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셋째 딸은 안보고 데려간다는 말이 있기도 한데요.
셋째 딸 출신인 우리 누이는 싸나이 중에 싸나이 경상도 싸나이 하고 편지질을 해서 결혼 했습니다. 매형은 귀신 잡는다는 해병대 출신에다가 언뜻 보아도 사내다운 매력은 있는 분 같은데,
어쩌다가 펜팔로 장가를 가게 되었는지는 아다가도 모를 연애에는 젬병인 그 당시로는 있을 법도한 70년대 펜팔 출신 부부인데요. 요즈으로 따지면 인테넷 동호회에서 만난 정도는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장가 든다고 우리 집에 쳐들어와 '저 공부 못해서 서울대 안간 거 아닙니다.’ 하고 우렁우렁 울리는 목소리로 문지방을 넘어오던 패기찬 매형의 모습은 아직도 제게는 생생한 기억인데요.
지금이야 서울에 있는 대학 다 서울대학 되었고 지방에 있는 대학 다 3류 대학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70년대 초반 까지만도 지방대학에는 연고대를 넘어서는 대학도 많던 시절이니 그게 많이 구라는 아닐 것이라 생각은 되는데요. 문제는 그게 아니라...
저희 부모님도 경상도 남자들이 여자도 그렇고 가정사에는 무심하다는는 선입견이 있어서 시집살이나 되게 시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경상도 남자와의 결혼을 망설이기도 했었다는 후문을 듣기도 했지요.
그런데 매형이 뭔가를 꽉 잡고 집안 분위기를 주도하며 큰소리 치며 살 것 분위기는 예상과는 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더군요.
카리스마 넘치게 큰 소리 치며 장가들었던 우리 매형이 계산 많은 누이를 만나 이렇게 당하고 저렇게 당해 거의 반빙신 내지는 초죽음이 되어 순한 양이 되는데 걸린 시간은 꼭 2년 3개월 걸리더군요.
충청도 여자와 경상도 남자의 이야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누이는 환갑을 넘긴 지금까지 크고 작은 200여 차례의 부부 싸움에서 단 한번도 져 본적이 없다는 겁니다. 200전 200승의 승률 100% 부부 싸움에서 지칠대로 지친 매형은 지금은 그저 순한 양이 되어 잡고 살기는커녕 꽉 잡혀 사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는 건데요.
누나의 증언으로는 분명히 자기가 잘못한 일인데도 싸우다 보면 먼저 흥분해서 왜 싸우는지를 잊어버리고 싸우기만 한다는 겁니다. 자존심만 내세우고 목소리만 크지 뭐 알맹이가 없다는 겁니다.
대개 싸움이란 흥분하면 지는 건데, 분명히 자기가 잘못해서 시작한 싸움도 좀 하다보면 드렸다 요부분이 중요한데... 잊어버릴것이 따로 있지... 흥분해서 왜 싸우는지 잊어버린 답니다.
그 이후로는 혼자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다가 그러다가 못 참겠으면 사소한 걸 던지거나 그도 저도 안 되면 주먹으로 벽을치는 식의 자해공갈단이 되다는 건데요.
특히 표준어로 느물거린다, 충청도 사투리로 니밀거리는 대응에 매우 약하다고 합니다. 느밀거린다는 충청도식 싸움 기술은... 상대가 급하게 나올 때 반대쪽에서는 일부러 느리게 서서히 약을 올리는 자극인데, 이 단순한 기술에 못 참고 몸 부셔져라 자해공갈로 대응 한다는 겁니다.
사람인지라 자기도 얼마든지 잘못해서 시작된 싸움도 있었고 뭐 좀 잘 못 시작한 싸움이어서 조금 불리하다 싶으면 화제를 바꿔서 과거얘기 꺼내면서 잘 못 알아듣는 척 니밀니밀 대면, 백이면 백 미끼를 물고 뭘 집어 던지는 식인데 이러면 바로 살인범 내지는 가정 파괴범으로 몰리고 시댁식구 몰려오고, 곧바로 '한번만 더 이러면...' 으로 시작되는 최후통첩과 함께 '앞으로는 잘해라. 이번이 마지막인기라.' 식의 엄중한 재판장님의 선고가 내려지면서 곧바로 근신형에 처해진다는 겁니다.
슬슬 멍이나 든 척 게기고 있으면 시댁식구들이 몰려오셔서 다 해결되고, '새 아가 그래 몸은 괜챦노?' 이런 대사들이 나오면서 그때부터 일정기간 회복불능의 근신형에 처해진다는 건데요.
첨에는 그것도 되게 억울해 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는 '싸우면 안되는데, 싸우면 안되는데, 싸우면 망하는데...' 하는 말을 혼잣말로 하면서도 못 참고 대들어서 누나 입장에서는 늘 안스러웠다는 겁니다.
일단 이렇게 되면 밥을 굶겨도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도 없이 비참해 지는 진행이 하나도 바뀌지 않고 환갑을 넘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건데요. 지금도 가끔씩 인생의 진리를 잊어버리고 불나방처럼 덤비는 통에 많이 이런 불쌍한 사람...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겁니다.
단순한 공격에 그렇게 약하다고 하데요. 한번 졌으면 다음에는 대응도 달라져야 하는데 늘 대응이 똑같다는 겁니다. 그러니 싸움 하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편하겠어요?
젊었던 시절 초반전에는 손찌검 내지는 뭘 때려 부수는 식으로 진행이 되었는데, 임신 중인 누이를 살짝 건들였다가 시댁식구와 친정인 저희 집이 다 몰려가서 거의 살인범 대접을 받은 적고 이 이후로는 손만 가까이 가도 또 건들이려 했다는 누명을 쓰게 되었고,
'어디 홀몸도 아닌데 니가 사람이냐? 넌 자식도 아니다.’ 류의 아침드라마에나 나올 것 같은 시어머니의 대사를 들을 때는 속으로 너무 통쾌한 나머지 오히려 죄송했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되기를 2년여, 드디어는 집에서 내 쫒겨 갈데가 없어 처갓집으로 피신하는 지경에 이른 건데, 멀쩡한 사람 이상한 사람 되는데 걸리는 시간으로는 2년이면 짧은 기간이지요?
매형의 주장은 그렇습니다. 경상도 여자들이 착하고 잘 길들여져서 그런지 몰라도 적어도 남편을 이기고 살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그러니까 한마디로 봐주는 분위인데 이 동네는 분위기가 좀 심하다는 거지요. 가정의 권위 화평과 평화를 위해 봐달라는 것이 본질인데 요런 걸 쌩 무시하는 분위기라 적응 안 되고 죽겠다는 겁니다.
오늘도 불쌍한 매형님이 어떤 운명에 처해져 있을지, 집에서 밥은 잘 얻어먹고 다니시는지 많이 궁금하네요.
근데 솔직히 저는 다 이해되지는 않았습니다. 얼마든지 대응이 될 텐데 그게 안 되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월님들은 어떠세요? 충청여자 경상남자 이 이야기 동의 또는 이해되세요?
- © 1998 ~ 2024 Wolchuck all right reserved. ▲TOP
갱상도에
해병대까지는 동알헌디""""""
아직까지 저저저저 정도는 아인디""""
한참을 웃었슴니다...
매형의 근황이 엄청 궁금합니다.ㅋㅋㅋㅋㅋㅋ
먼저 화내면 지는것이다 ^^
그래도 엄니기실 땐 연합군 믿고 버텼는디 ...
버렄!은 항상 먼전디..... 요샌 어째 평생 안하던 미안혀 ~~ 소릴 달고사네유
해빠져도 안들어오면 껌검한 방에 배고픈거 참고 견디다
딸그락 소리나면 우찌나 반가운지^^
여시마눌 곰탱이 남푠 ....대한민국 남편들 현주소가 아닐까요^^
잘 알아들어셨지요 !!
울 마눌님 충청도인디 ~~!!
그냥 남자하기 나름인거 같아요 ~~!!
저 아직까지는 큰소리 치믄서 살아요 ~~ ^^
에헴 ~~!!
저는 마흔 이후부터 서서히 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지는 것이 차라리 편해서 지고 삽니다.
쓰신 글을 읽으며 혼자 빙그시 웃어봅니다.
재미있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본 느낌입니다.
흐흐... 언젠간 시작할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