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相法)에 보면,
상(相)을 논하되 그 마지막 이해득실처(利解得失處)를,
대개 부빈귀천(富貧貴賤), 다자다복(多子多福), 수복강령(壽福康寧)에
귀착시키고 있음을 알게 된다.
지구상에 중국민족처럼 현실적인 민족은 드물다.
상법이 본디 중국에서 연원하는 까닭에,
그 역시 수자부귀(壽子富貴)와 같은,
즉, 오래 살고, 자식 많이 두고, 부유하고, 귀한 신분이 되는 지극히 현실적인 가치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새삼 괴이쩍을 것도 없다.
오늘 우연히 인터넷에서 Ad Tickers(광고)로 걸린 글귀 하나가 눈에 띈다.
"유두도 미백된다? 신개념 미백술"
이런 글귀인데,
세상이 이리 굴러 가고 있음인가 하여 잠깐 멈춰 서지 않을 수 없었다.
乳頭黑,肚臍深,生子必貴 ...
凡乳不宜小,金木水土四形宜皮土厚,如皮薄,乳必薄,乳頭圓硬子富,乳頭方硬子貴,乳頭破小,子息難成。乳白色不起,難言子息。婦人乳宜黑大爲妙,小者子少,大者子多,乳頭方圓子富貴,白小低偏子息難,若黑若堅毫且美,子貴孫榮福壽昌。
若是乳頭再如白,一生主孤獨 ...
乳宜黑不宜白 ...
이 한문 글귀들은 유장상법(柳莊相法)이란 상법서에 나오는 것으로,
그 취의(取義)만 새겨보자면 이러하다.
(여인) 젖꼭지가 까맣고 배꼽이 깊으면 낳은 자식이 필히 귀하다. ....
젖꼭지가 둥글고 단단하면 자식이 부유하며,
젖꼭지가 모나고 단단하면 자식이 귀해진다. ....
젖꼭지가 하얗고 일어서 있지 못하면 자식에 대하여 말 할 것이 없다.
부인네 젖꼭지는 마땅히 검고 커야 좋으니라. ....
젖꼭지가 희면 일생을 주로 고독하게 지낸다. ....
젖꼭지는 검어야지 희면 못쓴다.
굳이 상법이 아니더라도,
원래 여인네 젖꼭지는 검은 것을 으뜸으로 쳤다.
시집을 간 처자든 아니든 무관하게 검어야 좋다는 것이다.
그래야 귀하고 건강하며, 어린 아이 수유시에도 양질의 젖이 공급된다.
본시 계집 젖꼭지가 핑크빛이라든가 하얀 색이면,
천격(賤格)이니 주로 창기(娼妓) 무리 중에서나 익히 찾아낼 수 있었음이다.
그러한 것을,
이제는 젖꼭지를 하얗게 탈색인지 착색인지 변색시키는,
신기술을 가졌다고 저리 광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천하의 계집들은 다 이리로 모여라 이리 부르짖고 있음이듯이,
이를 보고 짝하여 계집들 역시 불을 보고 달겨드는 부나비처럼 모여들리라.
어즈버,
천지가 열두번 곤두질을 치며 개벽을 하고 있는 세상인 것이다.
또한, 단순호치(丹脣皓齒)라 하여,
흔히 이를 ‘붉은 입술 하얀 치아’로 새기고 있지만,
본래 여기서 호(皓)란 글자는 하얗다라는 뜻보다는
‘빛난다’, ‘옥처럼 맑다’란 뜻을 건져 올려야 제대로 된 의미 새김이 된다.
원래 상법에서는 기치백(忌齒白)이라 하얀 치아를 꺼리는 것이다.
女如齒白尖,多淫少子爲不妙。
계집 치아가 하얗고 뾰족하면 음란하니 자식이 적고, 좋지 아니하다.
女人齒宜黃大爲妙
계집 치아는 누렇고 큰 것이 좋으니라.
개중엔,
唇紅齒白人多祿
입술은 붉고 치아는 하얀 사람은 복록이 많다.
이런 가르침도 있지만,
이는 그저 치아가 창백하니 희기만 한 모습을 뜻하고 있음이 아니다.
특히 여자의 경우엔 크게 꺼린다.
종합하자면,
누런 기가 돌면서 투명한 듯이 즉 옥같이 빛나는 치아가 좋은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영어를 잘 하기 위해, 혓바닥 인대를 끊어내었단 신화가 오늘의 현실에 현현한다.
마찬가지로 작금의 실정은 이빨을 갈아 하얗게 만들고,
젖꼭지를 하얀 물질로 충전(充塡)하는 등 갖은 요사스런 짓을 마다하지 않는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입술을 쥐 잡아 먹은 듯 붉게 칠하는 경우는,
오직 물장수에게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것도 대낮에는 부끄러워 나다니지 못하고,
해가 진 저녁이라야 자기네 술청, 요정, 색주가 등 안에서나 그리 하였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여염집 아낙도 스스럼없이 숯불처럼 붉은 색 루주를 칠하고 다닌다.
하나도 부끄러운 짓이 아닌 세상 형편이 되고 말았다.
그러하니,
이빨을 그라인더로 갈던,
젖꼭지에 미백 물질을 문질러 창백하니 희게 또는 분홍으로 물들이든,
그것을 딱히 나무라며 탓할 노릇이 능사가 아닌 세상이 돼 버리고 말았다.
하기사 룸싸롱에서 핑크빛 도는 계집을 대하면,
은은하니 술맛이 그럴 듯 하련가?
하지만 잠깐도 아니고,
하마, 제 집 식구까지 그리 하천다음(下賤多淫), 천격 음란함을 즐겨 탐할 것인가?
춘추시대 진(晉)나라 사광(師曠)이란 악사가 있었다.
그는 음악을 좋아했지만, 전심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했다.
급기야, 마음이 여러 곳으로 흩어져 하나로 통일하지 못하는 것은
눈으로 너무 많은 것을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사광은
쑥에 불을 붙여 눈을 태웠다.
그후 비로소 그는 천하제일인 득음(得音) 득청(得聽)의 경지에 이른다.
어제는, 감각을 덜어내 안에 숨겨진 제 본성에 충실하려 하였으나,
오늘은, 거죽 외양의 감각을 부추겨 채찍질을 가하며,
끝 간 데 없이 질주하려고 온 세상이 분주할 따름이다.
내 사내로서 계집 흉내를 낼 수도 없음인즉,
오늘은 한잔 술로 얼굴이나 불콰하니 달궈 볼거나?
자고로 주칠(朱漆)은 벽사(辟邪)에 으뜸이니,
천하 사내 계집 모두 불콰하니 붉은 놀음질로,
왼갖 잡귀(雜鬼), 역신(疫神), 마군(魔軍)을 모두 항복받는
복마지술(伏魔之術)을 펴고지고?
이참에,
곡학아세하는 정치꾼들도,
썩 물렀거라.
천하가 주칠, 백칠로 휘몰아침을 네 아니 보고 있음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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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원해서 입니다.
그 시대에 사는 나는 아니라고요?
내가 원치 않아도 많은 이들이 원하기에
변하는 세상을 방관하며 손가락질 쯔쯔쯔 할 것이 아니라,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해야합니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요정의 마담이 손님을 끌기위해
하던 행위를 이제는 집안에서 살림만하는 여자가 한다고
그 행위를 손님을 끌기 위함이라 생각하면 안 되겠죠.
남녀구별없이 행해지는 수술들
유두미백술? 치아미백술? 라미네이트?
온갖 이쁘고 멋지기 위한 은밀한 수술들?
자기개발? 정도로 봐줘야 합니다.
마치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처럼,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이죠.
슬프군요.
하지만 현실입니다.
또 한편으로 슬프다고 하셨네요?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려고 하기 이전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 먼저가 되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나의 주체적 선택이 아니라,
외부에 의해서 이끌려진다면 이거야말로 슬픈 노릇이 되겠지요.
남이 아니라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 물음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도대체가 자신의 삶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이런 반성적 성찰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너무 안타깝지 않겠는지요?
하드락님께서 이해하자고 하면서도 슬프다고 하셨는데,
저는 슬픈 일인 줄 알면서도,
남을 의식하여 내 삶이 이끌려간다면,
이것이야말로, 더 슬픈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군요.
천하 모든 사람들이,
슬픈데도 이를 극복할 도리를 찾지 못하고,
세류에 자신의 몸을 내맡기고 휩쓸려간다면,
그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결코 행복하게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이 사태를 직시하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꿋꿋하게,
살아간다면 이것이야말로 아름답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어,
또 한사람 이를 성찰하고,
자신을 돌볼 수 있다면,
그 한 사람 분만큼 세상은 더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이어 또 한 사람의 실천적 반성이 따른다면 더욱 좋겠지요.
마치 점화식처럼 세상의 인심이 모두 바른 도리를 찾아 나아간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여기 동참하길 원하지도,
그리 되길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것은 저의 권능 밖의 일일 뿐인 것임이라.
다만,
각자는 각자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슬픈디 슬픈 인간의 명운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인생은 더욱 신비하고도 묘하다고 생각합니다.
슬프지만 현실이죠.
옳다 그르다 의 문제가 아니기에
쓴웃음? 정도로 이해를 해야하는 것이죠.
말씀하셨듯이 각자의 삶을 살아가야하니까요.
하지만
한가지 명명백백한 팩트가 있지요.
위에 나열한 슬픈현실의 물건들?을
만들거나 팔거나 유통하거나 사거나 이용하는 사람이
내 가족 또는 사촌 또는 이웃인 것입니다.
그러니, 누가 누굴 비판하겠습니까....
그렇기에
내 가치와 맞지 않다고해서
지난 과거의 가치를 잣대로해서
세상이 어둡다거나 이상하게 돌아가고 변한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죠.
위에 쓰신 원글의 의도를 알지만,
동의 하기가 어렵기에 쓴 글입니다.
답글을 다신 내용과 의도도 충분히 알겠습니다.
각자의 가치판단을 쓴 글에 정답이 없으니
이만 줄이겠습니다.
저는 곰보다는 여우가 좋던데요 ..^^
남의 이름은 그럴싸 하니 지어놓고,
정작 자신은 세상을 나몰라 외면하고 손맛이나 보려고 한다면,
이것은 말씀대로 과시 여우와 같은 처신이라 하겠습니다.
예수는 이리 말했지요.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노라 나는 사람이 제 아버지와 맞서게 하고 딸이 어머니와 맞서게 하고
자기 시어머니와 맞서게 하려고 왔다”
예수 역시 불을 가슴에 품고 계시온데,
이름은 그저 평화스러울 뿐입니다.
하지만, 발칸이란 이름은 예수와 다르게,
명과 실이 부절처럼 딱 들어맞습니다.
선비란 곧 마음에 적어도 발칸포 열 문(十門) 이상은 품고 사는 이를 이르는 말입니다.
거죽만 점잖으면 코흘리개가 갖고 노는 고무줄총만도 못하지요.
세상의 불의를 향해 방포를 함에 있어,
열을 넘어 백, 천 포인들 사양하겠습니까?
허나, 저 발칸은 다만 단 하나의 포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그저 가슴만 불화로처럼 달구고 사니,
이를 매양 슬퍼할 따름입니다.
허니 선비는커녕 발칸도 감히 넘보기 어렵지요.
이리 넘치는 이름을 갖고 노니는 이를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곡학아세......
오늘도 여전히 사람마음 비춰보려고
달그림자를 가리키는 손 있는데.....
내마움 돌보지 못하고 가리키는 손가락만 쳐다존들 무엇하리...
달을 가르키면 그 뜻을 길어 올려야 하는데,
뱉어낸 말에 의지하여, 그저 손가락만 보고 있으니,
같은 사람일지라도 담벼락보다 더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應隨此法,不應隨人。
不應依語。
헌즉 법(진리)을 따르지,
결코 사람이나, 말에 의지 하지 말란 말씀이 있기도 합니다.
말이 나온 김에 첨언 하자면,
흔히 빠들은 그래서 한참 길을 벗어난 이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품위 있는 세상은 사람에 과도하게 의지 하지 않고,
사실 진위 판단 하에 자율적으로 움직이지요.
바로 그 지점을 잘 지적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여쭙고자 합니다.
닉에 대한 것입니다.
積水易腐
이 말은 본디 한국 내의 자생적 속담으로,
중국에는 이와 관련된 성어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이를 적수역부라고 많이들 하시는데,
적수이부라야 의미가 통할 것 같거든요.
혹 그 까닭을 아시는지요?
검색을 해보아도 적수역부라고 쓴 것들이 대부분이라,
정말 궁금하여 실례를 무릎쓰고 묻습니다.
고맙습니다.
제 짧은 소견으로는
본디 물은 맑은 것이나 흐름이 끊겨 고이다 보면 썩는 것이라는 자연의 이치를 표현하는 사자성어 '積水易腐'의 해석상
'물이 고이면 썩기쉽다(가능성- 안썩을 수도 있다)'라고 해석하는 '易'자(쉬울 이)의 해석보다는
'물이고이면 썩어진다(당위성-썩음으로 바뀐다)' 라고 해석되어지는 '易'자(바꿀역)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에 가까운 표현이라 생각하여 易자를 바꿀역으로 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입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좀 궁리를 해보았습니다.
시비를 거는 것이 아니고,
그저 제 생각을 정리한 것이니,
참고만 해주시길 바랍니다.
積水易腐
말씀을 따르자면,
易은 동사, 腐는 명사로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두고 몇 가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① 우선 易을 타동사로 보면,
腐가 易의 목적어가 됩니다.
이 경우, ‘썩는 것’을 바꾼다는 뜻이 되어 사뭇 이상해집니다.
썩는 것이 바뀐다면 곧 맑아진다는 소리가 되어버리니,
설정 의미 구조상 이것 마땅치 않습니다.
역성혁명(易姓革命)이라 할 때,
姓을 바꾸는 혁명이니,
姓이 易의 목적어가 됩니다.
이에 비추어 보면,
腐를 易의 목적어로 볼 수는 있지만,
積水易腐가 설정한 원래의 의미를 잃고 맙니다.
②易이 자동사일 때.
그렇다면 腐를 목적어가 아니라 보어 정도로 보아주어야 하는데,
이때엔 말씀대로 ‘썩은 것으로 바뀐다’라고 해석을 해 볼 수는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 易이 아니라,
變(變成)이나, 化(化成), 換, 爛(腐爛)이란 동사가 생각이 납니다만,
그 어떤 동사를 사용한다 하여도 보어인 腐가 주어인 積水와는 맞상대로는 영 어색합니다.
가령 ‘물이 얼음으로 바뀌다’라고 할 때,
물과 얼음은 차원이 같아 맞상대가 됩니다만,
적수와 썩음은 전혀 이질적 차원의 것이라 서로 견줄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신선한 것과 썩은 것 이리 견줄 수는 있지만,
물과 썩은 것 이리 견주는 것은 문법적으로는 몰라도,
표현상으로는 정확한 태도라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易腐란 말은 쉬이 썩는다라는 말로 이미 정착이 되어 쓰이고 있기도 합니다.
가령 중국어에서 易腐食品, 易腐貨物은
쉬이 부패하는 식품, 화물 등을 뜻합니다.
이에 비추면, 易腐는 이부라 일러야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積水易腐에서
易를 부사로 보고, 腐를 동사로 보면,
그런대로 무리가 없이 원래 기도한 의미를 살릴 수 있습니다.
이리 보면 발음은 적수이부가 됩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 누구도 이를 지적하지 않고 흔히들 적수역부로 쓰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이 걸려 여러 모로 점검하여 보았으나,
제 좁은 소견으로는 그래도 적수이부가 온당하지 않은가,
이리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그저 참고만 해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적수역부'를 해석함에 있어 '고인물은 썩은 물로바뀐다'라고 했는데 이는 대상에 대한 오해로 인한 잘못된 해석이었던 것같습니다.
한문자의 구성상..
'물이 고이면 썩게된다'로 해석하는 것은 어떨지..고견을 여쭙습니다.
제가 한문 문장의 문법에 대한 지식이 그리 깊지 못함을 양해바라며..
이 말은 전혀 하자가 없습니다만,
적수역부로는 그런 해석을 이끌어내는 것이 어렵습니다. .
썩게된다라는 뜻으로는
굳이 찾자면,
腐蘭了라는 말이 적당한데,
易이 들어간 이상,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는 생각입니다.
여하간에 이 성어(成語)에서 易을 처리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쉽다라는 부사로 자리 매김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독법이라 판단됩니다.
적수역부가 적수이부보단 발음상 어감이 강렬하고 또렷합니다만,
문법엔 어긋난 혐의가 있다면 차제에 잘 살펴두는 것이 좋겠단 생각을 합니다.
이름이 실체에 부합하지 않으면 어지러운 일이 일어난다고 옛 사람들은 경고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는 공자가 처음 발의하였지만 저는 순자의 말씀에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제가 이에 대하여 글 하나를 진작에 써둔 적이 있습니다만,
혹 참고가 되면 다행이겠습니다.
표절로 인해, 기왕에 제 블로그가 노출되었은즉,
이리 밝히는 것을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http://bongta.tistory.com/1151
易자의 쓰임이 '쉬울 이'로 쓰이는 것보다 '바꿀역"으로 쓰일때 ....물이고이면 썩게되는 자연의 원리를 더 실감있게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물이 고이면 썩기쉽다'와 '물이 고이면 썩게된다'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는것 같습니다.
즉, 물이고이면 썩기쉽다라고 표현할 수있는 쉬울易로 쓰일 때의 의미는 안썩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함께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물이고이면 반드시 썩게된다'->물이 고이면 반드시 부패로 바뀐다'라고 해석될수 있는 바꿀易으로 쓰일때 흐르는 물의 생명력이 흐름이 끊겨 고임으로써 생명력이 없어지는 것으로 바뀌는 자연의 원리적 당위성을 한층 더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닐런지요.
쓰는 이의 자의적인 목표에 복무하는 것이라면,
애저녁에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으로 없어졌을 것입니다.
어법이라는 것은 언중들이 서로 맺는 사회적 약속이므로,
서로 지키는 가운데 자신의 뜻을 실어 펴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어느 누구일지라도, 눈밝은 이가 틀린 글을 보게 되면,
그 글 임자를 결코 상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여늬 문장 가운데 쓰인 단어가 아니라,
자신을 대표하는 닉인즉 더욱 조심스럽다 하겠습니다.
기실 닉만 아니라면 제가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터인데,
한 인격을 대표하는 부름씨인지라 좀 염려가 되었습니다.
물이 고이면 썩게 된다란 말을 한자어로 표현한다면,
적수이부가 아니라,
적수부란(積水腐爛)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뭣이 '된다'라는 뜻을 나타낼려면 易을 가지고는 도저히 어찌해볼 수가 없네요.
게다가 넉자 제한이 있으므로 운신이 어렵습니다.
그런즉 애초부터 역수이부란 성어로 ~된다라는 뜻을 길어 올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자피 닉은 쓰는 분이 정하는 것.
이를 두고 제삼자가 왈가불가 하는 것은 주제 넘은 짓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차원으로 접근 한 것이라,
순수한 어법 그 자체에 주목하였을 뿐입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린 내용을 알고는 계시면,
차후 무슨 일이 생길 제,
대비는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積土成山,風雨興焉;積水成淵,蛟龍生焉;
흙이 모여 산이 되면, 바람과 비가 일어나며,
물이 고여 못이 되면, 교룡이 생긴다.
이리 소개하는 이유는 積水成淵 이 부분인데요,
여기선 積水가 부정적으로 쓰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積水易腐가 중국에선 4자성어로 쓰인 바 없습니다.
하지만 문장 가운데 이 글자들이 들어간 경우는 있긴 한데,
그 때에도 易은 '쉬이'란 부사어로 쓰이더군요.
어느 중국 글을 보니 積水易腐가 한국 자생적인 성어라고 하는 이가 있더군요.
기실 고인 물이 썩는다는 의미를 바로 살리려면,
積水보다 차라리 체수(滯水)가 더 적합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 글을 읽다 마침 積水成淵를 마주쳐 이리 소개를 해드립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신승리??오지게하시고 ㅎ
예전같으면 대통령신발하나로?
국민여러분 이게나라입니까?
친일대통령이일본메이커운동화를신고
난리였을건데 ㅋ ㅋ
지금믄 벤츠를타도 서민대통령? ㅎ
전자파 가 내몸위로지나가는 사드배치도
참잘했어요?ㅎ
안보부능.경제파탄.교육?이게냐라입니다 ㅎ
핵인질국 대한민국?핵이터져도
특사보내고대화하자는 분들이 ㅎ ㅎ
오랜만에들어와 흔적남깁니다
까만 젖꼭지가?어쩌라고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