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싯대를 펴둔 곳에 내려오니 오른쪽 펴둔 대에는 찌가 없었다.
바로 챔질을 하니 걸려 있다는 감각이 왔다.
강제집행을 했다.
5치 정도의 예쁜 붕어였다.
붕어의 색깔은 저수지마다 틀린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지만, 이 저수지 붕어의 등 부분은 TV역사 드라마에 나오는 장군의 갑옷을 연상할 만큼 짙은 색이고 배 부분은 황금빛깔을 띠고 있었다.
손바닥 위에 펴놓고 감상하는 붕어의 촉감과 시각적인 맛은 예술작품을 뛰어넘는 무아의 경지에 도달하도록 만든다.
입질과 챔질 그리고 작품성을 갖고 있는 붕어의 자태에서 조사들이 들뜨고 물가에 앉아 기다림을 즐기는지도 모른다.
다음 유혹을 위해 지렁이를 탐스럽게 뀌어 갈대 곁으로 낚싯대를 투척을 하고는 손을 씻었다.
정말 소주의 알코올 취기 때문인지 복통은 사라졌지만, 따가운 햇살 아래 눈앞이 아른거리고 잠이 쏟아지고 있었다.
새벽에 출발하면서 걸친 파카를 벗어들고 일어나 논둑에 시원하게 방뇨를 하고 차 문을 열었다.
조수석에 앉아 레버를 젖혀 등받이를 수평으로 하고 시동을 걸어 창문을 약간 내린 후 다시 시동을 껐다.
남방 단추를 풀어헤치고 누워 파카로 배를 덮었다.
취기가 스멀거리며 위벽을 타고 올라 얼굴에 더운 열기를 뿜어 대고 있었다.
창문 틈새로 불어오는 한줄기 봄바람에 동면하며 굳어 있던 진한 생명의 용트림과 환희를 느끼고 있었다.
점차 눈꺼풀이 무거워져 오고 의식의 끈은 느슨해져 가고 있었다.
배를 덮은 파카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찾았다.
연기는 실내에서 창문 틈 사이로 유연하게 날아 사라진다.
눈을 감았다.
팔조령 터널을 지나 고갯길로 달리고 있었다.
C읍은 소싸움 축제로 온통 들뜬 분위기였다.
12년만에 한번씩 순서가 돌아오는 계모임 참석 때문이었다.
길눈이 어두워 친구집도 찾지를 못해 차를 초등학교 담장 곁에 붙이고 마중을 나오게 전화를 걸었더니 먼저 도착한 친구가 마중을 나와 손짓을 하고 있었다.
담 밑에 굵은 등나무의 줄기가 벽과 기둥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문 앞에 벗어놓은 무질서한 신발과 방안에서 흘러나오는 고함 소리가 사람이 아닌 신발들의 아우성 소리를 듣는 환청에 잠시 빠졌다.
벌써 술잔이 몇 순배 돌았고 분위기에서 잘 익은 무화과 향을 느꼈다.
무리와 악수를 나누고 늦게 도착했다는 원망을 들으며, 연이어 들어오는 술잔을 받았다.
C읍 특산 미나리 향을 음미하며 삶은 수육 한 점을 들었다.
언제 만나도 잘 익은 술맛을 느끼는 친구들의 머리에도 서리가 내렸고 웃는 얼굴의 눈가에는 잔주름이 패여 있었다.
어깨를 툭툭 치기에 눈을 떴다.
목덜미와 얼굴은 온통 땀으로 젖어 있었다.
"야아, 조사야! 밤에는 뭐 했기에 차 문을 두드려도 코를 골며 자고 있노?"
"뭐? 코를 골더라고?"
"아니? 좁은 차 속에서 뭐 그리 깊은 잠에 떨어졌노? 정신차려서 점심이나 먹자 . 해떨어지겠다."
취기와 봄기운에 떨어져 고향 친구들을 만나던 춘몽에 젖어 있었나 보다.
Y.
그런데 왜 갑자기 친구 Y 꿈을 꾸고 있었을까?
마당에 심겨져 하늘을 타고 올라가는 등나무의 끈기를 닮은 사내이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을 때 들은 이야기는 두 번째 아기를 낳다가 부인하고 사별을 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휴가 기간 동안 무엇이 그리 바쁜지 만나지도 못하고 귀대를 했다.
제대 특명을 받은 후 개구리복에 물을 빼기 위해 동기들과 어울려 소주잔을 기울이며 빨래를 해서 말린 후 행정반에 들어오니, 친구 편지를 통해 억수로 재수 좋게(?) 홀아비가 처녀를 만나 딸 하나를 데리고 재혼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후 가끔 계추를 통해 내외간에 서로 상면을 했지만 아물지 않는 상처의 흔적처럼 지난 이야기는 의식하면서도 서로가 피해서 돌아갔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고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지난 상념이 노을처럼 곱게 가슴을 물들이곤 했다.
계모임 하는 날 문 앞에서 다 큰 처녀가 인사를 하기에 누구냐고 물었더니
"내 큰 아이다. "
" 어이구, 많이 커서 이제 처녀티가 나는구나?"
" 뭐, 이제 대학 2학년이다."
언젠가 친구 아내가 젖먹이를 업고 왔을 때, 걸려 다니던 그 아이였다.
친구의 아픈 상처와 과거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군대생활을 하는 격리된 공간 속에서 같은 시간대에 서로 세월을 보내면서도 서로간에 일어난 사건의 세부적인 내용보다 피상적인 결과만 알고 있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느낌은 홀가분하면서도 양파 속껍질의 세포 속에 쌓인 듯하다가 서서히 껍질이 녹으면서 정신은 맑아지고 있었다.
차에서 비틀거리며 내려서 걸어가니 라면이 끓고 있었다.
친구가 쳐다보며
"조사! 어제 밤에 의무방어전 한 게 아니가?"
대답 없이 그냥 미소를 지으니
"신혼 때는 눈만 마주치면 붕붕을 했는데....."
"야! 조사 요리 솜씨 좋은데........퍼진다."
코펠 뚜껑에 젓가락으로 라면을 담았다
라면 국물부터 한 모금을 마셨다.
"좀 짜다."
"뭐라고? 야전에서 싱겁고 짜고가 어디 있어? 짜면 생수 좀 부어라."
금방 개봉한 봉지 김치가 싱싱했다.
시원한 봄바람 한줄기가 미간을 스쳐 지나간다.
긴 겨울 동안 수렁 같은 늪에 빠져 봄이 올 때까지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원인은 알고 있지만 해법이 없어 방황했는지도 모른다.
고지가 바로 저기 보이는데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내 상황과 결부된 의식의 연결고리 틈새에서 말라비틀어진 뿌리처럼 고통스러워하다가
인내하며 다시 비 맞은 야생 춘란처럼 재기한 그 친구의 춘몽이 비집고 들어온지도 모르겠다.
그래 황소처럼 천천히 걸어가자.
봄바람에 몸을 던지고, 꽃바람에 마음을 열며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을 하자.
따스한 봄볕 아래 낚시터에서의 춘몽은 내 생활의 삶에 소금간을 해 주었다.
짜지도 맵지도 싱겁지도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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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고기를 낚으시는게 아니라 세월과 즐거움을 낚으시는분 같습니다.......
도인같습니다^^
낚시터에서 낮잠을 자다가 친구 꿈을 꾸었으니,
오늘 친구한테 전화를 한번 해 보시지요.
꿈같은 조행기 잘 보았습니다.
많은걸 생각하게 하는~~~~
마지막 엔딩이 가히 압권이군요
고지 가 저기인데~~!!
건강도 챙기시고
좋은글(조행기) 자주 부탁드립니다