눈에 띄었다. 경주유족회에서 세워둔 것이다. 오랜 시간 발굴이 이뤄지지 않아 세운 둔 팻말은 꺾이고 낡아버렸다. 김 회장은 골짜기를 가리키며 “여기서 그렇게 많이 죽이고 묻었다더라”고 말했다. 경주시가 유해발굴이 가능하다고 본 매장 추정지는 이곳을 포함해 내남면에 4곳이나 된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정한 우선발굴 대상지에 포함되는 곳도 있다. 김 회장은 “구체적인 증언으로 발굴 가능성이 높은 곳만 4곳이란 뜻이고 실제 매장지는 이보다 더 많다”고 말했다. [한국전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경주서 100명 넘게 죽인 이협우, 자유당 국회의원으로 ‘떵떵’. ■ ‘반공’ 정부, 민간인 학살 정당화 주민들 4·19 후 이협우 고소 1심 사형…5·16으로 물거품 군사정권, 유족회 와해시켜 학살을 주동한 이협우 의원은 이후에도 10년가량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내남면 일대에서 계속 생활했다. 학살을 목격하고 경험한 주민들은 4·19혁명이 일어난 뒤에야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이 의원을 고소했다. 그는 내남면 주민 85명을 살해한 혐의로 2차례에 나눠 기소됐다. 실제 학살 피해자는 더 많았다. 김 회장은 “유족회 간부들이 유족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자신들의 피해 사실은 고소 내용에 일부러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판은 1961년 2월24일부터 이듬해 5월15일까지 이어졌다. 검찰은 이 의원에 대해 상소심까지 모두 7차례 사형을 구형했다. 당시 재판 기록 등에 따르면 검찰은 사형을 구형하면서 “내남면 학살사건은 대한민국의 치욕적인 범죄이며, 아이히만의 유태인 학살사건에 버금간다”고 주장했다. 또 “대한민국의 국시가 반공이라는 것에 편승해 좌익분자의 가족은 물론, 자신에 반대하거나 재산이 있는 사람을 좌익으로 몰아 학살했다”고 했다. 1심에서 이 의원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직접 목격한 증인이 있는 일부 사건만 유죄로 인정됐지만, 김 회장은 “그래도 사형선고가 나와서 한시름 놓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형선고에도 불구하고 가해자 처벌은 결국 실패했다. 1961년 5·16 쿠데타 때문이다. 소송을 주도했던 유족회 관계자들은 쿠데타 이후 용공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혁명재판에 넘겨졌다. 유족회가 와해되는 장면을 목격한 주민들은 두려움 때문에 증언을 번복했다. 김 회장은 “유족회 관계자들이 혁명재판소에 끌려간 뒤, 주민들이 크게 위축됐다”며 “이협우의 부하들이 이곳저곳 다니며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고 협박해 증인들이 결정적인 증언을 번복했다”고 말했다. 가해자들이 처벌받지 않은 것은 내남면뿐만이 아니다. 아예 법정에 세우지조차 못한 경우도 많았다. 1950년 ‘거창보도연맹사건’의 학살 피해자 유족들은 법적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좌절감 때문에 4·19혁명이 일어나자 학살에 가담했던 마을 면장을 직접 살해하기도 했다.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유해발굴과 진상규명은 더욱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됐다. 유족들은 자식들에게 피해가 갈까 억울한 죽음을 함구하고 살았다. 내남면에 추정 매장지 4곳 “장례 치르게 유해 발굴하고 국가가 유족들에 사과하길” 내남면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사건 진상규명 운동을 연구한 이창현 서울역사편찬원 연구원은 “반공을 정체성으로 삼아온 정부가 민간인 학살을 오히려 정당화해온 측면이 있다”며 “이 때문에 민간인 학살 가해자가 처벌받은 사례 자체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안경호 4·9통일평화재단 사무국장은 “ ‘빨갱이의 자식’이라 손가락질을 받아온 유족들은 가족이 왜 죽었는지, 어떤 경위로 어떻게 죽게 됐는지 사실관계를 알고 싶어 한다”며 “유골을 발굴해 장례를 치르고 국가로부터 사과를 받을 수 있게 되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 유족들, 5·16 쿠데타 후 투옥·고문당해…국가폭력에 2차 피해 ‘특수반국가행위’ 혐의로 8개 지역 유족회 간부 18명 기소 중정서 갖은 고문…실형 살고 나와서도 경찰 감시 이어져 김광호 비대위장 “발굴 거의 안돼…대통령이 의지 보여야” 가해자들은 처벌받지 않았지만, 민간인 학살 피해자의 유족들은 도리어 옥고를 치르고 고문당했다. 4·19혁명 이후 처음으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과 유골 발굴에 나선 유가족들은 이듬해 5·16 쿠데타가 벌어진 뒤 다시 한번 국가폭력의 피해자가 됐다. 특수반국가행위를 한 혐의로 기소된 유족들은 5·16혁명재판소로 넘겨졌다. 경상남북도, 경주, 경산, 마산, 창원, 밀양, 금창(김해·창원), 동래 등 8곳의 유족회가 직격탄을 맞았다. 재판에 넘겨진 유족회 간부는 모두 18명에 달했다. 1962년 1월 김하종 경주유족회장(85)에겐 징역 7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1960년 9월 ‘경주지구피학살자유족회’를 조직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당시 김 회장은 ‘무덤도 없는 원혼이여 천년을 두고 울어주리라’는 구호를 내걸고 학살자 처벌과 피학살자 유해 발굴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학살에 가담한 군경 관계자나 우익단체의 회원들은 전국에 있는 유족회를 찾아가 사무실을 부수거나, 매장지를 훼손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감옥에서 풀려난 뒤에도 경찰의 감시에 시달렸다. 매일같이 경찰이 찾아와 점심을 먹고 갔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그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당시 경주시장이 신원 보증을 서줘 지역 중·고등학교 교직원 자리를 겨우 얻게 됐지만, 교직 생활을 하면서도 신원 특이자라는 이유로 사찰 대상이 됐다. 김 회장은 전국유족회 사건으로 재판을 받은 18명, 1960년 전국유족회 발족에 서명한 33명 중 유일한 생존자다. 김광호 전국유족회 비상대책위원장(66·사진)의 아버지인 고 김영욱 선생은 당시 전국유족회의 총무 간사로 활동하다가 39세에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김 위원장의 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인 김정태다. 그는 1950년 경남 김해시 진영읍에서 벌어진 보도연맹 학살 사건에 휘말려 살해당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세탁·염색업을 하며 재산을 모은 아버지가 4·19혁명 이후 사비를 털어 학살당한 할아버지의 시신과 유골 272구를 발굴하고 위령제를 지냈다”고 말했다. 당시 9세였던 김 위원장도 상주 역할을 맡았다. 5·16 쿠데타 이후 김 위원장의 아버지는 1961년 10월 서대문형무소에 갇혔다. 남산의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고문당했다. “김 선생, 그냥 (김일성) 만났다고 하고 도장 찍으면 풀어줄게.” 수사관들은 수감 생활로 굶주린 김 위원장의 아버지에게 짬뽕을 사주며 설득했다. 도장을 찍는 순간 사형당할 거라고 생각해 거부했다. 고문이 뒤따랐다. 거꾸로 매단 후 짬뽕 국물에 고춧가루와 식초, 각종 오물을 넣은 뒤 얼굴에 부었다. 의자에 묶어놓은 채 M1 소총의 개머리판으로 발가락을 ‘탁탁’, 내려찍었다. 세번째로 발가락을 내려찍을 때 기절했다. 가장 약한 것이 전기고문이었다. “빨갱이를 장례 지냈기 때문에 너도 빨갱이다.” 혁명재판소는 김 위원장의 아버지를 다그쳤다. “해골에 빨갱이라고 써있기라도 합니까. 사람 도리로 죽은 사람 장례 지내는 게 죄입니까”라고 따져 물어도 소용없었다. 핍박은 감옥에서 풀려난 뒤에도 계속됐다. 어선이 납북되거나 북한에서 총이라도 쏘는 일이 생기면 김 위원장의 아버지는 어김없이 어디론가 끌려갔다 낯선 장소에 버려졌다. 그가 고문당한 사실을 김 위원장을 비롯한 자식들에게 처음 알린 건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총에 맞아 죽고 나서 열흘쯤 지났을 때였다. 그 모든 게 민간인 학살을 알리려고 유족회 활동을 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김 위원장은 “6·25전쟁으로 숨진 군인들의 유해 발굴은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다. 반면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의 유해 발굴은 전혀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족회는 전국에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족이 10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면서 “여야는 물론 대통령 역시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1등! IP : e51ca7a5182b405
휴..
댓글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네요..
제가 총대를..ㅎㅎ
경향에서 읽었습니다..
추천 0

2등! IP : a7e08e4e5989087
이런 천인공노할 만행에 애써 모르쇠하고 마치 그들의 홍위병이라도 된 것처럼

이념모략질로 무고한 양민을 학살했던 만행을 눈감고 덮어둔 채
오히려 그들의 허무맹랑한 빨갱이 모략질 뒤집어씌우기에 부종하면서 이념모략선동질에 미쳐있는자 들라면 무슨 할말이 있겠습니까...
그져 할말이 없어 입쳐닫거나 숨어서 손꾸락질하거나 그 학살만행행태를 지적하는 사람을 향해 쌩뚱맞는 인신공격이나 할 수밖에요 ...
평소 늘 하던 그들의 행태가 숨어 있을지 또 발광할지 좀 기대 됩니다.
솔라이스님은 기대되ㅏ지 않습니까?...ㅎ
추천 0

3등! IP : c434e5d2062121b
본문글 잘해놓고.
댓글에 쌈질하자고 불지르고
에효 , 왜 글케사는지,
쌈하는게 글케 좋은지
추천 0

IP : c53924a98750b6e
지구의 역사는 승자의 역사입니다

윗 어른들의 말에 의하면
낮에는 순사놈이 사람죽이고
밤에는 빨갱이가 식량약탈과 방화 살인을 하였다고 합니다

바로 저의 뒷집은 순사앞잡이 집이라
밤에 빨갱이들이 방화를 하자
자다가 놀라서 뛰처나온 집주인을 총으로 죽였다고 합니다

다음날 불난집의 큰아들이 빨갱이 앞잡이를 칼로 죽이고
일본으로 밀항을 하였다고 합니다

빨갱이 처단하고 친일 처단하면 누가 남을까요
추천 0

   

IP : a7e08e4e5989087
나라팔아쳐먹은 사대매국노들이 미군정아래ㅔ 완장차고 그 반민족사대매국 학살만행범죄를 감추려고 반공을 내세워 무고한 양민을 빨갱이로 몰아 고문하고 죽인 천인공노할 범죄가
왜? 빨갱이 탓인가요?
무고한 양민을 빨갱이로 몬 천인공노할 범죄를 감춰주려고 한장한 사람들은 친일사대매국노들로 족합니다.
그런 모략질로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던 친일사대매국노들이 아닌 일반국민이나서서 일부 정치적 좌편향사람들을 빌미로 쌩뚱맞는 빨갱이 타령을 해대며 양비론으로 본질문제를 물타기해대면 그게 정신을 온전히 가진 행동인지..참....
[정치적 이념성향을 각자 자유로이 가질수 있는 기본권과 정치적 이념이 다르다 하여 빨갱이 모략질로 무고한 국민을 학살하는 천인공노할 범죄를 구분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참....
차라리 입을 ㄷㄷ고 있으면 그 시커먼속이 드러나지나 않을것 아니겠는지..기가막히고 코가막힐 노릇....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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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a695c8cbfbd827a
넘길어 중간속독
시대적으로도
참 가슴아픈 일들
많이 격은 선인들이지요
현재도 유전무죄가 통용되는
세상인지라 억울한 삶도
많지요
옮긴글 요점정리 좀 부탁합니다
낚 관련 사이트라
낚시에 대한 에피소드
들도 간략하게
부탁드립니다
닉네임도 부드럽게
정수영부 로 추천해
봅니다
또 욕먹게 생겼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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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c53924a98750b6e
좌파성향의 글은 이상하게
인도식으로 장황하고 길어요
다들 인도유학을 하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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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a7e08e4e5989087
만일...
천인공노할이념모략질 양민학살 범죄가 그런 씨알도 안먹히는 좌파타령으로 덮어질거라 생각하면 그건 정신착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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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c53924a98750b6e
님 백제와 고구려를 무력으로 삼국통일한 천인공노할 신라도 다 때려 죽이고
우리를 침략한 몽고 와 중국도 다 때려 죽여주십시요

글을보면 적개심이 부글부글 끓는 적군을 보는 느낌입니다
에혀~~무슨 투견장도 아니고 님이 사용하는 단어들을 한번 돌아보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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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a7e08e4e5989087
묻지도 않않았는데 스스로 무슨 뚱딴지같은 신라 백제 고구려 타령을 갑자기 또....?

적개심은 또 뭐고?...누구 수박통에서 나온는 말?....


양민학살한 천하의 역적놈들을 미화하며 덮어주면서 천인공노할 역적놈들의 똥물빨아먹고살아온 버러지들이 시치미 뚝 잡아떼고서 무고한 사람에게 좌빨이니 종북이니 하는 입에 거품물고서 사기반공으로 이념모략질로 맨땅에 수박통 쳐막는 사람들이 무고한 사람에게 적개심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

뭐가 구린게 그리 많다고 묻지도 강요하지도 않은 문제를 스스로 드러내는건데??.......
그런질문은 질문이 아니고 자뻑이라는 사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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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c84e4c36269c66f
시대의 아픔이라 뭍어두고 모른척하고 그냥 살라 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건 가해자와 방관자의 입장..
피해자의 입장에서 그게 그저 그렇게 쉽게 되겠습니까?
반성과 처벌이 없다면 그런 역사는 되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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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13fc1fd71c3cae3
그래서..
국민들이
어떻게
하시길
바랍니까.
아니
국민들까진 아니고
여기 월척 주민들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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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759ea23d487249c
이슈도 안돼는 본인생각을
마구휘갈려 놓으시네. ㅋ
지금 이재명지사 이야기는 왜!
한마디도 안하고 희안한 얘기만하시네.
친문아니고 힘없는 외로운늑대니깐
걍 짤라내냐고.
이런걸 이슈좀 올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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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c53924a98750b6e
적수역부님 한가지 질문할게요

동학난의 잔류세력이 규합하여 일진회를 만들고
일진회는 자발적으로
우리나라를 관통하여 중국으로 가는 일본의 침략 철도공사를 하였습니다
이에 분노한 안중근의사는 권총을 차고
일진회 소탕활동을 하였지요

요즘 동학난 유가족신청접수를 받는다고 합니다
이쯤돼면 안중근의사는 어떻게 재평가를 하여야합니까

추천 0

   
IP : a5bf3e3d10c36e4
자료 출처를

같이 올려주세요.


전라도만 엄격히 적용하여

검거했다면

전라도에 친일파가 많았다가 아니라

전라도에서 친일파 척결에 앞장섰다가 됩니다.

적용기준에 따라서 검거의 숫자가 달라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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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98dcb55b46b129a
그 시대 암울했던 대한미국 전체를 대변하는 우리의 역사적 비극입니다

1974년 소위 "인혁당 재건위 사건" 을 조작해 8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들도 버젓이 살아 있으며,

1980년 광주학살의 주범도 엄연히 저렇게도 잘 살고있네요

" 이 협 우 ! "

당시 검찰조사에 따르면 , 좌익을 소탕하기보다는 ' 사적인 감정'으로 169명의 동네사람들 학살을 자행했다니..

검사가 그를 향해

" 형법상 사형보다 더한 극형이 있다면 서슴지 않고 그 극형을 택할것 "

이라고 했겠습니까..
추천 0

IP : a7e08e4e5989087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범죄자를 처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니까
본질비켜가는 인신공격 비아냥 등 또 똥물을 뿌려대며 발광을할까....
천인공노할 학살만행범죄세력의 홍위병이라고 실토하는건가??

찔리는것이 얼마나 많길래 스스로 제얼굴에 침뱉는줄은 모르고 그 천인공노할 학살만행범죄 단죄해야한다는 지극히 온당한 말에조차 음흉한 발톱을 드리대며 그리 발광들을 하는거냐고..
초록은 동색이라던가?..
무슨 악한짓을 그리 많이 하고 살았길래 누워 침뱉는 무지몽매 부끄러운짓인줄도 모르고서 정신승리한냥....
사람이 부끄러워해야할 때 부끄러움조차 모른다면 그게 어디.......
말해줄 가치도 없는 행동들이지만 이정도만 해주지...ㅎㅎ..
추천 0

IP : c53924a98750b6e
왕권 조선이 어느날 갑자기 외세에 의해
민주주의냐 사회주의냐의 선택을 강요당하고
결국은 민족간에 6.25라는 이념전쟁을 격는 비운의 역사라 생각됩니다
당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충분히 논하기전
남과 북 /니편 내편으로 나누어져 서로를 주적이라 여기며
북은 사회주의를 남은 민주주의를 정체성으로 하는 체재 아닌가요
북을 주적으로 하는 민주주의 체재하에 반공과 멸공은 당연한 일이지요

위와같은 상황에서 억울하고 불운한 사람들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여 역사바로세우기를 하며
명예를 회복시키고 보상도 하는거 아닌가요
어디 빨갱이라는 누명만 억울한 일인가요
밤이면 빨갱이들이 마을을 장악하고
마치 민민위원회가 지상 최고의 권력인양
저놈은 지주니까 죽여라 저놈은 순사앞잡이 이니까 죽여라 하여
법도 공정도없이 인민재판에 죽어간 양민도 숫합니다
추천 0

IP : c53924a98750b6e
친일의 문제도
전라도지방이 다수의 친일사범이 검거됨은
시대상황과 생태학적으로 접근하여보면
결코 친일이라 욕할일도 아닙니다

전라도가 곡창지대라 당연히 다수의 지주가 존재하였고
자신들의 땅을 지키기 위해
개인의 사유재산을 몰수하는 사회주의에 반하는 행동을 함은 당연하다 생각됩니다
전라도는 해산물도 풍부하고 농산물도 풍부하여
생활에 여유가 생기고 살만한 지역이라
다양한 예능과 판소리등이 발달한 풍요로움을
하루아침에 평등이라 외치는 사회주의에
( 예 ) 라고 하며 찬성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각자의 입장에서 역지사지 하여볼 일이라 생각합니다

당시 국가적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상황에서
누가 누구를 지적할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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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a5bf3e3d10c36e4
위와같은

근거없는 자료를

내세워

특정 지역을 비하하고

이제와서

누가 누구를 지적할수 있냐구요??


곡창지대라서??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허접한 논리에 헛웃음이 나옵니다.

인구밀도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제와서...

어둡고 힘들었던 역사라며..

그냥 넘기자고요?

에라이...

위와같이 지역가르기를 위한

자료나 퍼나르지 마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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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a5bf3e3d10c36e4
똑똑한 논리를 원하는게 아닙니다.

허접한 논리로

왜곡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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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a5bf3e3d10c36e4
이미

친일세력이 많은 전라도..

그리고

그 친일세력을 처단하기 위한

빨갱이가 많았던 전라도..

라고

우동사리에 새겨놓고

글 쓰지 말라는 뜻입니다.

친일세력 척결에 동의하라는 뜻도 아니고

빨갱이가 되라는 뜻도 아닙니다.

동의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만,

동의하지 않는다고

사실을 왜곡하여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행위를

하지말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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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98dcb55b46b129a
동학난 유가족 접수는 어디서 하는겁니까

왕자의 난 유가족 접수도

함께 할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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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a7e08e4e5989087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범죄를 응징해야한다니까
신라백제고구려 꺼내고 지역갈등조장 꺼내는 개풀뜯어잡수는 소리는 왜하고 난리디야..
참 그 뇌구조한번 신기하네그려..
무고한 양민학살범죄 비호해주고싶으면 자신이 무고하게 학살당해도 된다고 자백하는거나 마찬가지 얘기라는건데...
아마 막상 지앞에 그런 천인공노할 학살행위가 닥치면 지는 그렇게 무고하게 학살안당하려고 오만 발광을 다할걸?...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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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3cd509b041b64cb
ㅎㅎㅎ

성숙하지 못한 역사관요?

님께서 그런말씀 하실 자격이 있으실런지요?

윗글 댓글을 지나쳐 왔는데 그냥 못넘어가게 만드시네요

윗 댓글에 동학난 이라 표현해주셨습니다

지금도 동학난 이라고 칭하나요?

동학농민운동,동학농민전쟁,또는 동학혁명이라 칭합니다

명칭조차도 국민학교때 배운 역사관으로 남의 역사관을 탓함은 조금 거슬리게 들립니다

오로지 한면만 보는 편혐함이야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있는 폐해 이기도 하지만

동학의 잔재들이 일진회를 구성하였다?

일견 맞는말이기도 하지만 틀린말이기도 합니다

동학의 파벌이 심했지요

일진회를 구성한 파벌도 있었지만 삼일운동을 이끌어온 손병희를 비롯한 동학세력도 말씀 하셔야 합니다

제가 장황하게 설명 드려봐야 인정하시 않으실것이고

남접,북접,최시형,손병희,전봉준 등등을 키워드로 해서 검색하시면

바른 역사공부 하시리라 봅니다

퍼오신 자료는 이미 거짓에 가까운 사실로 판명된것이구요

안중근의사의 재평가요?

보수꼴통들의 집합처인 뉴라이트 계열에서는 아마 테러리스트로 나올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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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a7e08e4e5989087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천인공노할 범죄행위를 두고 불타기ㅘ더니 이젠 또 무슨 개풀뜯어잡수는 역사관 타령...
역사이래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국민을 보호해야할 국가권력이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범죄는 마땅히 천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잔악한 범죄에 스스로 구실을 붙여주고 사는 국민은 짐승보다 못한 그런 잔악한 학살만행을 해도 좋다고 승인해주는 것이고 마땅히 그 자신은 그 잔학한 학살만행의 대상자가 될 수밖에....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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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0d4d7efb18767d5
동학을 까고 전라도를 친일지역으로 몰면 뭐가 달라지나? ^^
뭐 제가 아는 역사에는 전라도지역만큼 일제에 저항했던 지역도 없을 듯한데
동학농민운동을 일진회로 연결 동학농민운동을 깍아내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동학농민운동이란 동학이 주축이지만 사실은 농민들의 불만으로 지주들과 관리들의 횡포에 맞서서 일어난 민란에 가깝고 동학교도보다는 농민의 수가 월등히 많았으며 2차봉기는 일본에 맞서 외세를 몰아내려는 의병에 가까운 성격을 띄고있어서 가치있는 항쟁이며 아래서부터 조선의 기존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혁명에 다다른 의미있는 사건이었지요 훗날 손병희 이병구? 이용구? 이름이 생각이 안나지만 그놈들의 일진회 일을 동학농민운동을 깍기위한 논리로 쓰기에는 억지스럽지요 조선불교대빵이 친일하면 임진왜란 승병의 의로움이 퇴색되는 것인가요? 그리고 전라도 지역은 가장 항일이 강했던 지역이며 그 근거를 보자면 남한대토벌때 전국의병의 절반이상이 전라남도지역에서 활동했으며 그당시 전라도의병들을 초토화시켜버리고서야 일본이 한일강제병합을 했을 정도였습니다 무슨 의도로 굳이 동학을 폄하하고 전라도지역을 씹으려는지 모르나 어설프게 씹지마시길 제가보기엔 일제시대엔 전국어디에도 친일이 있었고 전국어디에나 항일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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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e96b716b1a65c71
꿈꾸는찌2님 가족분이 광주항쟁때 일제강제점거때 박정희 정권에 폭정에 가족이 돌아가셨다고 하셔도 지금처럼 글을 쓰실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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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c53924a98750b6e
우리집안은 연좌제로 상당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경남권 빨갱이 총두목이 저의집안 사람이며
23년 실형을 살고 비전향 만기출소를 하여 10년정도 지나
전향하여 살다 돌아가셧습니다
박정히 대통령이 부산에 올때면 아버님은 감시대상 이였습니다

원문에서 말하는 시대배경을 감안하여 글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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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a5bf3e3d10c36e4
그 집안사람의 범주가 ...?

말씀을 듣자하니

뒷집사람이 총두목인듯 하네요?

진짜 빨갱이와는 다른 사안이죠.

진짜빨갱이와

빨갱이취급은

엄연하게 다릅니다.


자신이 아는 것을 일반화하여

팩트라 생각하고 논리를 펼치는

현상을 두고 요즘말로

뇌피셜...이라고 합니다.

그건 니 생각이고....이런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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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c53924a98750b6e
러시아 살다왔습니다
한글도 이해를 못하니

그리고 여기가 아이들 스무고개 말꼬리잡기 하는 곳입니까
그동안 님이 하신 꼬랑지글들 읽어보십시요 논리성없이 얼마나 유치한지
무슨 초딩도 아니고 이제 님의 꼬랑지글은 무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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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a5bf3e3d10c36e4
그건

알아서 하시구요.

저는 님 무시 못합니다.

그렇게 아시고

뇌피셜은 자제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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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c53924a98750b6e
오타가 ~~~~

러시아 살다왔습니다
한글도 이해를 못하니

( 러시아 살다왔습니까 )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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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29acfd18243dbfe
저위분 어째글에서 그분의향기가~~^^
누가 바람좀통하게 시원하게 구멍좀뚫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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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3cd509b041b64cb
참 슬픈 역사 입니다

현재 살아있는 적폐와 싸우기도 힘들지요

언젠가 진실이라는 힘으로 명예회복 될날이 반드시 오리라 생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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