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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1

IP : 67f55d44bd263a4 날짜 : 조회 : 3659 본문+댓글추천 : 5

1997년의 기억 속에서 겨울밤과 비를 가져옵니다.
넓은 마당과 작은 숲, 기와집과 돌담이 필요하군요.


서른다섯 살의 사내가 창 넓은 방에서 이쪽을 보며 혼자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빵모자를 쓰고 있군요. 표정이 조금 어둡네요.
상 위에 술잔이 두 개인 걸로 봐서 혼자는 아닌 것 같은데...
벽에 걸린 시곗바늘이 새벽 한 시를 가리킵니다.
열린 대문으로 껑충 키 큰 남자가 들어섭니다.
사내가 일어나서 나오는군요.
둘이서 악수를 합니다.

 

"와라... 2년 만이냐?"
"형, 잘 있었수? 모자는 여전하네?"
사내의 목소리는 가라앉았고, 키 큰 사내는 톤이 높습니다.
둘이 방 안으로 들어가는군요. 창문으로 건배하는 게 보입니다.
무슨 말인가 나누는데... 들리지가 않네요.
들어가 봅시다.


"절 밥은 먹을 만하디?"
"밥이야 뭐 먹어도 그만, 굶어도 그만. 공부만 했수."
"그거 해서 먹고 사냐? 와서 현장 일이나 하지?"
"사주 그거 우습게 보지 마슈 ! 통계학이지 미신 아니유."
"글쎄. 난 믿지 않으니..."
"형이야 고집으로 안 믿는 거고... 하튼 밥은 먹고 사우."


후배가 방을 빙~ 둘러보는군요. 그러다 눈을 감습니다.
한참을 후배는 그렇게 있고, 사내는 술만 마십니다.
눈을 뜬 후배가 사내를 건너다보고, 사내는 차갑게 한마디 합니다.


"내 앞에서 그러지 말랬지?"
"형, 아직도 그렇지? 내가 하자는 대로 합시다."

 

이젠 사내가 눈을 감아버리는군요.
후배가 창밖을 봅니다.
문득 후배가 밖으로 나가고, 사내는 다시 술을 마십니다.
창밖으로 후배의 등이 보이고, 그 너머로 감나무가 보입니다.
마당의 작은 숲에 새벽 비가 내리는군요.
후배가 다시 들어와 창쪽으로 서서 밖을 봅니다.


"이리 와서 술이나 마셔 !"
사내가 약간은 짜증 난 목소리로 후배를 부르는군요.
"형, 아버님이 어떻게 생겼어요?"
"또 왜? 난 그런 거 안 믿는댔지? 이리 와서 술이나 마셔 !"
사내가 화를 내기 시작하는군요.
후배가 돌아섭니다.
"형, 내가 말해 볼까? 형은 아버지 안 닮았지?"
"그래 인마 ! 좋아, 니가 말해 봐. 뭘 말하고 싶은데?"
분위기가 더러워지네요. 암튼 저 자식 성질머리하고는...


"형, 아버님이 저기 계셔. 감나무 밑에서 여기를 보고 있어."
"웃기고 있네... 그래? 그럼 말해봐. 어떻게 생겼냐?"
사내가 술을 털어 넣으며 빈정대는군요. 눈빛이 차가워졌네요.
"이마가 넓고, 콧날이 날카롭고, 쌍꺼풀진 큰 눈, 꼭 다문 입..."
사내가 흘깃 후배를 봅니다. 눈빛이 조금 흔들리고 있습니다.
"어디서 아버지 사진 봤냐? 비슷하긴 하다만..."
"감색 양복에... 단단한 어깨..."
'감색 양복'이란 말에 사내가 잔을 놓습니다. 손이 떨립니다.
"너, 정말이냐? 정말 넌 볼 수 있냐? 정말 와 계시냐?"
후배가 다시 창밖을 봅니다. 사내가 옆에 섭니다.
감나무 밑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빗방울이 조각나고 있습니다.


"근데요, 옆에 남자아이는 누굴까? 손을 꼭 잡고 있네?"
사내의 눈이 커집니다. 목에 소름이 돋는군요.
"가만히 이쪽을 보고만 있어요. 슬픈 눈빛이다..."
사내는 아무리 얼굴을 가까이해도 볼 수가 없습니다.
"가신다... 꼬마가 돌아보네."
"꼬마가 돌아봐?"
서른다섯 살의 사내가 괴로운 듯 술병을 듭니다.
마주 보고 앉아서 술을 마십니다.
한동안 침묵합니다.


"형, 이젠 제사 지내요. 아버님은 돌아가신 거야."
"그럴 수 없다. 살아 계실 거야. 니가 잘못 본 거야."
"내가 본 게 맞수. 형 이러는 거 불효야. 돌아가신 거 맞아요."
"아니, 찾을 만큼 찾았지만, 그래도 기다린다."
"벌써 10년째라메? 오셨으면 벌써 오셨어요. 이젠..."
"아버진 나하곤 달라. 쉽게 포기하실 분이 아니야."
"꼬마는 누굴까? 형은 알지요?"


사내가 아무 말이 없군요. 또 한 잔을 마십니다.
"누구 죽은 사람 있었수? 형제 중에?"
사내가 술잔을 탁 ! 놓고 창밖을 봅니다. 멍한 표정입니다.
"동생이 있었다. 바로 아래 동생. 태어난 지 육 일 만에..."
"어쩌다가? 그냥은 아닌데? 말해봐요."
"그만하자. 술이나 마시자."
"형이 싫다면, 내가 할 거요. 내가 볼 때는 형 비틀대는 거 이유 있어."
"건방진 소리 !"
"아버지하고 동생, 절에다 모셔요. 이젠 정리해요. 응?"
"좀만, 좀만 더 기다려보고... 제사를 지낼 때는 말하마."
"아버진 어쩌다가 그랬수?"
사내, 또 한 잔을 털어 넣고 멍하니 창밖을 봅니다.


"아버진... 내게 실망하신 거야.
사업의 실패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난 알아.
막다른 골목인데, 혼자뿐이었을 거야.
스물다섯 살의 나는 빗나가기만 했었으니까.
내가 아버지를 떠나게 한 거야..."
"동생은요?"
"내가 밟았다. 이불 속에 있는 걸 모르고 밟았어."
사내가 쫓기듯이 또 한 잔을 털어 넣습니다.
"형, 미안해요. 하지만, 잊을 건 잊어야지요."
남자 둘, 취해서 창밖을 봤을 때는 비가 내리지 않습니다.
작은 숲에 나란히 서서 오줌을 눕니다. 새벽 4십니다.


이젠 들을 이야기도 없겠네요. 우리도 이 방에서 그만 나갑시다.


# epilogue


살아가다 문득 아버지를 떠올리고 '아버지...' 하고 입속으로 불러 보면,
그러면 나는 가슴 속에서 모래알들이 서걱이는 소리를 듣는다.
이쯤에서 얼른 고개를 들고 눈에 힘써 초점을 잡고,
흠! 흠! 하고 목소리를 다잡고 일상으로 돌아서면 나는 아무렇지 않다.
하지만, 하늘이 곧 울 것처럼 지이랄 같거나 한 줌 흙바람이라도 불어오면,
나는 그 메마른, 메말라서 슬픈, 그래서 아픈
살아온 날의 한 때와 아버지를 기억해 내고는 상처받은 짐승처럼 흔들리는 눈빛이 된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빠져들고 말 그 추억의 심연이 두려워 허둥허둥 서성댄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날들의 입구, 그 언저리에서...


이쯤에서 나는 멈춘다.
더는 이야기를 계속할 수 없을 만큼 목이 아파 온다.
가슴 속 깊이 유배시켰던 아버지가 어느 가을날의 골목길 위에 서 있다.
감색 양복을 단정히 입고,
말없이 꼭 다문 입매와 냉정한 듯 깊은 눈매로 나를 지켜보고 있다.
기름을 발라 올백으로 넘긴 머리칼에 아침 햇살이 반짝인다.
아버지가 돌아서고, 스물네 살의 나,
아버지의 뒷모습을 한참 지켜보다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하며 대문을 닫는다.
찰칵!


오늘,
아버지를 스친 바람 한 줄기가 내 가슴에 작은 구멍을 내고 무심히 지나갔다...


ㅡ 2013년 12월 3일. 피터.

 

 

 

 

 

 

 

 

 

아버지 1 (커뮤니티 - 자유게시판)

 

아부지.

저,

자라

겁나 잘 잡아요. ㅡ,.ㅡ"

 

 

 


1등! IP : ae16d5105158846
아버님께선
다른.공간에 계신거져?
아버님께서도 아실거에요
피터님.마음을…
그리고 자라도 … 쉬세요
추천 0

3등! IP : 9f91818d6541294
255mm.
울 아버지 신발 사이즈입니다.
옷은 직접 장날에 다니시면서 시장표를 즐겨입으시니..
한양쪽 가족들이 비싸고 윤기 좔좔 흐르는 옷을 내려보내거나 한양에서 옷갈이를 곱게 해드려도 그 고급진 옷이 1주일만에 어딘가에 걸려 북북 찢기기 일쑤죠.
그래도 제가 사드리는 옷은 좀 간수를 하시는 편이십니다.

다시 신발 얘기를 해드리자면,
싸고 적당히 곱고 저렴하지만 튼튼한 예전 유행했었던 메이커 신발을 엊그제 한 켤레 또 주문했습니다.
신발을 이렇게 사드리고 신발 세탁도 해드립니다.
그러면서, 그나마 참 다행이다.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가끔씩 신발도 헷갈리셔서 다른 헌 신을 신고 집으로 오시기도 하지요.
죄송하다며 바꾸러 가기도 하고 대부분 아무 말 없이 그나마 깨끗하고 튼튼한 아버지 신발을 신으시는지 연락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솔직히 서로 모르니 연락이 닿지 않겠죠.


시골은 대부분 가족들이 객지에 사니 돈이 좀 있거나 깔끔하지 않으면 어르신들 대부분 사서 떨어질 때까지 신발을 신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릴 때부터 골골해댄 탓에 아들 노릇 제대로 해본 기억이 없지만 신발이나 옷 만큼은 그나마 여한이 없을 듯합니다.

낮에 도끼로 잘 마른 지름 60cm 통나무를 찍으시다 못 쪼개시길래 열 댓번 때려 반으로 뽀개놨더니 그 반토막을 다시 반으로 뽀개셨더군요.
아직 정정하시단 뜻이겠죠?

조부모님 두 분 모두 여든이 넘게 사시다 돌아가셨으니 울 아버지도 최소 5년 정도는 더 건강하게 사실 것 같습니다.

그 동안 효도는 어찌 해야..






올리신 글을 읽고 내 아버지 얘기를 짧게나마 해보고 싶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또르르
추천 1

IP : 8d2b72b696a3976
해가 갈수록 늘 우린 어린아이네요!
애증고 애정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가 봅니다.

그런 아버님이 계셨기에 낚시 잘하는 피터님이 꺾이지 않고 잘 버티시는거죠!!

그래도 3초는 넘 심한거 아녀??
추천 0

IP : 3797ee28775ee7d
네 ~
자라 잘 잡으시는것 인정합니다.
올해도 자라 많이 잡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용봉탕 드시고 5초 성취 기원드립니다.

아 띠~~~
아침부터 23년전에 소풍 떠나 아부지가 보고 싶으네~~~ ㅡ.,ㅡ
추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