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사님들 어렸을적, 제일 처음 낚시를 시작 하실적엔 어떻게 시작을 하셨는지요?
아랫글은 제가 i-f.co.kr에 '동심의 낚시'라는 제목으로 기재한 몇편중에서 그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나이가 올해 사땡입니다(줄줄이 사짜 잡을 해)
조우분들중에는 동년배분도 많이 계실거라 생각됩니다.
같은 동년배분들이라면 비슷한 지난날의 낚시추억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오늘 같이 비가 많이 와서 낚시는 못가고
창밖으로 떨어지는 빗줄기를 보니 어릴적의 낚시 추억이 생각납니다.
제 고향은 성주 가야산 아래 동네입니다.
(성주와 고령사이의 국도에서 가야산으로 올라가는 입구)
산골이 다 그렇듯 우리 고향 역시 산줄기를 타고 흐르는 여러 계곡 아래,
많은 동네의 또랑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우리 마을에서 1km 넘게 걸어 가면
지금의 성주댐 하류인 대가천이라는 꾀나 큰 강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수지는 많지 않아서 다른 지역처럼 붕어낚시는
많이 하지않았고 아니, 어릴적에는 붕어낚시는 하는것
자체를 보지 못한것 같습니다.
간혹 강에서 붕어를 보면 우린 그것을 '송어'라고
부르며 꾀나 귀한 고기로 여겼습니다.
지금의 40대 분이라면 어린날의 '건빵'을 기억하시겠지요.
그때의 건빵은 지금처럼 예쁜 비닐봉지에 포장된게 아니라
그 당시는 시멘트 포대 종이 처럼 누렇고 두껍고 질긴 종이를
흔히 '도까리 종이'라고 불렀는데,
그때는 그 도까리 종이봉지에 넣어서 다시 얇은 비닐로
입한후 봉지 위를 두어번 접어서 지금의 호지키스(스템플)로
찍어서 판매를 했습니다.
우린 그 스템플을 낚시바늘 모양으로 펴고 끝은 그당시는
다 나무를 해서 연료로 사용을 했기 때문에 가정마다 톱날을 세우기 위한
줄(정확한 명칭인지는 잘 모름)이라고 하는 어찌보면
그라인드 역할을 하는 도구가 있었습니다.
우린 그 줄로 낚시바늘 끝을 날카롭게 하고 다시 바늘 머리 부분은
실을 맬 수 있게 오그리고 명주실을 매어서 사용했습니다.
지금의 젊은 사람이 본다면 구석기 시대 얘기한다고 하겠지요?
우린 그렇게 만든 낚시바늘에 명주실을 매고 철사 동가리로 봉돌을 만들어서
보리밥이나, 계곡물가에 가면 이름은 뭔지 모르겠으나
모래를 모아서 1cm 크기의 집을 만들고 그속에 들어 있는 구더기 모양의 애벌레가 있었는데,
이놈을 잡아서 바늘에 꿰어 바위밑으로 실을 풀어 넣으면
피라미나 중태기(버들치)가 서로 경쟁을 하듯 물고 도망을 갑니다.
물고기가 물고 가는것이 눈에 훤히 보이므로 당연 '찌'는 필요치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무미늘 바늘이다 보니 얼른 잽싸게 뒤로 들어 던지지 않으면
수면위로 올라 오는 순간 물고기가 퍼득거리며 거의다 빠져 도망을 갑니다.
그렇게 해서 잡을 포획 확률은 20~30%정도로 저조했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또랑마다 워낚 많은 중태기나 피라미가 있어서
그렇게 한나절을 하다보면 그 당시에 '간지매 통'이라고 하는
지금의 꽁치 통조림 캔에 한통을 잡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붕어라면 20cm붕어 한마리면 그득 찰 캔 크기지만,
손가락만한 피라미나 중태기(버들치)들은 그래도 수십마리는 잡아야 했습니다.
마을 앞 또랑에 있는 고기는 거의가 중태기(버들치)인 까닭에
좀더 다양한 고기를 잡기 위해선,
1km를 넘게 걸어서 좀더 큰강으로 간혹 나갈때가 있습니다.
큰강에는 온갖 다양한 고기가 있었지요.
피라미를 비롯한, 메기, 모래무지, 마자, 떵갱이(퉁가리),
뿌굼치(동사리), 띵미리(돌고기), 민물 게, 징거미 등등 수없이 고기 종류도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우리들의 가장 만만한 상대는 계속 헤엄쳐 다니는 고기보다는
주로 돌 밑에서 생활하는 퉁가리나 동사리 입니다.
이놈들은 도망을 가더라도 조금 가다가는 또 다시 돌밑에 들어 가서는 '영구 없~다'하는 놈들입니다.
이런놈들을 찿아 쫓아 다니다 보면 어느듯 해는 서산에 걸리고
점심도 굶은지라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그저 힘이없고 주저 앉고 싶습니다.
이렇게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손에든 깡통속에
퉁가리나 동사리 몇마리 들고 집에 들어 오면
기다리는게 있지요
그건 굶주린 배를 채워줄 맛있는 저녁밥이 아니라
부모님의 불호령입니다.
'야 이놈아, 차라리 집에 들어오지 말고 고기 잡아먹고 살지 집에는 뭐하러 오나'
지금은 아련한 지난날의 추억이지만 그땐 그말이
그렇게 서글프게 들릴 수가 없었답니다.
이렇게 시작한 저의 낚시지만 비슷한 연련층의 조사분들이라면
비슷한 지난날들의 낚시 추억을 가지고 계실 것 입니다.
바쁜 일상생활속에서 지난날의 추억을 한번 되돌아 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하고
게재를 했습니다.
모든분들 즐낚과 더불어 즐거운 시간 가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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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파하고 김치국물에 밥 말아먹고 철길따라 십리길을 걸어
피라미 잡으러 갔었죠. 수영도 하고......
잡은 고기 그동네 형들에게 뺏기고...주어터지고...
돌아오는길은 배가 고파 아카시아 꽃잎 따먹고 산딸기 따먹고...아련한 추억입니다.
낚시go님 글에 잠시 옛생각을 떠올려 봤습니다.
고향분인것 같습니다, 사땡이시면 저한테는 선배되시네요 저는 삼땡을 지나
사짜(?)를 향해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중학교 까지는 그곳에서 보냈는데
본가는 아직 수륜의 고령쪽 방향 끝부분에 있습니다
님에 비해 어리지만 님과 비슷한 추억이 있습니다,,,,,
대가천 저한테도 추억이 많이 있지만, 댐을 만들고 나서 현재에 이르러 많이
변했지요, 3~4년 전엔가 도로설계시작, 곧 공사가 시작될껍니다
그러면, 다시한번 홍역(대가천)을 치루겠지요 도로의 절반이상이 하천제방을
따라 계획되어 있습니다,,,,
아무튼 시간이 허락된다면 한번 뵙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