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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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에는 닭

IP : b081c5bcf66bdef 날짜 : 조회 : 8758 본문+댓글추천 : 0

얼마전, 25년지기 대학친구를 오랫만에 만났습니다. 철원 냉정지 부근 공사현장에 있는 친구의 숙소에서 돼지머리고기를 안주 삼아 밤 깊어가는 줄 모르고 한잔하다보니, 이 친구와의 총각시절...낚시 중 생겼던 에피소드가 해묵은 앨범의 흑백사진처럼 삐죽이 튀어나와 그 시절로 돌아가 한참을 헤매다 돌아오게 되더군요. 여기 그 이야기를 적어 봅니다. “야, 도착했다. 어디로 나가면 되냐?” “응. 원주터미널 정문앞에 서 있어라, 금방 달려 가마.” 공중전화 수화기를 내려 놓곤 친구 놈을 기다린다. 이게 얼마만이지…..한 3년되었나…….? 17년 전. 이 계절. 당시 대학 졸업 후 첫직장에 취업해 아직 총각몸이었던 시절. 대학때부터 절친한 친구놈을 만나러 간만에 원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나의 근무지는 서울. 녀석은 현장을 따라 이리저리 옮기는 직장이었던지라 취업 후 몇 년간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었다. 마침….어찌하여 2박3일간의 시간이 내게 생겼고 늘 전화통화만하던 놈을 한번 보고 강원도의 붕어얼굴도 볼 요량으로 주섬주섬 낚시짐을 꾸려 생소한 원주터미널에 하차하게 되었다. 녀석이 이번에 결혼한 와이프 얼굴도 보여준다고 하여 그래도 첫대면인데…하고는 멀쑥하게 차려입고 2박을 할 가방하나 메고 전혀 매치가 안되는 허름한 낚시짐을 들고 서있자니 터미널을 왕래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수차례 다가와 꽂히는 듯 하다. “야~~ 자슥. 오랜만이다. 살 좀 쪘네?” 잠시 후, 자주빛 세피아를 끌고는 나를 마중 나온 친구. 녀석….여전히 인상 별로고 얼굴은 더 까매졌고, 배도 엄청 나왔구먼. 하지만, 간만에 만나니 이보다 더 반가울 순 없다. 녀석은 나를 치악산근처에 있는 신혼살림집으로 안내한다. 가면서 와이프 얘길 하는데….만난지 2번만에 날을 잡았다나? “왜? 그렇게 서로 한눈에 반했냐?” “아니….두번째 만날 때 와이프가 아버질 모셔 왔어.” “? @..@” “장인이 섬뜩한 눈빛으로 보시더니 바로 날 잡으라고 하셔서…..그만….쩝.” ㅋㅋㅋ…..요즘 세상에 연애 한번, 손 한번 못잡고 식을 올리다니… 암튼 녀석다운 결혼이다…싶은 생각으로 녀석의 집에 도착하니 수더분하게 생긴 제수씨가 나를 반긴다. 제수씨가 정성껏 차린 술상을 받고서 주거니 받거니….. 지나간 학창시절의 말썽피운 추억과 사회에 발을 디딘 후 살아온 얘기를 시간이 지나는 줄 모르고 즐겁게 나누다 보니 안주가 부족하다. “야, 나가자. 내가 함 쏘마.” 난 모든 짐을 방에 풀어놓고 녀석을 데리고 나왔다. 친구의 집에서 언덕아래로 근 200미터 정도 내려가자 한 단란~한 주점의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 단란주점….총각시절이 좋았지….카드 긁는 거 무서운 줄 몰랐으니…. 녀석을 데리고 들어서니 제법 반반한 아가씨 둘이 들어왔다. 이미 알딸딸~한 가운데 양주 두병이 더 쓰러지고 아가씨와 죽이 맞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내가 제법 맘에 든 모양… “오빠는 원주사람 아니네? 서울?” “응. 친구 만나러 왔지.” “에이~ 그럼 뭐 잘보일 필요 없겠네? 금방 갈 테니?” “어허~ 며칠 있을 거야. 내일은 낚시 가고 함 또 올게.” “낚시? 나도 함 해보고 싶은데….” “그래? 그럼 내일 나랑 같이 갈까? 1박2일.” 건성 한 소린데 마담한테 물어보고 오더니 같이 가잔다. 이런 횡재가……^^ 잽싸게 아가씨의 전화번호를 메모지에 적어 받고는 호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이게 웬 떡이냐…..원주까지 와서…..님도 보고 뽕도 따고….캬캬. 내일 아침 출발하기전에 전화해서 아가씨와 만나기로 하고 호기있게 카드를 긁으며 소정의 성과(?)를 올리곤 술집을 나섰다. 여기서 끝냈으면 좋으련만………그 놈의 술이 뭔지. 놈과 나는 제법 주량이 센 편이었던 덕에 길가의 포장마차를 또 공략했다. 날이 어슴프레 밝을 무렵에서야 넉다운이 되어 뻗었다. 다음날.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셨기로 이날이 무슨 날인데 늦잠을 자랴. 바로 어제 본 아가씨와 1박2일의 흥미진진한 낚시여정을 가는 날이 아닌가. 숙취에 쩔어 걷기도 힘든 몸이지만 녀석과 함께 제수씨가 주는 해장국을 먹고는 낚시가방을 차에 싣고 집을 나섰다. 친구녀석은 다시 일터로 가야하는 관계로 이곳 지리를 모르는 나를 저수지까지 태워주고 데리러 오는 기사역할…나의 따끈따끈한 빅이벤트를 노골적으로 부러워 한다. 음하하하핫~~~ ^^ 그런데………………………………… 없다. 아무리 호주머니를 뒤져봐도…… 어제 본 아가씨의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가 없다. 이런 귀신이 곡하고 환장할 노릇이 있나. 이게 얼마만의 건수인데….. 눈앞에 차려논 영계백숙이 날아서 도망간 기분이랄까. ㅜ..ㅜ 친구놈과 함께 어제의 필름을 다시 되짚어 본다. 분명 포장마차를 가기전까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면……? 아직도 웅웅거리는 아픈 머리로 마침내 답을 찾았다. 껌. 이놈과 새벽에 비틀거리며 집에 기어들어가기전. 우리는 껌을 씹다 집어귀에서 잡풀이 우거진 쓰레기웅덩이에 뱉었었다. 그때 껌을 무슨 종이에 싸서 버렸는데…..그것이 그 메모지일 줄이야. ㅠ..ㅠ 서둘러 그 장소에 갔지만 잔뜩 쌓인 쓰레기 웅덩이에서 그 조그만 돌돌 말린 쪽지를 무슨 수로 찾으랴….또 설사 찾으러 들어간다면 아침부터 웬 *친놈이 쓰레기를 뒤지나…하는 시선을 받을테고. 과감히 눈물을 머금고 영계 한마리가 저멀리 날아가는 상황을 인정했다. 그래, 내 주제에…..이래서 난 선수가 못 돼…….ㅠ..ㅠ 훌훌 털어버리고 친구놈이 안내한 작은 저수지에 도착하여 대를 핀다. 주변엔 두팀이 더 있었는데….한 쪽은 나처럼 혼자 온 조사이고 한 쪽은 세명이서 온 5칸대이상의 장대 팀이다. 친구놈은 퇴근후에 오마…하고 차를 몰고 가버리고 혼자서 품질을 시작했다. 기분도 꿀꿀한데….이따 친구가 오면 대충 저녁이나 때우고 다시 어제 그 단란주점이나 가볼까….조과가 좋으면 그냥 간만에 녀석과 이런저런 얘기로 밤낚시에 빠져 볼까……혼자 잡생각만 하고 앉아있는다. 간혹 장대팀은 호들갑을 떨며 발갱이와 잉어들을 걸어낸다. 나야 뭐 3칸이 제일 긴대이니….5치정도 될까말까하는 놈으로 드믄드믄 낱마리나 잡아내며 자리를 옮겨도 보고 채비도 바꿔 본다. 슬슬 어둠이 깔리고 배도 허기가 질 무렵이 되었는데…. 친구놈은 아직 올 생각을 안한다. 현장에서 일하는 놈이 날이 깜깜한데 야근을 할리는 없을텐데…하면서도 이때만해도 별 신경쓰진 않았다. 하지만 시계가 밤 9시를 넘어가고 날이 추워지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핸드폰도 없고….차도 없고….공중전화도 없고….이것까진 그렇다쳐도 날은 추워지는데 방한복은 녀석의 트렁크에 있지…. 밥은커녕 간식거리도 안가지고 있지…… 길도 전혀 모르지……. 친구녀석을 철썩같이 믿은 것이 잘못이었다. 이게 무슨 꼴이냐….원주까지 와서는. 영계는 손안에 들어왔다 날라갔지….친구놈은 배신을 때렸지….. 서글프기도 하고 쓸데없는 짓거리를 해서 벌받나 싶기도 하다. 친구놈에게 화가 잔뜩 난 건 난거고 민생고와 추위를 해결해야 이밤을 넘기고 내일 녀석을 잡아죽이던 말던 할게 아닌가. 견디다 못 한 난 마침내 일어서서 제방을 넘어 건너편으로 건너갔다. 한참을 걸어가서 아까 낮에 봐 둔 혼자 온 조사에게 말을 건넸다. “저…..아저씨. 라면 남는 거 있음 두봉지만 파세요.” “네? 라면이요?…..한봉지밖에 없는데.” “그거라두….여기 천원 드릴께요.” 구걸하다시피 한 조사에게 라면 한봉지 사들고 돌아서는데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 사람이 다시 묻는다. “아저씨? 안 추워요?” 안추울리가 있나….반바지에 반팔인데. 하지만 존심이 있어서는 “예….뭐 그럭저럭 괜찮은데요.” 마음과 달리 엉뚱한 대답을 내뱉고 말았지만 친절하게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노란 비닐우비바지를 꺼내며 말한다. “추우시면 이거라도 입으세요.”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더니….. 밤새도록 연락도 없는 친구놈보다 옆조사가 백번 낫다. 어쨋건 생라면 하나와 우비바지 하나로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햇살이 간밤을 잘 버텼다며 따사롭게 온몸을 적시울때도 친구놈은 끝끝내 나타나질 않았다. 웬수…….. 낚시생각은 간데 없고 이제 여기서 집에 갈 걱정을 할 무렵인 정오무렵. 이젠 웬수가 되어버린 친구놈의 차가 마침내 제방옆에 흙먼지를 날리며 주차하는 것이 보인다. “야이 **놈아! 니가 친구냐!” “………..(긁적긁적…)” “이 ** 같은 ***해 죽일 **새끼야! 넌 친구가 밤새 밥도 못먹고 잠도 못자고……..***** ….뭐하느라 안왔냐?” 녀석은 무척 미안해하며 입맛만 다신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지…. 그런데 놈이 어제 안 온 이유를 들은 나는 더 열불이 났다. 이유인즉슨, 어제 퇴근하고 오려고 했는데 갑자기 접대성 회식을 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간단하게 하고 서둘러 오려고 했는데 2차가 어제 우리가 술먹은 바로 그 단란주점이 아닌가!(내가 생각하기엔 놈이 일부러 간 것 같지만…) 어제의 삼삼한 파트너가 눈에 들어오고….다시 만난 어제의 견우직녀는 눈이 맞아 술에 쩔어….어찌하다보니 2차로 동행. 하루밤 만리장성을 진~하게 쌓고 눈 떠보니 아침이라나…….. “야이, **놈아! 넌 이 친구 생각도 안나냐? 나보다 그 계집하고 **하는게 더 좋았다 그거지? ***아!” “아니……난 어제 너가 그 메모 잃어버려서 니가 낚시터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주려고…..그래서 갔지.” “**한다. 그럼 왜 데리고 오지 안 왔냐, 임마!” “그게….그냥 빠져나오기 좀 머해서….” 친구놈은 저수지에서 생고생을 하며 날밤을 새웠는데 여자와 진~한 하룻밤 몸을 풀고 온 이놈이 쉽사리 용서가 안된다. 하지만……바다와 같고 하늘보다 넓은 맘으로 딱 한번 용서하기로하고 대를 접었다. 사실 녀석이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다시 내 파트너의 전화메모를 받아온 걸 보고 분이 풀리긴 했지만…….^^; “근데…..**야. 난 어제 너랑 밤새워 낚시 한거다?” “얼씨구~ 웃기지마라. 혼자서 재미보고 맨 입으로?” “야야….한번 봐주라~ 맛있는 거 사줄게.” 그래도 마누라 갖다준다고 내가 잡은 붕어 낱마리를 챙기는 친구놈의 차를 타고 저수지를 내려오는 길에 문득 호젓한 식당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밤 새 굶다시피한 나는 무조건 핸들을 돌리라고 했다. 메뉴를 보니 영계백숙….오리탕….옻닭….꿩…토끼….. “여기 옻닭 하나 주세요~” 생각없이 주문하는데 친구가 묻는다. “야. 너 옻닭이 뭔줄 알아?” “아니? 뭔데?” “옻나무 넣고 끓인 거야. 재수없으면 옻 옮는다더라.” “옻? 야야…그럼 못 먹는걸 팔겠냐? 먹게끔 만들겠지.” “넌 먹어 본 적 있어?” “아니. 이 기회에 함 먹어보지 뭐.” 잠시후 나온 옻닭은 냄새부터 기가 막히더니 맛도 또한 일품이었다. 약간 걸쭉하면서도 미끈거리고 부드러운 그 맛.(꿀꺽! ^^) “야야, 넌 임마 좀만 먹어. 어제밤에 영계백숙 한마리를 혼자서 다 먹었잖아. **놈아. 난 이 닭이나 실컷 먹자.” “흐흐흐….그 닭과 이닭이 같냐. ㅋㅋ” 친구놈과의 해후는 그 점심을 마지막으로…..난 녀석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 원주터미널에서 서울가는 버스에 피곤한 몸을 실었다. 다시 회사에 복귀한 어느날 오후. “띠리리리~~~” 녀석에게서 한통의 전화가 사무실에 걸려왔다. 친구놈과 전화통화를 끝낸 난…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려 담배 한 개피를 들고 휴게실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방금 그 놈과의 통화…… “**야, 너 별일 없냐?” “응? 왜 일이 없냐. 다시 회사오니 일이 무쟈게 많다.” “아니……그 일 말고…..” “그럼 뭐?” “옻닭 먹은 거 괜찮냐구.” “응? 응. 아무렇지 않은데. 왜?” “난……죽을 지경이다. 옻 잔뜩 올랐어. ㅠ..ㅠ” “엥? 정말 옻이 올랐어?” “응. 똥꼬까지 옻올라서 가려워 죽겠다. 흑흑흑…” 설마 정말로 그 닭을 먹고 옻이 오를 줄이야…………. “야…..**야. 너 이런 말 알아?” “뭐?” “이에는 이. 닭에는 닭. 혼자서 친구배신하고 영계를 꿀꺽한 놈. 나를 대신하여 닭이 벌을 내린줄 알아라….ㅋㅋㅋㅋ….” 차창밖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나의 눈엔 배웅하던 친구놈의 얼굴이 보였다. 저멀리 치악산 현장에서 바지가랑이 속 쌍바윗골 사이를 엄청 비벼대고 있는 친구가.

IP : 6cba2625f9ac10d
유유상종 초록은 동색이요 ....ㅎㅎ

갑자기 동네 바보들이 보고싶어지는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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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dbff7de059a7391
ㅋㅋ
역시 친구는 레벨이
맞아야 재미있죠
한참 웃고 갑니다
안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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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96aaf4f3843dfaa
좋아요
담주금요일밤 저두 올만에 고향친구들

서울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룸을예약 해났다는데 ᆢㅋ

재미난글 잘보고 갑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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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2da2cde05c10ac9
좋은? 친구를 두셨군요~

알리바이까지는 확실했는데?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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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5f58db43844759b
재미있는 얘기에 단숨에 읽어 내려갔습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으시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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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d363038756a17b1
원래 긴 글 읽는거 별로 안좋아하는데 정말 재미있게 읽었네요.
글솜씨도 대단하시고.. 참으로 즐거웠던(?) 추억이었던 것 같네요.
자주 올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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