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친구와 조서 사건
"김형! 토요일인데 뭐 할거요?"
옆 사무실로 전화를 한다.
"아니 별일 없어, 뭐 좋은 거 있어?"
술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친구라 술을 생각하는 것 같다.
나이가 2살이나 연상이지만 친구처럼 가깝게 지내고 술자리가 있으면 꼭 서로가 챙겨서 같이 다니는 터라, 전화가 오면 술자리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김선배는 술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술이 거나해지면 우리 뽕짝을 멋지게 뽑아내는 노래실력이 대단하다. 음악이 본업으로 매일 음악과 살아가는 것이 몸에 배어서인지 틈나는 대로 대중가요를 흥얼거린다.
또 선배는 술이 거나해지면 모든 술꾼들이 그러하듯이 정치를 하다가, 사회를 개혁하다가, 끝내는 꺼이꺼이 울기도 하는 순정파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선배의 장점을 덮어버리는 결점이 있으니 술이 많이 취하면 거리를 휩쓸고 다닌다는 것이다.
네온사인이 찬란한 가게를 찾아가, "당신도 돈을 많이 벌었군. 이제는 사회를 위해 좋은 일 하면서 사시오."하고 충고를 하기도 하고, 차들이 지나는 교차로 한 가운데에 서서 교통순경 노릇도 하는데 그의 수신호를 무시하는 운전사가 있으면 차를 발로 걷어차 버린다.
그러다가 파출소에 끌려가면 파출소는 난장판이 되고 결국은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벌금을 내고서야 풀려나기 일쑤다.
"오늘 우리 장모님 회갑인데 같이 갑시다."
"어 벌써 그렇데 되었나? 좋지, 장모님 뵌지도 오래 되었군."
"지금 곧바로 정문으로 나오시오."
"잠깐, 봉투하나 만들어야지."
늦가을 싸늘한 바람을 맞으며 시내버스를 타고 시골길을 달린다.
맏딸을 시집보내며 홍안의 젊은 장모님은 부끄러워서 사위와 마주 앉기조차 꺼려했는데 벌써 흰머리가 돋아 나오는 할머니로 변하여 얼굴에 잔주름이 보이며 회갑을 맞이하신 것이다.
맏사위는 장남과 같다고 좋아하셨지만 변변히 모시지도 못하고 자주 인사를 드리려 가지도 못하는 불효를 오늘 하루만이라도 효자 노릇을 하려고 아내와 애들을 아침 일찍 처가로 보내고 퇴근을 서둘러 찾아가는 것이다.
자가용이 없는 80년대 초라 시내버스를 타고 시골을 달리는데 차창 밖으로 꽃잎이 떨어진 코스모스가 처량하게 서 있다.
처갓집을 들어서는데 동구 밖까지 풍물소리가 들리고 온 마을이 축제분위기로 가득 차 있다. 한 집에 길사나 흉사가 있으면 온 마을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함께 즐기고 슬퍼하며 상부상조를 하는 우리의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시골인심이 넉넉하여 좋다.
맏사위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마당에 들어서니 여기저기서 부르고 막걸리 잔을 안기고, 누군가 불효자의 표시로 숯을 가져와 얼굴에 바른다.
풍물에 맞춰 드넓은 마당을 빙글빙글 돌아가며 어깨춤을 추고, 헛간에서 멍석을 가져와 대나무 장대를 가로질러 넣은 후 가마를 만들어 장인과 장모를 태우고 마당을 돌아간다. 그 뒤를 모든 사람들이 '쾌지나 칭칭 나네'를 부르며 춤을 추니 멍석가마를 타신 두 분이 덩실덩실 춤을 추신다.
축제의 밤이 깊어가고 나도 이 사람 저 사람들이 권하는 술잔을 받아먹다 보니 술이 취하여 걸음이 재대로 되지도 않는데, 문득 선배가 생각나 이리저리 찾아보니 한 무리의 동네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있는데, 선배의 음성이 커지는 것으로 보아 언제 또 사고를 칠지 걱정이 된다.
방안에 들어가 잠을 자라고 해도 그냥 술을 마시겠다는 선배를 두고 또 친척이나 동네사람들과 어울려 늙으신 장인, 장모님을 잘 좀 보살펴달라는 부탁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기에 달려가 보니 선배가 동네사람과 시비가 붙어 멱살을 잡고 있다.
얼른 싸움을 말려 선배를 데리고 집을 나온다. 하룻밤 보내고 일요일 아침에 나오려 했으나 더 있으면 곤란할 것 같아 내일 다시 오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마을을 벗어 나온다.
2부가 계속됩니다.
- © 1998 ~ 2024 Wolchuck all right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