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못에서 낚시한지 삼년쯤 되었을까..
떡밥으로만 하다보니 정직하게 쭈욱 밀어올려주는 찌맛과
수심 깊고 맑은 물속에서 앙탈하는 붕어의 손맛은 만끽하였지만
월척급 붕어 만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오로못에서 조금 씨알 좋은 놈들 보려면 우측골 최상류를 돌아 산길로 들어가는
골짝이나 좌측골 최상류 수몰 버드나무 지역 근처로 가야한다는데 거기까지는
차에서 내려 몇 백미터는 걸어서 들어가야 하기에 엄두조차 내지 못하였다.
하여 이제는 낚시하다 보면 간간이 올라와주던 쭈래기(새끼잉어, 일명 발갱이)를
대상으로 새로운 재미를 맛보고자 잉어들이 놀만한 곳으로 발길을 옮겨본다.
좌측골 시멘트길로 쭈욱 들어가다 보면 정수장 같은 조그만 건축물 지나
상류의 완만한 지형과 중류가 시작되는 급경사 지형이 만나는 곳에 물이 차면 앉을
곳이 마땅찮고 물이 어느 정도 빠져야만 자리 좀 다듬어 앉을만한 포인트가 있다.
평소에 지나치면서 적당한 수위가 되면 앉아봐야겠다고 하던 차에 마침 기회가 되었다.
비탈길을 조심조심 내려가 자리를 살펴보니 6월의 햇살을 가려주는 적당한 나무 그늘도
있어 의자 펴고 대를 깔아본다.
나름 잉어가 좋아할 만한 먹을거리로 준비한 일명 막어분이라는 냄새가 아주 진하고
보드라운 입자로 되어있는 '진어분'과 물을 타면 연두색으로 변하는 '제비표 콩떡밥'을
적당히 배합하여 원줄 5호에 합사로 묶은 금빛 잉어 외바늘에 밤톨만하게 달아
26, 30, 36, 40 넉대를 포진한다.
상황에 따라 긴 대에서 나오는 경우도 있고 짧은 대에서 나오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
26과 40대는 스페어로 치부하여 상황을 봐가며 둘 중 하나는 걷을 요량이었고
주포를 30, 36대로 삼았다.
수심이 깊어 40대를 던져도 봉돌과 미끼가 경사면에 얹히는 것 같고 26, 30대는 찌가
초릿대에서 몇 뼘 안되는 곳까지 올려야한다.
잔잔하게 살랑거리는 수면이 6월의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밤톨만한 밑밥을 외바늘에 달아 3분 간격으로 10여회 투척했을까..
30대의 찌가 꼬물꼬물 조금 올라오는 듯하다가 물속으로 쑤욱 들어가는 입질에
대를 번쩍 치켜세우니 덜컥하고 팔목 아래로 기분좋은 진통이 느껴진다.
처음에는 조금 버티는듯 하다가 이내 좌우로 왔다갔다하면서 딸려나온다.
30센티 조금 넘는 쭈래기.
그걸 시점으로 연이어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26대와 40대는 아예 눈길조차 줄 틈이 없다.
오전 10시에 도착해서 자리 잡고 대 펴는데 30분, 밑밥 주는데 30분 정도가 소요되었으니
실제로 입질 시작한 시간은 11시부터...
한 시간 후인 12시까지 입질은 계속 이어져 잡은 마릿수가 딱 12마리..
5분에 한 마리씩 잡은 셈이다.
30대의 꼬물거리는 찌를 주시하다가 곁눈길로 본 36대의 찌가 끝까지 쭈욱 올리고 나서
챔질하면 40~45 센티의 잉어가 물려있다.
간혹 올라오는 붕어도 그 씨알이 8치는 넘었다.
포인트의 특성상 자리가 불편하고 거의 낚시하는 사람이 보이지도 않은 이유도 있었지만
오로못에 그만큼 자주 낚시오면서 왜 이런 자리를 지금에야 앉게 되었는지 이해가 안될 정도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반저수지에서 붕어보다는 잉어 잡는 빈도가 훨씬 낮고 당시엔 지금과는 달리
잉어가 푸대접 받지는 않았던 터라 그 재미에 푹 빠져 한 동안 좌측골 그 포인트만 다녔는데
갈 때마다 붕어보다는 잉어가 많이 잡혔다.
아마 잉어들이 서식하기에 좋은 지형적 여건이 갖춰진 포인트였던 것 같다.
그 오로못에서 지금까지 내가 만난 잉어 중 제일 큰 놈을 잡은 날짜와 시간이
1998년 6월 20일 오후 두 시였다.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유가 그날이 바로 프랑스월드컵에 출전한 우리 팀이 베르캄프를 주축으로 하는
네덜란드에 5:0이라는 잊을 수 없는 스코어로 패배하기 하루 전이었으니...
평소에 가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기에 차를 돌려 다시 하류쪽으로 내려오다가
시멘트 길옆에 비포장으로 나있는 공간이 있어 주차하고는 낚싯짐 둘러매고 풀숲을 헤치고 내려가는데
내딛는 발길 바로 앞에서 누렇고 굵직한 구렁이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다.
이상하게도 오로못에서는 그 흔하디 흔한 꽃뱀보다는 구렁이를 만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여담이지만 오로못 우측골 상류 아스팔트길을 운전하며 가던 중 전방에 굵고 길쭉한 지팡이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면서 차가 미세하게 덜컹거림을 느끼고 지나간 후에 룸미러
를 통해 뒤를 살펴보니까 그 지팡이가 꿈틀대면서 상류 길 건너 조그만 둠벙쪽으로 기어가는 것을 본 적
도 있었다.
물가로 내려가 중하류쪽을 대충 살펴보다가 좌우로는 야트막한 수심의 움푹 파인 듯한 포인트를 낙점한다.
중상류 급경사지역보다 지형도 평평하고 수심이 훨씬 덜 나오지만 그 움푹한 자리에 꼭 뭔가가 들어있을
것 같은 느낌이 온다.
단 하나 단점이 있다면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을 파라솔로만 가려야 한다는 것.
수심 및 채비 안착지점을 고려하여 30, 36 두 대만 펴고 바늘에 어분+떡밥 달아 품질 좀 하고
느긋하게 담배 한 대 물고는 지긋이 찌를 지켜보자니 7,8치 붕어들이 입질을 시원스레 잘도 한다.
두어 시간 드문드문 붕어들이 올라오다가 입질이 뜸해진다.
한여름의 한낮이라 당연히 그러려니 하고 미끼를 새로 갈고 느긋이 기다리는데
36대의 찌가 쭈욱 올라오는 것을 보고 챔질하니 40 센티 정도의 잉어가 올라온다.
옳다 이제 잉어들이 붙었구나 하고 찌에 집중하고 있기를 십여분...
좌측 푸르죽죽한 수양 30대에서 꼬물꼬물 예신이 시작되고 일 이분이 지났을까?
찌가 스르르륵 소리없이 올라와 몸통부분이 드러나기 직전 대를 두 손으로 잡고 확 치켜세운다.
덜커덕...팔꿈치에 강렬한 진통이 느껴짐과 동시에 바늘에 뭔가 단단하고 큼직한 물체가 걸렸다는
생각이 든다.
5호 원줄과 낚싯대가 우웅거리고 낚싯대는 휠대로 휘어 한 순간 세상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대를 한껏 세워 버티다 보니 약간의 움직임이 느껴지고 이어서 대구리 잉어와의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수심 2미터 남짓한 데서 버티는 놈의 힘이 예사롭지가 않다.
지긋이 당기는 힘에 조금 딸려나오는 듯하다가도 버티고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그 놈은 물가로 나온다.
그러나 조금만 방심하면 또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그 푸르죽죽한 낚싯대가 얼마나 버텨줄지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다행히 낚싯대는 그 값어치 이상의 역할을 하고 십여분을 버티던 대구리도 지쳤던지 거의 다 나왔다.
뜰채가 없었고 있다고 한들 한 손으로 낚싯대 잡고 뜰채 댈 엄두를 낼 수 없는 상황,
우측으로 20여보 떨어져서 낚시하던 두 분은 뜰채를 들고와서도 들이댈 생각도 못하고 구경만 하고 있다.
할 수 없이 뒤로 한참 물러나 겨우 물밖으로 들어낸 대구리가 퍼득거리자 입에 걸린 바늘이 떨어지고
몸부림 치는 대구리를 움켜잡는 두 손이 덜덜 떨려온다.
금동빛 크고 깨끗한 망사비늘이 번쩍이는 자연산 잉어...
어림짐작으로 내 한 팔 길이는 넘을 것 같고 몸매는 길이에 비해 그리 굵지는 않은 편인데도
살림망 주둥이가 좁을 정도였다.
뜰채 들고와 대보지도 못한 두 분의 입이 쩍하고 벌어진다.
떨리는 손과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는데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된 것 같다.
더 이상 낚시할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앉아있다가 저녁무렵에 친구들과 팔공산에서 만나
계추겸 월드컵 관전하기로 한 생각이 들어 잉어를 어떻게하나 하고 갈등하다가
일단 가져가보자 생각하고 대구리만 삐꾸통이라고 하나..거기다 넣는데 온전히 들어가지가 않는다.
겨우 구겨서(?)넣고 차 보조석 자리에 싣고 에어콘 틀고 가 칠곡 동명의 어느 낚시방에 맡겨두고
모임에 갔는데 온통 신경이 그 대구리에만 갈 뿐 친구들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모텔에 큰 방 잡고 친구들과 같이 들어가 TV를 보니 월드컵에 관한 내용 일색이다.
우리 대표팀이 네덜란드와 경기하자면 너댓 시간이 남았을까...
그 때까지도 대구리의 거취문제를 고심하던 나는 모텔방에서 슬며시 나와 그 낚시방으로 가서
돌려받아 차를 몰고 엑설레이트를 한껏 밟아 오로못으로 갔다.
좌측골 내가 자주 가는 포인트로 가서 물에 넣어주니 얼떨떨해 하는 것 같더니 이내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유유히 오로못의 심연속으로 사라져간다.
다음날 새벽,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김병지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오렌지군단에게 5:0으로 무참히 깨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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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10월 21일 어줍짢은 '남매지' 이야기로 월님들께 첨으로 인사드리고
어느덧 두 달 남짓 흘러 한 해가 저물었습니다.
그 마무리도 '추억의 조행기'로 하고자 올해의 마지막 조행기를 올립니다.
월님들 새해 '인생의 대구리' 낚으시는 멋진 경인년이 되기를 바라며
그간 재미없는 글에도 격려해주신
초짜에요님, 혼자는무서버님, 채바바님, 地天님, 바다4랑님, 새벽여명님,
저수지풍경님, 제비천하님, 묵빛비늘님, 대갈빡님, 상천붕어님, 연조인님,
초록빛깔님, 서태안님, SORENTO00님, 무한대로님, 대구동생님, 성암산붕어님,
SSANGMA님, 승찬이아빠님, 비맞은대나무님, 찌르加즘님, 샘이깊은물님,
미느리님, 낚시만생각하면님, 사람도대물님, 예전처럼님, 주영이님, 에다아빠님,
월척중독자님, 날으는밤나무님, 윤똘님, 묵호사랑님, 붕어와춤을님, 양보님, 도훈짱님,
바람난지렁이님, 봄봄님, 파트린느님, 입질온닭님, 비천검님, 봉식이2님, 카리없수마님,
갱주부채살조사님, 물로간산적님, JB위풍당당님, 까망붕어님, 수양버들가지님,
서태안님, 폭기조님, 풍류사랑님, 가객님, 애무부장관님, 행님님, 구경꾼님,
죠니뎁님, 이공공님, 카리스마님, 소요님, 비익조님, 고운남님, 아미고님
여러님들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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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후에 그 무게에 녀석의 탈출본능이 실렸을 때 아찔함이
느껴지지요
순발력은 40-45정도되는 녀석들이 월등합니다
승부는 대형잉어보다 한참 힘이 올라 파워감 넘치는 녀석들의
거친 몸부림과의 한판이 훨씬 짜릿하더군요
그도 2.1칸대 이하의 짧은대로 걸었을 때
그 스릴은....
신나고 멋진 한해 되시길.....
어쩔수 없이 전 아직 그런것에 연연하는 초보인가 봅니다...
새해 이루고자 하는일 성취 하시고 모라해도 건강이 제일입니다..
건강히 웃으면서 지내는 새해 되세요 ..
다들 느끼시는 것이겟지만, 글을 다루는 솜씨가 예삿 솜씨가 아닙니다.
좋은 글을 읽었습니다. 박진감 넘치는 글.
새해 더 밝고 환한 한 해 되소서..
현장감 있는 조어삼매님의 추억을 잘 읽었습니다.
2010 새해!
힘차게 출발합시다!!!!!!!
그옛날(?) 고령 쾌빈교 지나 낙질못에서 1.6칸에 쭈래기(?)와 파이팅! 하던때가 생각납니다~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멋진 조행기 올려주시길 기원합니다.
복 만땅 받으세요
구경꾼님 자가 없어서요..^^;; 전 아직 월척붕어도 길이를 재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눈대중 손대중으로..아니면 다른 사람 필요하다고 해서 줬는데 그 사람이 재어서 알려준 적은 있네요.
파트린느님 항상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띄우시면 진짜인줄 착각합니다.^^
소밤님 보시기엔 귀여울 것 같은데...ㅎㅎ
미느리님 낫질못은 저도 한 때 자주 다녔는데..상류 개울 건너 산쪽으로, 아니면 좌안 공원쪽 좌우로...
7,8치 붕어들 많이 잡기도 하고 현장에서 만난 분들과 매운탕 끓여 먹던 기억이 나네요.
까망붕어님 어떻게 할까 한참 망설이다가 그게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크게 소용이 없는 생물이라...
새해에는 다들 만사형통하시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참고 견디시다 보면 좋은 날들 있겠지요.
감사합니다~~
새해에는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이야기 값은 죄송하지만 추천으로 대신 드리고
물가에서 혹 조우하게 되면 따뜻한 커피 대접해 드릴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안출하세요
잘 보고 갑니다.
힘든?새우낚시 고마하고~
떡밥으로 전환을 고려할까합니다~~ㅋ
새해 건강 하십시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 하세요
방생 또한 하셨다니 진정한 낚시인 이십니다
너무 생생한 글 잘 읽고 감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고
일년내내 행복한 웃음만이 가득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보령어리보리조사 가객
들려주셔서 감사드리며,
벌써 1월 4일이네요
새로 세운 좋은 계획들 쭈욱 순조로운 진행이 있기를 바라며
건강하시고 만복하시길 빕니다.
정말 올라오지도 않고 물속에서 십여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넘을 잡게되면
정말 정신이 읎지여..
올해에는 그넘이 더 커서 상면하시길 기원합니다...
현장 여건을 실감나게 표현해주셔서..... ㅎㅎ~ 읽는내내 내일이다 싶을정도였습니다.
멋진 조행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