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비가 동심원을 그리며 내려 창문 아래로, 길 위로 떨어져 내렸다. 빗방울은 낮은데로 흘러서 한방울 , 또 한방울 구르고 튄 몸들을 켜안았다. 굳은 땅 위에 이마를 맞대고 누워 흐른 비는 구름을 태우고 전기줄을 얹고 투명한 집들의 꿈을 보듬어 갠 하늘과 함께 이즈러진 무지개 를 보여 주었다.
그렇게 또 하나의 작은 세상은 고인 빗물 속에 있었다.
권박사는 우산을 접고 원룸에서 제법 먼거리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비는 마음 속에서 먼지를 날리는 사막, 고통의 모래 알갱이를 씻고 녹여 자글거리는 가슴을 시리도록 투명한 유리로 만든다. 문학과 과학은 분명 어울리지 않겠지만 비가 내린 거리를 걷고 있는 권박사에겐 지성과 고뇌의 철학자가 훨씬 어울리겠지만 비는 그처럼 서정적인 기운으로 침전된 내부를 울리는 힘이 있었다.
권박사는 다시금 골목 끝 교차로가 막 시작되려는 지점의 PC방 계단을 올랐다. 어깨와 우산에 묻어 있는 비의 흔적을 털어내고 출입문을 열면서 오늘은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도할 어둠 저편에 희미한 신호를 쫓아서 별장 안내자가 준 명함에 찍힌 대양이코노미의 비밀을 탐지해 내는 것이다.
대양이코노미를 검색하자, 해양과 수산, 참치잡이 어선이 주르륵 나열되었다. 해양과 관련된 사업을 하는 회사, 그 연혁은 찾고자 하는 정답이 아닐 수도 있었다. 흔하디 흔한 회사 상호의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지부진한 퀴즈를 풀고 있는 자신이 한심스럽기 까지 했다.
수족을 잘린 자에게 재생의 기회는 퇴화되어
억울함을 안고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문 작동불능과도 같이 통로가 이미 닫혀버린 문일지도 몰랐다.
목이 바짝 타올랐다. 나열된 검색에서 점 찍어 볼 정보들은 쌓인 카드를 한 장 한 장 날려버리듯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면 솔깃한 문구라도 필요했다.
신용과 기술과 수입, 수력발전소의 수차를 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회사가 마지막 남은 한 장의 카드로 권박사의 눈 앞에 놓여 있었다.
홈페이지를 갖춘 기업, 이곳도 아니라면 그냥 끝이었다.
회사는 발전설비중 발전용량 5MW 이상 중대형 수력발전설비를 K-water에 수입,납품하는 전문기업이었다.
수자원 공사에서 건설하는 댐에 들어가는 발전설비는 소형수차 이외는 국산화가 이루어져 있지 않아 모두 수입하는 실정이었고 그와 관계된 회사가 대양이코노미였다.
더불어 자체기술진을 보유하여 소형수차를 개발및 제작, 직접적으로 설비를 시공까지 하는 회사였다.
사이트의 메인 페이지의 문구는거창했다. '한국 수력 발전을 선도하는 21세기 대양' 이라는 큼직한 문구가 먼저 눈에 들어왔고 회사 소개나 연혁 페이지의 이미지엔 자신들이 국내에 설비한 댐의 현황과 사진들이 빼곡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분명 독점기업일수도 있었다.
또 상세 페이지엔 기술구축 과정과 설비의 고장에 따른 복구과정이 서술 되어 있었고 건설된지 40년이 지난 남강, 소양강, 대청, 안동댐의 노후설비의 대체비용, 복구에 필요한 재반사항에 관해서 폭넓은 자료가 수록되어
있었다. 아마도 회사는 한국 수력 발전의 중심축 역할을 해온 기업으로 보였다.
권박사는 반신반의 했지만 그 자료들을 준비한
USB에 담고 사이트 창을 닫았다.
일회용 커피 한 잔을 마신 후 한참이나 머뭇거린 후에야 최근 자신에 대해 보도된 뉴스를 검색할 수 있었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인터넷 뉴스의 목록은 대부분 '권장준 박사 괴생명체를 만든 주범' 이거나 '유전공학자의 몰락' 또는 ' 자신의 연구소 연구원을 판 파렴치한 권장준 박사'
'그는 학자인가, 사기꾼인가' 등등의 제목을 달고 내용은 비판적인 문구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에 딸린 포털 사이트의 댓글들은 도저히 읽을 수 없는 밑도 끝도 없는 험악한 악플로 넘쳐 흘렀다. 개중에 간혹 권박사 자신이 걸어온 길을 논증하며 옹호하는 댓글이 있기도 했지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로 다른 수 많은 네티즌들에게 수모를 당하고 있었다. 권박사는 지옥과 마주한 것처럼
온몸이 떨렸고 자신에 대한 뉴스를 괜히 클릭했다며 후회했다.
화보다도 맹목적으로 떠들어대는 온라인 인간군상의 모습은 공포에 가까웠고 탈피하려고 노력한 두려움을 불러내어 심장의 피를 거꾸러 쏟게 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권박사는 이런 대우를 받아야할 하등의 이유조차 없는 학자였지만 던져진 먹잇감을 찢어 발기려는 짐승들에겐 소용조차 없는 일이었다.
어지럽고 허망한 심정과 괴로움과 분노와 고통
이 밀려왔지만 계속적으로 오르 내리는 댓글 중 '사건의 진실은 이렇습니다' 라고 내세운 욕설없는 댓글의 링크를 쫓아 권박사는 자신도 모르게 클릭하고 있었다.
그곳은 한 유저의 장문의 글이 실려 있었는데 자신은 미국 시민권자고 미국의 방위산업체에 근무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며 생물학무기에 대해 진실을 밝히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라고 시작하고 있었다.
생화학 무기가 아닌 주변 지역을 오염시키지 않고 잠재된 위험에 있어서는 가공할 파괴력과 엄청난 파워를 지닌 Zeti6 (제티식스)라는 생물에 관한 이야기였고 60년대 말 미국과 소련의 군비경쟁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에 닐암스트롱이 달착륙을 이루고 지구로 귀환 하면서 가져온 운석에서 딸려왔고 NASA와 51구역에서 배양 실험을 통해 소련을 비롯한 적국과 기타 여러 나라에 배달된 우주에서 온 변종 생물학 무기로 육상과 해상 모두에 생존 가능하고 측정된 적이 없는 그 힘은 암석과 강철을 뚫을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존재로 이 지구상의 생물이 아닙니다. 러시아가 아직까지 달에 유인탐사선을 보내지 못하는 것도 달에 살고 있는 이 우주 바이러스때문이고 여러분은 그 진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라고 끝맺고 있었다.
' 이건 터무니 없는 헛소리같군! 미국과 관련된 음모론! 생물학무기! 소련과의 냉전시대 군비증강과 대립! 그리고 세계로 배달된 우주 괴생명체라'
권박사는 반신반의 했지만 그 글을 스크랩하여 담고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대양이코노미 홈피를 열었다. 그리고 사이트 내의 전체검색창에 Zeti6을 쳐 보았다. 댐의 사고, 설비의 문제라는 검색 목록이 나왔고 그가운데 1967년 4월15일 착공되어 7년만인1973년 10월 15일 완공된 소양강댐의 1974년 6월 5일 소양강댐 사고기록 일지에서 댐 하부에서 발생한 누수현상은 물리적 힘에 의한 균열과 구멍에 의한 것으로 즉각수리조치 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분명 무언가가 있었다. 수력발전소에 관계된
회사 홈페이지에 Zeti6 라는 변종 외계 생물체
의 연관성이 무엇을 말하는지 권박사는 단박에
파악했던 것이다.
'누군가 이 땅에도 생물학무기를 암묵적 동의
하에 들여왔고 놈은 소양강댐에 풀어 놓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관련자가 곧 이 모든 사건의
배후이다. 어쩌면 별장안내인 조차 그들의 하수
인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는 70년생이고 그때
태어났기에 주도세력일 수는 없는 것이다.
대양이코노미를 앞에 두고 자신들을 감춘 존재
들은 바로 D프로젝트를 계획한 자들일 것이다'.
권박사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독방에 수감되어 있는 수석연구원 지석이 도주하는 동안 정답지에 적어 넣을 펜을 어딘가에 분명이 남겼을 것이고 어떻게 해서라도 그것을 찾아내리라고 다짐했다. 너무 오래 머물렀다는 생각에 서둘러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권박사의 예상은 곧 적중했다.
"실장님 지금 그 곳으로 요원들을 보냈습니다".
"그래, 어떤 놈인지 샅샅이 뒤져서라도 파악해,
미국에 있는 서버를 통해 또 어떤 정신병자가 괴담을 퍼뜨렸다는 말이지?"
"네 그 부분은 바로 삭제조치를 했습니다."
"그럼 우리 회사 홈 페이지를 장시간 검색하고 머물렀던 녀석을 당잡 잡아서 내 앞으로 데려와, 권박사의 원룸에서 불과 700m 떨어진 곳의 PC방이란 말이지, 권박사의 동태도 아울러 추적해서 보고해".
권박사가 PC방을 나간 직후 세 사람의 불청객들은 PC방 으로 난입해 화장실 뿐만 아니라 내부의 모든 PC번호를 확인했지만 좌석에 있던 인물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서둘러 그 곳을 나와 권박사의 원룸의 초인종을 사정없이 누르고 권박사가 문을 열자 집안으로 마구잡이로 뛰어들었다.
" 아니!! 당신들 뭐야, 아직도 내게 볼일이 있나 본데 가서 전해!!! 이제 조용히 살고 싶으니까
사냥개는 그만 좀 보내라고....알아 듣겠는가?
"오늘 어디 외출하신 적이 없습니까?"
의심을 가득 품은 눈빛으로 그들 중 한사람이
심문하듯 권박사에게 물었다.
"외출은 뭔 놈의 외출이야 비만 오면 삭신이 쑤셔 지금까지 괴로워 끼니도 거른 사람을
!!!"
"정말입니까? 거짓말을 하고 계신다면 지금이
라도 실토 하십시오. 분명 집안에만 계신 것이
확실합니까? 그럼 신발장 앞에 쓰러진 저 우산
은 뭡니까!!!
권박사는 순간 아차 싶었다. 신발장 앞에 던져 놓은 우산을 제대로 치우지 못했던 것이다.
핑계를 무엇으로 대어야할지 난감해졌다.
" 옆집 초등학생 딸이 놓고 간 것일세
근처 식당에 가려는데 비가 쏟아지는데 우산이
없잖은가!! 관절염 때문에 걷는 것도 불편해서 가게에 나가 우산을 못 샀네 ! 그래서 그 딸 엄마
에게 빌린 것일세".
큰일이었다. 누가 사는지도 알지 못하는 옆집 핑계를 댄 것을 권박사는 그 순간 후회했다.
"진짜 확인합니다. 여기서 꼼짝말고 기다립시오
".
문을 열고 나간 그들중 한사람이 거칠게 이웃집
의 초인종을 눌렀고 한참동안 문을 두드렸지만
반응이 없었다. 권박사는 그제서야 안도했다.
"운이 좋은 줄 아십시오 허튼 짓 한다면
여기 사는 것도 보장할 수 없다는 것 아시고
매사에 행동 조심하십시오".
방안에 남아 권박사를 지키고 있던 사내가 위협적으로 권박사에게 경고를 했다.
"모두 나가 내집에서 당장!! 자네들
상관한테 가서 이럴꺼면 그냥 죽이라고 한다고
전하란 말이야!! 볼 일 다봤으면 내 집에서
썩 나가!! 고약한 놈들!!!
권박사는 그들을 문밖으로 몰아내고 문을
꽝하고 있는 힘껏 거칠게 닫았다.
- © 1998 ~ 2024 Wolchuck all right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