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와 웅덩이

옛날에 비가와도 빗물이 괼 우묵한 곳이 아무 데도 없이 평지뿐이어서 강 같은 물줄기에서 조금만 떨어져 있으면 농사를 지을 방법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강가에 제단을 쌓은 다음 정성껏 사흘 밤낮을 빌었다. 물론 물을 가두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사흘 밤이 지나 날이 샐 무렵 갑자기 천둥 치는 소리가 두웅 울리더니 웬 거인 하나가 나타나 강을 뒤로하고 앞으로 휘적휘적 걸어가더니 갑자기 쿵 주저앉아 한참을 뭉그적거리더니 다시 일어나 가다가 쿵, 또 일어나 가다가 쿵, 그렇게 여기저기 다니면서 앉았다 일어나기를 되풀이했다. 그러기를 한식경을 거듭하더니 다시 천둥 치는 소리가 두웅 울리고 거인은 온데간데없이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 뒤. 사람들은 짐작했다. 물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빌었더니 저 무지막지한 거인이 똥이나 한 무더기씩 싸 놓았겠구나, 이렇게 생각하며 그곳으로 가 봤다. 그랬더니 웬걸 똥무더기는 간데 없고 거인이 앉았던 자리마다 땅이 꼭 엉덩이 모양으로 엉덩이 크기만큼 움푹 패어 있는 것이 아닌가. 엄청나게 큰 거인의 엉덩이가 좀 컷겠는가. 그래서 그 뒤부터 사람들은 거기다 물을 대 놓고 농사를 잘 지어 천년만년 대대로 잘 먹고 잘 살았다. 처음에 사람들은 거인이 엉덩이로 파 놓은 그것을, 처음 생긴 거니까 당연히 이름 같은 건 없었다. 엉덩이로 판 것이라고 해서 그냥 엉덩리라고 불렀는데, 생각해 보니까 그래도 하늘이 베풀어준 은덕을 엉덩이라고 부르는 건 아무래도 몹시 불경스러웠다. 그래서 덕망 있는 노인들이 어느 날 모여서 엉덩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바꿀까 의논을 했다. 그 자리에서 어떤 노인이 마침 거인이 내려올 때 천둥이 두웅 울린 걸 기억해 내 두웅과 엉덩이를 합쳐 두웅덩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두웅덩이라고 했던 것이 세월이 흐르고 흘러 두 자가 떨어져 나가 지금의 웅덩이가 된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웅덩이는 용탕 또는 둠벙이라고도 한다. 작은 웅덩이는 옹당이라는 예쁜 이름으로 불린다. 움파리는 웅덩이 중에서도 가장 작은 것으로 발이 빠져서 신발을 적실 정도의 크기인데, 비 오는 날 골목길에 땅이 패어 물이 괸 곳을 움파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자가 쓰는, 아가리가 작고 오목한 사기 바리를 옴파리라고 하는데, 움파리는 옴파리같이 작은 웅덩이라는 뜻이다. 수렁은 곤죽이 된 진흙과 개흙이 물과 섞여 많이 괸 웅덩이, 쇠지랑탕은 오줌이 썩어서 검붉게 된 물로, 거름으로 쓴다고 한다. 밀물이 들어왔다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괴어 있는 웅덩이는 굴포, 폭포가 떨어지는 바로 밑에 물받이로 팬 웅덩이는 용두리라고 한다. 웅덩이보다는 크고 늪보다는 작은 것이 못이다. 못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연못은 원래 연꽃(蓮花)을 시어 놓은 못이라는 뜻이다. 땅을 파거나 둑으로 둘러막은 인공(人工)의 못은 방죽이라고 한다. 방죽은 원래 한자말 방축(防築) 이 변한 말이다. 방죽, 제방(堤防), 물동은 모두 둑을 뜻하지만, 방죽이나 제방은 막을 방(防) 자가 들어가 있는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밀려오는 물을 넘어오지 못하게 막는다는 수동적 방어의 의가 강하고, 물동은 흘러가려는 물을 한곳에 괴어 있도록 한다는 능동적 저수(貯水)의 의미가 강조된다. 앙금못이라고도 하는 가란침못은 물속에 섞인 흙이나 모래를 가라앉혀 물을 맑게 만들기 위해 만든 못, 즉 침전지(沈澱池)를 가리킨다. 가라앉힘못이 편한 발음을 좇아가다 보니 가란침못이 된 것이다. 늪은 못보다는 크고 호수(湖水)보다는 작으며, 바닥이 진흙으로 되어 있고 침수(沈水)식물 이 많이 자란다는 특징이 있다. 평지보다 조금 얕은 곳으로 늘 물이 괴어서 물풀이 자라는 곳은 오미라고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움파리에서 호수까지의 서열을 곁다리는 빼고 정리하면 이렇다. 움파리 < 옹당이 < 웅덩이 = 용탕 = 둠벙 < 못 = 연못 < 늪 < 호수 - 장승욱箸 '재미나는 우리말 도사리' 中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