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월척 선 후배 님들.
오랜만에 인사 드립니다.
나이도 조력도 얼마 되지 않는 초보꾼이 자꾸 예전 일만 끄적거리게 됩니다만, 이러한 예전 추억을 꺼내어 보며 저와 비슷한 연배의 월 님들과 함께 유년의 추억을 공유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몇 일전 창고에 있는 낚시 장비를 정리하면서 발견한 1.5칸 글라스 로드 대로부터 시작된 기억을꺼내어 글 시작해 보겠습니다.
고향이 충청도인 저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까지 충북 옥천에서 살았습니다.
살던 곳에서 5분이면 도착 할 수 있는 저수지와 하천이 주 놀이터였고, 앞선 제 글에서도 밝혔다 싶이 천렵은 또래 아이들의 제1의 놀이거리 였습니다.
아버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접하게 된 낚시 라는 놀이의 시작은 아버님이 다니시던 회사의 조우회 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아버님이 다니시는 그리고 지금도 몸 담고 계시는 곳은 월 1회 정도 지금으로 말하면 정출을 하는 조우회가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골프등 다른 즐길거리가 많아서 사내 조우회가 많이 없는듯 하지만 저는 당시 모든 회사에 조우회가 있는줄 알았으며 지금 입사한 회사에도 당연히 조우회가 있는줄알았습니다.
사실 제 입사 조건중 하나가 물벗이 많은 조우회가 있는 회사를 들어가려고 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이렇게 독조를 즐길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네요.. ^^
대학다닐때 얼마나 낚시가 그리웠으면 면접때도 조우회가 있냐고 물어봤을 정도였습니다.
아버님을 손을 잡고 가던 조우회는 저에게 동네의 작은 소류지와 개천에서 즐길 수 밖에 없던 이른바 동네 낚시(?)를 한차원 높여주는
가슴 설렌 일이었으며 , 한달에 한번정도 있는 어른들의 정출을 소풍 기다리듯 손꼽아 기다리곤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아버님이 몸 담고 계신 곳의 조우회는 고기를 낚는다라는 목적보다
다른 부서의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물을 벗삼아 하루 지내고 오는 순수한 의미의 물벗 모임 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대략 30여분 정도 되시는 분들이 낚시를 가시면 그중 10분 정도는 본부석에서 약주를 하시고
나머지 분들의 상당수도 붕어를 낚는다는 자체보다 다른 분들과 어울림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대개의 정출은 옥천 금산 영동 권의 저수지와 대청호 가 주류를 이루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많은 분이 참석을 하다보니 소류지보다는 중대형의 저수지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정출에 따라 나온 꼬마는 딸랑 저 한명, 다른 분들의 자녀들도 몇번 오긴 했으나
저처럼 꾸준하게 결석 없이 참석하는 아이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그런 어른들은 저를 참 이뻐해 주셨는데 아버님은 저를 방패 삼아 조우회가 끝나면 얼큰하게 취하셔서 집에 돌아오시곤 했습니다.
그러던 8월 여름으로 기억합니다.
논산에 있는 탑정지로 1박 2일의 정출을 갔습니다.
출퇴근용 버스에서 내리니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바다와 같은 저수지가 눈앞에 있고,
그 위에 집 같은것이 동동 띄워져 있는데… 세상이 이렇게 큰 저수지 한가운데서 낚시를 할수 있다니…
“좌대”라는 것을 처음 본 저로서는 문화적 충격이었습니다.
배를 타고 좌대당 3~4명 정도 들어갔고, 배를 통해서 저녁식사를 마친 후 어른들은 약주를 하시며 동양화 그리에게 들어 가셨습니다.
당시 제가 사용하던 낚시대는 용성 글라스 로드 1.5칸 2대 였습니다.
항상 정출을 가면 제 대가 짧아서 고기를 못잡는다고 아버님께 푸념해봤지만. 어쩌겠습니까 2.5칸은 너무 무거워서 잘 들지도 못하였으니..
그런데 이 좌대에서는 짧은대로도 깊은곳을 공략할수 있으니 길이에서 오는 불리함(?)이 많이 없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대를 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자개 였지만 제가 가장 먼저 입질을 받아냈으니,
좌대란 이 별천지가 오늘은 뭔가 보여주리란 어린마음의 각오를 현실화 시켜줄 것 같았습니다.
얼마 시간이 흘러서 총무님께서 배로 저녁밥을 날라 주시고.. 진로 와 OB맥주를 한짝에 반씩 나누어서 좌대마다 나누어 주셨습니다.
어른들은 반주로 했던 술과 함께 고스톱에 열중 하셨고 얼마 시간이 흘러 한분씩 술에 취해 잠이 드시고
맨정신의 8살 짜리 꼬마애 한명만 좌대에 남아있는 형국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붕어가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아버님을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시질 않으십니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
당시 저는 채비라고 할수도 없는 500원 짜리 막찌에 바늘5개 멍텅구리 채비
붕어가 한마리씩 올라 오니, 고기를 좀더 잡을 욕심에 바늘마다 지렁이를 끼우고 추에는 밤톨 만하게 신장 떡밥을 달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날 용왕님이 낚시 병자를 한명 만들기 위해 논산지 붕어들을 희생시켰는지 모르겠습니다.
풍덩, 풍덩 아무리 요란하게 소리가 나도 한번 집어된 붕어들은 달아날줄 모르고 계속 잡혀 올라왔는데,
2마리씩 어떤때는 3마리씩 6~7치 붕어들이 계속해서 올라왔습니다.
정말 어깨가 빠지도록 잡아내고 나니 다음날 어른들이 일어나서.. 이게 뭔일인가 싶은 눈으로 살림방을 처다 보싶니다.
규정은 12시 까지 이니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다들 낚시에 집중해 보지만…. 우리 좌대에 남은건 떡밥밖에 없었습니다.
밤새 멍텅구리 채비2개에 지렁이를 그렇게 달아서 썻으니 신문지로 포장된 지렁이 10개 가량을 저 혼자 써버린 겁니다.
정오가 되서 계측결과 9치를 낚아낸 제가 자동빵 월척 한분.(아침에 배타고 가서 낚시대를 건졌는데 달려 있었습니다.)에 이어 2등을 차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제가 낚아낸 마릿수가 정말 족히 100마리는 되었는데 모아 놓고 나니 전체 마리수의 2/3 가량을 제가 혼자 낚아냈습니다.
아버님은 그런 아들이 자랑스러우셨는지 시상대 앞으로 저를 밀어 넣으시고,
연신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당신은 아들 잘 두었다고 기분이좋으시다고 또 약주를 ㅎㅎㅎㅎ
그렇게 받은 상품이 당시 꽤나 고가였던 은성 수향 3.6칸 이었고 1등 상품이 3.9칸 이었습니다.
1등 하신 보영이 아버님은 제 앞으로 1등 상품을 넘겨 주셨고, 이것을 아직도 제 낚시가방에 넣고 다니며 그때를 생각합니다.
이 낚시대를 안 쓰고 모셔두면 왠지 아버님과의 추억이 사라지는듯 하여
얼마든지 요즘 나오는 낚시대로 갈아 탈수 있음에도 녹색 빛의 오래된 수향 낚시대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아마 낚시대를 바꿀 이유가 생긴다면, 그건 필시 낚시를 그만두게 된 다른 이유 때문일거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때의 추억이 가슴 한켠에 남아 지금도 물가에 앉아 대를 펴면 물에 잉크가 번지듯 제 머리속을 덮어 대 편성 시간이 길어지곤 합니다.
글을 쓰면서 아버님 손을 잡고 다니던 낚시가 생각납니다.
당신이 처음 잡던 월척을 보며, 심장 떨리던 두근거림과 손수 끓여 주시던 라면의 잊을수 없는 맛
그리고 별을 바라보며 해주시던 아들 사랑의 그 말씀들.
누구나 가슴속에 추억을 담고 물가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낚시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 추억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어 봅니다.
낚시라는 것이 단순히 붕어를 잡는 것이 아닌 그 속에 담긴 추억을 꺼내어 보는 것이라면,
오늘 밤 선배님, 후배님들의 낚시대에 가슴한켠에 담아 두고 그동안 잊고 지냈던 아련한 추억들이 걸려 나오길 간절히 소망해봅니다.
저도 오늘밤 물가에서 그때의 추억을 꺼내어 보며, 애써 감정을 숨기고 아버님께 잘 지내시냐는 평범한 안부 전화를 드릴 것 같습니다.
보잘것 없는 필력에 추억이라는 소재가 다칠까 부끄러워 몇번이나 올릴까 말까하였습니다. ㅜ.ㅠ
부디 월님들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면 감사하겠습니다
긴글 읽어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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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쎈곳으로 바뀌였죠^^전탑정근처에살아서 요즘도 자주출조합니다^^시간 나실때 미리연락 주시고 오시면 예전생각하시며 같이 좌대타요^^
저도 어릴적 아버지와 함께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정감있게 잘보았습니다.
잘 읽었어용.
잘보았습니다
이곳은 구름도 안끼내요
소중한추억 잘보고 갑니다^^
아직까지도 전 월척이나 마릿수 해본적이 없는데
어린 마음에 얼마나 즐겁고 흥분되었겠습니까? 눈에 그려지는듯 합니다
항상 안출하십시요~~
담담하지만 군더더기없이 깔끔한 묘사와 문체.
아울러 함께 추억을 비행하다 착지할 수 있었습니다.
왠지모를 향수에 취해 더위를 잊었습니다.
감사히 잘보고 갑니다
그시절이 그립군요.
참 부럽네요.
좋은 추억은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 같아요.
좋은 추억이 있어
더 좋은 조사가 탄생하는 것 같네요.
오래오래 간직 하시길!!!!!
저도아버지랑 함께그런추억이 있었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