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도 가끔 남몰래 외로운지
이렇게 가랑가랑 가랑비 내리면
괜스레 가슴 저려 창밖을 보는지
저기 길 잃은 작은 새 한 마리
젖은 날개 뽀송뽀송 닦아주고 싶어
휘휘 휘파람을 불어 보는지
비는 소리부터 내린다지만 저 비는 말 없이 살금댄다.
외로운 고양이다.
외로움이 사무치면 그리움이 된다.
그리움이 비가 되어 내리는 밤,
잠에서 깬 나는 몽유병 환자처럼 그곳에 간다.
나무이파리들이 차창을 닦아 주는 좁다란 강둑 길,
물웅덩이 몇 개를 피하면 강물이 매미처럼 우는 곳이 있다.
차 불빛에 건너편 절벽이 일어선다.
절벽의 침묵을 깨우기 싫어 얼른 불빛의 입을 가린다.
바지를 걷고 건너면 딱 무릎까지만 젖는 자갈길은
맨들맨들 발바닥을 간질인다.
가만히 멈춰 서서 자갈자갈 물소리를 듣는다.
허리를 굽혀 손바닥 가득 강물을 담는다. 별이 없다.
하늘을 본다. 별들과 새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어디 숨어 그리움 젖은 날개 핥고 있을까.
자갈밭을 지난다.
머리를 감싸고 엎드린 돌들이 저마다 빗속에서 울고 있다.
그들의 등을 밟고 건너편 절벽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다.
아늑하다.
강물이 빨리 달리지 않고 머무는,
늘 잔잔한 물결이 있는,
그래서 편안한 휴식 같은 이곳은 내 비밀장소다.
못난 나는 자주 마음을 다치는 편이고,
늘 내가 가해자이기에 내 마음의 상처는 치료법이 달리 없다.
파라솔 아래 낚시 의자를 놓고 이곳에 앉으면,
마침 건너편 절벽의 작은 소나무가 손짓이라도 하면,
강물이 자면,
그래서 강물이 거울처럼 하늘과 구름을 보여주면
그러면 나는 알게 된다.
내 상처는 내 욕심이 준 것이고,
내 삶은 강물 속의 풍경처럼 허상일 수 있다는.
절벽에 뿌리내린 작은 소나무의 충고도 들을 수 있다.
난 이 위태로운 바위벽에 걸터앉았지만 절망하지 않지.
난 모든 것에 감사하지. 너처럼 헛된 꿈에 비틀대지 않지.
니가 꾸는 것은 욕망이고 내가 꾸는 것은 소망이지.
넌 흐르는 강물한테 배워야 하지. 흡수와 동화.
넌 좀 더 식물성이 되어야 하지.
아버지가 쓰던 키 작은 낚싯대를 편다.
슬프게도, 아버지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비는 문득 그쳤고, 저벅저벅 절벽이 다가오고 있다.
스물다섯 살의 오늘을 잊지 못한다.
비가 내렸고,
나는 도저히 감당 못 할 절망 앞에 몸을 던졌다.
/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라 생략합니다. /
그 날, 강물은 따뜻했다.
훌쩍이던 하늘이 울기를 포기했다.
바람이 자고 물결도 잔다.
다림질한 듯 잔잔한 수면에 찌불 하나 꾸벅꾸벅 졸고 있다.
문득, 졸던 찌가 서서히 일어선다.
깊은 적막이 쨍! 깨진다.
손바닥에 파라락, 붕어의 비명이 들려 온다.
자는 물결을 깨우기 싫어 조심조심 붕어를 달랜다.
큰놈이다.
손전등으로 얼굴을 비춘다.
동그란 두 눈이 불안으로 흔들리고 있다.
그래... 놓아주지.
한 때, 덫에 걸리는 모든 것은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더라. 살아보니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더라.
의지와는 상관없이, 덫에 걸린 듯 살아야 하는 인생도 있더라.
가거든, 그냥 물벌레나 먹고살아라. 다시는 꿈꾸지 마라...
시선을 들어 물 위를 걸어본다.
강을 건너고 절벽을 올라본다.
절벽 끝에 새벽하늘이 열리고 있다.
커피를 끓인다. 강물도 따라 끓는다.
팥죽처럼 뽀글뽀글 공기방울들이 수면에 솟고 있다.
커피를 마시며 서서히 피어오르는 강의 한숨을 듣는다.
커피를 다 마시기도 전에 강 안개는 완전하게 모든 것을 덮는다.
완벽한 적막이다.
나는 숨소리를 죽이고 이 모든 것을 관찰하며 언젠가는 이루고픈 관조의 경지를 예습한다.
완벽한 고요다.
안개를 더듬으며 자갈밭으로 간다. 아침이 오고 있다.
옷을 벗고 강물 속에 눕는다.
강물이 부드럽게 상처를 만져주고,
안개가 머리를 안고 얼굴을 핥아준다.
아침 햇살이 안개를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참 좋은 나는 언뜻 호리병에 갇힌 마술사를 생각한다.
안개가 걷히고 아침 햇살이 젖은 것들을 말린다.
머리를 털자 비듬처럼 우수수 생각조각들이 떨어진다.
알몸을 내려다본다.
뽀얗게, 새살이 돋고 있다.
나는 당분간 아프지 않을 것이다.
이 하룻밤의 기억으로 또 얼마간은 견뎌낼 것이다.
자연은 그래서 참 좋다.
내 병의 치료제는 아니더라도 진통 효과는 확실하니까.
옷을 입고 짐을 챙긴다.
낚싯대를 접으면서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해낸다.
이 낚싯대 앞에 앉아 말없이 생각에 잠겼던 아버지...
낚싯대를 다시 펴서 찌를 세우고 옥수수 캔 하나를 딴다.
아버지, 이 채비는요,
정점 찍고 옆으로 누울 때 챔질하셔야 해요.
자갈밭을 지난다.
밤새 엎드려 울던 돌들이 돌아누워 아침 햇살에 뽀송하게 몸을 말리고 있다.
얕은 강물이 자갈자갈 아침 인사가 바쁘다.
바지를 걷고 자갈길을 건넌다.
맨들맨들 발바닥이 간지럽다.
가만히 멈춰 서서 물소리를 듣는다.
허리를 굽혀 손바닥 가득 강물을 담는다.
하늘과 구름과 해가 있다.
하늘을 본다.
작은 새 몇 마리 먹이 찾아 날고 있다.
강둑에 서서, 매미처럼 우는 강물 소리를 듣던 나는 차 시동을 건다.
물웅덩이 몇 개를 지난다.
길가 나무이파리들이 차창을 닦아준다.
강둑 길을 벗어나면서 백미러를 본다.
나무이파리들이 아직도 찰랑찰랑 손을 흔들고 있다.
현관문을 열자 은지가 환하게 웃는다.
뒤에서 꼭 안아 본다.
내 여자 향기는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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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계절......
여자보다 더 짙은 감수성......
피러님 일등입니다. 수첩에 꼭 적어주세요^^
하지만
시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피~~러어어님!!!
좋은 가을 즐기십시요 ^^
저에게도 낚시는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아주좋은 치료제 입니다
아무래도 그래보여...내가 무식해서 그런가?ㅡㅡ;;
이제는 문학쪽으로 빠지시려구요?
그럼..장비일빠^^~
몇 번을 되새겨 읽고 갑니다.
모아서 책 한 권 내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진심 강추에요. ^.^
어느 조행기에서 잉어를 잡으시고 하신 말씀
" 미안타...내 여자가 아프다... 집에 같이 가자.."
그 표현이 제겐 굉장한 충격이었고
피러님의 글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그 느낌의 글을 접합니다.
나무이파리들이 아직도 찰랑찰랑 제 가슴에 있네요. ^^
왜냐면요 저는 부친이 낚시를 극도로 싫어 하셨거든요.
특히 그 껄께이를 무지나 무서워 하셔서요.
참 그런게 독사뱀은 막 만지시던게 그보다 훨작은 지롱이를 못만지시니...
한단어 한귀절이 그냥 나열되어 있지 않네요.
짧지 않는 글인데 군더더기가 없어요.
성큼성큼 다가오는 이 가을에 ..
낚시라는 취미를 가진 우리네 꾼들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절절히 공감할만한 좋은 글 보았습니다.
참
어려운
참
이해하기
어려운
그말
삶을
핥다
현실에 융화되지 못하는 가슴알이를 느끼는지
나만의 느낌인가?
피터님은 늘 저를 아프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