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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명언

IP : 37088e91d3eb668 날짜 : 조회 : 3454 본문+댓글추천 : 20

이승만 무능한 대통령

박정희 권력 의지가 강한 사람


1등! IP : 79f94d439a5955c
이승만 무능해서

박정희가 뺏어서

그리 오래 해먹었으니

딱 맞는 말인데요.
추천 1

2등! IP : acaa7f37d2305ac
그 양반 최고의 명언은
"김정은 계몽군주"지요.
추천 7

3등! IP : 419ebf4bc85f769
60넘으면 치매가 온다던가 뭐 그런말도 했었지 않나요? 유시민이 치매가 들어서 그런가 요즘 좀 이상하데요.
추천 3

IP : 3ca5322bc7eff89
유시민이 일반인에게 알려지게 된건
MBC 백분토론 손석기의 공백을 잠시 메우며 알려젔죠
이후 논객으로 활동하다 노무현 정부시절 정치활동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내고
이후 정권이 바뀌고 현실정치에는 참여 안하며 글쟁이 작가 활동을 병행하며
유튜브 개인방송등 간간히 방송국 페널로 나오며 논객활동을 하는편인데
언사가 좀가벼움은 사실이죠 노무현대통령도 그런점에서는 비슷한면이 있었구요
하지만 민주발전과 정의사회구현에는 누구보다 압장섰던분들.
추천 0

   
IP : acaa7f37d2305ac
이런 인간이 민주발전? 정의사회구현?
광견은 가둬놓고 굶겨가며 패야하는건 맞는데..
아무 죄 없는 민간인 감금 폭행 고문..


추천 0

IP : 9d07485554b2804
서울대 복학 후 유시민을 일약 유명세에 오르게 만든 서울대 프락치 사건 (학생운동권의 민간인 고문 사건)에서 그 유명한 항소이유서를 써서 화제가 되었다. '서울대 프락치사건'이 역사적으로 굳어진 사건명이지만, 프락치로 몰린 전기동씨가 언론중재위원회의 중재요청등으로 일부 언론에서는 '서울대 민간인 감금폭행 고문조작'사건으로 변경해 부르기도 한다.

사건은 1984년 9월 17일 서울대에서 복학생협의회 창립총회(회장 경제 4학년 유시민)부터 시작된다. 총회 이후 이어진 술자리에서 한 학생이 자신이 '78학번 공법학과 출신으로 군에 강제징집되어 복학한 임신현'이라고 소개했는데, 당시 워낙 군에서 프락치를 많이 파견할 때라(유시민도 군에서 프락치 권유 받은적이 있다. 물론 말로 권유 하는게 아니라 코렁탕과 함께) 학생들이 수상히 여겨 조사한 결과 "나는 가짜 학생이다. 복협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아보러 왔다."라는 자백을 얻어 낸 것이다. 이때 이과정에서 폭행이 있었다.

프락치로 몰려 4명이 폭행당했다. 이중 전기동씨는 엠뷸에 실려서 관악병원 응급실로 갈정도로 중상이였다. 고문방식은 구타와 함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코에 주전자 물을 들이 부었다고 한다. 폭행하던측이 평소 기관에 끌려갈때 마다 당하던 고문을 그대로 써먹은 것 같은데 시대의 아픔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민간인들에게는 그야말로 날벼락이였다. 손현구씨의 경우, 당시 서울대학생들에게 자신이 프락치였음을 고백해 의혹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가짜대학생' 노릇을 한 점은 인정하면서도 프락치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이 서울시 경찰에 의해 '학생들이 임군을 감금, 기관원 자백케 하고 철야심문하며 구타했다."라고 발표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유시민 등 3인은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후 2006년 2월 당시에 서울대 프락치사건을 수사했던 관악서 수사과장은 엠뷸런스를 부르고 수습한 사람이 유시민이었으며, 피해자 중에는 유시민 얼굴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고, 상부에서 유시민으로 엮으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원래는 변호사가 쓰지만 당시 사건을 담당하던 이돈명 변호사가 피고인 유시민에게 작성을 권유하여 쓰게 된 것이라고 한다. 황호택 기자가 그 항소이유서를 작은 박스 기사로 신문에다가 기재했는데, 그것으로 인해 독자들의 격려전화가 많이 왔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교는 1992년에 졸업하였고, 이후 독일로 건너가 마인츠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참후의 일이지만 유시민이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된다고 하자 전기동씨가 자신을 프락치로 몰았던 사람이 장관이 되면 안된다며 1인시위를 하여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에서 이사건을 대서특필하며 매우 좋아하였다. 이에 한나라당에서는 전기동씨를 유시민 인사청문회 증인으로 신청하였는데 거부당하자 대신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때 한나라당 의원들이 유시민에게 폭행당한 사실을 증언하라고 하자, 전기동씨는 유시민은 폭행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증언을 한다. 그럼 누가 폭행했냐고 묻자 현직 한나라당 의원이자 '서울역 회군'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인 심재철 의원이 폭행에 가담했다고 증언했고, 이에 당황한 한나라당 이성구 의원이 즉시 기자회견을 중단시키고 전기동씨를 돌려 보내며 이사건은 어영부영 끝나 버렸다.

다시 유시민의 재학시절로 돌아가서, 당시 선배가 경영하는 작은 출판사에서 일하기도 하고, 졸업 후에는 그와 친한 방송국 PD의 배려로 드라마 각본가로도 활동했는데, 앞서 서술했던 학생 운동 때문에 수배령이 내려진 상태라 위장을 하며 '유지수'라는 가명을 쓰기도 했다.

이후 몇 년간 언론인 및 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를 거치며 정계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출처] 유시민, 서울대 프락치 사건과 항소 이유서|작성자 우리강산
추천 2

IP : d3e2228310a06db
추억 속의 친구

추억 속에

얼굴로만

남아 있던

친구가



낙엽 지던 날

전화를 했다



"늘 보고 싶었다"고

"늘 보고 싶었다"고



추억 속에

얼굴로만

남아 있던

친구가



눈이 오던 날

전화를 했다



"늘 기억하고 있었다"고

"늘 기억하고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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