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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종어라는 물고기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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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라진 종어라는 몰고기에 관한 자료를 올려봅니다. 몸길이가 20cm~100cm까지 성장하였다고합니다. 이러한 물고기가 우리나라에서 사라졌다고하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지금은 중국산 종어를 들여와 인공번식에 성공하고 했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환경에서 살던 토종 종어는 이미 멸종되어 볼수가 없음입니다. 아랫글은 다른 인용된것입니다.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듯합니다. 자연을 사랑하고 물고기를 사랑하는 낚시벗입니다. ▲ <한국어도보> (1977)에 수록된 종어의 모습이다. ⓒ2004 한국어도보 이제는 구경하기 힘든 우리 물고기 가운데 종어(宗魚)란 것이 있다. 메기하고 동자개와 흡사하게 생겼다는 이 종어는 글자 그대로 물고기의 우두머리(혹은 으뜸)라는 이름(宗)이 붙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맛이 천하일품이라는 것이다. 그 맛이야 직접 먹어본 사람만이 알 터인데 지금은 그 맛을 기억하는 이조차 거의 드물게 되었고 또 먹어볼 기회조차 사라지고 말았으니 더는 뭐라고 얘기하고 말 건더기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예로부터 궁중에 진상되는 물목에 이것이 빠지지 않았고 서울의 고관대작들이 즐겨 그 맛을 찾았다는 얘기가 있는 걸 보면 종어의 진미에 관한 풍문이 그저 허튼소리는 분명 아닌 것 같다. 다만 지금으로서는 무척 아쉬운 것이, 벌써 30년 넘게 이것을 잡았다거나 보았다는 소식은 없는지라 사실상 국내에서는 멸종어류로 분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듣자하니 종어의 분포는 대동강, 한강, 금강지역으로 나뉘는 모양인데, 그 가운데 금강에서 나는 종어가 맛이 있어 최고로 쳤다고 한다. 분명 동일한 종류이긴 하지만 그것이 어디에서 나느냐에 따라 맛의 차이가 무척 컸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대동강과 한강에서 나는 종어는 그다지 맛이 없다고 하며, 다만 금강에서 잡히는 것만은 희한하게도 유달리 그 맛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일찍이 이러한 차이가 왜 생겨나는지에 대해 수질과 토질의 다름, 그리고 플랑크톤의 많고 적음으로 풀이한 견해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 역시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물고기 중에는 종어가 그 맛이 으뜸이고, 그 가운데는 금강에서 잡힌 종어를 최고로 쳤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 종어가 일제시대 때 일본 황실에도 바쳐졌다는 기록이 있다. 그 시절에 천황과 황실에게 헌상된 식민지 조선의 특산물이 어디 한둘이었으랴마는, 식민통치자들이 종어의 명성만은 진작 전해 듣지 못했던 것인지 1923년에 가서야 그 사실을 알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매일신보> 1923년 2월 13일자에 수록된 "부여명산 '종어', 재등 총독이 황실에 헌상차로"라는 기사는 이렇게 적고 있다. "충남 부여군은 고려팔경으로 유명할 뿐 아니라 종어(宗魚)라는 강물고기가 생산하는 곳으로 또한 유명하다는데 그 고기는 청국 어떤 땅에서 나고 조선에서는 부여군에서만 생기는 고기로 큰 것은 오 척 가량이요 맛이 좋다하여 이전부터 왕실이나 귀족에 진상하던 고기인데 지난번 재등총독(齋藤總督)이 남선 시찰할 때에 맛을 보고 이번 의회에 가는 길에 마흔 근 무게 되는 다섯 마리를 가지고 동경 가서 황실에 헌상코자 가져갔다는데 그 고기는 오월에 알을 나며 잡기는 겨울에 얼음을 깨고 잡는 바 일년 산액이 오십 관 가량밖에 아니된다더라.(대판)" ▲ 우치다 케이타로(內田惠太郞)가 정리한 <조선어류지(朝鮮魚類誌)> (조선총독부수산시험장, 1939)에는 지금은 사라진 종어의 모습이 수록되어 있다. 다만, 여기에 나온 사진은 금강에서 잡힌 종어는 아니고 평양에서 잡은 대동강 종어의 모습이다. 이 기사를 보면 사이토 총독이 부여지역을 시찰하다가 우연히 종어의 진미를 맛볼 기회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랬더니 과연 처음 맛보는 별미인데다 그제야 종어의 명성에 대한 설명을 함께 듣고 보니, 그 후로도 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한 탓인지 이른바 '내지'로 나가는 길에 종어 다섯 마리를 특별히 구해 황실에다 갖다 바치기로 했다는 그런 소식이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때의 기록을 뒤져보면, 생각밖으로 종어에 대한 기록은 그리 잘 눈에 띄질 않는다. 겨우 찾아낸 것이 서너 군데의 기록 정도이다. 더구나 일제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종어가 곧잘 잡히곤 했던 것 같기는 하지만 193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개체수가 급격히 떨어졌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다 보니 종어에 대한 기록조차 제대로 채록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역시 남획(濫獲)이었다. 마치 조선의 호랑이가 이른바 '해수구제(害獸驅除)'라는 그럴싸한 명분에다 값나가는 호피(虎皮)를 노리는 이들의 무분별한 포획으로 절멸상태에 치달았듯이, 종어의 유명세는 스스로의 존재조차 끝내 지켜내지 못하는 결과를 불러왔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게 종어는 이 땅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오래지 않아 종어의 존재는 그저 추억으로만 남을 지경이 되고 있었다. <동아일보> 1938년 7월 27일자에 소개된 "조선담수산명어(朝鮮談水産名魚) (4) 금강종어(錦江宗魚)"는 바로 그러한 종류의 기록이었다. 필자는 조선총독부 수산과에 근무하던 정문기(鄭文基)였다. 여기에서는 벌써 종어를 남획함에 따라 생산고가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제 아무리 천하진미라고 할지라도 모두 다 사라지고 만다면 그게 무슨 소용일 것인가 말이다. 서서히 종어가 그 자취를 감추고 있던 사실은 <경성잡필(京城雜筆)> 1938년 6월호에 수록된 "금강지종어(錦江之宗魚)"에 다시 채록되어 있다. 이 글 역시 정문기의 것이다. "종어는 이와 같이 유명한 유래를 지닌 진미인 탓에 그 가격도 매우 높아 한 마리에 보통 2, 3원, 경우에 따라서는 2, 30원도 하고 있다. 산액은 7, 8년 전까지는 1년에 약 300마리 안팎의 생산을 보였으나 매년 감소추세에 있어 최근에는 대개 손에 넣는 것이 대단히 어려워지게 되었다. 어기(漁期)는 연중이지만, 12월에서 이듬해 5월경 사이가 많고 특히 맛이 나는 철은 7, 8월경이라 전하고 있다." ▲ <한국동식물도감; 동물편 (담수어류)> (교육부, 1997)에 수록된 '종어'의 도판이다. 이러한 탓인지 물고기의 으뜸이라는 종어는 정작 표본(標本) 하나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다. 이러한 형편은 사진자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1939년에 조선총독부 수산시험장 기사 우치다 케이타로(內田惠太郞)가 정리한 <조선어류지(朝鮮魚類誌) 제1책>에 종어의 모습을 담은 석장(측면, 복면, 배면)의 사진이 남아 있는데, 이것이 사실상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자료이다. 이것도 그나마 금강에서 잡힌 종어는 아니고 1936년에 평양 즉 대동강에서 잡힌 종어의 모습이다. 해방 이후에 발간된 대부분의 어류도감에 어김없이 이와 동일한 사진자료가 등장하는 걸로 보면 이것 말고는 별다른 사진자료가 남아 있지 않는 것이 분명한 듯하다. 이것 말고는 위의 <동아일보> 1938년 7월 27일자 기사에 종어가 헤엄치는 모습의 흐릿한 사진이 하나 남아 있긴 한데, 그다지 자료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 우치다 케이타로(內田惠太郞)의 <조선어류지(朝鮮魚類誌)> (조선총독부수산시험장, 1939)에 수록된 종어의 측정표 자료이다. 여기에는 대동강에서 잡힌 종어가 대부분이고, 금강 종어의 것으로는 1932년에 잡힌 단 한 마리에 대한 측정자료만 채록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진즉에 우려했던 대로 1930년대 이후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든 종어는 마침내 해방과 분단과 전쟁의 시대를 거쳐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리고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도록 종어를 잡았다는 사람도, 더구나 봤다는 사람조차 전혀 없는 형편이 되다보니 천하진미 종어는 그야말로 하나의 '전설'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몇 해 전에 "천하진미 종어를 되살렸다"는 보도가 전해진 적이 있었다. 알고 봤더니 종어의 멸종이 확실해진 마당인지라 지난 2000년에 중국에서 종어 78마리를 들여와 청평내수면연구소에서 수정이식에 성공했다는 소식이었다. 더구나 최근에는 북한지역에 남아 있는 종어를 도입하기로 추진한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그것을 두고 온전하게 종어의 복원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무엇보다도 사람의 손길로부터 종어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지 않고서는, 그리고 앞으로 방류하여 서식할 하천의 수질을 근원적으로 개선하지 않고서는 자칫 무의미한 일이 되어버릴 우려도 없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그러한 상황에서 기껏 종어를 방류하고도 예전의 맛을 고스란히 되살릴 수 있을지는 더 더욱 의문이 아닐 수 없겠다. 같은 종어라 할지라도 대동강과 한강의 것은 맛이 떨어지고, 유달리 금강의 것만 진미로 꼽혔던 까닭이 무엇이었는지를 곰곰이 되새겨볼 대목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