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년 4월 어느날
아내가 주머니에 슬쩍 찔러 넣어준 5만원
그 돈으로 산 그라스롯드 은성의 무슨댄지 지금은
이름조차 가물 가물한 2.5칸대를 비롯한 낚시장비를 갖춘것을
시발로 군생활시는 태풍불지 않으면 출조하여
오죽하면 젊고 이쁜 시악시가 토요일 오후만 되면
이웃집을 여기 저기 기웃거리는 것을 불쌍히 여긴 이웃 아낙이 있을 정도......
그로하여 평일도 여름이면 긴긴해를 고마워하며
금호 사일못으로 내달아 버스로 도보길 몇킬로를 연하여
짊어지고 군부대 보초에게 눈총받아가며 들락거리기도 하였고
나중엔 120cc오토바이를 장만하여
이곳 저곳을 쑤시고 다닌세월이 수년 그래도
월척이란 말은 남의 말
나는 월척을 구경도 못했다
손맛 본답시고 수초구녕은 피해다녔고
수심 1.5m정도의 맹탕에 네 다섯대 그도 죽어나 사나
지렁이를 매달아 놓았으니......
그러나 하루 낮낚시에 3치에서 9치까지
세대가 바빠 한대를 재끼고 두대로 건진 붕어가 157마리
그것이 내 하루 낮낚시 붕어마리수 기록이다
그러나 28-29cm는 간혹 올리는데 그넘
30cm넘기는 월척붕어는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그러다 내낚시사부와 창녕 개복지서 하루밤을 지내며
아! 새우낚시가 재미있고 큰넘도 잡는 것이고
새우낚시를 할려면 수심 얕고 수초도 적당히 발달해 있는 포인트가 좋고
가능하면 초봄이면 갈대나 부들 억센녀석들 곁에
여름이면 말풀 듬성한 언저리에 찌를 세우는게 마리수나
대형붕어를 만날 확률이 높다는 걸 뒤늦게 배워서
"그래,나도 이제는 잔챙이와 그만 놀고 큰녀석들과 노는 꾼이되어야지"하고
결심한 때가
3년이란 세월이 흐른
88년 가을쯤이었던가?
벽제 1군단사령부에 근무하던 89년 이른봄
군동료와 후배랑 3명이서 경기도 효촌지를 찾았다
현장에 도착하여
낚시장비를 짊어지고 상류가 좋다고 하였지하고
저수지 우안 최상류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푸다~닥하는 소리를 내며
비행기 꽁무니에서 나는 흰연기와 꼭 같은 흙탕물로 된
자취를 남기고 뭔지 모를 녀석들이 사라진 흔적이 자그마치 십여개.....
나는 그녀석들이 남긴 비행기꼬리연기와 같은 흙탕물 궤적을
보는 순간
"옳거니,저 녀석들이 산란을 하러 최상류에 붙었던 대형붕어들이
인기척에 놀라 도망간흔적일테지"
"오늘 여기에 큼지막한 새비만 나오면 니들은 주것~어"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상류 전체가 워낙 수심이 얕아 연안에서는 찌를 세우지를 못하여
네오플렌인가 뭔가가 재질이라는 시커먼 가슴장화를 입었는지
신었는지하고 물속 10m를 들어가 낚시의자를 놓고
한대 두대 낚시대를 폈다
그 당시 내 낚시대라야
전부가 다섯대
영천 자양댐 최상류를 오토바이로 급히 가다
다리 건너 비로 파인부분에 받혀 넘어지면서
무르팍이 까지고 비죽이 위로 튀어나온 낚시대 꼭대기를 땅에
쳐박아 머리쪽 1.5cm가량이 손상되어 낚시줄로 대충 감고 아내의 메니큐어를
슬쩍 발라놓은 은성 반카본 3.5칸 바닷대
가장 아끼고 엄청 많은 붕어를 살상시킨 3.0칸 수정대
그리고 처음샀던 그라스로드 3대 그게 전부였다
말풀이 듬성 듬성하니 자리하고
제법 널찍한 구멍과 끌어내기 용이한 곳을 정면에 두고 3.0대를 폈다
수심은 물속에 10여미터를 들어왔는데도 3.0칸대 찌가
서는곳이 겨우 40cm정도 그곳을 30cm정도만 넘어서면
뚝 떨어지는 둔덕 그 밑은 준설을 했는지 수심이 1m를 훨씬 넘는다
나머지는 어떻게 편성을 했는지 몇대를 깔았는지 지금 아리송하다
중요한것은 3.0대가 일을 쳤으니까 그넘만 기억하면 되니까
여기 새우가 나와야 할낀데
지렁이로 월척은 가당찮은 생각이고
새우 그도 새끼손가락정도의 큼직한 새우가 나와얄낀데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해질녘 즈음해서 뜰채로 낚시대를 편 위쪽 듬성한 말풀속을 더듬기 시작했다
서너번에 한번꼴로 새우가 뜰채에 담기는데
"옳다꾸나"속으로 붕어니들 죽었어
속으로 뇔 정도로 그 크기가 월척붕어가 탐낼만한 거의
약지정도 크기의 새우였다
한참을 뜰채질을 해도 겨우 다섯마리밖에
못잡아서 가지채비여서 3.0대에 아래 위 한마리씩
꿰어서 캐미를 밝히고 밤낚시에 돌입했는데
멀찍암치 아래쪽에 동료와 후배는
"야,허소령 나는 벌써 다섯마리 잡았는데 너는 뭐하냐?"
"선배님,저는 손바닥만한넘 세마리나 잡았습니다"
나는 묵묵부답
속으로 "그래,니들 실컷 마이 잡아삐라"
"내는 큰넘 한마리만 된다아이가"하고
캐미를 꺾은지 한시간이 넘었는데도 꼼짝을 하지 않는
찌를 보고 월척에 대한 꿈을 부풀리고 있는데 동료는 춥다며
철수를 하고 후배와 나와 둘이서 낚시를 계속한다
헌데 두시간이 가까워져도 꼼짝을 않고
정면에 3.0대 찌가 꼼지락 거리지만 워낙 큰새우를 꿰어 논터라
새우가 움직이는 길끼라하고 월척어신을 기다리지만
꼼지락 거리던 어신도 멈추고 건너편 후배의
고기걸어내는 물소리만 간혹 텀벙거릴뿐
내찌는 붙들어 매어논듯 꼼짝을 안한다
아홉시를 넘기고 오줌이 마려워
물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가만 가만 일어나
옆으로 돌아서 "쪼르륵,쫄쫄""어!시원하다"
하는 순간
꼼짝않던 3.0대의 찌가 좌우로 몇번 건들 거린다
"으잉,저건 입질인데"
아연 긴장하여 바지 쟈크를 올리는 것도 잊은 채
가만 가만 자리에 앉아 찌를 뚫어져라 쳐다 보는데
좌우로 움직이던 찌가 딱 멈추더니
한마디 슬쩍 솟는다
침이 꼴깍 넘어가고 가슴은 두방망이질을 시작한다
"큰넘이다"를 속으로 뇌이면서
사부에게 배운 치고 들어갈때,치고 들어갈때를
속으로 연신 중얼거리며 찌 솟기를 기다리지만
그넘 찌는 우찌 그리 꾸물대며 올라오지 않는지
속이 바직 바직 타고 입술이 마른다
잠시후......
두마디 세마디 서서히 솟아 오르던 녹색불빛이
옆으로 흐른다.워낙 수심이 얕아 찌를 높이 올리면
붕어 몸통이 드러나니 올릴래야 올릴수가 없을터......
흐르던 찌가 물속으로
"확"빨려드는 순간 이때다하고 챔질을 했다
"턱!,하고 손아귀에 전달되는 붕어 무게감과 탈출할려는 트림과 조합을
이룬 그맛은 대물낚시를 다니는 이들이 꿈꾸는 가장 황홀한 순간
챔질하는 순간 "월척이닷"나는
속으로 외쳤다
무월척행진 수년간 29cm를 맴도는 녀석은 수도없이 걸었기에
거는 순간 나는 월척임을 확신할 정도로 녀석의 용트림은
거세었었다
후킹을 하여서 떨구어본적은 한번도 없었기에
대를 세우고 녀석이 지칠때까지 나는 참았다
그러기를 한참
이럴때 시간이 얼마냐하는 것은 따질게 없다
순간이 십분도 한시간도 될 정도로 길고도 짧고
짧고도 긴게 대물을 걸었을때의 꾼의 머리속을 스친
시간이라는 이름이니까
찰라가 00으로 바뀌어지는......
무아지경이라는 표현이 바로 그런순간을 표현한 적절한 사자성어일 것이다
대를 세우고 지치기를 기다리는데
대의 쿠션에 의해 차츰 차츰 내 발앞으로 다가서는 녀석이
허연몸통을 발앞에서 한번 벌떡 뒤집는다
그걸로 <게임 오버>
나는 망태기에 녀석의 머리를 디밀은채로
바늘을 땄다
그리곤 긴 한숨"휴"
드디어 월척조사가 된 것이다
망태기속에 담긴 녀석은 월척을 넘어도 한참을 뛰어넘는
대형월척이어서 더욱 기분은 고조된다
"야,박소령.월척한마리 했다"
"예? 선배님 여기서 무슨 월척이 나옵니까?"
"잡은거 모두 손바닥만한것 밖에 없는데....."
믿지 않는지 물속에 들어앉아 있는 나를 귀찮게 하지 않을려고
하는지 고기 보자는 말도 없다
새우가 없어 옆대에 꿰어논 새우를 빼어서
3.0대에 다시 꿰어 던져놓고
이어지는 월척의 입질을 기다리지만 그후론 조용하다
열시를 넘기자
후배"선배님,추워서 저는 철수 할랍니다"
"그래,월척붕어 구경이나 하지"
그리고는 고기망태기를 들고 나와 후배의 눈앞에
붕어를 꺼내놓자
"선배님,이거 잉어아입니까?"
"여기 무슨 붕어가 이리 큰게 있습니까?"
"주디이에 수염이 있는가 봐라,수염없다아이가"
"정말 그렇네요.선배님 축하합니다"
"저는 들어갈랍니다"
후배를 보내고 다시 자리하여 월척을 기다렸지만
다른 월척붕어의 입질을 받지 못하고 다음날
계측결과 34cm 첫 월척을 34cm대형급으로 당당히
월척조사 반열에 들게 되었다
그리고 그 붕어는 집에 조그마한 수족관에서
근 1년여를 살다 2군사령부로 이사하는 대한통운 화물차에
멀미하며 옮겨졌다가 머잖아 생을 마감하였다
내사부왈 "월척은 월척붕어를 걸 수 있는 장소와
포인트 그리고 미끼의 3박자를 갖추어야 걸 수 있는 확률이 높다"
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긴 무월척행진 4년여에
사부의 낚시기법을 도입한지 6개월이 안되어 바로
34cm월척을 걸게된 나는 내낚시사부를 다시 한번
인정하게 된 그런 첫월척의 기억이다
간덩이가 커서 그런지 첫월척한 감회는
걸어낼때의 그 저릿한 설레임은 컷지만 누구처럼
그리 큰 감동이나 손떨림은 없었다
그냥 대형월척으로 첫월척을 하였다는 흐뭇함이 잔잔히 마음속에
부딪혀 왔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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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이야기는 앵콜에 답하는 것쯤으로 해 주셨으면 합니다
늘 설레이는 소설같은 지난조행글 넘 재밌게 잘읽고 있습니다..
금호 사일못 집에서 십분거리네요 ㅎㅎ
늦게나마 오래된 34월순이 축하드립니다^^*
다음글 또 기대 만땅이네요 ㅎ
다음편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 잠시 멀리 보내고
혼자서 외로우시겠지요
흐흐....
하루저녁이 아니고 오전7시부터 오후 6시까지 11시간 조과입니다
옛날 영화를 못잊어 사랑방에서 인연을 맺은 수원의 동생과 늘
같이 다니는 형과 함께 10여년이 지난후 그 장소를 찾아 하루밤낚시를
즐겼는데 큼지막한 새우를 달아논 저는 밤새 말뚝
무너미에서 글루텐을 미끼로 쓰는 아우는 서너치 붕어가 60-70CM
장찌를 몸통까지 밀어 올리는 찌놀림을 보는 것으로 그쳤지요
수초킬러님 반갑습니다
사일못 우안 건너편 공병훈련장 강의장이 보이는 장소가
저의 낚시 초년병 시절 훈련장소였습니다
거기서 85년 6월5일 올린 엄청난 조과가 저를 오늘까지
꾼으로 남게한 원흉이지요
제비천하님 안녕하세요
늘 따뜻한 마음으로 제글을 대하여 주셔서
감사를 드리구요
제비천하님 같은 분들이 계셔서 글 올리는 제 손가락이 바쁘고
또한 신이 나는 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또 머지않은 장래에 저도 월척사이트 1000점을 돌파할 수 있을것이구요
편안한 밤 되세요
지금의 진못에 담구면 4짜나오던 시절 입니다
아마도 봄봄님 80년초 군생활을 방포교서 하셨다면 진못을 기억하실듯 합니다
전역이 수초로 빼곡히 들어선 저수지 전역이 포인트엿지요
구멍찿기가 힘들지 넣기만하면 덩어리 한두수는 떼논당상이였답니다
얼매나 고기가 많았음 허접한 채바 하룻밤에 큰덩어리 서너마리 뺴본기억이 ....
요즘이야 진못사짜쳐주지도 않지만 ..ㅎㅎ 또 아 옛날이여 이네요
첫 월이허심을 뒤늦게 추카만땅으로 드립니다
5짜와의 세번째 야그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건강하시고 안출하십시요
월척 한마리 잡아보지 못했습니다
잉어나 향어큰것은많이 잡아봣는데.
에궁 언제나 월척 한수 해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