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라히 저편 너머
40여년이 훨씬 넘은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정확히는 기억 못하나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 것 같읍니다.
그 당시에는 교통이 불편하여 낚시 한 번 가려면 이삼십리 걷는 것은 보통이었지만
다리 아프다거나, 배 고프다거나,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졸졸 잘도 따라 다녔읍니다.
그날 낚시를 갔다오면 거의 파김치가 되어 저녁을 먹고는 피곤하여 바로 큰 대자로
퍼져 버리죠 -눈을 감으면 찌가 오르락 내리락-
그런 제 모습에 웃으시면서 '또 갈래' 하면 힘차게 '예' 하고 대답했죠.
얼마나 낚시가 재미있던 지 일년에 두 번 가는 소풍 가는 것 만큼 낚시가는 전날은
설레임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이였읍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께서
"유기야 오늘은 친구와 같이 가니 집에 있어야겠다.다음에 데리고 갈께"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청천벽력 같은 말씀에
"싫어요,저도 갈래요" 떼를 쓰기 시작했죠.
그러나 아버지는 단호했읍니다.
아랫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강렬한 눈 빛으로 저를 압박 했읍니다.
깨갱 깨갱 꼬리 내린 강아지처럼 아무 말 못하고 고개만 숙였죠.
'가야 하는데, 따라 가야 하는데……'
낚시 가방을 메시고 집을 나서는 아버지의 뒷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순간
나도 모르게 달음박질 쳐서 아버지의 뒤를 따라 가고 있었읍니다.
당시 프린스호텔 건너편에 집이 있었는데 버스 타는 곳은 반월당이었죠.
(지금 거리를 재어 보니 1.5km정도)
가슴은 콩닥 콩닥 하면서 아버지의 뒤를 몰래 쫓아가고 있었읍니다.
들키지 않으려고 따라가다 숨고, 따라가다 숨다가……
아아 내 생애 그런 긴장감과 스릴은 몇 번 없었을 것 입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과 함께 가슴이 뜁니다.
버스정류장 20여m 뒷편에서 숨어서 기다렸죠.
이윽고 경산 가는 버스가 시야에서 보이면 다리에 발통을 달아 냅다 달려,
함박 웃음과 온갖 아양을 담아
"아부지~~~"하고 짠 나타나죠.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시는 아버님 뒤로 친구분들이 거들어 주시죠.
"여보게 데리고 감세, 저리도 따라가고 싶은 것을……허,허,허"
그렇게 저의 낚시는 시작 되었읍니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마지막 가시는 그 길,
내 귓전을 울리는 아버지의 다정다감한 목소리
"유기야, 낚시 가자!
참 많이 울었읍니다…….
돌아가신 지 4년,
지금은 아버님 유품인 낚시대 한 대를 늘 간직하고
추억을 낚고 있읍니다.
아부지와 함께
낚시를 하고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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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깔나는 글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소박사님과 여러 월님의 조행기를 읽고
아스라한 추억이 되살아 나면서 뭉클한 행복함을 느꼈읍니다.
고맙고 감사하여 짧은 필력이나마 추억의 조행기를 올립니다.
낚시와 같다에 한표 입니다
지난 추억을 생각하면..오늘하루 하루가 먼훗날 또 다른 추억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모님과 아이들한테 항상 웃는 얼굴로 대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한 시간 되십시요~~~
제겐 그런 추억이 없네요.
마냥 부럽기만~~~
살아생전 아버님과의 추억이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항상 함께 가시는 출조..아버님도 흐믓해 하실겁니다..
잘 보고 갑니다..
오래전 저도 아버지와 함께 낚시한 추억을 애써 떠오르게 합니다.
오늘 아침...잔잔한 정에 잠겼네요.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緣이 닿을때.. 곡차 한잔 기울이십시다..
물안개 자욱한 물가에서 따스한 커피한잔 나누고 싶습니다....
저 또한 ^^
그래서 저는 출조 시에 어르신들 계시면 여지 없이 소주잔 들이 대며 낚시를 망치고 귀여움 받고 옵니다.
ㅎㅎㅎ
저와 거의 같은 어린시절을 보내셨군요
다시 돌아가지 못 한다니 아련해집니다
글에 제 별명이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용기를 내어 써 보았읍니다.
좋은 말씀으로 격려해 주신,
그리고 다녀 가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지금도 아버지의낚시대몇대가
남아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9년전에 떠나셨지만...
3일후가 기일이네요.
아버지 그립습니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